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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9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13. 죄와 전쟁의 상관성을 믿습니다. 2 》
미 4:3
〈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
현대의 모든 국가가 편성하는 예산에는 국방비가 있습니다.
전쟁으로부터 자국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예산입니다.
한국의 경우 국내총생산(GDP)의 2.43% 정도를 국방비로 쓰고 있습니다.
1년에 100만 원을 번다면, 그중에서 2만 4천 3백 원을 전쟁 비용으로 쓰입니다.
미국은 GDP 대비 3.3%로 한국보다 꽤 높습니다.
영국은 2%, 프랑스가 2.1%입니다.
한국은 북한과 휴전 중인 나라이기 때문에 영국, 프랑스보다 높습니다.
한국이 북한을 대비하여 국방비 예산을 편성하는 시기는 1990년대까지입니다.
1990년대를 지나면서 북한은 한국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한국의 대 북한 전쟁 개념은 ‘피해를 얼마나 최소화하면서 이기느냐’입니다.
그럼에도 한국의 국방비 예산이 2.43%나 되는 이유는 중국과의 군사력 균형 때문입니다.
북한과 전쟁이 벌어졌는데, 가까운 중국이 개입할 경우를 예상해야 합니다.
중국은 GDP 대비 1.9%를 유지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국방비 예산 총액은 미국 다음으로 많습니다.
한국은 이래저래 강대국 틈새에 끼여서 국방비 예산 비율을 높게 가져갈 수밖에 없습니다.
참고로 일본은 GDP 대비 1%, 독일은 2%입니다.
☞ 국방비 예산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몇 %이냐는 식으로 설명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국방비 예산이라는 것은 전쟁을 위한 돈입니다.
오늘 본문 미가서 4장 3절에 보면 “전쟁 연습”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사실 국방비 예산이란 것은 “전쟁 연습 비용”입니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전쟁을 연습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자국의 안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3절)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 〉
전쟁이 왜 일어납니까? 전쟁 안 하면 안 됩니까?
전쟁 없는 지구는 불가능 할까요? 대답 한 번 해 보시지요?
① 전쟁 없는 지구 가능하다. ② 전쟁 없는 지구 불가능하다.
_ 인류는 결코 전쟁 없이 살아가지 못합니다. 역사가 증명합니다.
_ 역사이래 지구상에서 전쟁이 없었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_ 사람들은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없습니다. 결론은 이미 나와있습니다.
사람들은 전쟁없는 세상을 만들지 못합니다. 왜 이렇습니까?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세상을 읽을 때, 성경으로 세상을 풀이하고 성경으로 세상을 읽어야 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책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알파와 오메가까지 답을 합니다.
성경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성경으로 세상을 설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엉뚱한 데서 해답을 찾습니다.
성경을 제쳐두고 역사를 논합니다. 고고학을 합니다.
철학과 학문과 사상으로 세상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심리학을 하고, 정신분석학을 하고, 인간의 발달단계를 논합니다.
모두 틀렸습니다. 언 발에 오줌누기이며, 남의 다리를 긁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 안타까운 것은 신학자, 목회자, 교회들이 세상의 학문을 가져다 쓰고 있습니다.
인류가 왜 전쟁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가? 이 질문에는 오직 성경이 답을 합니다.
인류가 전쟁을 하는 이유는 아담하와의 선악과에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금한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사람들은 저마다 선악을 결정합니다.
“이것이 선이다. 이것은 악이다.” 이 결정을 사람이 합니다.
사람이 선악을 결정할 때 첫 번째 기준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나에게 유리한가?”입니다.
나에게 유리해야 선이지, 나에게 불리하면 선이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내 것을 빼앗기면 악입니다. 네 것이, 내 것이 되면 “땡큐!”입니다.
자기중심주의, 이기주의입니다.
국제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국의 이익”입니다.
☞ “자국의 이익”은 “상대국의 손실”입니다. 그래서 전쟁은 필연입니다!
〈 전쟁은 인간 죄악의 결정판 〉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선과 악을 자신이 결정합니다.
“선악을 내가 결정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죄의 결과를 낳습니다.
선악 결정의 기준이 자신, 자기, 우리, 우리 집, 우리 고향, 우리 학교, 우리나라입니다.
선악 결정 기준이 결코 너, 너희들, 그 사람들, 그 지역, 그 나라가 아닙니다.
사람의 ‘선악 결정’에는 항상 손실이 발생합니다. 그 손실을 상대에게 떠넘깁니다.
“손실을 상대에게 전가한다.” 이것은 죄악입니다.
죄악이 분명한데, 사람들은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온 이윤만 보기 때문에 죄를 못 봅니다.
나와 너 사이에 갈등이 생깁니다.
우리와 너희 사이에 갈등이 생깁니다.
우리 지역과 너희 지역에 갈등이 발생합니다.
우리나라와 너희 나라 사이에 이해다툼이 필연적으로 생깁니다.
“전쟁은 사람의 선악 결정으로 발생하는 가장 큰 갈등입니다.”
☞ 선악 결정을 자신이 함으로써 상대에게 손해를 끼칩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죄는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상대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입니다.
내가 먹고살자고 남의 것을 빼앗으면 그것이 “죄”입니다.
나의 유익을 위해 상대방에게 손해를 끼치면 그것이 “죄”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선악 결정권을 행사하면서 가장 크게 범하는 죄가 “전쟁”입니다.
전쟁은 인간이 선악 결정권을 행사함으로써 짓는 죄 중에서 가장 크 죄입니다.
덩어리가 가장 큰 죄, 그것이 전쟁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12. 죄와 전쟁의 상관성을 믿습니다. 》입니다.
이 제목으로 지난 주 수요일에 설교했습니다. 오늘 두 번째 설교합니다.
☞ 인간의 “선악 결정권”이 초래한 가장 큰 범죄가 전쟁입니다.
이것을 인정한다면, 그 대책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 전쟁이 죄냐 아니냐는, 묻지않습니다.
“전쟁은 죄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선이고 이기는 것이 의”라는 생각만 합니다.
승자의 논리, 승자의 행동, 승자의 권리가 곧 “의”이고 “선”인 세상에 우리가 삽니다.
이제는 “전쟁을 근본적으로 막자!”라고 외치는 이도 없습니다.
☞ 과연 전쟁방지 대책은 없고, 오로지 전쟁에서는 이기는 길만이 있는 세상입니까?
〈 전쟁의 죄, 그 속성 〉
☞ 인류가 세울 수 있는 전쟁에 대한 대책은 무엇입니까?
“이렇게 하면 전쟁을 막을 수 있습니다”라고 외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라고 외치는 사람 뿐입니다.
이러다보니, 나라마다 전쟁 연습에 몰두합니다.
해마다 전쟁 연습을 위한 거액의 예산을 편성합니다.
말이 방위비 예산이지, 사실은 “전쟁 연습” 비용입니다.
오늘 설교 본문이 미가서 4장 3절입니다. 다시 읽습니다.
(3절)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그가’ 누구입니까? ~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어떤 죄를 심판하십니까? ~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
민족들 사이에 있었던 일로써 심판을 받아야 할 일이 있으니, 곧 전쟁입니다.
전쟁은 죄의 결과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전쟁은 개인의 죄이면서, 집단의 죄입니다. 집단 중에서도 민족이란 집단의 죄입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 전쟁은 ① 민족의 죄이면서, ② 민족에 속한 모든 이들의 죄라는 사실입니다.
죄에는 이처럼 ① 보편성 ② 개별성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6.25 전쟁을 겪었다면 당대를 살았던 모든 한국인이 죄인입니다.
물론 북한이 남쪽으로 쳐들어온 전쟁이지만, 응전하는 과정에서 죄는 필연입니다.
전쟁은 도발한 쪽과 응전한 쪽 모두를 죄로 물들게 합니다.
응전의 과정에서 “선악 결정권”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선전포고 당사국과 응전 당사국을 모두 죄악에 빠뜨립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도발한 나라, 응전한 나라 모두 피해갈 수 없습니다.
☞ 죄악에는 이처럼 ① 보편성 ② 개별성 여기에 ③ 동반성을 띱니다.
〈 전쟁 연습이 사라지는 날? 〉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하나님은 전쟁의 죄를 물으실 때, ① 보편성 ② 개별성 ③ 동반성을 적용하십니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가 선포합니다.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오늘날 예수 믿지 않는 현대인들, 예수 믿지 않는 세상, 전쟁의 죄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전쟁 없는 세상이 불가능하다면 이기는 것이 상책”이라고 나라마다 결정합니다.
“전쟁에서는 이기는 것이 의(義) 혹은 선(善)이다!” 이렇게 결정합니다.
이 결정의 기원이 아담 하와의 선악과라는 진리를 세상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라마다 방위비(防圍費) 경쟁을 합니다.
☞ 과연 전쟁이 끝나는 날이 올까요?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날이 오겠습니까?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
무기를 내려놓고 서로 화평하는 때가 오겠습니까?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한국의 젊은 청년이 군대 안 가도 되는 날이 오겠습니까?
남북통일이 되면, 한국의 군대는 해체되겠습니까?
아까 말씀드렸습니다. 한국의 국방비 예산은 북한도 북한이지만, 중국이 타겟입니다.
1990년 이후 한국은 이미 중국을 염두에 두고 국방비 예산을 편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남북통일이 되어도 한국은 “전쟁 연습” 계속해야 합니다.
과연 전쟁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날이 오겠습니까?
오기는 올 것입니다.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오늘 본문 미가서 4장 3절이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 하나님의 심판으로 전쟁은 끝이 납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 전쟁 연습이 아니라 천국 연습 〉
미가서 4장 3절 말씀은 “종말의 때”를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병행구절이 있습니다.
사 2: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두 구절이 매우 흡사합니다.
더욱이 이사야와 미가는 동시대인 주전 8세기 선지자입니다.
두 선지자의 선포는 한결입니다.
종말의 때에 하나님의 권능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아담하와의 선악과로 인하여 사람이 저마다 “선악결정권”을 행사합니다.
세상 모든 이들이 이 “선악결정권”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때가 언제겠습니까?
요한계시록에서 선포하는 새하늘과 새땅, 그때에 가서야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
하나님이 남겨놓으신 “남은 자”입니다.
우리가 먼저 “선악결정권”을 하나님께 돌려드렸습니다.
남들은 아직도 갖고있으면서 휘둘러대는데, 일찌감치 반납하니, 서운한가요?☻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섭니다.
하나님은 생명책을 보시고 판결하십니다.
육신을 가지고 사는 중에 “선악 결정권”을 반납한 자의 이름만이 생명책에 있습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 가는 나라, 하나님의 나라, 천국입니다.
천국에서는 어떻습니까? 거기서도 모든 이들이 “선악결정권”을 가집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선악결정권을 가진 나라입니다.
그 나라를 우리는 미리 연습하고 있습니다. 천국 시민권자들입니다.
그러나 세상 나라 시민권자들은 ‘천국 연습’이 아니라 ‘전쟁 연습’을 하면서 삽니다.
오늘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은 ‘전쟁 연습’을 내려놓고, ‘천국 연습’을 합니다.
누가 더 복된 자들입니까?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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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완전 동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