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철야정성 때 이상채 교회장님께서 “강화의 이름을 한자로 쓰면 강 강(江)자와 빛난 화(華)자를 쓴다. 강은 성경에서 여성을 상징하니 강화는 여성을 빛나게 하는 곳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처음에 의아했습니다. 내가 알기에 강화는 남성적 성격을 가진 지역이었습니다. 청평이 여성의 자궁이라면 강화는 남성의 성식기에 해당된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니산이라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기가 센 곳도 강화도에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시대, 조선시대 때 강화가 왕실의 피난처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싸웠던 전쟁터이니 남성적이라 생각했습니다
고려시대 몽골의 공격을 받게 되자 무신들의 강요로 고종은 강화도에 천도하였습니다. 강화도에 임금이 있을 때 고려는 나라 주권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원종이 몽골과 손을 잡아서 (무신들에게서) 국권을 회복하여, 강화를 떠나 개성에 환도하자 몽골의 부마(駙馬: 사위)가 되어 간섭을 받게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때도 1627년 정묘호란 때는 인조가 강화에 피난하여 국권을 유지하였으나 1636년 병자호란 때 강화가 함락되자 인조는 포기하여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청국 황제에게 엎드려 이마에 피를 흘리고 항복을 하게 되었습니다.
근대에 와서 1866년 병인양요 때도 양헌수 장군이 강화도에서 프랑스를 격퇴하고, 1871년 신미양요 때도 어재연 장군 이끈 조선군이 죽음으로 강화를 사수(死守)하므로 국권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나 1875년 운양호사건으로 1876년에 강화도조약이라는 불공평한 조약을 맺어서 (강화를 굴복시킴에) 일제강점기가 도래하여 대한제국은 국권을 잃었습니다.
나는 이런 것을 봤을 때, 강화가 살아 있을 때, 나라가 살고 강화가 죽으면 나라도 죽는다고 알았던 것이고, 생명의 씨를 만든 남성기 같은 곳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장님의 말씀을 듣고 또 하나의 강화의 깊은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강화여성을 “강화 뻔뻔”이라 표현합니다. 강화여성이 타 지역에 장사를 하러 다니면서 손님 집에서 밥도 얻어먹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도의 방패막 역할을 하다가 남성은 부역이나 병역으로 죽고 남은 자녀와 살아남기 위해 “뻔뻔스럽게” 살 수밖에 없었다 합니다.
남자의 몫도 짊으면서 여성이 여성스럽게 살지 못했던 “한”이 가득하게 있는 곳이 강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제 1,000원도 손해보기 싫은 만큼 고생을 했던 강화여성은 원래 어느 지역 여성보다 아름답게 “빛나리라” 축복을 받았던 것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여성으로 고생길을 걸어오신 분이 한학자 참어머님이십니다. 우리 강화여성은 참어머님과 같은 길을 걸어가라 축복을 받았던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참어머님은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지치지 않는 신앙과 굳센 의지
그리고 인내였습니다.
(중략)
신앙적인 고통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는 가장 귀한 축복입니다.”
우리 강화여성은 참어머님처럼 인내와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승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용서를 위해 감사하는 생활을 보내야 하고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강화 부인식구는 그 시련의 고비만 넘으면 누구보다 참어머님의 심정권에 돌아갈 수 있는 존재들이라 믿습니다.
첫댓글 훌륭한 글~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