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 공동체에서 설교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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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생각이 다르다. 또 성장 배경이 다르다. 그러다 보면 서로 다툴 수가 있다. 때로는 나쁜 말을 할 수 있다. 비방할 수 있다. 원망할 수 있다. 화를 낼 수 있다. 그리고 뭔가 상대에게 잘못할 수 있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지을 수 있다. 이런 일은 우리의 일상의 삶 속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때 나는 과연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할까? 이것이 베드로의 질문이다. 베드로는 일곱 번 정도 하면 되나요? 라고 물었다. 베드로는 7번도 많은 숫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정도 용서하면 될까요? 예수님은 일곱 번이 아니다.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고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70 x 7= 영원히 용서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늘나라는 마치 자기 종들과 셈을 가리려고 하는 어떤 왕과 같다고 말한다. 만 달란트 빚진 종 한 명이 왕 앞에 끌려왔다. 1달란트는 15년 일한 월급이다. 만 달란트는 얼마인가? 십 오만년(150,000년) 일한 월급과 같다는 말이다. 이것은 죽지 않고 150년 일하는 것이 아니라 150년을 일하고 곱하기 1000을 해야 하는 돈을 빚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갚을 수 없는 빚이다. 이것은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빚이다. 이 정도의 돈을 빚진 사람이 왕으로부터 빚을 탕감받았다고 생각해 봐라. 얼마나 행복할까?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우리는 100달러 탕감 받으면 기분이 좋을까 어떨까? 엄청 기분이 좋을 것이다. 1,000달러는 어떠냐? 은행에서 1,000달러를 빌렸는데 ABA에서 연락이 왔다. 돈 안 갚아도 됩니다라는 전화를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10달러면 어떨까? 누군가가 나에게 10만 달러를 주면 참 좋을 것 같다. 그런데 10만 달러 곱하기 5,400번을(캄보디아 300달러 월급을 기준으로) 한 돈을 주면 어떨까? 이 정도의 재산은 세계 1위의 재산보다 2.5배 많다. 세계 1위는 프랑스 회사 베르나르 아르노(루이비통), 2위는 일론 머스크(테슬라), 3위는 아마존, 6위는 빌게이츠, 16위가 페이스톡(마크저크버그, 메타)이다.
그런데 세계 1위 부자가 가진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내가 빚을 왕에게 졌는데 그 돈을 탕감해줬다고 생각해봐라.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이것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렵다. 그냥 내가 집을 짓기 위해 10만 달러, 신형 렉서스 차를 사기 위해 10만 달러, 10헥타르 땅을 사기 위해 20만 달러를 ABA 은행에서 빌렸다. 그리고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차를 샀다. 5년 후에 돈을 못 갚고 있었고, 은행에서 독촉하기 위해 찾아왔다. 돈을 갚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제발 다음에 갚을 테니 시간을 주면 내가 최선을 다해서 꼭 갚겠다며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은행장이 알았다. 너 돈 안 갚아도 된다. 내가 모든 빚을 탕감해줄 거라고 했다. 그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세상에 어떻게 내 인생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며 너무너무 행복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이렇게 기분이 좋아서 돌아오는 길에 한 친구를 만났다. 이전에 나에게 1,000달러를 빚는 친구였다. 그리고 본인은 40만 달러를 탕감받았는데도 친구가 1000달러를 갚지 않는다고 경찰에 신고를 해서 감옥에 넣었다. 여러분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금방 40만 달러를 주인으로부터 탕감을 받고 기분이 너무 좋은데 고작 1,000달러 빚진 친구가 돈을 갚지 않는다며 감옥에 넣은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주인은 이 40만 달러 탕감해준 사람을 불렀다. 32절에 이 악한 종이라고 말한다. 32절에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라고 한다. 주인이 화가 나서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35절 말씀, 너희가 각각 진심으로 자기 형제자매를 용서해주시 않으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라고 한다. 이것이 우리가 외우는 주기도문이다. 내가 내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처럼 내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빚을 탕감해준 것처럼 내 빚을 탕감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죄에 대한 온전한 용서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자원하여 희년을 실천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때 성령이 임하기 때문이다. 사죄의 은혜는 성령이 임해야 가능하고 이 은혜를 받은 사람은 사죄의 은혜로 끝나지 않는다. 반듯이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 이것이 온전한 회개며 온전한 구원이다. 이런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잘못뿐만 아니라 빚도 탕감해주고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성령 강림 이후의 초대교회가 사유재산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이런 이유다. 토지를 팔아 가난한 사람의 필요에 따라 소유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이런 이유다. 단순히 공동체는 재산을 나누어야 하는 원칙이 작동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자원해서 되는 것이다. 은혜를 받으면 내것이 내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성령을 통한 사죄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자원적 나눔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조직의 강제나 규율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희년의 삶은 억지가 아니라 자원하는 것이다. 자원은 성령이 임하여만 가능하다. 그리고 성령은 심령의 부흥만이 아니라 삶의 부흥을 가져온다. 온전한 회개를 가져오고 온전한 생각과 세계관의 변화가 오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는 생각의 변화, 세계관의 변화, 그리고 이전 삶의 방식이 아닌 세로운 삶의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를 용서하신 죄는 진짜 죽을죄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죽을죄다. 세계 최고 부자가 가진 돈보다는 많은 돈을 탕감해준 것처럼 내 죄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라는 것이다.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0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롬1:29-32)
내가 이런 죄를 용서받았는데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이 나에게 불쾌하게 하고 나를 기분 나쁘게 만든 것을 용서하지 않고 우리는 화를 낸다. 말을 하지 않는다. 다투고 싸운다. 이것은 꼭 10,000달란틀 15년 월급을 다 모은 것에 6000을 곱한 빚을 탕감받고 돌아오는 길에 1000달러 빚진 사람을 감옥에 넣는 것과 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형에 해당하는 내 죄를 용서하셨다. 그래서 나도 내 형제의 용서 못 할 죄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빚을 탕감해주는 일을하는 것이 희년적 삶이고 주기도문에서 가르치고 있는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