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가 행한 일도 기억하리라!(막14:1-9)
갈등
1. 작가 한강 이야기가 최근 최고 화두입니다. 그중에 한 이야기를 영상으로 잠시 보겠습니다.(영상시청) 노르웨이 미래 도서관이 영상에 나와 있는 산에 미래 도서관을 만들었어요. 2019년에 세계 유명 작가들이 아직 공개하지 않은 책 100권을 2114년에 인쇄하여 세계에 공개한다고 합니다. 그중에 한 권인 한강의 책 제목은 『사랑하는 나의 아들에게』. 한강이 영광스러운 도서관에 책을 낼 수 있었던 것은 2016년 세계적인 맨부커상을 수상하며(영국에서) 세계 무대에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금년에 노벨상까지 받는 경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강은 이후 한국 문학계의 최고 영광스러운 인물로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한강 작가가 역사에 영원히 기록되듯, 오늘 본문의 여인도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이 여성을 만나러 2000년 전 베다니 마을로 가봅니다. 3절,“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이 일이 일어난 것은 1절,“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죽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2.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려고 자원해서 예루살렘에 올라오셨습니다. 이제 이틀만 지나면 유월절,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것입니다. 이때 주님이 베다니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초대를 받았어요. 나병은 전염성이 있어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기 위해 격리 수용됩니다. 주님이 이 집에 초대를 받고 가신 것을 보면, 시몬은 음성 판정을 받고(제사장이 확인) 격리 생활에서 벗어났습니다. 이 자리에 한 여성이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이 여인이 주님 앞으로 오더니 향유 한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이런 식사 초대의 자리에 여성들이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은 당시 관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 자리에 들어와서 주님께 귀한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이 4-5절,“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이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여인의 헌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책망하고 말았어요. 그들은 여인이 이 자리에 불청객으로 온 것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이 비싼 것을 주님께 드려서 허비한 것에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여인을 책망한 것은 합당한 것이었나요, 그들의 말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갈등 심화
3. 예수님은 여인을 책망하는 사람들에게 6절,“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주님은 여인을 책망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를 괴롭게 하지 말라, 이 여인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여인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 잘 아셨습니다. 8절,“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이틀만 지나면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이고, 이 여인은 주님의 고난을 알고 그 날을 준비하여 내 머리에 향유를 부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제 아침에 수도권 목사님들과 오늘 본문을 줌으로 토의를 했어요. 이 여인이 과연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실 것을 미리 알고 자기가 아껴서 모아온 향유를 주님의 머리에 부은 것인지, 그것은 몰랐지만 자기가 주님께 받은 은혜로 인해서 이때 주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린 것인지? 토의는 절반씩 나눠졌어요. 이 여인의 이름은 마리아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냐,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냐는 논란이 있습니다. 사복음서에 모두 나오는 이 이야기에 실명으로 나오는 이름은 한 사람뿐입니다.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입니다.(요12:1-8) 찬송가 가사에 막달라 마리아라고도 주장하는데, 성경에 근거는 없습니다.
4. 마리아가 예수님의 장례를 생각해서 향유를 부어드렸든지, 이 사실은 몰랐지만 자신이 받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드렸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을 받으신 주님이 마리아의 헌신의 의미를 알고 친히 밝혀준 것이 의미가 있어요. 타이밍도 절묘하게 맞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마리아가 이것을 알았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나사로와 누이들의 삶은 오직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만난 이후 그의 언행과 행보에 대해서 온통 관심을 집중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 발치에 앉아서-다른 누구보다 주님 가까이에서 주님의 말씀을 하나도 빠짐없이 경청했습니다.(눅10:38-42)
예수님은 언니 마르다와 달리 동생 마리아가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모습을 보시고 인정하고 칭찬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다시 마리아의 모습을 보시고 인정해주셨습니다. 9절,“내가 진실로 너히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주님은 마리아가 행한 이 헌신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영원히 기억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셨어요. 주님의 말씀대로 훗날 제자들이 마리아의 이 일을 사복음서 모두에 기록하였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마리아의 이름이 2000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어집니다. 주님은 마리아가 행한 이 일이 얼마나 소중하기에 이렇게까지 칭찬하셨을까요?
실마리
5.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 드린 일로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모두가 이 의미를 오늘날 우리와 같이 알았더라면 이 소동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마리아 외에는 이 일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무도 몰랐어요. 주님이 부활하시고 성령이 임하신 후에야 제자들이 기억하고 깨달아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당시 시몬의 집에 있었던 사람들은-시몬과 초대되어 온 마을 손님들, 주님의 제자들까지-그들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이 일을 도두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일제히 자기들의 생각으로 마리아를 책망했습니다. 향유 옥합이 300 데나리온이나 되는데, 이렇게 쏟아서 허비할 수 있느냐고요. 300 데나리온은 한 남자의 연봉입니다. 오늘날 돈으로 최소 수천만 원입니다. 이 향유가 이렇게 비싼 것은 히말리야 지방에서 채취한 것으로, 멀리 무역을 통해서나 얻을 수 있었고, 세미한 가공 절차를 밟아서 양질의 향유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만한 재정을 허비할 것이 아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더라면 좋겠다고 주님 앞에서 말했습니다. 주님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말하는 이들을 향하여
6. 7절,“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을 나무라지 않으셨어요. 주님은 사람들에게 공생애 동안 내내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빵이 없을 때에는 오병이어 칠병이어 기적을 통해서도 먹이셨습니다. 주님은 자기의 능력을 사람들에게 나타내고자 기적을 행하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들이 배고프고, 온갖 질병과 심지어 귀신으로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보시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빵과 고기를 먹이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돌봄은 언제나 할 수 있지만, 주님은 곧 떠나가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당시 매우 심각했습니다. 이틀 후에 십자가에 달리시며 공생애 사역을 마칠 순간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세상 아무도 주님을 알지 못했어요. 유대 종교인들은 2절“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 하지 말자 하더라.”그들은 주님을 죽이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습니다. 구약 성경에 이미 오래전부터 예언했던 하나님의 아들-그리스도(유대인들과 온 민족의 메시야)께서 이 땅에 오셔서 천국 복음을 선포하시고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알고 주님을 영접해야 했던 유대 종교인들이 주님을 죽이는데 앞장 서고 말았습니다.
7. 그들은 유월절 명절에는 전국에서 온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면 민란이 일어날 수 있으니 유월절을 지내고 죽이자고 모의했습니다. 성경은 주님이 유월절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희생되실 것을 예언했는데요. 그들은 그렇게 계획했지만, 하나님은 정확하게 주님이 유월절에 희생되시게 이끄셨습니다. 유대 종교인들은 이렇게 하나님에게서 멀리 있었습니다. 주님과 3년을 함께 하며 훈련을 받은 제자들조차도 지금 상황을 도무지 알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유대 종교인들에게 고난을 당하여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이라고 세 번이나 예고해주셨는데도 지금까지도 전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오직 한 사람, 마리아만이 예수님의 고난을 미리 준비하였습니다. 자신이 평생 아껴 모은 향유 옥합을 깨뜨렸어요. 주님의 머리에 부어드렸습니다. 주님이 얼마나 마음에 감동을 받으셨겠습니까? 세상이 다 나를 외면하고 알아주지 않는데, 누군가 나를 알고 합당하게 대해준다면 이보다 큰 감동은 없습니다. 저도 가끔 이런 경험을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달려갈 때, 내 모습을 보고 알고 인정해주는 분들-또 격려해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내가 헛된 삶을 살지 않고 있다고 안심합니다. 이 역할을 마리아가 해주었고, 주님은 이 여인의 일을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해주셨습니다.
복음 제시
8. 오늘 본문은 온통 예수님의 죽음 이야기입니다. 유대 종교인들이 자기들이 지금 주님께 어떤 짓을 하는지도 모른 체, 오직 주님을 죽이려는데 혈안이었어요. 빌라도 법정에서 빌라도가 예수는 죄가 없다고 하며 정죄할 수 없다고 하니까, 주님을 죽이는 피 값을 우리와 우리 후손에게 돌리라고까지 말했습니다.(마27:25) 참 기가 막힌 장면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모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헬라인들이 이 정황을 잘 알고 주님을 피신시키려고도 시도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제안을 뿌리치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가 세상사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 것을 아시고도 스스로 우리의 희생제물이 되어주셨습니다. 이보다 큰 복음이 없어요. 주님은 세상의 구원을 위해 자발적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죄의 무게를 지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 희생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사랑의 절정입니다. 마리아는 그 사랑을 미리 알고 옥합을 깨뜨렸고, 우리는 그 사랑을 깨달아 이제 우리의 삶 속에서 옥합을 깨뜨릴 차례입니다.
기대
9. 마리아의 향유 옥합 이야기는 언제 읽고 들어도 은혜가 됩니다. 오늘 밤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마리아처럼 역사의 흐름을 잘 알아야 해요. 역사의 흐름을 잘 알려면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마리아가 주님의 언행과 동선에 집중했듯이, 우리의 모든 관심과 생각이 하나님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에서 향유 옥합을 깨뜨리는 순간은 무엇일까요? 나의 시간, 재능, 물질을 주님께 드릴 때 남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그 헌신을 누구보다 깊이 아십니다. 우리는 세상 가치관을 넘어 하나님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때 우리의 가치관이 바뀝니다. 세상 가치관에서 하나님의 나라 가치관으로 바뀝니다. 에녹처럼, 노아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누립니다. 이 시간 기도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하나님과 말씀에 집중하게 하시고, 세상 유혹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게 하소서. 마리아처럼 주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주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