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우화에 나오는 이런 저런 좋은 말 가운데 가장 현실적으로 와닿은 글이 바로 '해님과 나그네'이다. 바로 강풍으로는 절대 외투를 벗길 수 없다는 내용이다. 현대 국제 사회나 국내에 모두 적용되는 그야말로 다방면에 적용 가능한 명언이라 평하고 싶다. 잘 알다시피 강풍은 강압적인 행동이다. 외투를 입은 나그네에게 강력한 바람을 이용해 외투를 벗기려 하지만 나그네는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옷을 감싸고 견디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나 태도를 바꾸어 따뜻한 바람을 불어주니 나그네는 땀을 딲으며 옷을 하나 둘씩 벗기 시작한다. 그 강력한 태풍같은 바람에도 끄떡않던 나그네는 따뜻한 훈풍에 감싸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던지는 아닌가. 이것이 바로 외교이다. 강한 바람은 바로 전쟁을 의미한다. 국제적인 상황에서도 상대를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결국 마음을 열고 타협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외교가 아니겠는가. 외교에는 처절한 희생이 없다. 윈 윈하되 결국은 자신의 승리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누가 더 갖고 누가 덜 갖는 것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상대에게 양보하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더 많이 챙기는 것도 바로 외교의 양면적 모습이다.
러시아 침공으로 발발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써 일년을 넘겼다. 지나고 난 뒤 이런 말 하는 것이 무슨 소용있겠는가 마는 일년전 양국이 서로 외교력을 발휘해 타협을 이뤘으면 어떠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고 자신들의 수도인 모스크바 근처까지 나토의 깃발이 휘날리는 것이 두려웠다. 당시 상황에는 군사 초강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정도는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 식으로 간단하게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 오판했다. 러시아의 잇딴 경고에도 우크라이나는 나토의 뒷힘을 믿고 그냥 강경 태세를 취했다. 당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요구를 귀담아 들을 자세를 가졌거나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강국들이 러시아를 설득할 분위기를 조성했었어도 지금같은 이런 상황을 빚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참혹한 폐허속에 저항을 계속하고 있고 러시아는 핵폭탄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일년전 외교 라인이 전혀 가동되지 않은 것이 이러한 엄청난 파괴를 도출한 것이다. 외교가 없는 부딪힘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물론 러시아 우크라 전쟁 뒤에 미국 등 강대국들의 음흉한 야욕이 숨어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미중 대립은 또 어떤가. 양국이 한치의 양보도 없는 모양새이다. 조그만 것에도 서로 트집잡고 헐뜯는다. 양국의 외교장관의 얼굴에서 그런 것을 읽을 수 있다. 미국 토니 블링큰 국무장관이 웃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항상 심각하다. 외교장관의 이런 모습은 전쟁때나 볼 수 있는 표정이다. 블링큰 장관은 외교장관과 국방 장관을 함께 수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외교하러가서 협박하고 오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중국의 외교 핵심인 왕이 전 부장은 한 술 더 뜬다. 이 인물은 상대국 외교장관을 만나 힘으로 윽박지르는 것이 특기인 듯 하다. 까불면 용서없다는 식으로 상대국의 외교장관을 주눅들게 하는데 귀재처럼 보인다. 외교장관이 결코 그런 자리가 아닌데 말이다. 자국의 수장들이 어르렁대도 외교장관들은 웃으며 만나 서로의 고충을 토로하고 좋은 방향의 해법을 찾는 그런 자리인데 이 사람들이 더 앞장서서 갈등과 위기를 고조시키는 듯한 형국이다. 한국의 외교장관도 초기에는 웃는 모습이다가 요즘은 시무룩하고 침울한 표정이 읽힌다. 뭐 이런 저런 일로 답답하겠지만 외교장관은 포커페이스가 되어야 한다. 희로애락을 잘 표현하지는 않지만 온화한 표정이 제일의 덕목인 사람이 바로 외교장관이다.
국내 정치도 외교력을 상실한지 참 오래됐다. 여야 대표들이 만나 현안을 논의하고 합의를 도출하면서 웃으면서 악수하는 장면을 본지 참 오래 됐다. 예전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 정치속에서도 여야 대표들의 웃는 모습을 간혹 보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현실이 어렵던가. 한치의 여유가 없던가. 서로 상대를 처단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인가. 상대가 없어지면 홀가분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정치는 어느 한쪽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가 있고 야가 있는 것이다. 서로 타협하고 의논하고 설득하고 상대의 의견을 잘 들으면서 현안을 이끌라고 국회라는 것이 있고 여야라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이다. 외교가 사라지면 전쟁밖에 남지 않는다. 외교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라고 한다. 외교는 무슨 놀이터도 아니고 여흥의 장도 아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도출하지 말고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고 있는 것이 바로 외교이다. 다시 말하지만 외교가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참혹한 전쟁밖에 남지 않는다. 강풍으론 절대 외투를 벗길 수 없다.
2023년 2월 26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