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말했다/ 김미정
양손을 쫙 펼쳐본다. 여린 몸에 비해 제법 큰 손이다. 단단한 뼈마디에 두툼한 손가락까지 강한 남성성이 죄다 여기 몰려 있다.
더군다나 나의 손은 계절에 순응한다. 폭염 속 톡톡한 여름 맛에 절로 열을 발산한다. 반면 한겨울에는 시베리아 벌판의 매서운 기운을 손과 발에 응축시켜 놓은 듯 싸늘하다. 수줍은 손이 점점 움츠러든다. 문득, 빗물을 머금은 시린 손이 아버지와 맞잡은 손을 찾아 아련하게 말을 건네고 있다.
겨울 한 자락, 방 안 가득 입김이 뿜어 나오자 나는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엄마는 꺼진 보일러 전원 버튼을 흘겨보며 아버지에게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다. 금세 내 손이 시퍼런 멍 자국을 군데군데 퍼뜨려 놓은 듯 창백해졌다.
덥석 엄마 손을 잡아보니 차가운 건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손은 따뜻한지 어디 한번 잡아보란다. 아버지는 낼모레면 서른이 되어가는 딸의 손을 잡으려니 여간 곤혹스러운 모양이다. 무뚝뚝한 성격마저 단단히 한몫을 거든다.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마지못해 이불 속에 감춰진 손이 드러났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내 손등을 조심스레 감쌌다. 따습다. 여느 손도 부럽지 않다. 차갑던 손이 조금씩 노곤해지자 아버지의 손이 얼음장 같은 발로 옮겨졌다. 두툼한 손바닥 체온이 손에서 발로 전해지는 사이 줄곧 내 시선은 텔레비전으로 향했다. 그런 와중에 여자 손발이 이리 차서 애를 낳을 수 있겠느냐며 아버지는 걱정 반 질책 반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철없는 내 손이 그만하라고 꿈틀댄다.
오일장이 서는 이른 아침, 아버지는 서둘러 집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섰다. 한참 지나 난데없이 메에에~ 웬 염소 우는 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마당 한편에 흑염소 한 마리가 짐 자전거에 매여 있었다. 십 리 남짓 장터를 지나 집으로 오는 내내 흑염소와 온갖 신경전을 펼쳤던 아버지. 윽박지르다 어르고 달랬을 게 불 보듯 뻔했다. 남은 기력마저 죄다 빼앗겼는지 고단한 몸을 쉬이 가누지 못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누릿한 맛의 흑염소엑기스를 꾸역꾸역 삼켰다. 구미가 당겨도 피할 음식이라면 과감히 먹지 않았다. 내심 손발이 따뜻해지길 바라는 마음도 컸다. 아버지의 확신을 더한 희생과 나의 끈덕진 행동에도 불구하고 수족냉증은 여전했다. 손톱만큼의 효과도 보지 못한 아버지는 애먼 흑염소 주인과 중탕집을 탓했다. 차라리 보일러를 트는 게 백번 낫겠다고 툴툴대자, 아버지는 도리어 염소값이나 내놓으라며 벌컥 화를 냈다. 그 뒤로도 굳은살이 박인 아버지의 손은 내 시린 손발을 덥히느라 종종 바삐 움직였다. 그 옛날 군불을 지피던 온돌방의 온기처럼, 나의 손은 겨울마다 뜨끈한 아랫목과 같은 아버지의 손을 그리워하며 울먹이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던 나의 결혼식이 다가왔다. 결혼 날짜가 다가올수록 인사불성이 된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엄마는 그렇게 술 마시다 식장에 발도 못 디밀고 초상 치르는 것 아니냐며 치를 떨었다. 나는 연습이라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슬쩍 손을 내밀었다. 얼굴이 벌게진 아버지는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콧방귀를 뀌며 한사코 마다했다. 손사래를 치는 아버지의 손도 흠뻑 술에 취한 듯 벌겋게 달아올랐다.
결혼식 당일, 웅성거리는 식장 안에 신부 입장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와 웨딩드레스를 차려입은 내가 나란히 옆에 섰다. 아귀가 맞지 않은 두 개의 손이 갈 길을 헤맸다. 가까스로 내 손을 붙잡은 아버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발걸음 마저 엉거주춤 쉽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따스한 봄 날씨에도 아버지의 손은 땀에 젖어 끈적였다. 붙들린 손이 간신히 신랑 팔에 전해졌다. 양가 부모님과 내빈께 인사드리는 순서가 왔다.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와 달리 아버지의 눈언저리가 촉촉해져 있는 것이 설핏 보였다. 손은 알았다. 마지막으로 당신 곁을 떠난 셋째 딸이 먼 타향살이하는 게 안쓰러웠다는 것을.
결혼 후 일 년이 지나 아버지는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집에서 요양하던 중 갑작스레 병세가 악화하여 급히 병원으로 모셨다. 병간호를 엄마 혼자 도맡아 할 수는 없었다. 각지에 흩어져 사는 자식들도 번번이 병원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아이가 없는 내가 나섰다. 잔뜩 옷가지를 챙겨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여섯 명의 암 환우들 가운데 아버지를 찾았다.
한참을 두리번거리자 엄마가 먼저 알은체했다.
“아빠.” 애써 담담하게 아버지를 부르며 가까이 다가갔다. 듬성듬성 빠진 치아 사이로 희미하게 번지는 웃음, 광대뼈가 도드라진 몰골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서 오라고 말을 건넬 줄 알았다. 허나, 아버지는 말없이 빈약해진 손만 내 얼굴을 향해 내밀 뿐이었다. 여느 때처럼 온기가 그득했다. 내 손을 힘없이 그러쥐며 연신 입술만 오물거렸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으리라. 바짝 귀를 갖다 대지만 불호령을 내리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쏟아내던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버지의 손도 온데간데없다. 그 옛날 철부지 어린 자식들에게 대나무를 잘라 모양새 있게 방패연을 만들어주고, 풀잎을 꺾어 개구리며 바람개비를 뚝딱 접어 손바닥에 올려 주던 재주 많은 손이었다. 때로는 아버지의 건장한 손은 쌀 한 가마니를 가뿐하게 번쩍 들어 올려 어깨에 메는 일이 허다했다. 퉤퉤 침을 뱉어가며 연신 새끼줄을 꼬아도 아픈 내색 한번 하지 않던 강단 있는 손이었다.
궁핍한 탓에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설움도 겪었단다. 당신 이름만은 정확하게 똑바로 쓸 수 있다며 괴발개발 아랑곳없던 위풍당당한 손이었다. 하지만 평생 가족을 위해 책임감을 짊어진 손은 세월이 덧대져 바싹 마른 검불이다. 왈칵 목울대가 치밀어 올라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기 어려웠다. 한 달 사이 암 덩어리가 낯선 노인을 모셔다 놓은 듯 가슴이 미어졌다.
아버지는 그저 오래도록 내 손을 맞잡으며 반색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따금 복수가 찬 아버지의 불룩한 배를 가만가만히 손으로 쓰다듬는 일뿐이었다.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내 손이 밤새 흐느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