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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 강해2)
에무나( בֶּאֱמוּנָתֹו )(2)
230903낮 (합2:1-4)
<1)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2)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3)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4)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아멘
지난 주에 말씀 드린 대로 지난주와 이번 주 두주에 걸쳐서 하박국에 대한 말씀을 드립니다. 하박국을 지난주에 읽어 오시라고 말씀드렸는데... 읽고 오신 분?
지난 주 핵심이 하박국2:4절 말씀이었습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에무나( בֶּאֱמוּנָתֹו )고 그랬죠?
그런데 이 에무나의 직역은 “견고함” 또는 “버팀”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에무나 ( בֶּאֱמוּנָתֹו ), 버티는 것이다.
하박국서는 하나님께 불평하고 이에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하박국서는 하나님과 하박국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불공평한 현실에서 하나님께 불공평하다고 왜 침묵하시느냐고? 왜 아무 일도 안하시냐고? 나 보다 더 악한 자가 왜 더 잘되느냐고? 하나님 백성을 심판하시는데, 우리 보다 더 악한 갈데아 사람들을 쓰시는 것이 옳은 것이냐고? 답답함을 호소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은 더 이해 못할 말씀을 하시죠?
내 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더디더라도 정해진 때가 되면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그러니 이루어질 때까지 더 버텨라!고 말씀하시죠... 그것이 에무나( בֶּאֱמוּנָתֹו )라고 그랬죠?
이 말씀을 오늘날 우리의 형편에 맞게 말씀드린다면, 왜 내가 이렇게 힘든데 하나님은 도와주시지 않고 가만히 계시냐고? 너무 억울해서 못 견디겠는데....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고, 열심히 하나님 섬겨왔는데... 그런데 왜? 이렇게 힘든 고난의 연속이냐고? 어떻게 좀 해보시라고?.... 그러면 그러냐? 네가 정말 힘들었구나? 알았다 하시고 당장 해결해주시고, 하나님이 고쳐주시고, 하나님이 역사해주시면 헷갈렸던 하나님에 대한 생각도 명쾌해지고, 속 시원히 다 해결될 것 같은데.... 하나님은 그러지 않으시고, 더디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진다... 내 말은 반드시 정한 때에 성취될 것이다. 그러니 더 버텨라!는 것입니다. “진짜 믿음은 바로 이 순간에 버티는 것이다. 참아내는 것이다. 살아내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눅18:8절에서 주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믿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왜 이런 말씀을 하실까요? 가짜 믿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미혹의 영에 넘어가고(막13:12), 환란을 견디지 못하고 배교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13절)
“오직 의인은 그의 버팀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에무나 ( בֶּאֱמוּנָתֹו ) ! 버티는 것이 믿음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에무나 ( בֶּאֱמוּנָתֹו )가 믿음에 쓰였는데, 오늘은 에무나 ( בֶּאֱמוּנָתֹו )가 또 어디에 쓰였는가를 알아보겠습니다.
에무나 ( בֶּאֱמוּנָתָם )는 직분에 사용되었습니다.!!
'에무나' 란 단어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맡긴 직분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쓰였습니다.
성전에서 문지기나 요리사 역할을 맡은자들의 직분을 가리킬 때 이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대상9;22절입니다.
<22)택함을 입어 문지기 된 자가 모두 이백 열두 명이니 이는 그들의 마을에서 그들의 계보대로 계수된 자요 다윗과 선견자 사무엘이 전에 세워서 이 직분을 맡긴 자라> בֶּאֱמוּנָתָם
대상9:31절입니다.
<31)고라 자손 살룸의 맏아들 맛디댜라 하는 레위 사람은 전병을 굽는 일을 맡았으며> בֶּאֱמוּנָה
레위인 가운데 일부는 평생을 성막의 문지기로서, 일부는 요리사로서 일을 성실하게 감당했던 것입니다. 이들을 통해 구약의 하나님 나라가 지속적으로 이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약속을 믿고 버티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나라의 생명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농어촌이나 도심의 작은 교회들은 목회자는 안수 받고 가는 일들이 반복되고, 교인들은 다 떠나고, 마을은 텅 비어 가다보니 교회가 무너지는 것을 많이 봅니다.
그러나 그런 교회를 사명을 가지고 끝까지 지키는 교인이 있습니다. 다른 교회를 가면 더 좋은 교제를 할 수 있고, 평안하고, 얻을 것도 많이 있을 것임에도 떠나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분들로 인해 교회가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마을(지역)에 교회가 있으면 주님이 그 마을(지역)을 품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섬기다 보면 때로는 힘이 듭니다. 그래서 예배나 드리고 멀찌감치 서 있으면 상처를 받지 않기 때문에 직분을 맡기보다는 방관자처럼 생활하는 성도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직분을 맡고 끝까지 견디는 성도를 통해 교회가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면류관은 이런 분들의 것입니다.
물론 교회에서 때로는 상처 입기도 하고, 말씀에 갈급함을 느끼기도 하여 부득불 교회를 옮기기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어떤 보상이나 만족을 얻지 못하고 있음에도 어려운 교회를 지속적으로 섬기고 돌보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렇게 버티는 사람들을 통해 그리스도는 자신의 교회를 살려 가십니다. 이들을 하나님은 의롭다 인정하시고, 생명을 하나님의 선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제주지방은 어려운 교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오래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힘들어도 버티며 오래 있다 보면 교회들이 일어서는 것을 보게 됩니다. 15년, 20년 가까이 한 교회를 지키니까 교회가 일어서드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가능하게 하는 것이 평생 다른 교회로 가지 않고 끝까지 그 교회를 지키는 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도 왜 좋은 교회 찾아가고, 더 나은 교회로 옮기고 싶지 않았겠어요... 나마저 떠나면 교회는 누가 지키나... 자기가 떠나면 교회는 문 닫아야 하니까... 버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을 통해 하나님은 결국 그 교회에 생명을 불어넣어주시고, 일어서게 하시더라구요...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귀할까요?
직분을 감당하려면 버텨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봉사하려면 바터야 합니다. 더구나 문지기와 요리사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에무나가 쓰였습니다. 문지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성전 문을 열고 닫고,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 일일이 체크해야 합니다. 제일 먼저 사람을 만나고 제일 늦게까지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얘기하면 교회의 사찰이나 안내위원입니다. 요리사는 주방에서 일합니다. 교회에서도 주방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상처를 잘 받습니다. 거기서 싸움도 잘 일어납니다. 그래서 안내위원이나 주방봉사나 잘 버텨야 합니다. 버터야 감당할 수 있습니다. 버티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버티면서 직분을 감당하는 이들을 통해서 교회를 세워 나가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버티며 직분을 감당하는 일꾼들을 통해 교회는 영적 생명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힘들어도 버티세요... 서로 부디껴 상처가 되어도 이겨내고, 부담이 되어도 버티며 하나님 주신 직분을 잘 감당하는 자를 통하여 교회는 바로 세워져 가는 것이고, 나 자신도 예수님의 모습으로 다듬어져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들에게 시들지 아니하는 영화로운 면류관을 준비하시리라 믿습니다.
에무나( בֶּאֱמוּנָה )는 결혼관계에서도 쓰였습니다.!!
하박국2:4절에서 쓰인 믿음이라고 번역된 단어 에무나는 결혼관계를 묘사하는 용어로도 사용되었습니다.
호세아2:19-20절입니다.
<19)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20)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20절에 ‘진실함으로’라고 번역된 단어에도 ‘에무나( בֶּאֱמוּנָה ) 로 쓰였습니다.
결혼관계에도 하나님은 에무나( בֶּאֱמוּנָהָ )를 쓰신 것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잘 아시는 것이죠... 부부가 참고 견디지 않으면 이 세상에 남아날 부부는 하나도 없을 것이고, 지켜질 가정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안 그런가요?
요즘 제가 느끼는 건데... 목회보다 더 힘든 것이 있더라고요... 부부가 결혼해서 서로 맞춰서 사는 것이 목회보다 힘들다.... 본심이 아닌데... 상처주고, 상처받고... 아마도 그래서 하나님이 결혼관계에도 에무나ָ를 쓰신 듯합니다. 참아라, 버텨라.... 참고 버티지 않으면 한 가정도 남아나지 않을 것 같으니까요 ㅎ
어떤 두 남자 친구가 오랜만에 만나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한 친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결혼을 두 번이나 했는데 다 실패야...
저런 어떻게 되었길래....
첫 번째 여자가 도망갔지 뭐야
그러면 두 번째도 도망갔어?
아니, 그게 아니고 두 번 째는 영 도망가지를 않아!
사실 호세아의 말씀은 사람과 사람의 사랑과 가정 이야기보다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결혼, 신랑신부로 표현하는 곳이 많습니다. 찬송가도 있잖아요...(신랑 되신 예수께서 다시오실 때....)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음행한 여인 고멜을 아내로 삼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호세아의 아내 고멜은 우리가 다 아는 대로 음행을 저지르고 가출한 여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음행한 아내를 다시 데려와 사랑을 베풀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을지라도 아내의 신실하지 못함을 견뎌내면서 끝까지 아내를 긍휼히 여기고, 신실함을 보이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결혼 관계의 에무나( בֶּאֱמוּנָה )ָ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간음했고, 음탕한 짓이라고 표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도 없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랑 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렇게 사랑하시겠다는 것을 호세야 선지자를 통하여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서를 통해 우리가 끊임없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범죄하고, 조금만 힘든 일 있으면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 원망하고 사는 우리를 끝까지 참으시고, 버티시고,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버티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와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싶으시고, 더 이상 용서하지 않고 심판하시고, 버리고 싶으셔도 버티시고 참고 참으신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우리와의 관계가 지켜지고, 세워지는 것이지...그렇지 않으면 벌써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끝장났을 것입니다. 내가 잘 해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끝없는 용서와 사랑으로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고,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과연 이것이 가능한가? 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버티기만 하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말인가?
“오직 의인은 그의 버팀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진리를 멋지게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벤허>라는 영화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좋아하는 감명 깊은 영화죠.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15분간의 전차경주죠... 철천지원수인 메살라는 흑마 4마리가 이끄는 바퀴에 톱날이 달린 중무장한 그리스식 전차를 끌고 유다 벤허와 경주를 벌입니다. 모든 조건이 불리한 전차 경주에서 벤허역을 담당한 찰톤헤스톤은 메살라역을 한 스테판 보이드와 맞서서 승리하는 장면을 연기해야 했습니다.
미남은 아니지만, 190센티가 넘는 키와 적당한 근육질의 배우인 헤스톤은 영화 <벤허>를 촬영하는 동안 마차 타는 것을 배우는데 매우 힘들었다고 합니다.
2개월 이상 많은 연습을 한 후에야 그는 마침내 마차를 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잘 할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었습니다. 이에 벤허역의 찰톤 헤스톤은 윌리엄 와일러 감독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차는 탈수 있겠는데, 경주에서 이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와일러 감독이 말했습니다.
“단지 경주에 남아 있기만 해요. 그러면 당신이 이기도록 해줄 테니까.”
유다 벤허보다 모든 조건이 유리한 메살라가 참패를 당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가장 큰 원인은 윌리엄와일러 감독이 유다 벤허가 이기고 메살라가 참패하도록 각본을 썼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각본을 짜시고, 감독하시는 하나님도 우리에게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단지 경주에만 남아 있으라. 내가 너로 승리하게 해주마.”
그렇습니다.
옛날 모세와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전쟁할 때 손들고 있기만 하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손만 들고 서 있기만 하면 여호수아의 군대를 승리하게 하신 여호와께서 우리 역시 경주에만 남아 있으면 승리하게 하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기에 승리하는 삶의 비결이 있습니다.
악인들이 잠시 득세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 “의인은 그의 에무나 ( בֶּאֱמוּנָתֹו )로 말미암아 살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박국의 의혹과 의문을 사라져 버리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하박국은 믿음으로 노래합니다.
합3:17-19절입니다.
<17)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
하박국은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더라도 고통스럽지 않다고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그의 버팀(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더라도 괴롭지 않습니다. 의인은 떡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비록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다 하더라도 여호와를 찬양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버티기만 하면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밭에 식물이 없더라도 슬퍼하지 않습니다. 오직 의인은 그의 성실함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 양이 없더라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비록 외양간에 소가 없더라도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오직 의인은 버팀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하박국처럼 우리도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까?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는 사람을 “의인”으로 봅니까?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는 사람을 “축복 받은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습니까?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는 사람을 “의인”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이런 사람을 의인이라고 부르기 힘든 교회 풍토 안에 살고 있습니다.
낙도나 오지에서, 또는 우리나라에서 목회하기가 가장 힘들다는 제주에서 평생을 목회 했는데 교인은 여전히 서너 명이라도 그 교회를 위하여 성실하게 섬기는 목사를 의인이라고 부릅니까? 혹시 작은 교회 목사라고 가볍게 여기고 무능한 목사라고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까? 큰 교회 목사니까 더 어려워하고 더 훌륭하다고 보고 있는지는 않습니까? 헌금은 많이 못해도, 교회를 크게 섬기지는 못해도 평생을 이 교회를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는 교인을 의인이라고 불러주는 풍토입니까?
신실하지 못한 배우자 곁을 끝까지 지킨다고 멍청한 짓을 한다고 속으로 비웃지는 않습니까?
얼마나 좋은 교회가 많습니까? 멋진 프로그램에, 세련된 만남에, 자녀들의 교육까지 책임지는 교회들로 넘쳐납니다. 그러나 세련된 교회, 큰 교회, 교육시스템이 잘 지루어지는 교회를 마다하고 이 작은 교회 와서 많은 일들을 해야 하고, 감당해야할 부분도 많고, 서로 부딪기는 것도 많은 교회에서 끝까지 버티며 믿음생활 하는 분들에게 하박국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없는 진실의 말씀입니다.
“오직 의인은 그의 신실함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성공한 신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짧은 순간에 삶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자녀들이 유명한 대학에 들어가고, 병을 고쳤다는 성공적인 신화의 주인공이 많습니다. 이들을 인간적으로 얼마든지 칭찬하고 칭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인은 성공으로 산다”고 결코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직 의인은 그의 버팀(믿음으로, 신실함으로)으로 말이맘아 살리라”고 말씀하셨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무엇으로 삽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그의 신실함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의인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그날까지 오직 의의 성실함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의 약속만 의지하고 버티며 살아야 합니다.
코넬리아 마크의 책, <내 모습 그대로 괜찮아>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넘어지는 것은 인간적이고,
넘어진 채 머물러 있는 것은 마귀적이고,
다시 일으키는 것은 그리스도적이다.“
롬8장 33-37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33)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기록 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한 가지 성경 이야기만 하고 하박국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삼하19장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사울왕가가 몰락하고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에 다윗은 요나단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내 은총을 베풀었습니다.
므비보셋은 절름발이었습니다. 스스로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죽은 개 같은 존재라고 스스로 말했습니다.
이런 므비보셋을 다윗은 친구 요나단과의 우정을 생각하여 자신의 밥상에서 함께 먹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이 반역을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왕궁을 버리고 몇몇 자신을 따르는 신하들과 함께 피난을 갔습니다. 이때 므비보셋의 시종 사악한 시바가 므비보셋을 모함하며 이간질합니다. 다윗은 자기를 따라오지 않은 므비보셋을 괘씸하게 여겨, 므비보셋에게 주었던 모든 재산을 시바에게 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반란군을 진압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때, 므비보셋이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빨지 않고, 다윗보다 더 피난민 같은 모습으로 다윗왕을 맞이하러 나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다리를 절므로 시바가 자신을 데리고 가줘야 하는데, 시바가 속이고 혼자서 가버렸고, 시바가 다윗왕에게 거짓을 고하고 이간질을 한 것이라고 자초지종을 아뢰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다윗왕은 시바와 므비보셋이 재산을 반 반씩 가지라고 합니다.
이 때 므비보셋이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왕이시여 왕이 무사하니 되었습니다. 내 재산을 모두 시바에게 주고, 다시 거지가 되어도 왕이 돌아오셨으니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찬양합니다!
죽은 개 같이 살던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하늘의 은총을 입고 하늘나라 왕자로 살 때, 간사하고 비열한 마귀들이 우리를 시샘하고 질투하며,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간질 합니다. 때로는 왕의 상에서 왕자와 같이 살던 우리를 다시 죽은 개처럼 추락하게도 합니다.
다윗왕의 노염을 샀을 때, 므비보셋이 절름발이였다는 사실이 다윗의 오해를 풀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므비보셋 입장에서는 두 다리가 골절되어 평생을 스스로 걸을 수 없는 불행한 처지가 안타까웠겠지만, 이 핸디캡이 므비보셋을 살게 한 것입니다.
므비보셋처럼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은혜입니다.
주님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죽은 개 같은 처지가 은혜입니다.
지금 나에게 있는 약점이 나를 지켜 줍니다.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죽으나 사나 하나님 앞에 엎드릴 것입니다.
기도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주님 앞에 기도하며 또 기도할 뿐입니다. 때로 오해를 받고 무시당하고, 배신당해도 때가 되면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억울함을 헤아려 주실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에무나( בֶּאֱמוּנָתֹו )가 필요합니다. 믿음 생활도, 교회생활도, 사회생활도, 가정생활도, 직분감당도, 답답한 환경도, 고난과 환란의 때에도, 어떤 모함과 핍박에도, 낙심과 절망, 영적침체 속에서도... 버텨야합니다. 버티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에무나의 믿음으로 버티고 감당하다보면, 하나님께서 넉넉히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하박국처럼 버티십시오. 그러다보면 우리도 하박국처럼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하박국의 고백을 함께 하고 마치겠습니다.
합3:17-19절입니다.
<17)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