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실카페 옆 고양이 [안이삭]
여자가 가진 것은
하얀 벽에 기대어둔 햇빛뿐이다
처음 보았을 때 여자는
벽에 기대 앉아
햇빛의 털을 고르고 있었다
두 번째 보았을 땐
햇빛의 갈비뼈를 퉁기고
햇빛의 발바닥을 핥아주고 있었다
세 번짼 오래된 햇빛을 꺼내어
때 묻은 소매로 닦고 있었다
여자는 자주 웃는다
자주 웃으며 이야기한다
반짝이는 나뭇잎에 귀를 문지르는 여자의 말상대는
햇빛이다
오늘도 여자는 길 위에 있다
지난밤 무슨 일이 있었나
누가 겁없이
건들거리며 여자의 거처를 침범했나
날카롭고 무거운 노랫소리가
곧장 여자의 무릎으로 떨어져 꽃힌다
세실카페 모퉁이 저 끝에서
흥분한 바람이 펄럭이고 있고
1억 5천만 킬로미터를 달려온 햇빛은
마침내 여자의 머리카락에 닿아
"괜찮다, 괜찮다" 미끄러지고 있다
- 한 물고기가 한 사람을 바라보는 오후, 시인동네, 2014
* 화성의 한 카페에서 점심 후 후식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카페 안에 고양이 두마리가 손님들의 다리를 쓰윽 문지르고 지나간다.
주인한테 물어보니 길고양이인데 모녀지간으로 그냥 들어와서 손님들과 놀고 있다는 거다.
얼굴도 참 두꺼운 게 햇빛이 눈부시게 들어오는 곳에 누워서
새로 들어오는 손님마다 다가가 쓰윽 스킨십을 하는 거다.
이름도 없고 주인도 없고 낯가림도 없는 저 여자들은 굶어죽진 않을 것만 같다.
어서 오세요! 잘 모시겠습니다.
마치 영업을 하는 듯한 그녀들은 손님이 만져주는 스킨십을 마냥 받아주고 눈 지긋이 감고 행복해한다.
한 고양이가 한 사람을 바라보는 오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