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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은 삶의 물결
2021년 12월 25일(토) 다섯명의 동기들이 광화문역 4번 출구에서 만난다. 청계광장을 시작으로 청계천을 걸을 것이다. 아침 기온은 영하 10도를 오르내리고 바람은 세차게 불어대며 코끝이 매섭다. 광화문과 청계광장은 각종 시위의 출발지이자 종착역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수천명으로 시작하여 수십만 수백만 천만명 이상이 촛불을 들고 구름떼 같이 몰려 시위를 벌인 곳이다. 국정농단의 주범을 사상 초유의 탄핵으로 Blue House에서 끌어내린다. " 만~세 ! 대한민국 민주주의 만~세 만~만~세 " 하얀 밤을 지새우기를 몇몇번이던가. 서울하천의 총 길이는 10.84km로 유역면적은 59.83㎢이다. 발원지는 종로구 청운동 인왕산과 북악산 백운동계곡으로 서울 시내의 모든 물이 여기에 모여 동쪽으로 흐르고 있다. 왕십리 밖 살곶이다리(현 한양대학교 서울 캠퍼스와 군자차량검사소) 근처에서 중랑천과 합쳐 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한강으로 빠진다. 청계천은 서울의 개발 역사의 하천이기도 하다. 자연하천에서 시작하여 여러 개천사업을 거쳐 직선화와 복개 작업이 이루어진다.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었을 당시에는 아예 사라지기도 한다. 이후 복원이 이루어져 자연하천과 인공하천이 혼합된 형태의 하천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어찌보면 서울시민들의 치열한 삶의 꿈과 애환이 물결처럼 밀려오는 역사의 현장이 아닌가.
청계천에는 30대 후반에 꿈도 서린 곳이다. 미국 이민을 접고 제약사 년봉도 끝을 본다. 주머니에는 약국을 개업할 여력도 가물가물이다. 누나의 도움의 손길이 따뜻하다. 청계천 4가 공구상과 재봉틀 상가들이 있는 곳이다. 생애 처음 약국이라는 간판을 달은 것이다. 상호명은 청계약국이다. 약국의 개업 조건도 있다 . 실평수가 4.5평 이상이라야 개업 허거가 가능하다. 중구보건소 담당 약사가 방문이다. " 평수가 조금 모자라는 데 ~~` "하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미 건물주와는계약을 마친 상태로 어쩌는가. 지금이나 그 당시에나 인간들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출신학교는 달라도 같은 약사이다. 곁주머니에 조그만 봉투를 집어 넣을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주위 상인들이 단골 고객이다. 가끔 미국산인 알부민주사나 아미노산 영양제 수액제 주사도 거절키가 어렵다. 친구 녀석들도 가끔 성기(性器)에 세균의 집합소로 찾아들기도 한다. 혜화동 로타리 대학병원 임상검사실로 부탁을 한다. 무슨 성병으로 세균이 무엇이며 어떤 항생제에 적합한지 접수를 한다. 술집 접대부 여성들도 수시로 단골이다. Candida Albicans, Trichomonas, Bacteria등으로 감염된 질펀한 VAGINITIS(질염,膣炎)도 주치의가 아닌 주치의 겸 약사가 된다. 페니실린주사 겐타마이신주사 임질(淋疾, Gonorrhea)이라는 성병에 One Shot이면 완치되는 Trobicin 주사도 예외는 없다. 오롯이 군복무 기간 동안
Phymosis(포경)수술로 갈고 닦은 돌팔이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순간이 아닌가.
" 약사님 약국이 전국에서 두번째로 매출이 많습니다. " 콘돔 도매상이 하는 소리이다. 중구 서울역 건너편에 있는 양동에 있는 약국이 제일 톱이란다. 청계천 4가 약국 주변에는 맥주홀과 술집들의 골목이다. " 약사님 , 새로 온 아가씨가 있으니 저녁에 한번 오세요 " 맥주홀을 경영하는 사장의 간곡한 요망 사항이다. " 약사님 ! 콘돔 2통만 주세요 " 맥주홀 웨이터 보조들도 한 몫을 한다. 한통에 12개씩 들어 있는 가격이 400원이다. 일반 고객에게는 1,000원이지만 이들에게는 원가 제공이다. " 어제 두통 모두 팔았어요 ,감사합니다 약사님 " 보조들이 손님이 요구하는 콘돔의 가격은 낱개에 1,000원 받는다. 원가 400원 한통이 12,000원의 수입으로 감격하는 모습이다.
" 약사님 ! 어제 밤에 어떤 여자들에게 당했으니 어찌 할까 , 지갑도 몽땅 없어지고 ~~~" 안면이 있는 손님의 하소연이다. " 내가 반드시 찾아줄테니 걱정 마세요 " 이건 틀림없이 베트공이란 잡녀들의 행태임에 분명하다. 이런 여편네 무리들도 자주 드나들곤 한다. 이곳의 베트공이란 스치는 취객(醉客)들을 여관으로 유인한다. SEX라는 올가미로 넋이 나간 남정네들을 홀라당 빈털털이로 만들기도 한다. " 당신들 며칠전 내 친구에게도 범행을 했으니 당장 돌려줘야지 " 며칠 뒤에 찾은 그 손님에게 지갑 그대로 돌려주기도 한다.
약국 바로 근처 다방에는 항생제 영양제 알부민 비아그라등등 외국산 의약품을 불법으로 취급하는 뜨내기들의 집합소도 있다. 곰쓸개 호랑이의 낭심(囊心)등 의약품이 아닌 잡동산이도 없는 게 없을 정도이다. 이런 불법적인 그들의 유혹에 청계약국은 외면으로 일색뿐이었을까. 판단은 각자 마음대로이다.
아침 여섯시에 약국 샷따를 올리고 밤 12시 경에야 정리를 한다. 잠자는 시간 빼고는 열여덟 시간을 약국 지킴이다. 가끔은 손님과도 카운터를 넘어 멱살을 잡기도 한다. 피곤한 몸과 마음을 분풀이라도 하는 순간은 아닌가. 잠자리는 약국의 다락방이다. 한쪽에는 약품 재고도 보관하고 있다. 아내와 둘이 겨우 쪽잠을 자는 안방인 셈이다. 잠에 푹 골아떨어지는 순간이다. " 일어 나 봐요 " 전등을 켜며 아내의 짜증스런 목소리이다. 온 몸에는 빈대 이 벼룩등이 잠을 설치게 하고 있다. 빈틈없이 정확하고 착한 아내에게만 유독 못살게 굴고 있는 해충(害蟲)들이다. 법망을 간혹 넘나드는 남편에겐 관심밖이다. 일일이 손으로 잡아 떼기를 한참이다. 이런 나날의 연속 상황이다.
미국 이민을 가려고 강동구 천호동 집은 동생 소유로 물려준 다음이다. 아들이 네살 딸내미는 두살로 할머니가 돌보는 실정이다. 한달에 쉬는 두번의 일요일만 아들 딸을 품에 안는다. 월요일 아침 어린이집으로 두 애기 아들 딸을 보낸다. 어느날에는 대문 밖에 아들녀석이 숨어 있다. 엄마 아빠가 약국으로 가는 것을 몸부림으로 막아서기도 몇번이던가. 가슴 저미는 순간이다. 어리디 어린 자녀들을 2주일에 한번 마주하는 부모의 이 마음 그 누가 알리오. 5년여 동안 고역의 나날이다. 어느 날에는 약국에 들어오는 고객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돈도 귀찮고 지겨운 마음이다. 밤이면 잠은 아니오고 가슴은 뛰고 맥박도 빠르다. 대학병원 응급실도 노크를 하기도 한다. 퇴계로 앰버서더 호텔 근처에 전세방을 얻는다. 오마니도 애기들도 부모인 아내와 나도 한 방에서 생활이 시작이다.
근처의 어린이집에 보내고 맞이 하는 것은 할머니의 담당이다. 스마트폰은 언감생심 일반 집전화도 생각 밖이다. 급한 일이 있을 때는 2층 주인집의 전화를 사용키도 한다. 마당에는 복슬이 암놈의 개도 기른다. 애기들이 엄청 녀석을 끌어안으며 좋아한다. 집에서 청게4가 약국까지는 거리상으로는 2Km 족한 곳이다. 7~8KG 정도 무게인 어미 개를 다섯살 세살 두 애기들이 안았다 걸리우다 약국으로 들어선다. 깜짝 놀랄 일이 아닌가. 엄마에게 단단히 야단도 맞는다. " 이 개도 우리집 식구니까 데리고 온거야 " 다섯살배기 아들의 항변이다.
" 정남아 ! 어쩌냐 지난밤에 오마니가 돌아 가셨다 " 이른 아침에 2층 주인집 전화로 걸려온 작은 누나의 울음 소리이다. "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며칠전에 옥수동 작은 누나집 근처에 한증막으로 가신 어머니이다. 해마다 한번은 사나흘씩 드나들곤 하던 습관이다. 뜨거운 토굴 속에 가마니를 깔은 곳이다. 땀을 비오듯 쏟아 내시곤 하던 오마니이다. 그래야 몸이 가볍고 홀가분 하시다던 밝은 모습이 겹친다. 전날 밤에도 TV도 제법 시청하시고 잠자리에 드신 것이다. 작은 누나가 아침에 방에 들어가 보고야 영원히 잠들어 있는 오마니를 발견한다.
다섯살의 오빠는 항상 등에 업으신다. 세살짜리 동생 손녀는 손을 잡고 걷게 하시곤 하신다. " 아니 , 할머니는 큰 애는 업고 동생은 걸리우시다니요 " 주위에 아주머니들이 하신다는 말도 생각이 난다. 어리디 어린 손자가 울고 있어도 환하게 웃으시며 안아주시던 할머니이다. 그토록 손자에게 모든 정성을 들여 돌보시던 오마니이다.
철없이 외사촌 형과 깔깔대며 할머니 주위를 맴돌고 있는 손자들이다. 맏아들인 이 못난 자식도 할말이 없다. 손주 두 녀석들을 70대 중반인 오마니에게만 맡긴 아들이다. 비행기는 커녕 용돈 한푼도 손에 쥐여 드리지도 못한 미숙아인가. 오롯이 자식들은 물론 손주들을 위해서도 희생하신 삶뿐이다. 번듯한 주택에서 편히 모신 시간은 언제이던가.
그 이듬해인가 강동구 암사동으로 이사를 한다. 지하층까지 있는 2층 양옥이다. 아들녀석은 퇴계로에 다니던 어린이집을 계속 다니겠다는 고집이다. 엄마 아빠의 달램도 야단도 통하지를 않는다. 얼마 동안을 승용차로 등하원(登下院) 시키는 고역도 치른다.
어느날 약국 앞에 비둘기 한 마리가 뒤뚱거리며 제대로 걷지도 못 한다. 가만히 보니 다리 한쪽이 부러진 상태이다.
얼른 데려다가 부목으로 감싼다. 부목이라야 아이스크림 속에 버팀목인 얄팍한 나무조각이다. 강동구 암사동 집으로 데려온다. 모이도 물도 주면서 2층 옥상에 자리를 잡아준다. 며칠이 지나고보니 비둘기는 온데 간데가 없다. 아마도 다리가 다 치료가 되어 날아간 모양이다. 며칠 후에 약국 앞에 비둘기가 왔다 갔다 서성인다. 자세히 보니 다리에는 부목이 그대로 보인다. 날아갔다가는 또 다시 보인다. 강동구 암사동에서 청계천 4가 약국으로 날아온 것이다. 녀석을 치료해서 낫게 해준 은혜에 감사의 인사라도 하는 모양이다. 말은 못해도 어쩌면 인간보다도 생각이 깊은 녀석이다. 40여년이 흐른 지금도 그 녀석 비둘기는 어드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나 있는지 보고픈 마음이다. 청계천 4가 근처를 걸으며 바라본 약국이 있던 건물도 그대로인 모습이다.
청계천 6가의 평화시장 상가 건물들이 시야를 당기고 있다. 1964년도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1학년 2학기 때이다. " 정남아 휴학을 해야겠구나 " 2학기 등록금을 마련치 못한 아버지의 말씀이다. " 절대로 휴학은 안할거야 " 울며 딩굴고 있는 자식이다.
" 아니, 여보 !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하는 거라고 하지 안씁네가, 어떻게든 마련해 줍시다 그래, 쟈(재)는 하고픈 건 꼭 해야만 하는 아이야요 " 평생 남편에게 대꾸 한번 제대로 못하시던 내 오마니의 피안도(평안도) 사투리 한 마디이다. 아들 손을 이끌고 평화시장 한 상점으로 들어선다. 바로 지금 저기 보이고 있는 근처일 터이다. 이북 고향 지인(知人)으로 옷가지 종류를 판매하고 있는 곳이다. 두 말도 없이 내 주머니에 봉투를 넣어 주신다. 그 당시에 1학기 등록금이 2만 몇천원으로 기억 하고 있다.
" 감사합니다 " 이 한마디 지금껏 하지 못한 멍청한 녀석이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이런 순간을 두고 하는 교훈이 아닌가.
청계천 도로변에는 판잣집 서너칸의 모델도 있다. 지난날의 생활상을 전시라도 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 당시에는 청계천 냇가 주변에는 군데군데 자그마한 움막들도 있다. 시궁창 더러운 물이 흐르고 있는 곳이다. 먹을 것도 제대로 챙길 수 없는 사람들의 안방인 셈이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난 세월의 그림자가 오늘의 현실로 착각하기도 한다.
" 강남구로 이사를 가세요. 얘는 이곳에 있으면 안될 학생입니다 " 사립초등학교를 다니는 아들 5학년 담임선생님의 아내에게 하는 한 마디이다. " 집값을 싸게 내놓으세요,집이 왜 안 팔립니까 " 집이 팔리지 않는다는 아내의 하소연도 먹히질 않는다. 8학군의 강남구만이 학부모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다. 약국도 중구 청계천 청계약국을 접는다. 길동에 그럴듯한 2층 저택에서 편히 살려던 마음은 어찌할까. 강남구 친구의 집으로 위장전입 밖에 방법이 없다. 아들은 강남구 중학교에 입학을 한다. 일년여 뒤에야 강남구 경기고 근처로 이사를 한 것이다. 이것이 강남구라는 아파트 숲으로 들어가는 첫 발걸음이다. 아파트는 생각도 하지 못한 개인주택만이 꿈이었다. 오늘도 아이들이 중 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십몇년 이상 정이 들은 곳에 다시 정착하고 있다.
정신없이 지나온 청계천을 뒤돌아 본다. 1977년도에 청계약국을 개설한다. 어찌 보면 빈손으로 시작한 삶의 출발점이다. 새벽 6시에 약국문을 올리고 밤 12시가 되어 샷터문을 내린다. 지페는 계속 서랍에 가득 가득 쌓이고 식사를 제대로 할 시간도 없다. 8여년간을 숨도 제대로 쉴 틈도 없지 않았는가. 약국에 들어서고 있는 손님들이 지겹울 때도 약국문을 내리고 싶을 때도 있다. 힘들었던 청계천 4가 청계약국이 삶의 터전을 구축한 곳이다.
생애 처음으로 2층 양옥집도 소유하고 자가용 승용차도 핸들을 잡는다. 밝은 연노란색 Pony에 첫 시동을 걸었던 때가 30대 초반이다. 그 이후로는 Stellar에 이어서 Concord까지이다. 30여년 이상 시동을 걸던 자가용 승용차를 60대 중반에 폐차(廢車)를 마감으로 끝이다. 광진구 구의동 강변역 옆에 현대프라임 아파트에 거주할 때에 자녀들이 모두 결혼하고 출가한 곳이다. 이곳에서부터 강동구 천호시장 입구에 청원약국까지는 매일 걸어서 출퇴근도 한다. 한강가로 내려서 강가를 걷고 광진교를 건너 약국으로 들어서기를 10여년이다. 승용차가 내 생활의 분신이라고 하던 습관도 마무리 한다. 지하철을 오르고 내리고 하는 것이 얼마나 편리하고 편안하던지 미안한 마음도 있다. 승용차의 연료비 보험금 차량 수리비로 샐틈도 없다. 65세 이상 노객(老客)들은 전철요금도 무료이다. 5년 전부터 출퇴근하고 있는 아들 병원인 연세한강병원도 전철만이 전용 승합차와 같다. 어디를 가던지 최대한 지하철에 오른다. 다만 만 65세 이상을 75세로 상향 조정함도 생각을 순간이 온 것이다. 평균 수명이 남녀 모두가 75세에 다달았으니 말이다. 무상손실금을 어디까지 후손들의 몫으로 넘기려는가.
청계천을 따라서 걸으며 마장역에 이른다. 약 6.5Km으로 보통 걸음으로 걸어도 1시간 40여분이면 충분한 거리이다. 노객(老客)들의 체력은 어떤가. 가다가 쉬다를 반복이다. 마장역까지 도착한 시간이 오후 3시에 가깝다. 오전 11시부터 출발했으니 두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 모습이다 . 강동구 길동에 있는 맛집까지 걸어가려던 마음은 입도 뻥끗 할 수가 없다. 5호선 전철만의 최상의 선택이다. 20여년 전에는 가끔 찾아 한잔술로 마음에 담아 놓은 곳이다. 간만에 방문했으나 주인 여사장님이 알아보신다. 양곱창으로 소문난 집이다. 서비스로 천엽과 생간을 식탁에 올린다. 코로나 영향으로 주객들이 우리 노객들 뿐이다. 아직 술시간이 되지 않은 탓도 있을게다. 분위기가 예전 같지가 않다. 양구이는 품절이고 대창뿐이란다. " 이번 년말이면 이곳을 떠나야 해요. 건물주가 오피스텔로 재건축을 한답니다. " 30여년 이상을 희로애락의 양곱창 맛집을 접을 밖에 도리가 없다. 여주인의 얼굴에는 아쉬움과 서글픔의 먹구름이 스치고 있는 모습이다. 이 근처에 다시 자리할 곳이 없단다.
푸짐하고 편안하게 즐겁고 한잔술이 흔들리고 있다. 세상사 모든 것은 내 마음 내 뜻대로 된다는 보장은 없다. 건주가를 목청껏 울리는 동기들도 언제까지 이련가. 연세도 80 전후이니 오늘 내일 더더군다나 10년 20년은 아득한 느낌이다. 뜻이 있고 마음만 있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앞으로 29년을 함께 하자고 억지 웃음을 터뜨린다.
지나온 세월 못 다한 삶의 미련도 아쉬움도 아픔일랑 청계천의 물결에 씻어 보내면 어떨까. 오늘만이 우리의 참삶이 아닌가. 인간일대백세(人間一代百歲)라지만 태양이 없는 어두움이 도사리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손짓하고 있을지 그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다.
2021년 12월 25일 무 무 최 정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