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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당기(虛淨堂記), 세속의 욕망에서 벗어난, 맑고 깨끗한 달관의 경지>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허정당(虛淨堂)의 기문(記文) <허정당 기(虛淨堂記)>는 고려후기 학자 가정(稼亭) 이곡(李穀 1298~1351)이 지은 한문 고전수필로, 『동문선』 제71권과 『가정집(稼亭集)』 4권에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텅 비고 맑은 당(堂)’ 허정당(虛淨堂)은 이곡(李穀)과 교유(交遊)했던 순암(順菴) 삼장공(三藏公)이 거처한 집의 당호(堂號)였다. ‘세속의 모든 더러운 욕망’, 예실(穢實)에서 벗어나, ‘맑고 깨끗한 달관의 경지’ 허정(虛淨)에 이르자고 주장한다. 이에 허정(虛淨)이 곧 인간이 추구하는 도(道)인 것이다.
한편 저자 이곡(李穀)은 고려말 성리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여기 기문의 주인공 삼장공(三藏公)은 인생을 달관한 사람으로, 종교나 이념에 초월한 달인(達人)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실제 기록에도 고려 원 간섭기 당대의 고승(高僧)이면서 소인묵객(騷人墨客)들과 음풍영월(吟風咏月)을 즐기며 검소하고 평범하게 살았고, 글씨에도 능하였던 다재다능한 예인이라고 소개해 놓았다.
또한 고려말의 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이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기문(記文)을 보고 쓴 글에 순암(順菴) 삼장공(三藏公)에 대해 말하길, “텅 비고 맑은 당(堂)의 늙은이는 마음이 맑아 물상이 절로 드러났다(虛淨堂中老 心淸物自形)”고 표현하며 ‘천년 동안 맑은 향기를 풍기리라(千載揖淸馨)’고 칭송했다.
○ 더하여 이곡(李穀 1298~1351)이 지은 <허정당 기(虛淨堂記)>는 순암(順菴) 삼장공(三藏公)이 거처하는 집에 허정당(虛淨堂)이란 편액을 내걸었을 때 고려말 문신 학자 가정(稼亭) 이곡(李穀 1298~1351)이 ‘허정(虛淨)’이란 편액에 대해서, 문답 형식을 통해 자세히 설명한 글이다. 비움의 허(虛)와 채움의 실(實), 깨끗함의 정(淨)과 더러움의 예(穢)를 대비하여, 허虛)하여 허인 것, 정(淨)하여 정한 것이 허정당(虛淨堂) 편액에 담긴 삼장공(三藏公)의 깊은 뜻이라는 깨우침이다. 실(實)한 데도 허(虛)인 척, 예(穢)인 데도 정(淨)한 척하기 때문에, 어느 시대이든 사회문제가 많았던가 싶다. 그래서 저자 이곡(李穀)이 다음과 같이 ‘허정(虛淨)’이란 말에 대해 설명했다.
“자기 하나의 사적인 일을 경영하노라면 갖가지 외물과 접촉하며 수작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육체적으로 지쳐 쓰러지고 정신적으로 불안과 초조에 시달리면서 은원(恩怨)의 관계를 마구 맺게 마련이다. 이렇게 되면 고화(膏火)가 태우는 것과 같고, 빙탄(氷炭)이 교차하는 것과 같고, 교칠(膠漆)이 달라붙는 것과 같을 것이니, 예(穢)에서 정(淨)으로 가는 그 이치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다가 형세가 궁해지고 사태가 극도에 이르게 되면, 육신은 시들어서 축 늘어지고 정신은 아무것도 없이 공허해지고 관계는 얼음이 녹고 구름이 흩어지듯 할 것이다. 이런 지경에 이르러서는 자기 몸 하나도 보전할 수 없을 것인데 더군다나 외물(욕망)이야 말해 무엇하랴.
오직 달인의 경지에 이른 뒤에야 외물에 구속을 받지 않고 실(實)에 얽매이는 일이 없이 자연 그대로 맡겨 두고서 사태가 극에 이르기를 기다리는 법이다. 어떤 사물이든 극에 이르면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는데, 참으로 빈 것(虛)과 참으로 깨끗한 것(淨)은 그 속에 있지 않음이 없으니, 삼장공(三藏公)이 바로 그 달인이다.”
✱ 고로 <허정당기(虛淨堂記)>에서, ‘세속의 모든 더러운 욕망’, 예실(穢實)에서 벗어나, ‘맑고 깨끗한 달관의 경지’ 허정(虛淨)에 이르자고 한다. 노자(老子)의 [도덕경 48장]에서도, ‘배움은 날마다 채우는 것이요, 도(道)는 날마다 비우는 것이다(爲學日益 爲道日損)’ 지식을 채우면 지혜가 생겨나고 이어 수행을 통해 도(道)를 닦아 비우게 된다고 한다. 허정(虛淨)이 곧 도(道)인 것이고 또한 비우는 것(虛)임을 알 수 있다.
◉ 결국 이 글은 ‘허정(虛淨)’을 추구하는 것이 곧 도(道)라고 언급해 놓았다. 도(道)라는 뜻은, 삶을 통찰하고 자연의 이치에 맞는 깨달음을 말한다. 또한 도(道)는 아무런 걸림이 없는 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이 균형을 유지하며 완전하여 모양이 없는 자유로움이다. 또 노자가 말한 도(道)는 우주의 근본원리이며 만물의 근원으로서 인간의 인식능력 밖이라고 한다. 즉 우주 만물의 근원인 도(道)란?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 정의한다.
✱ 또한 이 글에서 실(實)이 세속의 모든 욕망이라면 허(虛)는 아무런 집착이 없는 큰 비움(太虛)이고 정예(淨穢)는 마음의 깨끗함과 더러움을 말한다. 허(虛)는 무형의 빈 그릇과 같고, 실(實)은 허(虛)에만 존재할 수 있다. 인위적인 세속의 욕망(穢實)은 지구 자원의 수탈로 인해 환경 문제를 일으켜 지구를 황폐화시킬 뿐만 아니라, 서로의 것을 약탈하고 살인과 폭행이 만연해지는 추악함이 ‘예실(穢實, 더러운 욕망)’이다. 여기에 대응되는 ‘허정(虛淨, 맑고 깨끗함)’이 바로 인간이 추구하는 도(道)라는 것이다.
● 참고로, 다음 ‘微’ 운목(韻目)의 칠언절구 <순암(順菴)에게 부치다(寄順菴)>는 고려후기 문신·학자·문인 가정(稼亭) 이곡(李穀 1298~1351)의 작품이다. 그가 특별히 마음을 터놓고 교유(交遊)했던 순암(順菴) 삼장공(三藏公)의 집 ‘허정당(虛淨堂)’을 한겨울 추위 속에 방문하고 지었다. 속세의 티끌세상에서 언제나 맑고 깨끗한 허정(虛淨)의 마음으로 살고 있는 삼장공(三藏公)이다. 그의 허정당(虛淨堂) 앞에는 잣나무가 몇 그루 서 있고 텅 빈 집은 주인만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고 기술했다.
重來轉覺舊游稀 갈 때마다 느끼나니 갈수록 주는 지인의 숫자
九陌塵埃易滿衣 옷을 쉽게도 더럽히는 도성 거리 자욱한 먼지,
虛淨堂前數株柏 허정당 앞에 서 있는 몇 그루 잣나무가
歲寒忙待主人歸 세한의 계절에 주인님 오기를 고대하네.
○ [허정당(虛淨堂)의 주인 순암(順菴) 삼장공(三藏公)]
공(公)은 고려후기 몽고 간섭기 당대의 고승(高僧)으로 고려의 삼장법사(三藏法師)였던 인물이다. 그는 평양 고을수령이었던 아버지 조인규(趙仁規)의 넷째 아들로 명문가 집안의 후예였다. 또한 의선(義旋)이라고도 부르며 성은 조씨(趙氏), 본관은 평양(平壤), 호는 순암(順菴)이다. 일찍부터 천태종의 승려 원혜(圓慧)의 법맥을 이었으며, 원나라에 들어가 불도를 닦아 원제(元帝)의 총애를 입어 법호를 받고 천원(天源) 연성사(延聖寺) 주지로 있으면서 본국의 영원사(瑩原寺) 주지를 맡았다. 이후 수원의 만의사(萬義寺) 주지 등을 역임하며 20여 년 동안 원나라와 본국을 왕래하면서 양국의 불교의 중흥에 힘썼다. 게다가 그는 15년 동안 원나라 왕실과 본국의 왕실을 자유롭게 출입하는 당대의 고승이면서도 소인묵객(騷人墨客)들과 어울려 음풍영월(吟風咏月)을 즐기며 검소하고 평범하게 살았고, 글씨에도 능하였다. 특히 그는 가정(稼亭) 이곡(李穀 1298~1351),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1367) 등 당대의 문신·학자·문인 등과 교분이 두터웠다.
◉ [한문학 문체(文體) 기(記)] 한문 고전수필에는 대표적으로 설(說)과 기(記)가 있다. 설(說)은 이야기로,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의견을 서술하면서 이치를 설명하는 교훈적인 ‘한문 수필’이라 정의할 수 있다. 반면 사실 그대로 적는 한문 문체를 기(記) 또는 기문(記文)이라고 부른다. 사물을 객관적인 관찰과 동시에 기록하여 영구히 잊지 않고 기념하고자 하는 데에 목적을 둔 글이다. 다른 한문 양식과 비교하여 기의 문체적 특징을, ‘감상을 주로 적는 부와 비슷하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사물의 이치를 밝히는 논과 비슷하면서도 단정 짓지 않는다. 사건의 자취와 관련하여 요지를 드러내는 서(序)와 비슷하면서도 처음이나 끝부분만 가볍게 다루지 않고, 사적을 기억하기 위해 새기는 비문과 비슷하면서도 칭송하지 않는다.’고 한다.
● 다음 한문 고전수필 <허정당 기(虛淨堂記)>는 고려후기 학자 가정(稼亭) 이곡(李穀 1298~1351)이 지은 기문(記文)이다. 또한 이 글은 저자 이곡(李穀)의 지인 삼장공(三藏公)의 당호(堂號) ‘허정당(虛淨堂)’에 대한 설명서이다. 세속의 모든 더러운 욕망에서 벗어나, 맑고 깨끗한 달관의 경지에 다다르자고 주장한 교훈적인 기문(記文)이다.
이 글은 대략 4단락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첫 단락에선, 저자 이곡(李穀)과 자주 교유(交遊)했던 순암(順菴) 삼장공(三藏公)이 자신이 거처하는 곳에 허정(虛淨)이라는 편액을 내걸었다. 어떤 사람이 공은 유교와 불교를 가리지 않고 사람을 사귀고 또한 어느 자리나 행사에도 참석하며 호사를 누린다. 그런데도 “어찌 허정(虛淨)이라고 당우(堂宇)의 이름을 지었느냐?”고 따졌다. 옆에 있던 이곡(李穀)이 대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올바른 도(道)는 실(實, 세속의 욕망)에서 허(虛, 달관의 경지)로 가고, 예(穢, 더러움)에서 정(淨, 깨끗함)으로 가야 하기에 ‘허정(虛淨)’이라 편액한 것이라고 답했다.
둘째 단락에선, 자신 한 몸으로 사적인 일을 경영하노라면 갖가지 어려움과 원한에 마주한다. 그래서 종국에는 자기 몸 하나 보존하기도 힘든 지경에 처한다. 오직 달인의 경지에 이른 뒤에야 실(實, 욕망)에 얽매이는 일이 없이 자유로운 극에 이른다. 공이야말로 허정(虛淨)에 다다른 달인(達人)이다.
셋째 단락에선, 의식(衣食)은 임금의 은혜이고 생육해 주는 것은 부모의 은혜이며, 옳은 길로 이끌어 주고 성취시켜 주는 것은 스승의 은혜다.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공덕비를 세워 무궁히 전하도록 해야 한다.
넷째 단락에선, 삼장공(三藏公)은 유교와 불교에 모두 달인이자, 세속을 떠나지 않아도 세상을 초월할 수 있는 분이다. 어떠한 유혹이나 정욕(情欲)에도 흔들리지 않으니 어찌 허정(虛淨)하지 않으랴. 일상의 삶을 살면서 허정(虛淨)을 행할 줄 알아야지, 일부러 청빈하고 깨끗하고자, 속세를 떠나 배고픔을 참고 구구하게 마음을 닦는 것은 도(道)와 더욱 멀어지는 것이라며 끝맺었다.
*<허정당(虛淨堂)의 기문(記文)>* 가정(稼亭) 이곡(李穀 1298~1351)
(1) 순암(順菴) 삼장공(三藏公)이 거처하는 곳에 허정(虛淨)이라는 편액을 내걸었다. 어떤 객이 의아하게 생각하여 묻기를, “공이 비록 삭발을 하였다고는 하나 의관(衣冠)으로서 부귀를 누리던 습기(習氣, 번뇌로 인한 버릇)가 남아 있고, 공이 비록 명예를 피한다고는 하나 조정에서 포양(칭찬하고 장려함)하고 존중하는 칭호가 있다. 절(寺) 문을 나서면 궁중의 남다른 보살핌을 받으면서 경상(卿相, 고위관료) 등 고관들과 교분을 나누고, 절(寺) 문을 들어서면 유석(儒釋, 유교와 불교) 등의 빈우(賓友, 손과 벗)와 환담을 나눈다. 음식은 풍성하고 정결함은 물론이요, 거처는 청랑하고 그윽하기만 하다. 그래서 간혹 참선하고 송경(誦經, 염불)하는 여가에 향을 피우고 차를 달이기도 하며, 좌우에 도서를 쌓아 놓고 고금의 일을 헤아려 보다가, 흥치가 일어나면 글자를 말(斗)처럼 크게 쓰기도 하고 종이 가득 시를 짓기도 한다. 그리고 예절을 지키고(禮貌) 담소할 때에는 인정에 맞도록 노력하여 화기가 훈훈하게 감돌기 때문에 모두 가슴 가득 뭔가 얻은 것이 있는 듯 충만한 느낌을 가지게 하며, 술 마시기 좋아하는 객이 있으면 술로 취하게 하기를 여산(廬山)의 고사(故事)처럼 하였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부귀를 누리며 호사한다고 일컬어지는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을 것이니, 그렇다면 허정(虛淨)이라고 이름 지은 뜻이 어디에 있다고 하겠는가.”하였으나, 공(三藏公)은 웃기만 하고 응대하지 않았다.
이에 공과 교유(交遊)하는 가정(稼亭) 이자(李子, 이곡)가 옆에서 다음과 같이 대꾸하였다. “그렇게 이름 붙인 뜻을 객이 어떻게 알겠는가. 대저 허(虛)라고 하는 것은 실(實)과 상대가 되고, 정(淨)이라고 하는 것은 예(穢, 더러움)가 변한 것인데, 어떤 사물이든지 그 이치를 보면, 실에서 허로 가지 않는 것이 없고, 예에서 정으로 가지 않는 것이 없다. 사람의 일로 말한다면 군신 부자는 윤리(倫理)의 실(實)이고, 거처ㆍ의복ㆍ음식은 생양(生養, 낳아서 기름)의 실(實)이라고 할 것이요, 이것을 가까이 몸에서 취한다면, 형기(形氣, 형상과 기운)의 실(實)은 신체와 발부(髮膚, 머리털과 살)가 바로 그것이고, 정욕(情欲, 온갖 욕망)의 실(實)은 성리(聲利, 명예와 이익)와 화색(貨色, 재물과 여색)이 바로 그것이라고 할 것이다.
(2) 그런데 자기 한 몸의 사적인 일(私利)을 경영하노라면 갖가지 외물과 접촉하며 수작(酬酢, 응대)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육체적으로 지쳐 쓰러지고 정신적으로 불안과 초조에 시달리면서 은원(恩怨, 은혜와 원한)의 관계를 마구 맺게 마련이다. 이렇게 되면 고화(膏火, 기름과 불)가 태우는 것과 같고, 빙탄(氷炭, 얼음과 숯)이 교차하는 것과 같고, 교칠(膠漆, 아교와 옻칠)이 달라붙는 것과 같을 것이니, 예(穢)에서 정(淨)으로 가는 그 이치는 어떻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가 형세가 궁해지고 사태가 극도에 이르게 되면, 육신은 시들어서 축 늘어지고 정신은 아무것도 없이 공허해지고 관계는 얼음이 녹고 구름이 흩어지듯 할 것이다. 이런 지경에 이르러서는 자기 몸 하나도 보전할 수 없을 것인데, 더군다나 외물(外物)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오직 달인의 경지에 이른 뒤에야 외물에 구속을 받지 않고 실(實)에 얽매이는 일이 없이 자연 그대로 맡겨 두고서 사태가 극에 이르기를 기다리는 법이다. 어떤 사물이든 극에 이르면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는데, 참으로 빈 것(虛)과 참으로 깨끗한 것(淨)은 그 속에 있지 않음이 없으니, 공이 바로 그 달인이다.
(3) 그리고 내가 언젠가 공의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은 즉 ‘사람은 근본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人不可以不知本). 편안히 거하면서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는 것은 임금의 은혜가 아닌가. 따라서 의식(衣食)이 나오는 곳을 생각한다면 가시나무를 등에 지고 물고기 뼈가 목에 걸린 것처럼 느끼게 될 것이니, 날마다 할 일은 임금의 복을 축원하는 데에 있다고 할 것이다. 또 옳은 길로 이끌어 주고 성취시켜 주는 것은 스승의 은혜가 아닌가. 따라서 종교를 부지(扶持)하고 산문(山門, 절)을 중흥하는 것으로 자기의 임무를 삼아 그 일을 마친 뒤에야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또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생육해 주는 것은 부모의 은혜가 아닌가. 따라서 끝없는 그 은혜에 보답할 방도를 생각하여 사당을 세워서 제사를 지내고 그 공덕을 비석에 새겨 무궁히 전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4) 공은 또 뭔가 얻는 것이 있으면 얻는 대로 모두 보시를 하면서, 불승(佛僧)을 공양하고 경장(經藏, 불경)을 정비하고 빈객을 봉양하느라 날마다 쉴 겨를이 없다. 그리하여 다장(多藏, 많이 쌓다)의 예(穢)를 다함이 없는 보장(寶藏, 부처의 미묘한 교법)으로 바꾸어 돌아가게 하니, 어찌 세상에서 강상(綱常,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을 무시하고 공적(空寂, 텅 비고 쓸쓸함)에 얽매일 줄만 아는 자들과 방불(髣髴)이라 하겠는가. 그러므로 공이 세속을 떠나지 않고도 세상을 초월할 수 있고, 마음을 사역 당하는 일이 없이 능히 마음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은, 외물에 변화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이렇게 되면 진기한 보물도 동요시킬 수가 없고, 환난이 닥쳐도 미혹시킬 수가 없고, 성색(聲色, 재물과 여색)도 방탕하게 할 수가 없으니, 어디를 간들 허(虛)하고 정(淨)하게 되지 않겠는가.
만약 외물(實)이 없어진 뒤에야 빈 것(虛)이 되고, 예(穢)가 없어진 뒤에야 깨끗한 것(淨)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반드시 성시(城市)를 멀리 떠나서, 기한(飢寒)을 참아 내고, 구구하게 힘을 쓰며 급급하게 마음을 닦는다고 한다면, 내가 알기에는 그것은 도(道)와 더욱 멀어지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상의 내용으로 객에게 대답하고 나서, 이 말을 그대로 허정당의 벽에 써 붙이게 되었다.
[順菴三藏公扁其所居曰虛淨客有問之者曰 公雖毁形 而有衣冠紈綺之習 公雖避名 而有國朝褒崇之號 出有九重異眷卿相貴交 入有儒釋賓友之歡 齋厨豐潔 軒戶淸幽 或禪誦之餘 焚香煮茗 左右圖書 商證古今 其遇興也 作字如斗 題詩滿紙 至於禮貌談笑 務適人情 和氣所薰 皆充然如有所得 客之好飮者輒醉以酒 如盧山故事 雖世之享富貴而稱好事者 未有以加焉 烏在其爲虛淨也 公笑而不應 其游稼亭李子從旁而對曰 客烏知其所謂邪 夫虗者宲之對 淨者穢之變 凡物之理 未有不從宲至虗 由穢卽淨者也 以人事言之 君臣父子 倫理之實也 居處服食 生養之實也 近取諸身 則形氣之實 身禮髮膚是已 情欲之實 聲利貨色是已 當其經濟一己之私 酬酢萬物之來 所以殄瘁其筋骸 憂焦其思慮 而橫結其恩讎者 不啻若膏火之煎 氷炭之交 膠㓒之合 其所以穢於淨者爲如何也 及其勢窮理極 萎然而隕 枵然而空 氷消而雲散 身猶不可得保 况外物乎 惟達人然後不囿於物 不拘於實 聽其自然而待其極 極則未有不變者矣 而其眞虗眞淨者未甞不在其中 公則其人也 抑甞聞之 公曰 人不可以不知本 安居而飽煖 非君之賜乎 則思衣食所自 如芒剌在背而鯁在喉 日用惟在祝釐耳 誘掖而成就之非師之恩乎 則以扶持宗敎 克復山門爲己任 事已乃已 生育劬勞非父母之德乎 則思所以報罔極者 堂而祠之 碑其功德而傳之無窮 又凡有所得 隨得隨施 若佛僧之供 經藏之餙 賓客之奉 日不暇給 去其多藏之穢 而歸之無盡寶藏焉 豈世之徒知滅綱常縛空寂者所可髣髴哉 故知公之不離世而能出世 不役心而能存心者 能不爲物所化而已 是則珍奇不能奢 患難不能惑 聲色不能淫 何適而非虗淨耶 若曰 無物然後爲虗 無垢然後爲淨 必欲遠城市忍飢寒 䂓䂓用力 汲汲脩心 予知其去道愈遠也 旣以語客 因書于屋壁]
[주1] 순암(順菴) 삼장공(三藏公) : 고려후기 몽고 지배기 승려. 영원사 주지, 만의사 주지 등을 역임한 승려 의선(義旋). 성은 조씨(趙氏), 본관은 평양(平壤). 호는 순암(順菴). 평양군(平壤君) 조인규(趙仁規)의 넷째 아들이다. 15년 동안 원나라 왕실과 본국의 왕실을 자유롭게 출입하는 당대의 고승이면서도 소인묵객(騷人墨客)들과 어울려 음풍영월(吟風咏月)을 즐기며 검소하고 평범하게 살았고, 글씨에도 능하였다.
[주2] 글자를 말〔斗〕처럼 크게 쓰기도 하고 : 초서(草書)에 능했던 당(唐)나라 승려 회소(懷素)가 술이 거나하여 흥이 나면 절간의 벽과 마을의 담장에 글씨를 휘갈겨 썼다고 하는데, 이를 읊은 이백(李白)의 초서가행(草書歌行)에 “일어나서 벽을 향해 손을 멈추지 않나니, 한 줄에 몇 글자 크기가 말만 하네.(起來向壁不停手 一行數字大如斗)”라는 표현이 나온다.
[주2] 모두 가슴 가득 뭔가 얻은 것이 있는 듯 충만한 느낌을 가지게 하며 : 한유의 ‘상사일연태학청탄금시서(上巳日燕太學聽彈琴詩序)’에, 어떤 유생이 비파를 안고 와서 유우씨(有虞氏)의 남풍(南風)을 연주하고, 이어서 문왕(文王) 선보(宣父)의 곡조를 노래하였는데, “저녁에 물러갈 때쯤 되어서는 모두 가슴 가득 뭔가 얻은 것이 있는 듯 충만한 느낌을 가졌다.(及暮而退 皆充然若有得也)”라는 표현이 나온다.
[주3] 여산(廬山)의 고사(故事) : 동진(東晉) 때 여산 동림사(東林寺)의 고승 혜원법사(慧遠法師)가 일찍이 도연명(陶淵明)에게 술을 마시게 해 주겠다고 하여 도연명이 동림사를 찾아갔던 고사가 있다. 또 도연명이 술에 취하면 그 위에 눕곤 해서 파인 흔적이 남게 되었다는 이른바 ‘연명취석(淵明醉石)’이 여산에 있다고도 한다.
[주4] 고화(膏火)가 태우는 것 : 육체적으로 해를 당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에 “산의 나무는 유용하기 때문에 벌목을 자초하고, 유지(油脂)는 불을 밝힐 수 있어서 자기 몸을 태우게 만든다.(山木自寇也 膏火自煎也)”라는 말이 나온다.
[주5] 빙탄(氷炭)이 교차하는 것 : 정신적으로 갈등과 번뇌에 시달리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장자》 인간세에 “기쁨과 두려움 등의 감정이 가슴속에서 싸우는데, 이는 원래 인간의 오장 속에 얼음과 탄불이 한데 뒤엉겨 있기 때문이다.(喜懼戰于胸中 固已結氷炭于五臟矣)”라는 말이 나온다.
[주6] 교칠(膠漆)이 달라붙는 것 : 부레풀과 옻나무의 칠처럼 뗄 수 없는 인간관계를 맺게 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보통 교분이 두터운 우정을 가리킬 때 긍정적으로 쓰는 표현이지만, 여기서는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 서로 유착하는 불미스러운 관계라는 뜻으로 쓰였다. 후한(後漢)의 진중(陳重)과 뇌의(雷義)가 돈독한 우정을 발휘하자, 사람들이 “교칠이 굳다고 하지만, 진중과 뇌의의 우정만은 못하다.(膠漆自謂堅 不如雷與陳)”라고 칭찬했던 고사가 전한다.
[주7] 다장(多藏) : 사적으로 재물을 많이 쌓아 놓는 것을 말한다. 《노자(老子)》 44장에 “매우 아끼다 보면 반드시 크게 손해를 입고, 많이 쌓아 놓다 보면 반드시 크게 잃게 된다.(甚愛必大費 多藏必厚亡)”라는 말이 나온다.
[주8] 강상(綱常) : 삼강(三綱)과 오상(五常). 삼강오륜, 유교의 도덕사상에서 기본이 되는 3가지의 강령(綱領)과 5가지의 인륜(人倫)을 말한다.
[주9] 방불(髣髴) : 방불(彷彿). 거의 비슷함. 흐릿하거나 어렴풋함. 무엇과 같다고 느끼게 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