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작가님께서 주신글]
보길도
화신(花信)을 찾아 남도기행
동백과 밥상
살포시 내리는 눈을 본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한데, 마냥 웅크리고만 있을 순 없는 일, 문득 동백꽃이 생각났다. 이 추위 속 어딘가에 빨갛게 피었을 그 겨울 꽃이 보고 싶어. 참지 못하고 남도 기행을 떠났다.
남쪽으로 가 보자. 육지의 끝, 해남 땅 끝까지 내달렸다. 거기서 바닷길을 다시 40분쯤 남하(南下)하여 보길도에 닿았다.
보길도는 지금 동백 천지다. 마을과 바닷가는 물론 산 중턱까지 동백이 숲을 이루고 자생한다. 내친김에 섬 끝까지 가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남쪽 끄트머리 보옥리에 오면 찻길이 끊긴다. 동쪽 예송리까지 해안은 가파른 바위여서 일주도로가 뚫려 있지 않다. 더 나아갈 곳도, 더 내려갈 곳도 없다. '끝'까지 왔다.
보옥리는 작은 포구를 낀 한촌(寒村)이다. 음식점 하나 없고 구멍가게도 안 보인다. 마을 고샅길 막다른 집, 60대 토박이 부부가의 보옥민박에 들었다.
기와집 안채 곁으로 단층 슬래브 집을 지어 손님방 넷을 들였다. "집 떠나믄 고생인디…." 안주인이 한겨울에 여기까지 뭐하러 왔느냐는 표정으로 맞는다.
보옥리까지 간 연유가 동백꽃만은 아니었다. 마을 앞에 '공룡알 해변'이 있다. 공룡알처럼 크고 길쭉한 갯돌이 가득 깔려 있다.
여느 몽돌 해변의 잔돌들이 파도에 쓸려 '차르륵' 소리를 낸다면 이곳 돌은 '크르릉' 어렵사리 구른다. 소리가 맑고 울림이 크다.
해변 서쪽엔 칼날 같은 뾰족산이 저 혼자 덩그러니 솟아 있다. 그 너머로 해가 떨어지면서 하늘을 붉게 물드는 낙조를 보고 싶었다. 이른 아침 자욱한 해무(海霧)에 잠긴 공룡알 해변도 마주하고 싶었다.
그러나 날씨 탓에 노을도, 바다 안개도 보지 못했다. 해변에 우거진 동백 노목(老木)들도 드센 바닷바람에 잔가지들이 안으로 휜 채 꽃망울 맺을 기색조차 없다.
500㎞를 내려온 보람은 딴 데 있었다. 안채에서 저녁상을 받고 탄성부터 터져 나왔다. 상 복판에 한 뚝배기 올라앉은 전복 된장찌개를 에워싸고 12찬이 깔렸다. 찌개 한 숟가락 뜨니 슴슴 구수한 국물이 아무 걸림 없이 목을 타고 들어와 몸을 덥힌다.
집 된장에 싱싱한 새끼 전복들이 넉넉하게 어우러졌다. 살짝 쪄서 양념장 얹은 갯장어는 부드럽게 녹는다. 새콤하게 무친 간재미는 사근사근 씹힌다.
감자 곁들인 고등어조림까지 모든 생선이 마을 포구에서 갓 받아 온 것이라고 한다. 새끼 전복들은 아는 이의 전복양식장에서 대준다고 한다. 전복 간장조림의 쫄깃한 식감도 여간 아니다.
파래무침 곁 접시엔 감태처럼 생긴 해초가 있다. 감태보다 영양가가 훨씬 높은 귀한 해초 '늣'이라고 한다. 안주인이 갯바위에서 뜯어왔단다.
들깻가루로 촉촉하게 무친 나물도 철 따라 캐서 말려둔 산나물이다. 볶아낸 멸치조차 손수 찌고 말렸다.
이 댁 밥상에서 기성품은 두부뿐이라고 한다. 자연 밥상, 장수 밥상, 로컬 푸드 같은 말이 이보다 어울리는 밥상도 없을 것이다. 거기에다 어느 접시 하나 허투루 올린 것 없고 어느 찬 하나 손맛 소홀한 것 없다.
밥상에는 가득 담긴 밥그릇 하나가 덤으로 올라왔다. 누룽지도 한 양푼 나왔다. 정(情)과 인심과 진심 그득한 상을 얼마 만에 받아보는 것인지. 이 밥상 값이 한 사람에 7000원이다. 줄곧 5000원이었다가 얼마 전 올렸다고 한다.
안주인이 말했다. "훨씬 가난하게 살던 때도 집에 온 사람 밥 먹여 보냈는데, 돈까지 받으면서 어떻게 함부로 상을 보겠느냐고“
할머니가 밤새 보일러를 돌렸다는. 따끈한 방바닥에 등허리를 지지면서 3만원 방값 받아 기름값 감당도 못하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이튿날 안채에서 아침상을 받았다. 아무래도 저녁상보다는 단출하려니 했던 건 지레짐작이었다. 해초 가사리 된장국에 11찬이 올랐다.
김치 같은 밑반찬 두어 개 빼고는 새 메뉴다. 병어조림, 말린 장어구이, 머위나물, 두부볶음, 마무리는 안주인이 갈아 끓인 유자차로 했다.
살면서 몇 안 되게 소중한 밥상으로 기억할 보옥리의 저녁이고 아침이었다. 부부는 집 앞까지 나와 전송했다. 오히려 "누추한 곳에서 고생했다"는 인사까지 건넸다.
서울은 모처럼 날이 풀려 화창하다는데 보길도엔 눈발이 날렸다. 그래도 전혀 허망하지 않았다. '내 인생의 밥상'에 속 든든하고 마음까지 따뜻해진 덕분이다.
아침나절, 고산(孤山) 윤선도가 안산 중턱에 지어놓은 공부방 동천석실(洞天石室)에 올랐다. 눈송이 내려앉은 솔가지들이 하얀 송화(松花)를 피운 듯했다.
동천석실 뒷길을 오르다 어둑한 숲 속에 한 점 빨간빛이 보였다. 딱 한 떨기 동백꽃이 한껏 달아오른 숯불처럼 새빨갛게 만개(滿開)해 있었다.
저녁상 받기에 앞서 민박집 부엌을 기웃거렸더니 안주인이 양푼 가득 은빛 눈부신 생멸치를 손질한다. 덕지덕지 해초 묻힌 멸치가 까만 눈으로 쳐다본다.
안주인이 펄떡이는 병어도 만져보라 한다. 은박지 바른듯한 몸이 어찌 단단한지 손가락을 튕겨낸다. 집 앞 포구에서 갓 받아왔다고 한다. 조림이 돼 상에 올랐다.
멸치는 묵은 갓김치 깔고 자작하게, 병어는 감자와 함께 매콤하게 조렸다. 은빛 그대로 입에서 녹는다.
보길도 보옥포구를 근 2년 만에 다시 찾았다. 해남 땅끝에서도 시간 반을 간 섬 끝이다. 보옥민박 밥상은 역시 먼 길 발품 값을 하고도 남았다.
삿갓조개와 갯 고둥은 그날 오후 안주인이 갯바위에서 따 와 된장국 끓이고 무쳤다. 하루 전 딴 돌미역도 이에서 뽀드득 소리를 낸다. 생청각 향도 생생하다.
나물은 철 따라 뒷산에서 캐 말려뒀다. 마른 멸치까지 부부가 찌고 말렸다. 온 상이 '로컬 푸드'다. 제철 제 땅과 바다에서 난 먹을거리다
흑산도, 홍도해안의 깎아지른 절벽에 풍란이 꼭꼭 숨어있다면, 보길도에는 바위 틈새에서 석곡이 자란다. 그 뿌리에서 하얀 꽃대가 쉴 새 없이 올라온다. 하룻밤 신세를 진 민박집에서는 2000점 넘게 분재와 야생화를 키우고 있었다.
지금껏 보길도의 외양만 봤다. 전복 칠 그리고 동백이 보길도의 전부처럼 주마간산한 가벼움에 옷깃을 여민다. 보길도의 인문학적인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아 다시 날 잡아야 할 것 같다.
partial quotation
허주의 아침산책 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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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 선운사 동백꽃 20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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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보길도 보옥포구를 근 2년 만에 다시 찾았다. 해남 땅끝에서도 시간 반을 간 섬 끝이다. 보옥민박 밥상은 역시 먼 길 발품 값을 하고도 남았다.
삿갓조개와 갯 고둥은 그날 오후 안주인이 갯바위에서 따 와 된장국 끓이고 무쳤다. 하루 전 딴 돌미역도 이에서 뽀드득 소리를 낸다. 생청각 향도 생생하다.
나물은 철 따라 뒷산에서 캐 말려뒀다. 마른 멸치까지 부부가 찌고 말렸다. 온 상이 '로컬 푸드'다. 제철 제 땅과 바다에서 난 먹을거리다
흑산도, 홍도해안의 깎아지른 절벽에 풍란이 꼭꼭 숨어있다면, 보길도에는 바위 틈새에서 석곡이 자란다. 그 뿌리에서 하얀 꽃대가 쉴 새 없이 올라온다. 하룻밤 신세를 진 민박집에서는 2000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