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각과 삼베 주머니
여름이 들어설 무렵 팔촌 형수가 울타리 가로 두어 자나 되게 올라온 오이와 호박순을 들여다보며 오이고 호박이고 따다 잡수랍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햄이나 소시지보다는 오이나 호박이 입에 맞습니다. 핏줄이 드러난 할머니 손등처럼 실핏줄이 검게 불거진 노각이 정겹고 노각무침 말만 들어도 군침이 돕니다.
동갑내기 형수 역시 할머니가 된 지 오래라 서넛이나 되는 자식도 자식이거니와 손주들도 여럿입니다. 조석으로 잘 가꾼 밭을 돌아보기도 하고 채소를 솎아 가는데 나까지 거들 여유가 없음에도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습니다. 잡수면 얼마나 잡순다고?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오이와 호박이 엄지손톱만 해졌을 때 호박잎쌈이나 먹을 요량으로 연한 것으로 여남은 장 따 들고 급히 올라왔습니다. 주인이야 만나도 그만이지만 혹시 남들이 보면 도둑질이라도 하는 것으로 오해할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저녁상을 보고 잘 삶아진 호박잎쌈을 입에 넣고 한 입 씹었을 때 소태처럼 써 뱉고 말았습니다. 내가 먹은 쌈은 호박잎이 아니라 오이잎 쌈이었습니다. 잎 모양이 비슷해 호박잎을 딴다는 것을 오이잎을 딴 것입니다. 그 맛을 설명키는 어렵지 않습니다. 옛날 가뭄에 딴 조선오이의 꼬랑지 부분을 먹어보았다면 그 맛을 연상하면 됩니다.
며칠 후 육촌 형수가 지나다가 오이가 꽤 컸다면 따다 드시라고 합니다. 나는 며칠 전의 일을 말했습니다. 도둑질도 알아야 하지 난 못하겠다고 했더니, 나도 그건 먹어보지 못해 그 맛을 모른다며 오이잎이 그렇게 씁디까? 하며 웃습니다. 시동생 도둑질시키는 형수 처음 본다고 하자 에이, 서방님이 드시면 얼마나 드시겠냐며 동서도 잘 아니 걱정하지 말고 따다 드시랍니다. 재종‧삼종 동서 간이지만 시집와 한 마을에서 수십 년을 살았으니 서로 속을 모를 수가 없습니다.
엊그제 팔촌 형수가 노각 좋아하냐며 누런 오이 서너 개를 내밉니다. 며칠 전인가 늙어 꼬부라진 오이를 보며 잘못 늙었네, 하면서 저게 좀 더 컸으면 무쳐 먹으면 좋을 걸, 했던 말을 잊지 않고 삼종 형수가 노각을 가져온 것입니다. 노각을 건넨 형수는 나도 오이잎은 못 먹어봐 쓴지 단지는 모르지요. 하며 깔깔깔 웃습니다. 여담이지만 요즘 젊은이야 맛은커녕 노각이 뭔지 모를 것이고, 더더욱 젊은 어머니들이 그런 음식 할 리도 없으니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일 것입니다. 달콤하고 새콤한 고추장과 참기름과의 콜라보(collaboration)! 금방 한 따듯한 밥에 비벼 보시길!
재작년 텃밭 울타리에 오이 모종을 냈는데 덩굴을 걷을 때 보니 늙은 오이가 눈에 띄었습니다. 자랄 때는 손바닥만 해지면 따먹고는 해 남은 것이 없을 줄 알았지만, 종족 보존의 책임이 작용했던지 이리저리 숨어서 씨를 잉태하고 자손 번식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내년에도 모종을 내면 그만이고 남의 자손 번식보다는 내 입이 먼저기에 껍질을 벗기고 굵은 소금에 절였습니다. 삼베 주머니를 찾아내 물기를 꼭 짜냈습니다. 생전 처음 하는 짓이었습니다. 모르기는 해도 어느 당숙이나 당숙모의 장사 때 아버지나 내가 썼던 건으로 어머니가 만든 귀한 삼베 주머니입니다. 지금은 삼베 보기도 어렵습니다. 기껏해야 수의(壽衣)로 씁니다. 어느 날 여기저기 뒤적이다가 어머니 적에 쓰던 삼베 주머니를 찾아냈습니다. 어머니의 손길이 지워지지 않은 듯해 잘 개어 두었는데 요즈음 유용합니다.
어머니가 해주셨던 노각 무침 맛의 기억을 더듬어 양념해 무쳤습니다. 무엇이 덜 들어갔는지는 옛날 맛과 다른 구석이 있었습니다. 그럭저럭 옛 맛을 음미하며 저녁 한 끼 잘 때웠습니다. 나중에 양념으로 마늘을 빼놓은 것을 알았습니다. 온전한 맛을 보기 위해 이번에는 마늘을 빼는 실수를 만회하고 나니 이태 전과는 달리 그 맛이 일품입니다.
노각무침을 넣고 밥을 비빕니다. 아무래도 엄마의 손맛을 내지는 못합니다. 깨를 듬뿍 넣고 참기름을 종지째 들어부어도 그 맛을 낼 수가 없습니다. 곁에서 지긋이 보시다가 이걸 좀 더 넣어라, 하시며 노각무침을 한 수저 더 떠넣어 주던 엄마의 손길에서 나오는 맛을 당할 수가 없습니다. 자네처럼 허여멀게 가지고는 무슨 맛이 있겠나? 노각무침 덕분에 어머니를 한 번 더 추억합니다. 아무도 이것저것 더 넣으라는 이도 없고 있다 한들 그 맛을 내는 재주도 없습니다. 내년에도 울타리에 노각이 매달리겠지만 삼베 주머니를 비틀어 꼬들꼬들하도록 꼭 짤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꼭 짜서 무친들 점점 잊히는 어머니에 대한 추억, 사라지는 입맛은 또 어떻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