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직지사와 모티길(2)
(2023년 9월 13일)
瓦也 정유순
2. 모티길
오후에는 직지사에서 약 45㎞쯤 떨어진 ‘김천모티길’시작점인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마을회관 앞으로 이동한다. 모티길은 ‘제주올레길’을 시작으로 걷기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될 때 조성된 길로서, 자연과 역사 그리고 생태 체험이 함께하는 김천시의 대표적인 길이다. 김천시에는 <직지문화모티길>과 <수도녹색숲모티길> 2개가 있는데, 오늘은 수도녹색숲모티길을 걷는다. 모티길의 ‘모티’는 모퉁이의 경상도 사투리다.
<수도리 마을회관 앞>
수도녹색숲모티길이 있는 수도산(修道山, 1317m)은 김천시 증산면·대덕면과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이 태백산에서 지리산으로 내달리다가 대덕산(大德山, 1290m)에서 동쪽으로 뻗은 산으로 가야산맥상의 고봉의 하나다. 가야산맥(伽倻山脈)은 백두대간의 대덕산동쪽으로 뻗어나간 한 지맥으로 우두령(牛頭嶺)에 의해서 분리·독립된 산맥으로 간주할 수 있다.
<수도산>
수도리마을회관 앞에서 출발하자 ‘인현왕후길’ 안내판이 나온다. 입구에서 수도암으로 갈라지는 지점까지 두 길이 겹쳐지는 구간이다. 수도녹색숲모티길은 증산면에 소재하고 있으며 총 15㎞에 4시간이 소요된다. 주요 코스는 수도리에서 출발하여 자작나무 군락지~낙엽송 보존림~황점리에 이르는 구간이다. 수도녹색숲모티길 주변에는 청암사와 수도계곡, 수도암과 김천옛날솜씨마을 등이 위치하고 있다. 청암사(靑巖寺)는 신라 헌강왕 때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여 화엄종(華嚴宗)을 선양한 곳이다.
<인현왕후길 표지>
인현왕후길은 조선 숙종(肅宗)의 계비인 인현왕후(仁顯王后)가 청암사에 머물면서 산책했던 길에서 유래하였다. 인현왕후는 남인(南人)과 서인(西人)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장희빈(張禧嬪)에게 밀려 서인(庶人)으로 강등된 후 전국의 사찰을 떠돌 때 청암사 극락전에 3년간 은거하며 복위 기도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이 기간 동안 청암사에서 수도산 계곡의 절경(絶景) 또는 수도암까지 산책하며 애환을 달래던 길로 총 길이는 9㎞이다.
<인현왕후길과 수도녹색숲모모티길 입구>
이 길의 정확한 형성 시기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1689년(숙종 15) 인현왕후가 서인신분으로 출궁되어 청암사로 은거했을 때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1694년 왕후로 복위하면서 청암사를 떠난 후 스님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통행로로 이어오다가 1980년대 초 산림청에서 임도(林道)를 개설하면서 확장되었고, 2015년 김천시에서 숲길을 조성하면서 ‘인현왕후길’로 명명되었다.
<수도리 당숲>
수도암으로 갈라지는 길목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본격적인 수도녹색숲모티길이다. 소백산맥의 명산으로 꼽히는 수도산 8부 능선 오지에 자리잡은 <국립김천치유의숲>에는 4개의 걷기 코스가 조성되어 있어 1.5km 부터 ~ 5.7km 까지 선택해 걸을 수 있는데, 오늘은 해발 1,000m의 임도 숲길을 걸으며 바라보는 사계절 풍경과 낙엽송 삼림욕을 효과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아름다운 모티길> 5.7km를 걷는다.
<국유림 수도산치유의숲 표지>
<산불감시초소>
길 대부분이 울창한 활엽수가 숲을 이뤄 여름에 걸어도 좋은 길 같다. 물 흐르는 계곡 주변으로는 물기 먹은 여뀌와 물봉선 꽃이 환한 미소로 길 안내를 해준다. 물봉선은 산골짜기의 물가나 습지에서 무리지어 자란다. 줄기는 곧게 서고, 많은 가지가 갈라진다. 짙은 자주색의 꽃이 피는 것을 가야물봉선, 흰색 꽃이 피는 것을 흰물봉선이라고 한다. ‘고만’이라고도 불리는 고마리꽃도 냇가에서 잘 자란다. 8∼9월에 피는 꽃은 가지 끝에 연분홍색 또는 흰색 꽃이 뭉쳐서 달린다.
<고마리>
<여뀌>
걸어가는 길옆에는 아름다운 시비(詩碑)들이 발걸음에 지친 마음을 달래준다. “살어리 살어리랏다./청산(靑山)애 살어리랏다.” 이렇게 시작되는 <청산별곡(靑山別曲)>은 고려가요의 백미(白眉)로 평가된다. 고등학교 때 교과서에 실린 내용을 기억해 내며 ‘살아야 할 것, 살아야 할 것이었다! 청산에 살아야 할 것이었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아야 할 것이었다!’를 응얼거려보며 비석에 새겨진 시를 다시 읽어본다.
<시비 - 청산별곡>
시가 있는 길을 지나면 <잣나무길>이 나온다. 잣나무는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가 그린 세한도(歲寒圖)에 나오는 송백으로, 송백(松栢)은 소나무와 잣나무를 가리킨다. 그림의 뜻은 ‘歲寒然後知 松栢之後凋(세한연후지 송백지후조)한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비로소 알 수 있다.(논어의 자한편)’는 뜻이다. 추사가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제자인 이상적(李尙迪)이 변함없이 찾아오는 모습을 보고 고마운 마음으로 그려준 선물이었다.
<잣나무길 표지>
세상을 살면서 송백처럼 변함없는 의리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자연은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정자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임도를 따라 내려오면 돌탑들이 도열한다. 왜 이곳에 돌탑을 세웠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돌탑은 마을에 따라서는 당산(堂山)으로 모셔지기도 하고, 또는 주신을 보조하는 보조신(助補神)으로 모셔지기도 한다. 특히 풍수 지리적으로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비보(裨補)의 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돌탑>
곳곳에 지난 장마 때 호우(豪雨)로 인해 패인 골짜기가 가끔은 길을 더디게 하지만 오르고 내리는 길은 발걸음도 가볍게 한다. 무한한 지식을 알게 하는 자연은 항상 외경(畏敬)의 대상이다. 물이 넘치는 개울을 건널 때는 멀리 돌아가는 지혜를 주었고, 여름에 무성했다가 겨울에 지는 잎을 보고 세상에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배웠다. 이러한 자연 속을 두 발로 걷는 다는 것은 우리에게 준 큰 축복이다.
<홍수로 산사태 난 곳>
길을 걷다 자작나무 숲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자작나무는 중부지방 이북에서만 생육이 되는 줄 알았는데, 이곳 남쪽지방에도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자작나무는 섭씨 영하 20∼30도의 혹한에서도 잘 자란다. 표피에는 종이처럼 얇은 껍질들이 겹겹이 쌓이고 기름기가 하얀 분가루처럼 축적이 되어 추위를 이겨낸다고 한다. 그리고 달콤한 자이리톨(Xylitol) 향이 흠뻑 발산한다.
<자작나무 숲>
그래서 불이 잘 붙어 불쏘시개로 사용하고 타는 소리가 “자작자작”난다고 하여 자작나무라고 한다. 또한 결혼식 때 쓰는 화혼(華婚)도 자작나무 불꽃같다고 하여 얻어졌다고 한다. 즉 “자작나무로 화촉(華燭)을 밝힌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목질이 좋아 가구 등 목재로 널리 사용하며, 표피는 종이대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특히 경주 천마총의 말안장을 그린 천마도의 재료가 자작나무 껍질로 밝혀진바 있다.
<자작나무 숲>
특히 자작나무는 빈 땅이 생기면 먼저 찾아가 뿌리를 내려 빨리 자라 숲을 이루고 다른 나무들이 찾아와 자기보다 키가 더 자라면 새로운 주인에게 미련 없이 자리를 양보하고 조용히 사라진다고 한다. 내손으로 일군 부(富)를 대대로 세습(世襲)하겠다는 인간들에게 욕심을 버리라고 고상하고 단아한 외모처럼 한마디 하는 것 같다.
<용담초>
원시반본(原始返本)이라 했던가? 자작나무 밭을 지나면 처음 올라갔던 <국립김천치유의숲>이다. 수도산 중 산간지대에 조성된 <국립김천치유의숲>은 천연림 31%, 인공림 69%로 구성되었으며 자작나무, 잣나무, 참나무, 낙엽송이 주를 이루고 있다. 숲의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김천8경에 선정되었으며 산림자원을 활용하여 산림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국립김천치유의숲>은 산림청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산림복지진흥원 소속이다. 그 이래에 있는 사과밭에서는 푸짐하게 익은 사과가 주인의 손길을 기다린다.
<국립김천치유의숲>
<수확을 기다리는 사과>
https://blog.naver.com/waya555/223223458510
첫댓글 등제감사합니다.
왜선비들은 자기보다훌륭한인재가나타나면
시기하고 멸살하려고만했을까-몹시아쉬운점이다.
마지막사과나무에열린사과가
마치선비같은신세로보여 안타깝다.
...15박장춘...
아마 사람들의 심리가 “배 곺은 것은 잘 참는데,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것” 때문 같아요. 선배님 추석명절 가족과 함께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