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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힘, 증오의 힘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 합니다.
이말은 역설적으로 말한 것이겠지만, 무관심이 인간관계를 얼마나 얼어붙게 히는지를 강조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말하는 사랑의 감정에 대한 대칭관계에 있는 것은 증오이지만 무관심 또한 사랑의 대척점에 있다는 것이지요.
분노는 어떨까요, 분노 또한 사랑의 대척점에 있지만 증오와 달리 분노는 긍정적인 면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김형경 작가의 말이 위안이 됩니다. “분노가 큰 사람의 내면에는 그만힌 크기의 사랑의 원석(原石)이 매장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출처는 알 수 없지만 오래전에 읽은 글에서 분노에 대한 공감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사회적 불의에 분노하는 젊은이가 없는 사회는 동력을 잃은 죽은 사회이다.” 혁명이나 전쟁 같은 역사의 전환점에서 젊은이들의 분노가 어떻게 공동체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는지를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시인 수주(樹州) 변영로는 논개라는 시(詩)에서 분노를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거룩한 분노는/종교보다도 깊고/불붙은 정열은/사랑보다 강하다/ 아! 강낭콩 꽂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 그 마음 흘러라.”
그렇습니다. 분노에는 거룩한 분노가 있으며 개인과 사회의 동력이 될 수는 있어도 거룩한 증오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극복돠지 않으면 끊없이 확대 재생산되는 인간의 파괴적인 감정입니다. 이 거룩한 분노는 유난히 고난이 많았던 한반도의 역사에서 민족혼으로 승화되어 공동체의 삶을 지탱해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특권계급이나 신분도 아니면서 평민계급에서 안중근, 안창호, 이청천, 김구, 김좌진, 이봉창, 윤봉길 같은 인물이 나타나 민족정신이 부활하여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봅니다.
그런데 지금 한반도에는 증오라는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습니다.
이 증오라는 먹구름을 제거하지 않고는 우리의 미래는 희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말은 대선(大選)을 앞두고 우리 머리위를 배회하고 있는 이 증오라는 먹구름을 제거하라는 정언명령으로 들립니다.
‘시대를 읽는다’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민생이라는 미시담론과 국가와 역사라는 거대담론이 서로 맞물려 있다는 현실을 알아야합니다. 우리 내면의 모든 것이 국가와 역사라는 변수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상당부분이 국가와 역사의 파도에 휩쓸리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닥터 지바고』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도 그와 같은 말을 했습니다.
“사람의 일생에는 제각기 역사가 담겨 있으며, 지나간 시대의 특성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오늘은 역사의 산물입니다.
일제 식민지 국가에서 한국동란을 거치며 한국은 도저히 문명국가라 할 수 없는, 생물하적 삶 자체가 불가능한 세계 최빈국의 나라였습니다. 그 한국의 좌표가 지금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았던 맥아더 장군조차 이 전쟁에 회의를 품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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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습니다. “한국은 100년이 지나도 정상국가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많은 참전용사들 또한 동방의 작고 가난한 나라에서 희망을 보지못했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나라가 불과 한세대가 지나자 올림픽을 개최했으며, 21세기 초에는 세기의 축제라 할 수 있는 월드컵까지 치루어 냈습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 한국체육회장과 선수단장이 구순이 넘은 참전용사를 방문하여 인터뷰를 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참전용사는 눈물을 글성이며 하는말이 “한국이 이렇게 큰 나라가 되어 찾아 와주니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는 겁니다.
참전용사들이 이렇게 감격하면 그제서야 우리도 감격하게 됩니다.
왜냐면 정작 그런 나라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일상에서 실감을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한국은 현재 세계 10위의 무역대국이며, 일인 당 GDP가 4만 달러를 넘어서 국방력은 세계 6위에 이르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팝그룹 BTS와 영화 『미나리』 그리고 넷플릭스 비디오 『오징어 게임』은 한류를 이끌며, 세계가 주목하는 콘텐츠를 가진 문화강국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생물학적 유전자를 진(gene)이라 합니다. 그에 상응하는 음절로 표현한 것이 문화적 유전자 밈(meme)입니다. 저는 우리의 문화적 유전자 밈에 춤과 노래의 DNA분자가 각인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행복한 생각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행복한 사유와 함께 우리 역사에 각인된 문화에는 진영논리라는 DNA를 가진 부정적인 밈을 가지고 있음을 봅니다. 왜냐면 언제부터인가 한국은 헝그리사회에서 앵그리사회로 진입한 것을 보게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진영논리는 조선의 역사에서 시종일관 흐르고 있음을 보게됩니다.
조선의 전반부는 대체로 훈구파(勳舊派)와 사림파(士林派)의 나라였다면, 조선의 후반부는 학문의 계보가 정치적 계보가 되는 성리학(性理學)이 주도하는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였습니다. 그 흐름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른게 있다면 지금은 운동권 계보가 정치권의 계보로 빠뀌었다는 것입니다.
80년대에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운동권 학생들과 진보를 외쳤던 시민단체들이 권력의 핵심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진실은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 재단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객관적인 검증도 없이 이 세상을 선(善)과 악(惡), 참과 거짓 같은 흑백논리로 적과 동지를 선명하게 갈라 놓는 것에는, 숙고하지 않는 삶의 치기(稚氣)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무엇보다도 우리 정치 생태계에 품격과 유머가 없다는 것이 우리 삷을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개인적 자질을 보면 학력도 높고 전문성도 있는 사람들이 정치계에 몸을 담는 순간부터 수준 이하의 부박(浮薄)함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 민주주의는 대중정치(大衆政治)이기 대문일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현자(賢者)였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민주주의의 결함이라고 보며 중우정치(衆愚政治)라고 오래전 예견을 했습니다. 정치인은 대중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인기로 먹고사는 연예인 같이 득표할 수만 있다면 무릎을 꿀 수도 있습니다. 대중이 그것을 좋아하게 되면 정치인과 대중 사이에는 좀처럼 멈출 수 없는 관성의 법칙이 작동 될 것입니다.
결과는 정치인과 대중은 같이 천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어에 Integrity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가 뜻하는 의미가 제가 생각하는 지도층과 정치인의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을 한 마디로 표현할 적절한 우리의 언어가 없는 듯 합니다. 많은 기업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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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직원을 말할 때 종종 쓰이는 “Man of integrity"라는 표현을 보아도 사람의 가치를 척도하는 최고의 덕목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보통 성실함, 고결함, 말과 행동이 일관성 있는 품격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신뢰할 만한 사람의 품위나 진솔한 품격 등으로 포괄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기도 하는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은 사람을 쓸 때 기준으로 삼는 인사철학(人事哲學)이 있습니다. “사람을 뽑을 때는 세 가지 원칙을 봐라. Integrity(진솔한 품격), Intellegence(지적능력), Energy(열정). 만약 그 사람이 첫째 자질이 없다면 나머지 두 개의 장점이 너를 파멸시킬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셀 오바마가 공화당의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로서 거친 말을 쏟아낼 때,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기 위해서 한 말이 “When they go low, we go high."(그들이 저급하게 갈 때, 우리는 품격있게 가자.)였습니다. 이때 'we go high'가 의미하는 게 Integrity라고 생각합니다.
진보는 무능해서 망하고, 보수는 부패해서 망한다고 합니다.
지금의 보수나 진보는 Integrity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동기회 홈페이지에는 대체로 보수우파의 글들이 올라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게중에는 극우적으로 편향된 말도 있습니다. 그런 글이 주류가 되다보니 중도 진보의 목소리는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아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홈페이지가 진정한 공론의 장이라면 견해가 조금 다른 친구의 말도 수용하는 것이 보수 진영의 관용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극좌가 아니라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성이 중도 진보의 생각은 포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그들을 소수라고 해서 배제하는 것은 생물학적인 면에서도 수용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8% 이론’이라는 인류학자들의 개념이 있습니다. 인간이 아인간(亞人間) 호모속(屬)에서 사피엔스로 진화되기 이전에 백만 년이 넘는 세월을 수렵·채집 생활을 해왔습니다. 집단수렵인 중에는 오른손잡이만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12명 중에 1명 정도는 왼손잡이일 경우가 많아 집단 수렵에 효율적이었다고 합니다. 세계 어느국가나 민족이라도 비슷한 비율로 왼손잡이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생물학자들은 그럴 경우 ‘선택압’이 있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와 같이 인간은 12명 중에 1명 꼴로 대머리도 있으며 동성연애자도 있었습니다.
인류학자들은 그것이 집단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선택압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그 개념을 ‘8% 이론’이라고 명명하기도 했습니다. 예수의 제자가 12명이라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 가징 친밀한 집단의 한계가 12명 이라는 것이며, 로마군단의 조직에도 적용된다고 합니다. 이렇듯이 문명 이전의 사회에도 소수를 배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느 때 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신문·방송 같은 미디어에 정치·행정 그리고 역사적으로 큰 이슈가되는 사건에 불가역적(不可逆的)이라는 말을 쓰고 있음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5·18 망언 처벌법’이라든지 ‘일본제국주의의 강압에 의한 위안부 할머니 문제’에 불가역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국제관계에서 ‘불가침 조약’이나 국가간에 맺어진 ‘통상조약’에는 그러한 약속은 되돌릴 수 없다는 뜻으로 불가역(不可逆)이라는 말을 씁니다. 저는 사실 물리학에서 시간과 공간을 말할 때 비가역적(非可逆的)이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들었습니다만 불가역적이라는 말은 좀 생소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엔트로피(무질서)가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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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같이 시간은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는 뜻으로 비가역적(非可逆的)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래서 견고한 역사적 사실도 역사가들은 비가역적인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인간사의 일은 워낙 변수가 많아, 우리가 근현대사에서 보듯이 불가침조약이나 통상조약 같은 것은 깨어지는 일이 다반사라 그로 인한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불가역이라는 말을 쓰게 됩니다. 특히 한·일 관계에서 박정희의 5·16 군사혁명의 주역이었던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오히라 마사요시 외상간에 1961년에 합의를 본 ‘한일청구권 협정’은 일본측의 입장은 불가역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종필·오히라의 메모에 의하면 얼본측이 제공할 금액과 방식이 대체적으로 정리되어 있는데, 3억달러는 무상으로, 2억달러는 유상으로, 1억달러는사업차관으로 제공하기로 정해졌습니다.
김종필·오히라 메모를 기초로하여 1965년 한일기본조약(韓日基本條約)이 외무부장관 이동원(李東元)과 특명전권대사 김동조(金東祚)에 의해 일본측 외무대신과 체결되었던 것입니다.
이 조약은 재야와 학생들은 굴욕적인 회담으로 받아들여 6·3사태라는 반대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금과 자원이 없던 혁명정부는 이 자금을 종자돈(Seed Money)으로 경제개발을 저돌적으로 밀어붙여 포항제철과 월남파병으로 미국으로 부터 지원받은 자금으로 자주국방과 경부고속도로를 만들며 나라의 기틀을 만들어 갔습니다. 다른 동남아 여러 국가들도 피해당사자로서 일본의 원조를 받았으나 그곳에는 부패한 권력자와 관료들의 주머니로 들어가 국민들은 더욱 가난에 찌들어야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일기본조약이 기본적으로 정당했는지, 우리가 보상 받은 것이 충분했는지는 잘 모릅니다만 그 종자돈이 우리의 경제자립에 큰 도움이 되었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회적 문제와 반일감정으로 비화한 것은 90년대 이후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위안부 할머니 배상문제” “강제징용 배상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위안부로 일본제국주의의 희생이 된 할머니들과, 강제징용으로 혹사 당하고 목숨까지 잃었던 젊은 청춘은 일본의 보상과 사과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큰물결에 휩싸여 떠 내려간 개인이 무슨 힘으로 역사적 오류, 역사적 범죄를 바로 잡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결국 국가가 나서서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한일기본조약은 불가역적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권은 이것을 정치적으로 반일감정을 발화시켜 일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국민의 가장 약한 고리인 반일감정을 건드림으로써 그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반일=국민자존심이라는 등식은 이젠 벗어날 때가 되었건만 문재인 정권은 조자룡 헌칼 쓰듯이 하며, 심지어 죽창가까지 부르고 있습니다.
참으로 유치한 아마추어 정권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기 더하여 대법원은 강제징용 배상은 불가역적인 것은 아니며 개인이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문재인 정권의 아마추어리즘에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한일관계가 악화되리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음에도 말입니다.
고노 다로 외상은 “국제법에 기초해 한국정부와 맺은 협정을 한국대법원이 원하는 아무 때나 뒤집을 수 있다면, 어떤 나라도 한국정부와 일하는 게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라고 말하며 한국은 신용할 수 없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난정권은 청산해야 할 적폐정권이라는 문재인 정권의 현대사 부정이라는 근본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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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원인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들의 정책을 불가역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열심히 알박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노무현정권의 세종시 수도이전 문제부터 월성원자력 폐쇄와 태양과과 풍력발전소 같은 친환경 재생에너지 같은 알박기는 “5·18 망언 처벌법”과 함께 불가역적인 것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위안부 할머니 보상문제’에 대해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성녀(聖女)로 보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창녀(娼女)로도 보지도 않습니다. 단지 나라의 지도자들이 어리석어 나라를 빼앗기다보니 강제로 팔려간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국가의 책임이 더 큽니다.
그런데 자랑거리도 아닌 것을 우리는 피해자의식에서 ‘소녀상’을 동상으로 세우면서 성녀화하는 것을 보면 좀 과장된 것이 아닌가하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기 더하여 윤미향 의원이 활동한 ‘정의 기억연대’라는 시민단체들의 실상을 보니 위안부할머니들을 정치적 도구로 쓰는 것을 보고 제가 예상했던 걱정이 현실이 되는 것을 보고 섬뜩하기도 했습니다.
‘정의 기억연대’는 우리의 비극적 역사를 각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위안부의 가장 본질적인 정체성은 솔직히 말해서 빈곤한 집안의 딸들이라는 것입니다. 부유한 위안부도 없으며, 남성 위안부도 없습니다. 위안부는 가난한 집 딸들이었습니다. 딸을 파는 가난한 집 아버지들도 있었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현상은 한국동란 때 북한에 주둔한 소련군이 북한 여성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보면 약소국이 겪어야 하는 원죄같은 것입니다.
그 시대는 국가의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 힘의 논리거 지배하는 제국주의 시대였습니다.
히틀러의 나치정권, 스탈린의 소비에트러시아정권, 그리고 일본의 군국주의에 국가의 이성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 스스로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들입니다. 그것을 각색하여 얻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는 또한 독재정권이 무너지면 바로 민주화 정권이 들어서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생각이 한갓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역사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튀니지에서 일어난 자스민 혁명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렸지만 민주화는 오지 않았습니다. 이 혁명은 튀니지에 머무르지 않고 이집트, 리비아 등 다른 아랍국가로 확산되어 소위 ‘아랍의봄’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아랍의 봄’은 민주화를 가져오지 못했으며 국민들은 더욱 가난하고 혼란스러운 사회를 겪어야 했습니다.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이후 우리나라에도 권력의 공백이 생겼습니다.
그 혼란을 보안사령관으로 있던 전두환 장군이 정권을 잡아 5공화국 시대를 열었습니다. 지금의 역사해석은 5공화국을 군사정권의 연장선상에 있는 독재정권으로 몰아 청산해야 할 정권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박정희 대통령 서거로 우리는 바로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만들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저는 회의적입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사회는 독재가 무너진다고 거져 오는 것이 아닙니다.
5공화국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무장군인들이 시민을 탄압한 원죄(原罪)때문에 5공화국의 업적이 통째로 부정 당하고 있는 역사적 불이익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후세대 역사기들은 5공화국을 어떻게 평가 할지 궁금합니다. 그기에 대한 반론은 문재인 정권이 잘하는 불가역적인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5공화국과 노태우의 6공화국은 우리가 민주사회로 가기 위한 완충역할을 한 과도정부의 통과의례쯤으로 보고싶습니다.
근·현대 역사를 보는 역사가들은 제가 보기에는 정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들은 문재인 정권의 종전선언을 지지하는성명을 내면서도 북한의 인권에는 침묵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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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들입니다. 비판적 사유를 하는 지식인 세계의 최상층부에 있는 문학단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흥분하다 보니 글이 좀 엇나갔습니다만 우리사회에서 지식인이건 정치인이건 지도층에 정말 필요한건 일관성있는 진솔한 품격, 즉 인테그리티(Integrity)라고 생각합니다.
동양에서도 오래전 당(唐)나라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인재전형 방식이 있습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입니다.
무릇 인재를 고르는 법에는 네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첫째는 몸이니, 풍채가 늠름해야하고, 둘째는 말이니, 말이 조리있고 정직해야 하며, 셋째는 글씨니, 해서글씨는 아름다움을 더해야 되고, 넷째는 판단이니, 사리를 분별하는 능력이 공정하고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알아보고 평가하는 방법이 동·서양이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고전중의 고전으로, 지혜의 보고라고 생각하는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으로 위인들의 세계를 잘 포착하고 있습니다. 특히 70편에 이르는 열전(列傳)은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인간의 기승전결을 보여주고 있으며, 중요한 문학적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고금(古今)의 많은 지식인들이 이 책을 인간의 본질을 가장 날카롭게 파헤친 인간학의 보고(寶庫)라고 보는 이유입니다.
그 열전(列傳) 중에 이사(李斯)열전이 있습니다.
여불위(呂不韋)와 함께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를 만든 시황제(始皇帝)의 일등공신이었습니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이사는 초나라의 하급관리로 있으면서 순자(荀子)에게서 제왕학을 배우며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대는 총명함이 남다르고 무엇이든 빨리 터득하니 언젠가는 크게 출새할 것”이라고 스승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스승의 칭찬에 이사는 우쭐해 “사람이 가장 비통한 건 빈궁한 것이고, 이 모든 것이 권력이 없는 탓이며, 권력은 모든 이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사가 방에서 나가자 순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사는 내 제자 중 가장 뛰어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에 대한 분노가 너무 깊고 권력을 지나치게 좋아하여 자신을 분별하는데 미숙하여 끝이 좋지 않겠구나” 그 후 이사는 진(秦)나라 승상 여불위의 사인이 되어 신임을 얻어 진시황(秦始皇)을 도와 중국을 통일하고 승상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그의 맏아들은 태수가 되었으며 아들 모두가 진나라 공주에게 장가를 갈만치 권세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시황제로 하여금 실용적인 지식 외에는 고담준론의 지식은 화근이 된다하여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저지르는 주동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조선에서는 수양대군을 도와 단종을 귀양 보내고, 세조를 옹립하여 정승의 자리에 올라 권세를 누린 한명회와 비견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시황제가 죽자 환관 조고(趙高)가 세자 호해를 앞세워 전권을 휘둘렀습니다. 이사는 결국 환관 조고의 제물이되어 오형(五刑)을 받아 저자거리에서 비참한 최후를 당했습니다. 환관 조고는 지록위마(指鹿爲馬)리는 사자성어로도 유명한 간신으로 결국 진제국을 망국으로 이끌었습니다.
순자의 말대로 이사(李斯)의 결점은 세상에 대한 분노와 권력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이 말한 바로 그 Integrity(진솔한 품격)가 없었습니다. 제가 이사열전을 이렇게 거론하는 이유는 지금 문재인 정권과 그 권력의 핵심부에 있는 586운동권 세력과 시민운동가들이 이러한 인테그리티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첫발을 내디딘 1987년 6.29선언을 이끌어 냈던 586세대들의 당시의 정의로운 분노를 높이 평가하며, 역사에서 진보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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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분노가 진정 정의로운 것이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나는 단지 그들의 분노가 지성을 갖춘 Integrity(진솔한 품격)로 승화되지 못한 것이 실망스러울 뿐입니다. 좀 더 냉소적으로 말한다면, 그들은 품격이 아니라 괴물을 만들어냈습니다. 저의 사견입니다만, JTBC의 손석희 아나운서를 나르시즘에 빠진 인물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나르시즘에 빠진 인물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입성한 조국 교수에게도 보았습니다. 어디 조국 교수뿐이겠습니까. 운동권에 유독 나르시즘에 빠진 인물들이 많았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도지사, 오거돈 부산시장의 성추행사건을 비롯하여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의원의 위선적 반일감정, 친일과 반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오지랖을 떠는 김원웅 광복회장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2100년 전의 사마천은 춘추전국시대와 진(秦) 한(漢)으로 이어지는 난세의 인물들을 열전 70편에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총 52만 6500자에 달하는 글을 초인적인 의지로 당시의 죽간(竹簡)애 기록한 위대한 기록자였습니다. 아니 그는 위대한 기록자 이상이었습니다.
사관(史官)의 임무는 기록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왕사(王事)를 널리 밝혀야 하는데 있다고 하며, 그런 까닭으로 기록자는 먼저 비판자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널리 밝혀야 할 왕사(王事)란 무엇이냐? 난세(난세)가 난세인 까닭을 설명해서 바른 길로 돌리는 행위이다.” 그리하여 그는 기록을 통하여 그에게 궁형(宮刑)이란 치욕을 안겨준 무제(武帝)의 전능(全能)을 무색하게 하는 방법을 추구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 시대를 읽으며 “지금의 한국의 역사가 과연 진보하고 있는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으며 그리고 더 근원적인 물음 “과연 역사는 진보가 가능한 것인가?”에 도달하게 됩니다. 저는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꼭 읽어보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기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어떻게 생성이 되는지 촌철살인의 말도 접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상대의 재산이 열 배가 되면 욕을 하고, 백 배가 되면 두려워하고, 천 배가 되면 고용당하고, 만 배가 되면 노예가 된다.” 인간 사회는 어떠한 조직에서든지 힘의 논리가 작동되는 파워게임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파워게임에서도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분노가 증오로 변하는 야만의 사회로 가는 것을 막는 장치가 되어 있습니다. 즉, 권력의 독주를 막는 견제와 균형이 작동할 수 있도록 권력의 분립과 사법제도가 작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증오의 힘 또한 개인의 삶을 추동하는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작품에서도 드러나듯이 증오의 힘은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합니다. 햄릿을 비롯한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서 나타난 증오는 “성격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개인의 내면적 자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는 ‘오자서(伍子胥)열전’이나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에서 보듯이 증오가 다이나믹한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인과관계(因果關係)에 주목하고 있으며 종국에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사자성어로 증오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 사마담(司馬談) 또한 한(漢) 무제 때 태사령(太史令)이란 사관이었습니다. 사마천은 동중서(董仲舒)에게서 학문을 배웠으며 중국 전역을 돌며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고, 사료를 채집하면서 자신의 독특한 필법(筆法)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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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漢) 무제 때 이릉(李陵) 장군이 북방 흉노족과 전쟁을 치르게 되었으나, 중과부적으로 투항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무제(武帝)와 신료들은 이릉 장군을 배신으로 몰아 처단할려고 할 때 홀로 무제 앞에서 이릉을 변호하다가 무제의 노여움을 샀습니다. 그리하여 환관들이 그러하듯이 궁형(宮刑)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치욕의 상황에서 혼(魂)을 담은 대서사 『사기(史記))』가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특히 ‘오자서 열전’이나 ‘월왕 구천세가’는 발분과 절치부심으로 치욕을 극복하는 위인들이 겪는 인고(忍苦)의 세월을 동병상련(同病相憐)으로 느끼며 써 내려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역사관이 비장(悲壯)하기 짝이 없는 이유입니다.
“옛날 서백(西佰:周의文王)은 유리(萸里:은나라의 감옥)에 갇혀 있는동안 『주역(周易)』을 만들었다. 공자(孔子)는 진(陣)나라에서 곤액(困厄)을 당했을 때 『춘추(春秋)』를 만들었다. 굴원(屈原)은 초나라에서 추방되자 『이소경(離騷經)』을 만들었다. 좌구명(左丘明)은 장님이 되고부터 『국어(國語)』를 만들었다. 여불위(呂不韋)는 촉나라로 귀양가서 『여람(呂覽)』을 만들었다. 한비(韓非)는 진나라에 사로잡힌 몸으로 『세난(說難)』『고분(孤憤)』등의 문장을 만들었다. 시 삼백편도 거의가 현인, 성인들의 발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듯 이 모두가 울굴한 마음의 소치이며, 그 울굴함을 풀 길이 없어 과거를 돌이켜보고 미래를 굽어보게 된 것이다.”
『사기(史記)』에는 오늘의 정치, 경제, 사회에서도 유용하게 쓰이는 고사성어(故事成語)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만큼 사마천이 세상과 인물을 보는 스펙트럼이 넓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일모도원(日暮途遠), 와신상담(臥薪嘗膽), 관포지교(管鮑之交), 토사구팽(菟死狗烹), 존왕양이(尊王攘夷), 경성지색(傾城之色), 경국지색(傾國之色),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방민지구 심어방수(防民之口 甚於防水 백성의 입을 막기란 물을 막기보다 힘들다),
곡학아세(曲學阿世), 병마용갱(兵馬俑坑), 합종연횡(合縱連橫), 배수지진(背水之陣), 사면초가(四面楚歌) 등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토마스 칼라일은 “역사는 위인들의 전기이다.”라고 한 말은 이제는 한물 간 유행어가 되었지만, 여전히 사회적 동력으로서 위인들의 역할은 존재합니다. 처칠 또한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된다.”고 말했지만 일견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어느 나라도 영광의 역사만 있는게 아니고 오욕의 역사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마천은 열전 70편에서 위인들에 대한 역사를 쓰기는 했으나, 그 결말의 비장한 죽음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황제의 반열에 있는 12본기를 쓰면서도 한(漢)고조 유방(劉邦)과 해하성(垓下城)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리다가 패한 항우(項羽)가 오강에서 자살한 비장한 최후를 고조본기(高祖本紀)앞에 항우본기(項羽本紀)로 쓴 것은 그의 사관(史觀)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항우 없이 한(漢)의 고조 유방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사마천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 하는 것은 그가 위인이라는 인물을 선정하는 기준을 볼 때, 그 기준이 카리스마(Charisma)와 인테그리티(Integrity)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나름대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카리스마 란 사람을 매료시키는 권위적인 고유한 힘을 말하며 인테그리티 란 그 사람의 내면에 가지고 있는 진솔한 품격으로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단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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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사마천이 오늘의 중국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사마천이 찾든 그런 세계는 아니라고 생각했을테고, 겉은 화려하나 내용은 텅빈 세게를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 나라의 도덕적 수준과 품격을 볼려면 그 나라의 언론을 보면 알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개별적인 인물 중에서 카리스마와 인테그리티가 있는 인물은 존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인민일보(人民日報)나 환구시보(環球時報), 그리고 신화사통신을 보면 그 옛날의 격조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던 품격, 즉 인테그리티와는 거리가 먼 모습입니다.
사마천은 “백성의 입을 막기란 물을 막기보다 힘들다.”고 했습니다. 옛날 농업국가에서 물을 다스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면 이 문장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 것입니다. 우리가 중국의 고전을 지혜의 보고로 배워야 하겠지만, 지금의 중국은 우리가 닮고 싶은 중국과는 비켜나가도 한참 비켜나가 거리가 멀게만 느껴집니다.
그러나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우리의 현실 또한 녹록하지가 않습니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가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증오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상대 진영에서 서로 검정하는 모습들을 보면 일개 저자거리의 아녀자들이나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걸 종종 보게 됩니다.
자기 합리화에 능수능란한 진영의 패널들을 보면, 논리의 오류 뿐만 아니라 팩트와 상관 없는 범주오류(category error)까지 넘나들고 있습니다. 하도 현란하다 보니 스텝이 꼬이는 것이 양쪽 진영이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진보나 보수나 대선을 앞두고 소속 정당의 진정한 성찰 없이 선심성 공약으로 매표행위를 하는 포퓰리즘이 관성이 되어 멈출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인기영합주의가 난무하는 것은 진보나 보수나 지도자가 꼭 가지고 있어야할 자질인 카리스마와 인테그리티(진솔한 품격)가 없기 때문입니다. 거대 담론만 가지고 이 세상을 해석해도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과 민생(民生)이라는 미시담론에만 매몰되어 있는 현실은 저 같이 스케일이 적은 범부(凡夫)에게도 우리의 삶이 부박(浮薄)하고 시시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생각이 민생에만 머무른다면 우리의 품격(Integrity)은 어디에서 찾아야 되겠습니까?
지식은 경험이나 정보를 기억하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그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 글이고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지식을 공유하는 것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릅니다. 한 사회가 자기네 스스로의 역사에 접근하지 못하고, 과거에 대한 서술이 통제되고 조작된다면 문화적·정치적 정체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습니다. 인류역사는 지구와 우주의 역사와 겹처져 있고, 수십억 년 동안 이어진 생명진화의 유산을 물려 받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저서 『총, 균, 쇠』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단편적인 시대나 지역이 주는 역사관을 넘어 인간에 대한 거시적 담론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이젠 증오를 극복하는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증오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어떤 정권이 권력을 잡던 우리 사회는 상대를 힘의 논리로 보복할 것으로 보입니다. 예단하는 것이 너무 경박한지는 몰라도, 그로 인해 또 몇 명이나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 사회는 진영논리로 더욱 더 분열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너그러운 관용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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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치적 대립 뿐만 아니라, 빈부차이, 세대차이. 젠더갈등까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
니다. 여기에 우리시대가 필요로하는 너그러운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가해자에게 조차 너그러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이랜드 작가 샐리 루니의 『노말 피플(보통 사람들)』이라는 작품에서 나오는 인물인 매리언이 그렇습니다. 그녀는 학교에서 늘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특히 두 남학생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다른학생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그녀의 가슴을 “납작가슴”이라고 모욕적인 말을 하곤 했습니다. 그들은 더한 짓도 했습니다. 그녀는 졸업하고 몇 년 후 그들을 용서합니다. 가해자 중 하나는 죽어서 용서할 수 없게 되었지만, 다른 하나가 사과하자 바로 용서합니다. 자살한 친구도 미리 용서해 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싶습니다. 그 친구도 속으로는 틀림없이 미안해 했을 것만 같습니다.
그녀가 너그러운 것은 상처가 피해자 한테 만 발생하는 게 아니라 가해자에게도, 어쩌면 가해자에게 더 큰 상처가 발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잔인한 짓은 피해자에게 상처를 입힐 뿐만 아니라, 어쩌면 가해자에게 더 깊고 더 영구적 상처를 입힐지도 모른다.” 그녀는 피해자도 고통과 상처를 통해 배우고, 가해자도 잘못된 행동을 하면서 “잊을 수 없는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그녀가 자기한테 잘못한 사람들을 가엾게 여기는 이유입니다.
어떤 종류의 사람들은 피해 당사자가 전혀 아님에도 가해자를 향해 죽일 듯이 돌을 던지는 가학적인 문화를 생각하면 인긴 본성에 대한 그녀의 낙관은 다소 순진해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피해자인 그녀가 보여주는 눈부신 너그러움도, 그 너그러움이 상정하는 가해자의 선한 윤리적 본성도 우리 인간의 일부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인간은 벌써 아름답습니다.
(아일랜드작 가샐리 루니의 『노말 피플(보통사람들)』에서)
증오에서 증오를 배우는 사람이 있고 사랑을 배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그릇입니다.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증오에서 사랑의 윤리를 캐낸 사람이었습니다.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이라고 말한 시인이 있습니다. 저는 자크 데리다가 꼭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초등학교에서는 일등을 하는 사람이 돌아가면서 국기를 게양했습니다.
그런데 데리다의 차례가 되었을 때, 다른 학생들이 그 일을 대신했습니다. 그가 유대인이어서 그랬습니다. 식민정부는 유대인 학생들을 제한하기 위해 할당제를 실시했습니다. 그의 표현대로 “검고 매우 아랍인 같고 키 작은 유대인”이었던 그가 1942년 10월 중학교에서 쫒겨난 이유입니다. 이듬해 4월에 다시 학교로 돌아갔으나 불과 몇 개월이었지만 그 일은 열두 살짜리 소년에게 큰 상처가 되엇습니다.
그가 철학자가 되어 말하고 쓴 모든 것에 그 상처가 남았습니다.
그 상처가 철학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상처는 그에게 증오에 대한 맞 대응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원한이나 열등감을 가르치지도 않았습니다. 자민족 중심주의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 것이 가르친 것은 타자에 대한 환대의 정신이었습니다. . …중략… 유대인인 그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들에게 가하는 폭력에 분개한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그는 역사적으로 수난을 당한 유대인들이 다른 민족을 수난으로 몰아 넣는 모순과 위선을 싫어했습니다. 헤브론시(市)의 사원에서 이스라엘 극우단체 소속 의사가 팔레스타인 40명을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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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하는 ‘헤브론 사건’이후, 그는 헤겔의 『신앙과 지식』, 칸트의 『순전한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베르그송의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을 탐독하며 이성을 해체하는 해체철학시대를 열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하나님 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여기서 말씀은 로고스(Logos)를 말합니다. 로고스는 생명이고 빛이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높은 도덕이나 이성은 위선을 낳습니다. 그는 칸트가 인간에 내재해 있는 도덕문법을 찾듯이, 인간이 아인간 호모속(屬)에서 사피엔스로 진화하면서 오랜 세월 각인되어 온 도덕문법을 찾기 시작하면서 이성을 해체하기 시작햇습니다.
그는 상처를 윤리학의 초석으로 삼은 따뜻한, 정말이지 따뜻한 철학자였습니다.
그는 성장하면서 “자신의 상처에 약을 바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치유는 치유의 거부에 있었습니다. 그릇이 큰 사람이어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증오가 혐오의 감정까지 이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혐오의 감정은 다분히 집단에 관한 것입니다. 다른 만족, 인종, 아니면 다른 종(種)에 대한 것이지요. 생명은, 특히 동물은 개체와 개체군(群)에서 변이가 발생하며 진화가 이루어 집니다. 이 개체군은 집단하고 다르며 종(種)과도 다릅니다. 종(種)은 분기하면 전혀 다른 번식체계를 갖습니다.
그래서 동물과 인간은 내집단(內集團)과 외집단(外集團)을 구분합니다.
동물이 내집단에 우호적이고 낯선 외집단 구성원들에게 혐오를 느끼는 것은 진화론적으로 굉장히 적응적인 것입니다. 그들, 외집단이 행여나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전염병(傳染病)’의 전파를 막는 데에 상당히 도움이 될 만한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생리적 혐오는 이렇게 도덕적 혐오와는 달리 상당히 오랜 진화의 산물입니다.
특히 사람은 보편적으로 뱀과 같은 파충류를 싫어합니다. 그것은 초기의 포유류가 백악기(白堊期) 공룡의 시대에서 생존을 위해 야행성 동물로 시작할 때 오랫동안 공포를 경험해왔기 때문이라고 인류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포유류, 그 중에서도 사람은 본능적으로 뱀을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집단무의식의 학문을 개척한 칼 융은 이것이 인간의 원형 속에 있다하여 그것을 아키타이프(Archetype)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런 혐오의 감정이 확대되면 인간은 인종, 종교, 정치 등으로 구분되는 외집단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런 혐오를 극복할려면 우리의 집단무의식에는 인간 문명의 초기 형성되었던 문화의 원형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류학자들이 말하는 ‘던바의 수(數)’가 네안테르탈인과 사피엔스를 어떻게 갈라 놓았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 인간은 집단에서 꾸준히 교육이 지속 되어야 합니다.
문명의 낮은 단계에 있는 아프리카에서도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에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아이 하나가 성장하는 데에는 많은 사람의 도움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왜냐면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성은 감정이 내린 최초의 판단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는 역할 밖에 못합니다.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복잡하고 혼란한 동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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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이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은 그기 더하여 교양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 앞에는 다음 지도자를 뽑아야하는 대선(大選)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불행한 것은 우리의 선택지가 좁다는 것입니다.
인물난은 우리뿐만아니라 세계가 다 겪고 있는 현실이고 민주주위위 위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덜 불행하게 할 지도자를 뽑아야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김수영 시인의 “절망”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큰 울림이 있어 그 시(詩)를 올리며 마무리 할까힙니다.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데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는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2022년 2월 6일 사이버 총무 김 정 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