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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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凝香閣 향기를 바라보는 방 스크랩 송광사 불일암-법정스님의 향기속에...
香象堂 추천 0 조회 27 15.09.06 18:3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법정스님 향기속의 송광사(松廣寺) 불일암(佛日庵)

    

 불일암(佛日庵)

 

 

불일암 가는 길

 

법정스님이 걸으신 이 길은 무소유의 길이다.

마음을 비우고 가지지 않은 자의 마음으로 거니는 길이다

 

 

불일암은 전남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43번지에 있는 조계산 송광사(옛 이름 수선사)의 산내암자로, 고려시대 송광사의 제7세 국사인 승려 자정국사(慈靜國師, 법명 일인一印)가 창건하였다.

본래 이름은 자정암(慈靜庵)이었으나 1975년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법정(法頂) 스님이 중건하면서 불일암(佛日庵)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불일(佛日)은 고려시대 불교 개혁의 중심 스님이었던 보조국사의 시호인 만큼 법정스님이 마음의 스승으로 삼고자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불일암의 사립문

 

사립문을 들어서면 대숲이 이어지고 숲이 끝나는 지점에 암자가 있다

 

요사체

 

 

 

 

법정스님이 기거하던 불일암

 

해우소

 

 

 

 

자정암(불일암)은 조선 숙종 34(1708) 봄에 시습·이징 스님이 중수하였고, 1765년 탁명 스님이 공루를 건립하였으나 공루는 1929년 해체되었다. 고종 3(1866)에 칠성각이 세워졌고, 1867년 칠성탱화 3폭이 조성되었으며, 고종 16(1879)에 지장탱화가 봉안되었는데, 이 불화들은 지금 송광사 성보박물관에 남아 있다.

1891년 월화·계암·용선 스님이 정문을 중수하였고 그 후에도 몇 차례 중수를 거듭하다가 한국전쟁으로 인해 퇴락하여 내려오다가, 1975년 법정 스님이 중건하였다  

법정스님은 강원도 산골마을로 가시기 전 이곳에서 1975년부터 1992년까지 17년을 머무시며 '무소유' '산방한담' 선가귀감' 등 주옥같은 저서를 남겼다. 그러나 스님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아져 수행하기가 힘들어지자 홀연히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오지에 오두막을 짓고 은둔하며 향기로운 글을 많이 남기셨다

 

경내에는 법정 스님이 기거한 요사 2동과 찾아오는 이들에게 감로수를 대접하던 수각이 있으며, 경내 북동쪽에 자정국사 부도가 있다.

지금의 불일암 건물자리는 1866년 승허(乘虛)스님이 창건한 칠성각(七星閣)이 있던 자리이고, 옛날 본채인 자정암은 불일암건물 앞 낮은 곳, 지금 밭이 있는 자리이다.

 

불일암(佛日庵)은 스님이 오래 거처한 곳이기도 하지만 육신이 잠들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201042849재를 마친 스님의 유해는 이곳 불일암으로 돌아와 손수 심은 후박나무 밑에 안장되었다

 

 

 

법정스님은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1956년 전남대 상과대 3년을 수료하고, 1956년 경남 통영 미래사에서 효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593월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19594월 경남 합천 해인사 대교과 졸업 뒤 쌍계사, 해인사, 송광사 등의 선원에서 수도했고 1970년대 후반부터 송광사 불일암과 강원의 한 암자에서 정진에 힘썼다.

1994년부터 2003년까지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 회주를, 2003년까지 서울 성북동 길상사 회주를 지냈으며, 한글대장경 역경위원, 불교신문사 주필, 송광사 수련원장 등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는 [무소유], [오두막 편지], [텅빈 충만], [아름다운 마무리] 등이 있다.

 

폐암으로 투병하던 중 2010311일 병원에서 퇴원하여 길상사에서 입적하니 법랍 55, 세수 78세이었다.

 

 

법정스님 다비식

 

스님은 펑소에 '번거롭고 부질없으며 많은 사람에게 수고만 끼치는 일체의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도 말고,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없이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해주고 사리를 찾으러 하지 말며 탑도 세우지 말라'고 하셨다

돌아가시기 전날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데 써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는 말을 남기셨다.

 

법정 스님이 세상을 떠난 지금에도 이곳에는 법정 스님의 자취가 곳곳에 배어 있다. 법정 스님이 손수 만든 나무의자가 주인을 잃은 채 놓여 있고, 그 뒤쪽 벽에는 웃는 모습의 법정 스님 사진이 걸려 있다

 

     삶은

     과거나 미래에 있지않고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삶의 비참함은

     죽는다는 사실보다도 살아있는 동안

     우리 내부에서 무언가 죽어간다는 사실에 있다

     이 세상에 올 때도 홀로왔듯이

     언젠가는 혼자서

     먼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엄연한 삶의 길이고

     덧없는 인생사이다

 

  ****************************법정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불일암에서 내려가는 길

 

불일암의 참배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이므로 시간을 맞추어야 참견할 수 있다

 

 

 

 

법정 스님 사진과 나무의자 (일명 빠삐용의자)  

이 의자는 법졍스님이 직접 참나무 장작을 다듬어 만드셨다고 한다.

의자 위에는 책갈피와 방명록이 놓여져 있고 뒷 벽에는 생전의 법정스님 사진이 걸려있다

 

법정스님이 쓰시던 세수 대야

 

 

 

일본목련(법정스님은 이 나무를 후박나무라 불렀다)

 

법정스님이 잠들어 계시는 곳(대나무로 된 사각테두리 안)

 

유언에 따라 다비를 한 후 이 후박나무 아래에 산골을 묻었다. 이 후박나무는 스님께서 불일암을 중수하면서 직접 심은 나무라고 하는데 스님이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나무이며 이 나무 그늘에서 직접 만드신 의자에 앉아 독서를 즐겼다고 한다

 

※ 사실 이 나무는 후박(厚朴)나무가 아니고 일본 목련(日本木蓮)이다. 일본목련은 일본이 원산으로 겨울에 잎이 떨어지는 목련과의 낙엽수이다. 잎이 크고 마른 잎사귀와 꽃에서 향내가 난다하여 '향목련'이라고도 하는데 법정스님이 평소 후박나무라 불러서 지금도 그냥 후박나무라고 한다.  

후박나무는 제주도 등 섬 지방이나 전라도, 경상도 남해안에 주로 자라며 겨울에 잎이 떨어지지 않는 녹나무과의 상록수다. 나무의 잎은 비슷하나 일본목련은 잎이 떨어지는 낙엽수이고 후박나무는 늘 푸른 상록수이며 과(科)가 전혀 다른 별개의 나무이다

 

 

▶ 자정국사 묘광지탑(慈靜國師妙光之塔)

 

 

 

 

불일암의 동북쪽 언덕에 승탑이 하나 있다.

승탑 정면에 '자정국사묘광지탑(慈靜國師妙光之塔)'이라는 명문(銘文)이 음각되어 있어. 승탑의 주인은 자정국사(慈靜國師)이고 승탑의 명칭은 묘광(妙光)임을 알 수 있다

 

자정국사는 송광사 16국사 가운데 제7세로 송광사에 입산 수행하여 도를 깨달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록이 없어 정확한 행적과 생몰연은 알 수 없다. 다만 송광사 사원사적비 등의 기록으로 보아 그의 법명이 일인(一印)이며, 수선사주(修禪社主)로 활동하였던 기간이 1293(충렬왕 19)1301(충렬왕 27)이었음을 알 수 있다.

 

승탑은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으로, 석축을 쌓아 마련된 곳에 있으며, 주위에는 부도를 보호하기 위한 담을 쌓아 놓았다. 승탑이 있는 것을 보아 승탑비도 함께 세워졌을 것으로 짐작되나 지금 남아 있지는 않다.

승탑은 불일암 동쪽 언덕에 석축을 쌓아 대지를 마련하고, 가로 5.9m·세로 4.15m의 탑구를 정하여 그 중심에 승탑을 세웠다. 승탑의 높이는 2.23m, 팔각원당형(기단과 탑신,옥개석이 팔각형으로 이루어진 형태)이다.

 

 

 

승탑은 높은 네모모양의 3단 지대석 위에 있다. 하대석에는 큼직한 복련이 새겨져 있고, 그 위에 중대석이 있다. 상대석에는 앙련이 새겨져 있다.

팔각의 탑신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고, 정면에 "자정국사묘광지탑(慈靜國師妙光之塔)"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지붕돌 역시 팔각이며 지붕돌 아랫면에는 서까래가 표현되었고, 낙수면에는 기왓골이 표현되어 있다. 전각에는 형식화된 귀꽃이 새겨져 있다. 상륜부에는 복발, 보륜, 보주 등이 갖추어져 있다.

단아하고 기품이 있으며 600여년 세월에도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데, 기단부의 구성과 각 부분의 조각기법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승탑에서는 자정국사의 사리를 담았던 상감국화문(象嵌菊花紋) 청자가 나왔는데 이 사리함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송광사 박물관에 보관 전시되어 있다

 

 

▶ 자정국사 사리함

 

 

자정암(慈靜庵) 터에 있는 자정국사의 사리탑인 묘광탑(妙光塔)192255일 도굴되었다가 되찾았는데 사리함도 함께 되찾았으나 속에 있던 사리는 언제 없어졌는지 알 수 없다.

 

사리함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지름 15.2, 총높이 7.7, 뚜껑 높이 3.1, 몸체 높이 5.3이다. 원형의 함 뚜껑은 어깨 부분에서 곡선을 이루며 꺾여 반듯하게 내려와 입술부를 이룬다. 무늬는 윗면 중앙에 백상감의 큰 원을 돌리고 주변에 4개의 작은 원을 같은 간격으로 돌렸다. 원 안에는 흑백상감의 국화무늬를, 원 사이에는 구름과 학이 어우러진 무늬를 새겼다. 윗면 가장자리는 흑백상감의 연꽃잎을 돌렸으며 반듯하게 내려간 입술부에는 백상감의 뇌문띠와 연주문띠를 돌렸다.

 

몸체는 중앙에 위 아래가 구분되는 꺾이는 면이 있으며, 입술에는 드림새를 두어 뚜껑과 맞도록 하였다. 뚜껑과 몸체는 검은 모래가 섞인 내화토를 빚어서 서로의 입술에 받치고 구워 처음부터 함께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몸체의 굽과 굽 안바닥에 규석을 받쳐 갑발 속에 넣고 정성스럽게 구운 듯하다. 유약은 탁한 청자색으로 빙열이 약간 보이지만 비교적 얇게 시유된 듯하다.

이 사리함은 문양의 배치나 청자 유약의 색깔 등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 감로암(甘露庵)

 

원감국사비

 

감로암은 제6세 원감국사(圓鑑國師, 1226~1293)가 창건하였으나 현재는 새로 지은 절집으로 옛스러움이 없다.

감로암 앞에는 원감국사비가 있다. 비신을 받치고 있는 거북이는 힘껏 목을 빼고 기지개를 펴는 자태다.

등에는 이수가 없는 비석을 세웠다. 조형미는 다소 떨어지지만 비가 서있는 곳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풍경과 산들이 막아서는 경치가 좋다.

감로암 뒤쪽 소나무 숲에는 제8세 자각국사(慈覺國師, 130I~1308) 승탑도 있다.

 

▶ 부도암(浮屠庵)

 

부도밭

 

 

부도전 옆에 있는 부도암

 

송광사 경내에서 불일암으로 오르다보면 큰 부도전이 있고 그 옆에 암자가 있다. 보통 부도전은 절집 아래에 있는데, 이 부도전은 절집 위에 있다.

부도전 안에는 29기의 승탑과 5기의 비()가 있는데. 계단식으로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다.

승탑 중에는 제1세 보조국사(普照國師, 1158~1210) 비가 있다. 아마 보조국사 비를 절집 위에 세웠는데, 그 옆으로 부도들이 들어서면서 부도전이 되었고 부도전이 있어서 부도암(浮屠庵)으로 이름지었는지 모르겠다.

부도암은 조계총림의 율원(律院)으로 사용되고 있어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불일암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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