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定公問 君使臣 臣事君 如之何 孔子對曰 君使臣以禮 臣事君以忠 정공이 묻기를, “임금이 신하를 부리며,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일을 어찌해야 합니까?”하니,
공자께서 대답하시기를, “임금은 신하를 예로써 부리며, 신하는 임금을 충성으로써 섬기는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定公, 魯君, 名宋. 二者皆理之當然, 各欲自盡而已. 노정공은 노나라 임금이고, 이름은 송이다. 둘 다 모두 이치의 당연함이고, 각자 스스로 극진히 하고자 할 따름이다.
此兩平言之正意也 이것은 둘을 공평하게 말한 바른 뜻이다. |
2 | ○ 呂氏曰: “使臣不患其不忠, 患禮之不至; 事君不患其無禮, 患忠之不足.” 여씨가 말했다. “신하를 부릴 적에 그의 불충함을 걱정하지 말고, 자기 예가 지극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임금을 섬길 적에 그의 무례함을 걱정하지 말고, 자기 충이 부족할까 걱정하라.”
此交互言之 不責人而責己 各盡所當然 所以足上正意也 이것은 서로 번갈아 말한 것인데, 남을 책망하지 않고 자신을 책망하는 것이니, 각자 당연히 해야 할 바를 다하는 것이 윗사람을 만족시키고 뜻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
3 | 尹氏曰: “君臣以義合者也. 故君使臣以禮, 則臣事君以忠.” 윤씨가 말했다. “임금과 신하는 의로써 합쳐진 존재이니, 고로 임금이 예로써 신하를 부리면, 곧 신하도 충으로써 임금을 섬기는 것이다.”
新安陳氏曰 尹氏加一則字 以此章爲定公言 警君之意也 若爲臣言 則君雖不以禮 臣豈可以不忠 신안진씨가 말하길, “윤씨는 則자 하나를 더하였는데, 이 장이 노정공을 위하여 말한 것으로서, 임금을 경계해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신하를 위하여 말한 것이라면, 임금이 비록 예로써 대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신하가 어찌 불충으로써 섬길 수 있단 것인가?”라고 하였다.
朱子曰 爲君當知爲君之道 不可不使臣以禮 爲臣當盡爲臣之道 不可不事君以忠 君臣上下兩盡其道 天下其有不治者哉 乃知聖人之言 本末兩盡 주자가 말하길, “임금이 되어서는 마땅히 임금이 되는 도를 알아야 하니, 신하를 예로써 부리지 않을 수 없고, 신하가 되어서는 마땅히 신하가 되는 도를 다해야 하니, 임금을 충성으로 섬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임금과 신하가 위아래에서 둘 다 그 도를 다한다면, 천하에 어찌 잘 다스려지지 않음이 있겠는가? 이에 성인의 말씀은 근본과 말단 둘 다 지극히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問忠只是實心 人倫皆當用之 何獨於事君上說忠 曰 父子兄弟夫婦 人皆自知愛敬 君臣以義合 人易得苟且 於此說忠 是就不足處說 누군가 묻기를, “충이란 그저 진실한 마음일 뿐이니, 인륜에 있어서 모두 마땅히 이것을 사용해야 하는 것인데, 어찌 유독 임금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만 충을 말하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부자, 형제, 부부간에 있어서는, 사람들은 모두 저절로 사랑하고 공경할 줄 알지만, 군신지간은 의로써 투합한 관계이니, 사람이 구차해지기 쉬운 것이다. 여기에서 충을 말한 것은, 바로 부족한 부분에 나아가서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厚齋馮氏曰 以尊臨卑者 易以簡當有節文 以下事上者 易以欺當盡其心 君臣以義合 名分雖嚴 必各盡其道 三家之强 惟有禮可以使之 定哀以吳越謀伐 則非禮矣 徒激其變 無益也 大抵 聖人之言 中立不倚 異時答齊景公之問 亦曰 君君臣臣父父子子 景公曰 善哉 必有以黙動者矣 本末兩盡 含蓄不露 此聖人之言也 若乃孟子 國人寇讐之喩 可以警其君而不可以諭其臣 責善則離之說 可以告其父而不可以訓其子 此聖賢之言所以有辨也 후재풍씨가 말하길, “존귀한 신분으로 비천한 자에 임하는 사람은 소홀하기가 쉬우니, 마땅히 품절과 제도가 있어야 하고,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을 섬기는 자는 속이기 쉬우니, 마땅히 제 마음을 다해야 한다. 임금과 신하는 의로써 투합하는 관계이니, 명분이 비록 지엄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각자 자신의 도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노나라는 三家가 강성하였으므로, 오직 예가 있어야만, 그들을 부릴 수 있었다. 노정공과 노애공이 오나라와 월나라의 군사를 이용하여 이들을 정벌하고자 도모한 것은 예가 아니었다. 헛되이 그들의 변고를 격발시킨 것도 무익한 것이었다. 대저 성인의 말씀은 중립하여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다. 다른 때에 제경공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또한 말씀하시길,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하자, 제경공이 ‘참으로 좋구나!’라고 말하였으니, 반드시 묵묵히 감동시킨 바가 있었을 것이다. 근본과 말단을 둘 다 지극히 하되, 함축하여 드러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성인의 말씀인 것이다. 만약 도리어 맹자의 경우라면, 나라 사람들이 원수처럼 본다는 비유는 그 임금을 경계해줄 수 있을 뿐, 그 신하를 깨우쳐줄 수는 없었고, 責善하면 사이가 멀어진다는 말씀은 그 아비에게 알려줄 수 있을 뿐, 그 자식에게 가르쳐줄 수는 없었다. 이것이 바로 성인(공자)과 현자(맹자)의 말씀에 구분이 있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