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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의 묘사)
1. 이면 진실의 존재 유무 :설명적 묘사× 암시적 묘사 ㅇ
-암시적 묘사-시적 대상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 암시
2. 화자의 심리 개입 여부 - 객관적묘사&주관적 묘사
-객관적 묘사:디테일한 현장감과 사실성에 초점
-주관적 묘사:화자만이 느낀 심리적이고 감각적으로 대상을 파악하는 것을 암시하여 그려내는 것
3. 시적 대상의 변형 여부:사실적 묘사&변형적 묘사
-사실적 묘사:시적 대상의 내적 외적 정황과 풍경, 심리적인 공간을 그려내는 것을 사실적인 묘사라고 하며 이는 리얼리즘의 정신이 바탕
-변형적 묘사:철저하게 사물의 입장에서서 시적 대상을
바꾸어서 그려내는 것(전경화, 낯설게하기)
서정문학 연재2회
현대시 창작방법과 실제2 제2장 현대시의 표현 방법
김관식
1. 묘사와 진술의 원리
1. 묘사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려 내는 시의 표현 방법으로 시적 대상의 시각적인 현상이나 고유한 성질, 중심적인 인상 등을 감각적 이고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목적이다. 시 표현에서 묘사가 시적인 정서를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창작방식이다. 대부분 설명과 묘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혼돈하게 되는데 설명은 시의 문학성을 이완시키는 역할을 하는 반면 묘사는 시의 문학성을 극대화 시키는 기능을 하는 만큼 좋은 시의 비결은 시적 대상을 어떻게 잘 묘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현대시가 음악성보다는 회화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묘사는 현대시의 가장 두드려진 특징이다. 따라서 현대시는 묘사가 생명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필연적인 현상이며 당연한 귀결이다.
2. 묘사의 종류
묘사는 시적 대상의 어느 부분, 즉 외형에 초점을 맞추어 묘사하느냐 화자의 내면세계에 초점이 맞추어지느냐 또는 시적 대상의 시간적인 연속성에 초점이 맞추어지느냐하는 화자의 시적대상의 표현 관점에 따라 서경적 묘사, 심상적 묘사, 서사적 묘사로 구분이 된다. 이러한 세 가지의 관점과 구조로 시가 형상화되고 묘사가 되기도 하는데 이를 각각 외부의 경치를 중심으로 풍경화를 그리는 듯이 묘사하는 서경적 구조, 화자의 심리적인 내면정서와 보이지 않는 심리적 공간에 초점을 맞추어 묘사하는 심상적 구조, 그리고 시간의 연속적인 흐름을 이야기로 구성하는 서사적 구성으로 시적인 대상의 관점과 짜임으로 여러 각도에서 형상화되고 표현된다.
또한 시적 대상을 어떤 방법으로 또는 어떤 목적으로 묘사하느냐에 따라 정보전달을 위주로 한 설명적 묘사와 암시적 묘사로 나누어지며, 암시적 묘사는 다시 시적 대상에 화자의 심리가 어떻게 투영되어 나타내느냐에 따라서 객관적 묘사와 주관적 묘사로 구분할 수 있다.
1) 시적 대상을 어느 부분을 묘사하느냐에 따라
서경적 묘사-시적 대상의 외형적인 특징을 중심으로 화자가 느낀 것을 존재하는 현상 그대로 그려내는 것
심상적 묘사-시적 대상을 보고 화자가 마음속에 떠오르는 내면 풍경을 그려내는 것
서사적 묘사-시적 대상과 관련된 사건이나 시적 대상의
역사적인 변화 현상을 시간 흐름에 따라 연속적으로 연결하여 그려내는 것
2) 시적 대상의 묘사방법과 목적에 따라
설명적 묘사-시적 대상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대상의 모든 특징이 자세하게 드러냄으로써 읽는 이의 이해를 돕도록 그려내는 것
암시적 묘사-시적 대상에 대한 핵심적인 강한 인상을 그려냄으로써 시적 대상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이나 정황을 암시하도록 변죽만을 그려내는 것으로 시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창작방법이다.
3) 암시적 묘사의 세분화-암시적 묘사는 시적 대상에 화자의 심리가 투영되느냐의 여부에 따라
객관적 묘사-화자가 이미 선정한 시적 대상의 한 장면이나 상황을 통해 디테일한 현장감과 사실성에 초점을 맞추어 암시하여 그려내는 것으로 되도록 글쓴이의 주관이 개입하지 않는다. 주로 소설에서 많이 적용된다.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냄새가 한층 달에 프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하는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이 가볍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일부
위의 예는 이효석의 소설<메밀꽃 필 무렵>의 한 장면인데, 달빛이 비추는 밤의 정경을 공감각적인 이미지를 동원하여 묘사함으로써 서정적인 분위기를 암시할 수 있도록 적절한 직유적인 표현을 활용하여 암시적이고 객관적으로 청각적 이미지 를 활용하여 역동적으로 가시화했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 나무의 근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 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 간다
김광균의 추일서정 전문
위의 김광균의 추일서정은 화자의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면서 시적 대상을 객관적으로 주지적 성향의 관점에서 공감각적인 이미지를 적절히 사용하여 감각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시적 대상을 객관적이고 암시적이고 상징적으로 그려냈다
주관적 묘사-시적 대상에서 화자만이 느낀 심리적이고 감각적으로 대상을 파악하는 것을 암시하여 그려내는 것을 말한다.
꽃이 문을 꽝 닫고 떠나 버린 나무 그늘 아래서
이제 보지 못할 풍경이, 빠금히 닫힌다
보고도 보지 못할 한 시절이 또 오는 것일까
닫히면서 열리는 게 너무 많을 때
몸의 쪽문을 다 열어 놓는다
바람이 몰려와 모서리마다 그늘의 알을 낳는다
온통 혈관이고 살인 축축한 짚벼늘이 느껴져
아주 오랫동안 지나간 것들의 무늬가 잡힐 듯한데...
꽃 진 그늘에는 누가 내 이름을 목쉬게 부르다가
지나간 것 같아
꿈이나 사경을 헤맬 때 정확히 들었을 법한 그 소리가
왜 전생처럼 떠오르는 것일까
그늘은 폐가다 그것은 새집이나 마찬가지
나는 폐가의 건축자재로 이뤄졌다
태양이 구슬처럼 구르는 정오. 꽃그늘에 앉으면
뒤돌아서 누가 부르는 것 같아
부르다 부르지 못하면 냄새로 바뀐다는데
뒤돌아서 자꾸만 누가 부르는 것을 참을 수 없어
나무를 꼭 껴안아 보는데
나무에선 언젠가 맡았던 냄새가 난다
.
조영민의 [목련꽃 전문
조영민의 목련꽃 이 지고 난 뒤의 정경을 "보고도 보지
못할 한 시절이 또 오는 것일까" 화자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시적 대상에서 화자만이 느낀 심리적이고 감각적으로 대상을 파악하는 것을 암시하여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다음의 예시는 한성희의 [푸른숲우체국장] 이다. 이 시는
숲에 대한 상상력과 아버지에 대한 유년의 기억을 결합하여 형상화한 주관적 묘사의 본보기이다.
산벚나무의 그림자를 모아 편지를 썼다. 흘림체의 그늘에 말린 첫인사는 푸른색이었다. 흔들리는 숲의 잎맥으로 바람의 안부를 물었다. 봄바람은 꽃을 들고 학생부군청주한씨영준지묘를 기웃거리며 서찰의 서두를 생각 중이었다. 문맥의 파동에 떠밀려 꽃잎들이 순하게 하늘로 풀렸다.
평생 나무 그림자로 가계를 키워낸 아버지 스물세 살 맨주먹을 나무뿌리 밑에 숨기고 산맥을 오르내렸다 잎사귀를 뜯어내며 나뭇가지를 분지르며 바람에 떠밀려가는 민둥산을 따라 다녔다. 삼림청 산림계 말단직원으로 박봉의 자리마다 푸른 그늘이
채워졌다. 그때마다 나무들은 허공에다 아버지의 편지를 썼다
넓은 잎사귀의 사연들이 도봉산 발치 아래로 모여들었다 고향집 목련나무가 봄의 겉봉을 뜯기 시작하면 새들의 노랫소리가 낮아졌다 성황당 기억 너머 무위의 땅 그린벨트에 낮게 엎드린 당신의 안부를 만났다 골필로 써내려간 문장들이 흘림체로 날렸다
봄날 우편함을 열면 숲에서 보낸 싱싱한 잎맥의 글씨체가 가득 했다 푸른 숲 공무원으로 아버지는 죽어서도 푸른숲우체국장이 되었다 발신자 없이 배달되는 봄편지에서 꽃잎우표를 붙였다가 떼어낸 산벚나무가 올해는 꽃편지를 풍경 밖으로 서둘러 밀어내고 있었다
-한성희의 푸른숲우체국장] 전문
한성희의 [푸른숲우체국장] 은 화자가 경험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숲으로 변용하여 상상력을 발휘하여 주관적인 묘사 로 재현했다. 산문체 형식의 시로 대지의 휴식처에 누운 아버지를 숲으로 상징하여 해마다 봄이면 "봄바람은 꽃을 들고"아 버지의 무덤을 기웃거리며 "서찰의 서두를 생각 중"이라는 상상력으로 "숲의 잎맥"을 죽은 자의 서찰이라는 경이로운 시적 발상과 독특한 형상력으로 심리적이고 감각적으로 화자의 느 낌을 생생하게 묘사해내고 있다.
3) 묘사의 사실여부에 따라
시적 대상을 묘사하는데 위의 전통적인 방법에 따라 사실적인 것을 바탕으로 시적 대상을 시각적인 인식하고, 가시적이고 감각적으로 가시화하여 제시하는 묘사하는 전통적인 사실적인 묘사라고 하고, 화자가 시적 대상을 보이는 대로 그려내는 사실성보다는 화자의 주관에 의해 바꾸어서 그려내는 변형적인 묘사로 구별할 수 있다
사실적인 묘사-시적 대상의 사실성을 바탕으로 화자의 시적 정서를 표현하는 묘사로 객관적인 묘사와 유사하나 모두 시적 대상의 내적 외적 정황과 풍경, 심리적인 공간을 그려내는 것을 사실적인 묘사라고 하며 이는 리얼리즘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변형적인 묘사-철저하게 사물의 입장에서서 시적 대상을
바꾸어서 그려내는 것이 변형묘사의 두드려진 특징이다. 다시 말해서 화자가 시적 대상을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르게 대상들을 바꾸어 묘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방법을 전경화라 부르기도 하고, 쉬클로프스키가 말한 '낯설게 하기'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표현들을 모두 변형적인 묘사라고 한다
이 기법은 여러 이미지들이 모여 이루어진 이미저리의 기본 단위가 마디에 해당한다. 각각 마디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마디들을 모다 확실하게 구분하려면, 그 핵심 이미지가 분명해야 한다. 결국 변형묘사란 시적 대상을 눈에 보이는 사실적인 외형과 달리 독특하게 변형시키는 묘사법으로 시적 대상물들을 이미저리 마디들로 바꾸어 표현하는 기법이다. 정지용이 즐겨 사용한 창작기법이다.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바람.
앞서거니 하여
꼬리 치날리어 세우고,
종종 다리 까칠한
산새 걸음걸이
여울 지어
수척한 흰 물살,
갈갈이
손가락 펴고
멎은 듯
새삼 듣는 빗낱
붉은 잎 잎
소란히 밟고 간다.
정지용의 비 전문
이 시는 정서의 주체인 화자가 작품의 표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긴 채 자연 현상의 섬세한 묘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8개의 연은 각각 두 개의 행씩 하나의 단락을 이루어 모두 네 장면을 제시하고 있어 정형시적인 형태를 띤다. 기승전결의 안정된 구조를 통해 산수화의 느낌을 주는 산수시로써 시적 대상의 외적인 풍경만 제시한 것처럼 보이지만 풍경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심리 상태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비'는 픙경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사실 그 자체에 구속되지 않고
화자의 내면세계도 그려냈는데, 각 연마다 여러 부분을 묘사하여 전체시를 구성하는 정지용의 독특한 시 창작 구성방법을 보이는 시이다. 화자는 이미저리의 이면에 숨어있으며 화자의 느낌은 이미저리 마디마디에 반영되어 나타나는 마치 회화에서 화면을 색채의 작은 획이나 점으로 채워 멀리서 보면 그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점묘법의 기법을 활용하여 시적대상 자체를 바꾸어 그려내는 변형적인 묘사로 구성
된 시이다.
3. 진술이란?
대상의 현상이나 성질, 인식 등을 직접 묘사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들려주듯 드러내는 것을 뜻하는 말인데, 오규원은 [현대시작법] 에서 시적 진술은 '독백적 진술', '권유적 진술', '해석적 진술'로 대별할 수 있으며, 묘사와 달리 정서적 등가물의 유무와 관계없이 느낌 또는 깨달음, 그 자체를 고백적 선언적으로 가청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묘사는 사물이나 현상이 지닌 성질, 인상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언술형식이다. 시는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느낌을 직접 제시하는, 즉 감정이나 설명을 배제하고 대상의 지배적인 인상을 구체적으로(이미지로) 표현하는 양식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묘사는 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자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묘사에 대한 인식 부족이 비시적 표현의 근간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표현력이 미숙한 많은 시인들의 시표현상의 특징은 묘사보다는 독백적인 진술에 의존하여 사향의식을 진술함으로써 자기만 알고 남은 전혀 알 수 없는 주관적인 관념 속에 자신을 가두어두고 시어의 의미를 머리 속에 떠올리는 관념 자체를 이미지로 혼동하여 그것을 설명하려들거나 자신의 경험과 관련지어 장황하게 진술하는 표현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러한 진술에 의존하여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려는 시인들은 대부분은 낭만주의적인 시경향을 갖고 있고, 자신의 감정을 운율에 의존하여 토로하는 것이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낸 좋은 시로 여기는 전근대적인 시관을 가지고 있는 부류들이다.
마음 속에 떠오르는 서경적인 공간에 안주하여 직접적인 화자의 감정을 주관적으로 드러내는 낭만주의적인 심미감에 자신이 도취되어 시적대상을 관조하여 가청화하여 진술함으로써 상대를 설득하고, 자신의 감정을 독자에게 고백하는 낭송시들이 대체적으로 독백적 진술에 의존하고 있는 경향이 많은 추세이다.
오늘날 대중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대중에게 시를 친근하게 접근하기 위한 수단으로 낭송시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현상은 시가 묘사에 의존하여 고도의 정신적인 집중을 요하는 은유와 상징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시화함으로써 독자들과의 관계가 멀어진 현대시의 경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중적인 접근은 유행가 가사와 같은 진술에 의존하여 시적 대상에 대한 화자의 감정을 가청화함으로써 대중의 일시적인 관심을 촉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다분히 말초적인 심리적 자극을 줌으로써 대중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거나 가슴 뭉클한 동조감정을 유발함으로써 대중과의 친절한 접촉을 시도하고 있 다. 다소 직접적인 반응과 시적인 관심을 유발할 수는 있겠지만 현대시의 본질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많은 반성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현대시의 본질을 왜곡시키지 않는 범주에서 묘사와 진술이 융합된 낭송시로 독자들에게 상상력을 촉발시키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낭송시의 발전방향이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시적인 재능과 표현능력과 부족한 시인들이 습작을 게을리 하고 시의 본질을 왜곡하는 고정관념의 틀에 갇혀 시를 취미활동이나 자기과시의 표현이라는 명리적 가치를 추구에만 관심을 갖고, 진술적인 표현의 늪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타성이 때문에 낭송시는 답보상태에 있으며, 시와 음악과 무용이 새롭게 결합하여 화려한 낭송시의 유행을 창조해내고 있다. 무당푸닥거리 같은 퍼포먼스, 낭송시인의 화려한 의상과 웅장한 음악, 눈물샘을 자극하는 구성진 음성 등 점점 화려한 대중문화로 진화되어가고 있는데, 현대시의 해성을 극복하고 시를 대중적인 문화로 확산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현대시가 묘사와 진술을 결합하고, 디지털 시청각 매체와 결합하는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함으로써 시를 잃지 않고 대중과 함께하는 전통적인 낭송시의 새로운 창조적 인 문화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주로 80년대 민중시의 경우, 이야기식으로 진술에 의존하였고, 오늘날도 진술시는 진선미의 진실의 미를 우월하게 여기는 시인들에 의해 추앙받고 있는 추세이다. 언어적인 표현을 강조하는 형식적인 미학을 강조하는 문학성도 높은 가치가 있지만, 언어의 미학적인 측면보다 사회참여적인 성격이 짙은 진실의 미학을 강조하는 참여시인들과 대중적인 시로 인기를 누리려는 낭송 시인들의 경우 진술에 의존하는 시를 쓰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
또한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에서 독재자들을 추앙하는 인물을 찬양하는 시에 진술적인 표현이 많이 사용되고 있고, 추모헌시 등에서도 진술에 의존하여 시를 표현할 수밖에 없는 현상은 어 쩔 수 없다하더라도 시의 발전을 위해 심각한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고대의 전통시가가 음악과 함께하는 궁중가악으로 발전해왔으며, 가사, 시조 등의 음수율에 의존하는 정형
시로 전통을 이어왔으나 현대에 와서 노래에서 회화로, 가창화에서 가시화로 전환됨에 따라 시의 전통이 단절되었다는 점과 우리나라의 언어인 한글이 중국의 한자와 달리 표의문자가 아니라 표음문자로서 가청화에 적합한 언어라는 점에서 한국의 전통 시는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시조의 전통과 아울려 가시화와 가청화가 융합하여 조화를 이루는 독창적인 시로 대중들과 호흡할 수 있도록 발전되어 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4. 진술의 종류
1) 진술의 방법에 따른 구별
독백적 진술-시가 시인 나름대로의 세계를 인식하는 표현
양식임에도 세계인식과는 거리가 먼 시인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넋두리를 독백적 진술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넋두리 시들은 극도의 자기감정을 억제지 못하고 "~하구나.", 자신의 푸념 같은 쓰 잘 데 없이 의미 없는 말은 모두 넋두리로 밖에 볼 수 없다. 따라서 넉두리와 독백적 진술은 엄격히 구별되어야 하며, 독백적 진술은 화자의 주체적인 세계 인식을 표현하는 독백, 고백, 자성, 과거의 회고, 소원의 호소 등을 독백에 의존하여 진술하는 것을 말한다
시인 자신의 주체적인 인식을 표현하는 독백적 진술로의 박두진의 고백 을 예시로 들겠다.
내게서 당신의 눈길을 돌리시지 마셔요.
내게서 당신의 음성을 끊으시지 마셔요.
내게서 당신의 입김을 때시지 마셔요.
내게서 당신의 포옹을 풀으시지 마셔요
그러시면 나는 천지가 온통 깜깜해 버려져요.
그러시면 나는 두귀가 절벽으로 귀가 멀어요.
그러시면 나는 전신이 꽝꽝차게 얼음 얼어요
그러시면 나는 낭떠러지 저 낭떠러지로 절벽으로 떨어져요.
-박두진의 <고백> 전문
사랑의 대상에게 바라는 소망과 자신의 심정을 고백체로 진술하고 있다
원형적인 시점에 입각하여 삶에 대한 자성적인 사유를 독백적 진술로 형상화한 유치환의 [바위] 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린에 물들지 않고
회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의 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유치환의 [바위]
유치환의 바위는 미래에 대한 삶의 의지나 각오를 노래하고 있다. 바위를 소재로 독백적 진술에 의존하여 절대적인 초월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결의를 다짐하는 단호하고 강인한 남성적 어조로 진술하고 있다.
"비정의 시인", "의지의 시인"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유치환시인은 노래하는 바위, 그 자체보다 자신의 다부진 어떤 결의나 강인한 의지의 표현으로 객관적인 상관물인 바위를 자신을 일체화시켜 일체의 감정과 외부의 변화에도 움직이지 않는 초탈의 경지를 상징하는 바위로 그 의미를 확산시키고 있다.
다음은 세월호 침몰 사고로 참사를 당한 시신으로나마 돌아오지 못한 여학생의 영혼이 되어 회고적인 시점으로 독백적 진숱한 나해철의<어떤 기도> 와 이생진의 [무명도]를예로 들 수 있다
정말
기다리는 아빠에게
가고 싶었어요
깊은 물속 캄캄한 방에 갇혀서
내 손발은 차디차게 식은 지 오래였고요
누가 와서
아버지에게 나를 데려다주길 빌었어요
내 손발 아직 따뜻했을 때
비록 나를 무참하게 버렸었다 해도,
많은 시간이 지난 이제는 제발
나를 여기서 꺼내 주길 진정 원했어요
매일 방파제에 내 밥을 차려놓고
기다리시는 아버지가 너무 가여워
며칠 남은 내 생일날 생일상 차려들고
바닷가로 나오시며
소리 없이 우시다가 결국 내 이름 목 놓아 부르실
아버지를 위해
내 생일까지는
나를 아버지 앞에 데려다 놓아주길 바랬어요
어둡고 차가운 물 밑에서도
두 눈 깜빡거리지도 않고 크게 뜬 채로
아버지 쪽만을 쳐다보며 바라보며
기도했어요
-나해철의 [어떤 기도] 전문, 시집 영원한 죄, 영원한 슬픔에서
이 시는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의 영혼이 되어 독백적 진술로 시를 풀어냄으로써 아픔을 극대화하고 있으며, 언어의 외형적인 시적 미학을 추구하는 문학성보다 진실성의 가치를 우위에 둠으로써 진실이 주는 감동을 극대화시켰다.
저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섬에서
한 달만
뜬눈으로 살자
저섬에서
한 달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뜬눈으로 살자
-이생진의 [무명도] 전문
그리움이 없어질 시점까지 섬에 살고 싶다고 시인 자신의 소원을 호소하는 독백적 진술에 의한 시다
권유적 진술-시인이 독자들에게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토로하여 동조감정을 조성하도록 ,시인 자신의 주장을 불특정 개인이나 다수에게 적극 공조를 요청하는 형태로 의도하는 행사에 참여하게 하거나 새로운 각성을 촉구하며, 흔히 화자의 주장을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권유하는 진술의 형태를 취하는 것일 일반적이다. 이 권유적 진술은 주로 단체나 행사 등에 많이 사용되는 관행적인 시점으로 세월호 추모시, 작고시인의 추모 행사시가 여기에 속한다. 또한 아무런 구속이나 제한을 받지 않는 비관행적인 시점으로 구분되는데, 관행적인 시점으로 표현된 시를 소개하면, 도종환의 화인(火印)을 꼽을수 있다.
비 올 바람이 숲을 훑고 지나가자
마른 아카시아 꽃잎이 하얗게 떨어져 내렸다
오후에는 먼저 온 빗줄기가
노랑붓꽃 꽃잎 위에 후드득 떨어지고
검은 등 뻐꾸기는 진종일 울었다
사월에서 오월로 건너오는 동안 내내 아팠다
자식 잃은 많은 이들이 바닷가로 몰려가 쓰러지고
그것을 지켜보던 등대도 그들을 부축하던 이들도 슬피 울었다
슬픔에서 벗어나라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섬 사이를 건너다니던 새들의 울음소리에
찔레꽃도 멍이 들어 하나씩 고개를 떨구고
파도는 손바닥으로 바위를 때리며 슬퍼하였다
잊어야 한다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
눈물을 털고 일어서자고 쉽게 말하지 마라
하늘도 알고 바다도 아는 슬픔이었다
남쪽 바다에서 있었던 일을 지켜 본 바닷바람이
세상의 모든 숲과 나무와 강물에게 알려준 슬픔이었다
화인처럼 찍혀 평생 남아 있을 아픔이었다
죽어서도 가지고 갈 이별이었다
이 시는 세월호를 추모하는 시로 "잊어야 한다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고 권유적 진술로 세월호의 아픔을 진술하고 있다.
해석적 진술-시적 대상에 대한 인식 주체를 깨닫거나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리거나 또는 비판하거나 화자의 결론적인 판단 등으로 해석을 내린 진술을 말한다. 일정한 시적 대상에 대한 시인 나름의 해석과 비판의 형태로 관조적인 시점에 의해 의미론적 해석 또는 존재론적 탐색을 통한 자기 세계의 이해에 적극 동참하는 방식으로 화자의 체험에 의존하여 시적대상에 대한 탐구와 비판하는 관조적인 시점, 또는 시적 대상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해석에 초점을 맞춘 풍자적 시점으로 표현된다
풍자적인 시점으로 부동산 투기로 농지값이 폭등하고, 거래되는 현상과 그에 따른 생태계가 파괴되어 가는 삶의 현장을 접목시켜 인간의 탐욕에 대해 사회윤리적인 화자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린 풍자적 시점으로 진술한 시를 예로 들면 김복순의 [소사뜨락] 이 있다
소사벌 모서리에 터 잡은 지 몇 해 이던가
지번 없는 너른 벌을 몽땅 사들여야겠다
이슬이 풀꽃들을 깨우면 휘파람을 불어주리
동무와 푸른 쌈에 햇살 얹은 점심을 먹고
느릿하게 오수에 들면 그 무엇이 부러우랴
청개구리 울음소리 논두렁을 적시면
텃밭에 가지며 오이 호박들을 모종하리
물논에서 올챙이를 잡던 기억들은
순수의 시간으로 데려다 주리
땅꾼들의 음흉한 수작에
허리 잘린 땅들이 몸값을 올려 널뛰기를 해도
백로가 한가로이 쉬어 가는 뜨락
태양과 바람이 조랑박을 키우는
꽃들이 씨앗을 품는 소사뜨락에 서서
먼 이국땅의 일인 양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리
일출을 따라온 귀한 손님들이
일몰의 그림자를 밟고 돌아가면
어둠이 전해 준 고요에 누워 별을 헤리라
초록의 뜨락은 평화로웠다고 적으리라
.김복순의 [소사뜨락] 전문
화자의 체험에 의존하여 시적대상에 대한 탐구와 비판하는 관조적인 시점으로 해석적 진술로 "안으로 흘린 인내의 눈물이 모여/ 바위가 된 어머니의 섬"으로 관조적인 해석을 내리고, "아직도 붙에서만 서성이는 나를/섬으로 불러주십시오. 어머니"라고 호소하고 있다.
늘 잔걱정이 많아
아직도 뭍에서만 서성이는 나를
섬으로 불러주십시오. 어머니
세월과 함께 깊어가는
내 그리움의 바다에
가장 오랜 섬으로 떠 있는
어머니
서른세 살 꿈속에
달과 선녀를 보시고
세상에 나를 낳아주신
당신의 그 쓸쓸한 기침소리는
천리 밖에 있어도
가까이 들립니다
헤어져 사는 동안 쏟아놓지 못했던
우리의 이야기를
바람과 파도가 대신해주는
어머니의 섬에선
외로움도 눈부십니다
안으로 흘린 인내의 눈물이 모여
바위가 된 어머니의 섬
하늘이 잘 보이는 어머니의 섬에서
나는 처음으로 기도를 배우며
높이 날아가는
한 마리 새가 되는 꿈을 꿉니다. 어머니
-이해인의 [어머니의 섬] 전문
5. 묘사와 진술의 융합적 표현으로 문학성을 살린 사례들
좋은 시는 묘사와 진술이 융합하여 조화를 이룰 때 시적인 완성도가 높아진다. 묘사가 주된 묘사형의 시도 진술이 들어가야 하고, 진술을 위주로 하는 시에도 반드시 서경적이거나 서사적인 요소, 심상적인 요소가 필요하게 된다. 음식을 요리할 때 우수한 재료와 적절한 양념이 섞여 들어가고 그것을 맛있게 요리하는 일류요리사가 명품의 요리를 만들어내는 법이다. 묘사만으로 구성된 시도 없으며, 진술만으로 구성되는 시도 없는 것이다. 만약 묘사나 진술만으로 짜여진 시가 있다면 음식재료 그
자체의 맛일 것이다
1) 묘사와 진술의 조화미
묘사와 진술의 조화미를 느낄 수 있도록 시골 간이역의 겨울 밤 풍경을 일인칭 시점으로 리얼하게 진술하고 묘사한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 를 예시로 들겠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곽재구의 [사평역에서] 전문
2) 서경적, 심상적, 서사적 묘사의 결합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라는 상황진술과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로 대합실의 안팎의 정경묘사 등으로 눈이 내리는 겨울밤의 시골 간이역 풍경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다음의 예시는 서경적 묘사, 심상적 묘사, 서사적 묘사의 모든 속성을 결합하여 생생하게 역동적인 이미지의 묘사를 잘 구사한 조영민의 시 [종신형]이다. 이 시는 제1회 백교문학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어머니의 생애를 종신형으로 규정하고 고향집 풍경을 종신형을 살고 있는 어머니와 비유하여 서경적 묘사, 심상적 묘사, 서사적 묘사 등을 교묘해 배합하여 어머니의 삶을 관조적이며 상징적으로 암시하고 생생하게 묘사한 시로 조영민의 종신형을 소개한다
고향집 노을은 양철지붕 위에서 부식되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잎사귀에서 요령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손금의 가지들이 너무 우거져 어머니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쇠창살 같은 나뭇가지의 손등을 만지자 달빛이 어둑했다 달은 몇 번의 탈옥이라도 결심한 듯 이마의 주름계곡을 따라 어지러웠지만 밖으로 나오진 못했다 그 누구도 학사모를 쓸 때까지 철문 깊숙이 숨은 달을 한 번도 면회 가보지 못했다
전생에 무슨 끔찍한 죄를 저질렀을까 이 저녁, 집행유예 동안 잠시 출감한 듯 내 곁에 앉아있는, 어미라는, 가족이라는 감옥에서 종신형을 살고 있는 어머니 아직도 잔여형기가 남았는지 푸석한 웃음과 갓 딴 옥수수 한 보따리를 싸주신다
.조영민의 [종신형] 전문
고향집의 풍경을 감각적이고 역동적으로 묘사하고 진술하고 있다. 마치 어머니가 살고 계시는 고향과 어머니의 모습이 어우러진 묘사와 진술의 조화가 생생하게 시각적으로 드러남으로써 어머니의 전 생애가 가슴 뭉클하게 감동으로 전해진다.
이는 휴머니즘인 시각으로 시인의 사물을 보는 통찰력과 공감각적인 묘사가 빚어낸 절창의 시라고 할 수 있다
3) 주관적인 묘사와 해석적 진술의 결합
주관적인 묘사와 해석적 진술을 결합하여 묘사와 진술로 어머니의 삶을 묘사와 진술로 조화롭게 형상화했고, 다양한 상징과 암시로 시적인 미학을 확산시킨 예시로 나희덕의 [못 위의 잠] 을들수있다.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로만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종암동 버스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 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채 달빛을 좀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집 한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 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나희덕 [못 위의 잠]
4) 현재의 시공간과 경험의 결합 진술
현재 시인이 위치한 시공간에서 과거의 경험을 떠올려 오버랩 시켜 묘사와 진술의 미를 확산시킨 김경호의 [사모곡] 을 예시로 들어본다. 이 시는 기차를 타고 가며 고향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회상적인 진술로 사향의식을 형상화하였는데, 화자가 현재 위치하는 시공간의 움직임을 과거의 회상과 교묘하게 결합한 사례이다.
역을 지날 때면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산을 굽이 돌아 멀어져간
철길처럼
이제는 가물가물한 어머니.
낡은 사진첩 속에
한 장 빛 바랜 사진으로 남아 있는
어머니는 언제나
50의 중년
나는 해마다
연륜의 그릇을 하나씩 비워내고
한 걸음씩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 간다.
어머니와 나의 나이가 가까워지는 만큼
어머니와 나의 인연은 멀어져 가고,
때 없던 목메임도 뜸해져 간다.
불현듯 어머니가 그리운
마음이 허전한 날이면
꿈이 길고 긴꿈 내내
어머니는 뒷모습만 보인다.
-김경호 사모곡
기차를 타고 가면서 어머니를 회상하고, 어머니의 삶을 달려가는 기차와 결합하여 어머니의 전 생애를 더듬어가는 오버랩의 기법을 활용한 시로 어머니의 외로운 삶을 묘사와 진술로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5) 친족의 인물에 대한 해석적 진술로 성공한 시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진술하고 서사적 묘사와 해석적 진술로 성공한 시로 박형준의 [가구의 힘] 을 예시로 들겠다.
얼마 전에 졸부가 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나의 외삼촌이다
나는 그 집에 여러 번 초대받았지만
그때마다 이유를 만들어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방마다 사각 브라운관 TV들이 한 대씩 놓여있는 것이
여간 부러운 게 아닌지 다녀오신 얘기를 하며
시장에서 사온 고구마 순을 뚝뚝 끊어 벗겨내실 때마다
무능한 나의 살갗도 아팠지만
나는 그 집이 뭐 여관인가
빈방에도 TV가 있게 하고 한 마디 해주었다.
책장에 세계문학전집이나 한국문학대계라든가
니체와 왕비열전이 함께 금박에 눌려 숨도 쉬지 못할 그 집을 생각하며
나는 비좁은 집의 방문을 닫으며 돌아섰다.
가구란 그런 것이 아니지
서랍을 열 때마다 몹쓸 기억이나 좋았던 시절들이
하얀 벌레가 기어 나오는 오래된 책처럼 펼칠 때마다
항상 떠올라야 하거든
나는 여러 번 이사를 갔었지만
그때마다 장롱에 생채기가 새로 하나씩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집의 기억을 그 생채기가 끌고 왔던 것이다
새로 산 가구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만 봐도
금방 초라해지는 여자처럼 사람의 손길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먼지 가득 뒤집어쓴 다리 부러진 가구가
고물이 된 금성라디오를 잘못 틀었다가
우연히 맑은 소리를 만났을 때만큼이나
상심한 가슴을 덥힐 때가 있는 법이다.
가구란 추억의 힘이기 때문이다.
세월에 닦여 그 집에 길들기 때문이다.
전통이란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것 ..
하고 졸부의 집에서 출발한 생각이 여기에서 막혔을 때
어머니가 밥 먹고 자야지 하는 음성이 좀 누그러져 들려왔다.
너무 조용해서 상심한 나머지 내가 잠든 걸로 오해 하셨나.
나는 갑자기 억지로라도 생각을 막바지로 몰고 싶어져서
어머니의 오해를 따뜻한 이해로 받아들이며
깨우러 올 때까지 서글픈 가구론을 펼쳤다.
박형준의 [가구의 힘] 전문
낡고 오래된 가구에 대한 몽상으로 현실적으로 무능한 화자의 상처 받는 마음을 위로 받는 시로 물질과 정신의 대립관계를 오래된 가구가 갖는 추억이나 기억이 갖는 힘으로 삶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 받으며 살아간다는 시간이 주는 철학적 의미를 암시하게 하는 해석적 진술로 형상화하고 표현하여 성공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