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명찰 65년… ‘무적의 승리 신화’ 쓰다
해병대 창설 65주년 소수정예 강한해병, 어제
‘무적해병’ 입증한 6·25전쟁·베트남 전쟁
1해병연대, 북한군 2개 사단 격퇴·24개 고지 탈환 등 수훈
청룡부대, 북베트남군 격퇴한 짜빈동 전투 등 불멸의 활약
시련과 영광을 거듭한 65년의 기록
1973년 사령부 해체 시련 딛고 1987년 해병대사령부 재창설
연합해병구성군사령부·서북도서방위사령부 창설로 위상 강화
1954년 9월 28일 해병대 장병들이
6·25전쟁 당시 수도 서울 탈환을기념하는 중앙청 국기 게양 재현행사를 하고 있다.
해병대 제공 |
2011년 6월 15일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창설 행사에서 해병대사령관을 비롯한 주요 지휘관·참모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해병대 제공 |
1958년 5월 서울 신설동 비행장에서 L20기를 수령한 해병대 항공병과 장병들이 기념촬영 하고 있다.
해병대 항공대는 베트남 전쟁 당시 480여 회 출격해 근접항공지원, 탐색·정찰, 전단 살포 임무를 수행했다. 해병대 제공 |
모든 전투에서 승리…빛나는 戰史
“한국 해병대가 아니었다면 이 전략적 요충지를 수중에 넣지 못했을 것이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6월 4일.
국군 1해병연대가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던 도솔산 탈환에 나섰다.
도솔산은 중동부전선 산악지구 중심으로,
이 지역을 확보하지 못하면 좌우 편에서 북상 중인 한국군 진격작전에 차질이 생길 수 있었다.
북한군도 이러한 전술적 이점을 잘 알고 있어 도솔산 방어에 총력을 기울였다.
1해병연대는 6월 4일 새벽 공격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해병대원들은 빗발치는 총탄을 뚫고 전진 또 전진했다.
마침내 6월 19일 도솔산과 대우산을 연결하는 산악에 배치된 북한군 2개 사단을 격퇴하고
24개 목표고지를 완전히 탈환했다.
1해병연대는 교착 상태에 빠진 전선의 활로를 개척한 것은 물론
북한군 2260여 명을 사살하고 40여 명을 사로잡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해 8월 강원도 홍천에 주둔 중이던 1해병연대를 직접 방문,
‘무적해병’(無敵海兵)이라는 친필 휘호를 하사했다.
해병대는 65년 9월 20일 전투부대 최초 해외 원정군인 제2여단 청룡부대를 창설했다.
청룡부대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 6년 4개월 동안 뚜이호아·추라이·짜빈동 전투 등을 승리로 이끌었다.
해병대 7대 작전 중 하나인 짜빈동 전투는
베트남 쾅나이 성 손틴군 짜빈동 부근 30고지에 배치된 청룡부대 3대대 11중대가
67년 2월 14일 밤 11시 20분부터 다음날 오전 7시 24분 사이
북베트남군(월맹군) 2개 연대 규모의 야간 기습 공격을 근접 전투와 백병전으로 격퇴한 전투다.
참전 장병 전원은 1계급 특진의 영예를 안았고 부대는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이 전투는 한국·미국·남베트남의 베트남전 군사 교범으로 채택됐다.
전투 현장을 둘러본 외신 기자들은 전쟁사에 남을 획기적인 승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청룡부대는 ‘신화를 남긴 해병대’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얻었다.
해병대는 진동리지구 전투, 통영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 및 수도 서울 탈환작전, 도솔산 전투,
베트남 전쟁 등 참가한 모든 전투를 승리로 종결지었다.
창설·해체·재창설…영광·고난의 65년
해병대는 54년 2월 해병전투단을 여단으로 증편했고, 이듬해 1월 15일 제1상륙사단을 창설했다.
이어 55년 3월 26일 해병대사령부가 부산 용두산공원에서 서울 용산구 후암동으로,
59년 3월 제1상륙사단이 파주 금촌에서 포항으로 이전을 완료해
수도권 방위 및 국가전략기동부대로서의 면모를 갖춰 나갔다.
베트남 전쟁 이후에는 항공대를 비롯해 3만2360명까지 병력이 증가하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해병대 항공대는 베트남 전쟁 당시 480여 회 출격해 근접 항공지원, 탐색·정찰, 전단 살포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78년 항공병과를 해체, 항공기 12대와 병력 125명은 해군으로 전환됐다.
해병대는 2008년 12월 항공장교(조종사)를 재탄생시켰다.
아픔도 겪었다. 73년 10월 10일 군 경제적 운용 등의 이유로 사령부를 해체하는 시련을 맞은 것.
그러나 부대 증·개편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74년 3월 11일 연평부대를 신편했고,
77년 1월 1일에는 도서방어부대인 6여단과 해병대 교육을 전담하는 제2훈련단을 창설했다.
81년 4월 16일에는 서부전선 방어 임무를 수행하는 제2해병사단이 출범했다.
더불어 현역·예비역이 합심해 노력을 기울인 결과
해체한 지 14년 만인 87년 11월 1일 해병대사령부를 재창설했다.
특히 90년 8월 31일 국군조직법(법률 제4249호)에 해병대 설치 근거를 명시함으로써
각군 본부와 같은 직제부대로서의 법적 지위를 보장받았다.
92년 12월 1일 연합해병부대사령부를 창설해 한미 연합작전 수행체계를 구축했다.
94년 4월 6일 해병대사령부를 서울에서 경기 화성시 발안으로 이전해 제2의 덕산시대를 활짝 열었다.
이어 제2훈련단을 ‘해병대 교육훈련단’으로 개칭한 후
해병대 사관후보생 양성과정을 해군사관학교로부터 인수,
병·부사관·장교를 독자 양성하는 교육체제로 발전시켰다.
2008년 2월 20일 연합해병구성군사령부(CMCC : Combined Marine Component Command)를 창설해
지원사령부에서 작전사령부로 위상을 높였다.
2010년 11월 23일 발생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로
이듬해 6월 15일 서북도서방위사령부(서방사)를 창설,
전·평시 서북도서 방어를 주도하는 합동작전사령부로서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11년 10월 15일부로 해병대 지휘관리 개선 법률이 시행돼
해병대사령부 해체로 상실했던 지휘권한을 되찾아 독자적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국방일보, 윤병노 기자 < trylover@dema.mil.kr >
첫댓글 무적해병!!!
아픈 만큼 더 성숙해 진다는 말처럼 국민들에게 더욱 겸손하고 신뢰와 사랑받는 해병대로 발전해 나가길 바라며
해병대 창설 제 65주년을 축하합니다.
국민에 계 충성스런 무적해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