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55장 9절 / 박춘식
1 아으 그 옛날 하늘님이 시로써 세상을 만드셨다
2 시의 첫 구절은 경이로운 빛줄기였고
3 보기 좋고 듣기 즐겁게 여섯 구절까지 읊은 다음
4 일곱째에는 쉼표를 찍었다
5 흙덩이로 첫 사람을 빚을 때에
6 사람도 시를 지을 수 있도록
7 시혼(詩魂)을 감싸는 오관 안에 뜨거운 기운을 불어넣어
8 시는 사랑임을 깨닫기 원하였다
9 첫사랑 하늘님은 신비스러운 시인이셨다
10 삼라만상을 시 제목으로 정리하면서
11 모든 것 안에 시심을 숨겨 두었다 그리하여
12 우주는 하늘님의 새맑은 시집이 되었고
아담은 에덴에서 시를 감상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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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춘식 시집 『창세기 55장 9절』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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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글
하늘님은 큰 시인이십니다
하늘님이 장편 서사시 은하수를 골똘히 쓰시다가
종종걸음으로 태양계에 들르시어
목성 화성 또 달 노래를 흥얼거리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시어를 끄집어내어 지구 시집 안에
가지런히 놓으신 다음 모든 단어가 살아 움직이도록
복을 내리셨습니다
사람 시인은 큰 시인 하늘님의 빛살 안에서 시를 짓고
시를 읽고 시를 모으면서 항상 큰 시인을 닮아가려고
애를 씁니다
오늘도 세상 모든 시인들은 큰 시인의 시심을
만나기 위해 산으로 바다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