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1일
새벽4시 30분 사파에서 다시 하노이로 돌아왔다.
훼로 가는 비행기는 아침 7시 30분이다.
아직 한밤중처럼 깜깜한 새벽길을 택시를 타고 달려 하노이 공항으로 갔다.
가기전 택시 기사에게 분명 톨게이트비까지 포함이라고 몇번이나 다짐을 받고 흥정을 했는데 가는길에 차을 세우더니 돈을 내란다.. 돈을 줄 수 없다고 하자 자기는 영어를 못한다며 그저 "머니,머니.."만 외쳐댄다.. 이건..사기다.. 나쁜넘..
공항에 일찍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들어가 커피숖에 들어가 소파에 몸을 묻고 잠시 졸았다.
커피라운지에서는 물한병을 공항밖보다 무려 5배나 더 붙여서 팔고 있다.
핫도그 하나를 먹고 목이 말랐지만 물값에 기겁을 하고 주문을 취소했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외국인들도 물값을 듣더니 화를 내고 방방 뛴다.
현지 물 한병이 2천 5백원이라니.. 에비앙보다도 비싸다니....화가 날만 하다.
비행기가 30분 연착이 되긴 했지만 하노이에서 훼까지는 45분이면 도착한다.
사파에서 추운날씨로 떨었던 우리는 따끈따근한 훼의 날씨를 고대했다.
훼 공항에 도착하니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공항 안쪽에서 봉고버스 티켓을 끊고 가이드북에서 본 호텔앞에 내려 달라 했다.
다행히 여행자거리에 도착하자 비는 그쳤다.
알아둔 호텔로 가는길에 호객을 하는 말끔한 젊은이(젊은 남자는 다 좋다..ㅋ) 말에 홀라당 넘어가 그를 따라갔다.
우리가 알아둔 호텔 바로 옆집이다.
방은 깨끗하고 아주 넓고 컴퓨터까지 있었다.(10불)
이상하게 로밍폰이 어제부터 수발신이 되지 않았던 참에 컴맹인 내가 애를 먹어가며 컴에 한글을 깔고 네이트온을 깔았다..
일본어가 깔려 있었던걸로 봐서 전에 묶었던 사람은 일본여행자였나부다..
"""훼의 빈동호텔 203호에 있는 컴퓨터에 한글은 제가 깔아놓은겁니당...""""
기차에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아침까지 내내 이동을 하느라 너무 피곤했다.
씻고 잠시 눈을 붙힌다는게 코까지 골며 대자로 뻗어 잤다.
춥지 않아 이젠 스웨터도 벗고 양말도 벗고 잘 수 있어서 행.복.하.다.
호텔이 있는 골목 안쪽은 아주 조용하다. 앞집 식당들에서 손님들이 나누는 이야기들까지 방안에 들린다.
호텔앞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허스키한 목소리에, 잔뜩 멋을 부리고, 뭔가 끼가 있어보이는 주인 아줌마는 유난히 남자 손님들을 좋아하는거 같다. 자기의 젊었을적 사진들을 식당 여기저기에 붙여놓았다.
론리플래닛에 나와있는 식당이라서 그런지 서양여행객들로 늘 붐빈다.
여자손님들은 찬밥이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 했던가..
오늘은 동네 한반퀴 돌며 산책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기로 했다.
도중에 은행에 들러 환전을 했다. 은행원 아가씨에게 너무 예쁘다~ 너무 친절하다~ 하고 아부를 해댔더니 귀찮게 이렇게저렇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우리에게 짜증도 내지 않고 생글생글 웃음을 보여준다... 여자에게 칭찬은 최고의 약이다..ㅋㅋ
지나는 길에 멋진 호텔이 보인다.. 진짜 호텔..
예전엔 어딜 여행 할때면 늘 특급호텔, 좋은 서비스를 지향하는 나였다.
하지만 왠지 이젠 그 크고 웅장하고 깨끗한 호텔들이 좀 어색하게 보인다..딴 세계처럼....
훼의 후다맥주는 나름 맛있다.
술도 잘 못마시는 주제에 한병 마시고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밤거리를 걸었다..
12월 12일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에서 아침을 먹었다.
조식이 포함되지 않아 돈을 내고 사먹어야 했지만 3만동짜리 팬케잌 세트는 정말 맛이 좋았다.
주문을 받은 아가씨가 실수로 팬케잌을 하나 더 가져왔는데 그거까지 싸그리 다 비웠다.
아침을 먹고 왕궁이 있는 구시가지까지 걸어갔다.
햇살이 꽤 따갑다.. 좋다..너무...
성곽안으로 들어서면 바로 왕궁이 있을줄 알았는데 성안에는 길이 10Km에 달하는 마을이 있다.
날씨가 제법 뜨겁기도 하고 벌써 다리가 아파와서 옆에와서 추근대는 씨클로를 흥정하고 잡아탔다.
성안의 모습은 성밖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키가 큰 아름드리 나무들도 많았고 길거리도 덜 번잡스러웠다.
씨클로는 생각보다 너무너무 편안했다...시원한 바람을 가르고 달린다..
시끄럽고 복잡하고 공기가 좋지 않은 하노이에서는 시도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곳에선 추천하고 싶은 경험이다.
왕궁은...
규모도 생각보다 많이 작지만 여기저기 보수공사 중이라서 왕궁의 정취를 느낄수가 없다.
아담하다못해 초라해 보이기도 했고, 길게 늘어서 있어야할 회랑은 군데군데 길이 끊겨 있었으며, 잘 가꿔지지 않은 정원엔 잡초가 무성해서 뱀이라도 나올거 같았다.
시클로를 타고 달리며 운전수 아저씨는 이런저런 설명을 해준다.
성벽 여기저기 박힌 전쟁의 총탄 자국이며 폭탄 흔적,, 길거리 곳곳에 있는 작은 무덤들...
불과 34년전,, 내가 태어나던 해에 이곳에서는 전쟁이 멈췄다.
씨클로에서 내려 계산을 하려고 하니 맘씨 착해보이던 이 아저씨들이 옴팡 바가지를 씌운다.
한시간 하고 조금 더 지났을뿐인데 2시간이라고 박박 우긴다.. 애초에 시작할 시점에서 시간을 정확히 얘기를 정하지 않은 우리의 잘못이다.. 우리는 다리건너 호텔앞까지 데려다 달라하고 2시간을 지불해 주기로 했다.
나름대로 편안하고 시원하고 평화로움을 느낄수 있었던 시간에 대한 댓가로 싸움은 하지 않기로 한것이다.
오후엔 호텔에서 운영하는 왕릉투어를 신청했다.(5불)
젤루 유명하다는 왕릉3군데를 가는 투어다.
버스안에는 아침부터 종일투어를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왕릉은 입장료가 꽤나 비싼편이다.(한화 5천원정도)
가이드말로 두곳은 비슷하다 하길레 우리는 한곳은 패스하기로 하고 사람들이 구경을 마치고 나올때까지 버스 근처에서 빈둥거렸다.. 돈이 아깝다기 보다는 다리품을 팔고 싶지 않았던게지...나두 젊었을땐 안그랬는데..ㅠㅠ
왕릉의 모습은 오전에 보았던 왕궁보다 훨씬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이상한 일이다.. 당시 살고 있는 곳보다 자신이 죽어서 묻힐 곳에 더 정성을 들여 화려하게 꾸미다니..
정원의 모습이나 건물의 모양은 한국의 그것들과 많이 비슷하다.
하긴 중국을 비롯해 불교 문화권들의 나라들의 역사적인 외적 모습은 여기저기 크게 다르지 않은거 같다.
가이드의 설명은 제대로 듣지 않고 우리는 사진찍기에만 바빴다..ㅎㅎ
투어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엔 버스가 아닌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배를 탔다.
해가 뉘엇뉘엇 넘어가자 경치는 낮의 모습과는 달리 훨씬 더 정겨워보인다.
오랜만에 하루종일 햇볕을 쬐며 돌아다녔더니 몸이 나른하다.
일찍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와 뒹굴뒹굴거리며 책을 읽었다.
앞집 식당의 허스키보이스 주인아줌마의 웃음소리가 떠들썩하게 크게 들린다.
그리고 생일축하 노래소리가 울려퍼졌다.
테라스로 나가 내려다보니 손님들이 주인아줌마 생일을 축하하며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다.
어쩐지 아침부터 아줌마가 잔뜩 멋을 부리고 목소리가 올라가 있더라니..
주인 아줌마는 기분이 아주 좋아 보인다.. 더군다나 젊은 서양손님 옆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 꽤 행복해 보인다..
난... 나이 먹어도....저러지는 말아야지.....에휴..
12월 13일
아침에 일어나 동생이 꿈 얘기를 했다.
KFC에서 맛있는 치킨과 햄버거를 먹는 꿈을 꿨다고 한다...쯪쯪...
어제 구시가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본 KFC를 보고 엄청나게 반가워하더니 결국 그런 꿈까지 꾸고...
앞집 아줌마네서 바나나팬케잌으로 아침을 먹고 들어와 짐을 꾸렸다.
하노이에서 샀던 짝뚱 켈빈 스웨터는 더이상 필요없을거 같아 버렸다..덕분에 따듯하게 잘 입고 다녔는데 짐을 줄여야하니..
체크아웃을 하고 배낭을 맡기고 다리를 건너 KFC로 갔다.
죽은 사람도 아니고 산 사람인데 그깟 소원하나 못들어 주겠나...새우버거를 먹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 행복해 보인다..^^
오는길에 마트에서 쵸콜렛 한봉지를 사들고 다리밑 강변 벤치에 앉았다.
여기저기 눈만 마주치면 배를 타라는 사람들이 득달처럼 달라든다.. 이럴때 좋은게 진한 선글라스다..ㅋㅋ
옆자리에 앉아있는 자알~생긴 서양남자가 말을 걸어온다..(물론 이 남자도 선글라스를 벗어봐야 알겠지만 끝까는 벗지 않는다..)
자기는 스페인 사람이고 1년동안 여행중이란다..
여행동안 자주 느낀것이 있다.. 서양여행자들은 우리의 2주 여행을 너무 짧다고 놀란다. 하지만 가끔씩 만나는 한국여행자들은 2주라고 하면 입을 떡 벌리고 긴 시간이라며 놀란다..
러시아, 중국, 몽골을 거쳐 베트남에 왔단다.. 조만간 몽골에 갈 계획이 있는 나는 이것저것을 물었다..역시 몽골은 멋진단다..
동생이 얼마전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자 열을 올리며 자기나라 자랑을 해댄다..
빈둥빈둥 수다를 떨고 놀다가 공항으로 가는 택시 시간이 되어가자 슬금슬금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오늘은 3시 30분 뱅기로 호치민으로 넘어간다..
동생은 드디어 벗고(?) 다닐수 있는 동네로 간다고 신이 나있다..(KFC햄버거도 먹었겠다..ㅋ)
일정을 빡빡하게 짜지 않은 탓에 여유롭게 다닐수가 있어서 좋다.
많은곳을 보지는 못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것은 어디서든 내 느낌과 생각을 가질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여행이란 새로운 곳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인거 같다.
다른 환경, 다른 사람, 다른 삶들을 보면서 그에 반추되는 내 모습을 보게 되는것...
호텔로 돌아오니 늘 친절한 카운터 아가씨는 내가 버린 스웨터를 챙겨 놓았다..ㅋ
난 이 아가씨가 맘에 든다.
영어를 잘 할줄 몰라 뭔가를 물어보면 눈을 굴려가며 더듬더듬 열심히 대답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로비에 있는 소파에 앉기만 하면 조르르 달려와 차를 따라 주고 방긋방긋 웃는다.
베트남 여행에서 만난 젤루 예쁜 아가씨다...
나두....웃는 모습이 예쁜 얼굴을 갖구 싶다..
그리고... 그 아가씨처럼 24살이라는 나이도....!!!!!!!
첫댓글 글 읽어보면 이렇게 배낭여행 하는게 딱 맞는 분 같아요^*^ 잼나게 잘 읽었읍니다!!!
감사합니다..배낭여행..생전처음이였네요.. 그동안 여행은 많이 했지만 영락없는 캐리어족이였으니까요..ㅋㅋ
24살의 벳남 호텔 아가씨는 보지못하였지만 댁도 충분히 예쁘답니다. 사진 첨부 좀 꼭해줘요. 그멋있는 벳남 풍경을 공유하지않고 혼자만 간직하는건 좋지않은 습관이 될수 있어요.ㅋㅋㅋ
사진까지 볼수 있다면 하는 찐한 아쉬움이..... 2월중순에 갈예정인데 참고하겟습니다. 그땐 해변에서 물놀이가 가능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