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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전서 10장 31절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번주 토요일은 추석명절입니다. 추석명절이 되면 사람들의 마음이 가족들에게로 향합니다. 서로를 만나는 기대감도 갖습니다. 서로 만나면 싸우는 소수의 가족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화목하고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를 위한 음식도 만들고 화목과 기쁨을 기대하면서 명절날을 기다립니다. 여러분들은 추석명절이 가까우면 어떤 마음이 듭니까?
추석명절은 추수의 기쁨을 갖기도 하지만 한 가족이 모여서 가족의 소중함과 윗사람을 대하는 예의범절을 배우는 날이기도 합니다. 평소에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이 모이는데 조부모를 비롯하여 모든 자녀들 삼사대가 모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몸이 불편하신 부모님들을 요양원에 의탁하게 되면서 가족들이 부모님을 면회하기 어려운 때가 되었고 이로인해 이제는 자녀들도 잘 모이지 않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명절이 되면 부모님을 찾기보다는 보모님을 빼고 가족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역시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번 명절을 어떻게 보내실 작정이십니까?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 10장 31절 말씀은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어떤 목적으로 살아야 하는 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명절을 지키는 것 역시 이 범주에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명절을 어떻게 보낼지를 하나님께 여쭈어보아야 합니다. 우리 같이 31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이 말씀은 우리나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행동이 옳으냐 그르냐를 넘어서 진정한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를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이 살아갈 이유가 무엇입니까? 먹고 마시고 살기 위해서 입니까? 계속해서 출세를 위해서 직장에 다니고, 돈을 벌기 위해 장사나 사업을 하고, 출세나 성공하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자녀들에게 조금이라도 나눠주기 위해서 열심히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다입니까? 불신자들 역시 이 목적으로 살아갑니다.
불신자와 예수님을 믿는 다고 하는 사람들의 삶의 목적이 서로 같다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차이가 어디에 있을까요? 물론 예배를 드리고 십일조를 드리고, 헌금도 하며, 봉사도 합니다. 이런 부분은 절에 다니는 사람들도 합니다. 물론 자기 하고 싶을 때 가끔해서 그렇기는 하지만 종교생활이 이 세상의 풍요롭고 부유한 삶을 위한 것이라면 다른 종교인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뭔가 삶의 목적이 다르기에 삶의 방향도 다를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공부하는 학생과 목적없이 공부하는 학생은 같은 교실에 앉아 공부한다고 할지라도 공부하는 방향이 다를 것입니다. 목적없는 아이들은 부모님이 하라고 하니까 어쩔수 없이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삶의 목적을 가진 아이는 공부의 방향을 정하고 목표를 세워서 공부를 합니다. 그런 아이들은 알아서 합니다.
공부하는 것만이 아니라 농사를 짓는 일, 직장에 다니는 일, 장사나 사업을 하는 일, 교회에 다니는 일들이 모두 그렇습니다. 서로 다른 방향성을 가집니다. 감은 교회를 다녀도, 그리고 같이 앉아 예배를 드려도 서로 목적이 다르면 다른 방식의 삶을 살 수밖에 없고 경과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두 사람이 함께 잠을 자다가, 두 사람이 함께 밭을 갈다가, 두 사람이 함께 잠을 자다가 한 사람만 가고 한 사람은 남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결국 열심히 운동장을 달려도 골인지점으로 가는 사람이 우승을 할 수 있듯이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해도 분명한 삶의 목적과 목표를 알지 못하면 신앙생활은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참된 열매를 맺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들이 읽으신 본문은 여러분들이 무엇을 목적으로 살아야하는 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이 말씀은 여러분들의 삶의 모든 부분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합니다. 삶의 방향성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전에는 자녀들을 위해 일하고 농사를 짓고 장사나 사업을 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고 농사짓고 장사나 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좋은 집을 사길 위해 저축을 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저축을 하는 것입니다. 돈을 모으는 이유가 잘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본문 앞에 있는 구절인 23-2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모든 것을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덕을 세우며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사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왔던 부자청년은 재산은 많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심하면서 돌아갔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지도 못했고 유익하게 하지도 못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런 삶을 살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유익보다 자기의 안정을 더 중요시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영생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삭개오는 큰 부자였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자신의 재물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덕과 유익을 위하여 그렇게 소중히 여겼던 재물을 기쁨으로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9장 9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삭개오 역시 아브라함이 가진 그 믿음으로 가졌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받은 구원, 그리고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받는 구원을 받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삭개오를 통해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반면에 한 부자는 풍년이 들자 주체할 수 없는 곡식을 보관하기 위해서 창고를 하나 더 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라고 부르시면서 “어리석은 자야! 내가 오늘 네 영혼을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위해서 살고 계시며, 무엇을 위해서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들의 삶의 이유며 목적입니까? 왜 자녀들을 키우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계속해서 그와 함께 하시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하시고 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시기 위해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번 추석명절을 지키시기 위해서 준비하실 텐데 무엇을 목적으로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까? 그렇다면 돌아가신 조상님들을 위하여 제사를 준비하십니까? 여러분들이 읽으신 본문 말씀 위로 올라가면 이방인들의 제사가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20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여기서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들도 열심히 제사를 드립니다. 물론 제사를 드리는 대상들은 많습니다. 각자 나름대로 믿는 신들에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돌아가신 조상들에게 하기도 합니다. 자신들이 존경하는 존재이든지, 아니면 두려워하는 존재이든지, 혹은 자기의 욕심을 충족시켜줄 신이든지 간에 사람들 속에는 영적인 세계를 인지하는 능력이 있어서 나름대로 신이라고 생각하는 대상에게 제사를 하면서 복을 빕니다. 어떤 경우는 강력한 재앙앞에서 제사를 드리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 기근이 오래 되었을 때 불교나 무속인들이 일어나서 기우제를 드린다고 들썩 거렸던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보령시에서는 아직도 바다일을 하는 사람들이 용왕제를 드리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 동네 역시 일년에 한 차례씩 모여 동내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영적인 세계를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타락한 영혼은 참된 신을 알아보는 눈을 잃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자기들 앞에 나타나 수많은 기사와 표적들을 보이셨어도 그들은 하나님이라고 알아보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하는 일을 훼방하고 급기야는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민족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듯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을 알아볼 길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름대로 생각하는 신에게 제사를 드리며 나름대로 생각하는 대상에게 제사를 드립니다. 중국에서는 공자나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를 신으로 모시며 제사드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일본은 천황들을 모시고 있는 신사에 가서 제사를 드립니다. 그들은 죽은 천황들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들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약하며, 무지하며, 또한 현재의 삶에서 복되게 살기를 원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며, 또한 막연하게나마 죽음이후의 세계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행하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제사는 하나님의 영광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열심을 다해 그들이 믿고 있는 신이나 조상들에게 제사를 드린다 할지라도 그 제사를 받는 대상은 없습니다. 다만 귀신들이 받는 것처럼 속일 뿐입니다.
그리고 귀신들은 소수의 자기가 택한 사람들을 통해 거짓된 가르침을 줍니다. 요즘처럼 귀신들을 섬기는 무당과 점장이들이 매스컴에 등장한 예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땅의 삶을 보장해주는 것처럼 약속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을 기분이 좋아집니다. 잠시만이라도, 그리고 그것이 거짓말일지라도 사람들은 믿고 기대감을 갖습니다. 그런데 그것뿐입니다. 그들이 생각한대로 땅에서 잘되면 좋고, 안되면 또다시 빌면 그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문서화된 약속의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그러나 기독교는 그 진리에 생명이 좌우됩니다. 영생이 달려있습니다.
기독교가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받으시기 위해 자신의 약속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읽고, 듣고 받도록 문서화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 문서화된 성경에 인을 치셨습니다. 첫 번째 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두 번째 인은 성령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믿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구약 창세기부터 신약 요한계시록까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언약이 흐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그도의 피는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 신실하며 영원하다는 사실을 보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피흘리신 십자가가 기독교의 중심에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구하며 성경을 들여다 보는 사람들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역사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며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성경이 다른 책들과 다른 점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며, 또한 동행하는 삶으로 인도한다는 점에서 확연하게 다릅니다. 그래서 성경을 여러분들은 거룩한 책이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신 유일한 책입니다. 온 인류가 읽어야할 책이며 온 인류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영생을 얻게 하는 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수도 있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서로 하는 일이 다릅니다. 가정주부로써, 한 남편의 아내로써, 한 아내의 남편으로써,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또 어머니로써의 삶이 있습니다. 또한 농부로써, 상인으로써, 학생으로써, 또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고용된 사람으로써 직장에 다니거나 아니면 잠시동안 일을 도와주는 사람으로써, 또 목회자로써 각자에게 맡겨진 일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자리입니다. 거기서 여러분들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실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사실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무엇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으로 살아가신다면 여러분들의 가정과 사업체와 동네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보령시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도시로 거듭날 수도 있습니다. 이 나라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나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온 세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통해 자기들이 사는 나라와 다른 나라에까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것은 하면서 영광을 돌리고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하지 않으면서 영광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러분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에 여러분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날마다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행하는 제자의 삶을 배워야 합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새롭게 채울 것은 새롭게 채워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대로 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나라는 지금 정치가들이나 학교의 교육자들이 국민들의 마음에 미움을 심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입장을 알려고 하지는 않고 무조건 미워합니다. 배척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춤을 주는 것은 마귀와 그의 부하들인 귀신들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자기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조차 세상의 거센 파도에 휩쓸려 죽어가면서도 세상에 마음을 맞추며 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 나라에 속해 있기 전에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이 나라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으로서 이 나라를 어떻게 섬길 것인가를 하나님께 여쭈어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바른 섬김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임의로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말만듣고 판단한다면 바른 판단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큰 미움의 파도에 휩쓸려서 죄악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서로 비난하며 같이 망해가는 것입니다.
지금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회복해야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지셨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 일이 오래 걸린다 할지라도 교회와 여러분들은 이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것이 힘들지라도 이길 수 있는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교회와 여러분 안에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세상을 비난하러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세상을 책망하시고 그들을 그들의 죄에서 돌이키도록 하라고 오신 분이십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예수님께서 각자에게 맡기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의 영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해 일하십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여러분들에게 맡겨진 일들이 무엇입니까? 이번 추석명절에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나면서 여떻게 하면 여러분들과 가족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기도해보시기 바랍니다. 지혜의 영이신 성령께서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사시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의 방식을 가족들에게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바로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그 선한 섬김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셔서 여러분들이 있는 모든 곳에서 구원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이 추석명절에 제사를 드리면서 귀신들과 교제하시지 마시고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에게서 받았던 옛날의 서운했던 어떤 행동들과 말을 꺼내면서 다투지 마시고 감사를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통해 온 가족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예수님의 몸으로 덧붙임을 받는 놀라운 역사로 인해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에 큰 기쁨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