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 대통령 육참총장 등 전격 경질 후 "모두 깜짝 놀랐제?" 권영해 전 장관 하나회 숙정 비화 첫 공개
“육군참모총장을 바꿔야겠어요.”
1993년3월8일 월요일 아침 청와대에서 권영해 국방장관과 단둘이 조찬을 하던 김영삼 대통령은 권 장관에게 대뜸 이렇게 말했다. 권 장관은 이유는 묻지 못하고 “육참총장을 교체하면 대규모 후속 연쇄인사가 불가피하다”며 나중에 군 정기인사 때 교체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건의를 했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안된다”고 자른 뒤 “후임은 누가 좋겠느냐”고 권 장관에게 물었다.
권 장관은 휴일이던 전날 오후 김기수 수행실장으로부터 급작스레 월요일 아침 대통령과 조찬이 잡혔으니 청와대로 들어오라는 통보를 받은 뒤 느낌이 이상해 이날 출신지역 등이 표시돼 있는 장군 서열명부를 갖고 들어갔었다.
권영해 전 국방장관
권 장관이 서열명부를 김 대통령에게 보여주며 “다음 (참모총장 후보) 서열은 김동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라고 하자 김 대통령은 “출신 지역이 어디지? 경상도는 아니구만. 사람은 어떻느냐?”라고 물었다. 김영삼 정부 출범 초기 경상도 출신들이 지나치게 많이 중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모습이었다. 당시 김 부사령관은 서울 출신이었다.
권 장관으로부터 김 부사령관에 대한 설명을 들은 김 대통령은 “좋다”라고 한 뒤 이내 “기무사령관도 바꿔야겠다”고 했다. 김 대통령은 기무사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냈고 이에 따라 기무사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김도윤 기무사 참모장이 사령관으로 낙점됐다. 김 대통령은 김 참모장이 경상도 출신이 아닌지 권 장관에게 확인하는 과정을 또 거쳤다.
군 출신들이 대통령이 되던 시절에서 문민정부로 바뀐 직후 군개혁의 신호탄이 됐던 김진영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 기무사령관의 전격경질은 이렇게 결정됐다고 한다. 김 총장과 서 사령관은 육사 출신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핵심 멤버여서 이 전격경질 인사는 하나회 숙정의 서곡으로도 평가됐다. 이날 청와대에서 나온 권 장관은 김 총장과 서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지휘권 인계를 준비하라”고 교체를 공식 통보했다.
1993년 7월 27일 권영해 국방장관이 휴전 40주년을 맞아 국방회관에서 군 원로와 종군기자들을 초청, 만찬을 하기 전 인사를 하고 있다.
육참총장과 기무사령관 경질 이후 군내 핵심 요직인 수방·특전사령관 전격경질(4월3일) 등 군 수뇌부 교체인사가 이어졌다. 김 대통령은 군 수뇌부 전격경질 인사를 단행한 뒤 “모두 깜짝 놀랐제?”라고 측근들에게 얘기했고, 한 측근은 이에 “그분들 얼떨떨했겠네요”라고 맞장구를 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김영삼 정부 출범 초기 100일 동안 대장 7명을 포함해 19명의 장성이 전역 조치됐다. 여기엔 하나회 숙정과 12·12 및 5·18 인맥 숙정이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중심에 권 장관이 있었다.
권 장관은 문민정부 첫 국방장관으로 그해 2월 임명됐다. 일각에선 김 대통령이 군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회 숙정은 권 장관의 작품이라는 인식을 가져왔다. 하나회는 육사 11기부터 36기까지 기수별로 10~12명의 회원으로 구성됐던 사조직으로, 군부정권 시절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국방장관, 육군참모총장, 수방·기무·특전사령관 등 주요 요직을 독차지해 명실상부한 최고의 파워 그룹이었다. 이런 하나회의 숙정은 군에 있어서 상전벽해와 같은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1995년 12월 26일 김영삼 대통령이 하나회 등 군부를 숙정, 새로 임명한 김동진 합참의장과 윤용남 육참총장의 삼정도에 수치를 달아 주는 모습.
하나회 숙정에 대한 권 장관 측의 설명은 일각의 인식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김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 시절 무렵부터 하나회 핵심 회원 몇 명이 하나회 폐해와 명단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 이미 하나회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었고, 숙정은 처음부터 김 대통령이 주도했다는 것이다.
권 전 장관은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1993년 4월 초쯤 김 대통령이 내게 하나회 숙정 얘기를 처음 꺼냈다”고 말했다. 이때는 그해 4월2일 비(非)하나회원인 백승도 대령이 하나회 명단을 동빙고 군인아파트에 살포해 하나회 명단 파문이 일어났을 무렵이다. 권 전 장관의 얘기다.
“김 대통령과 독대해 조찬을 하는데 김 대통령이 ‘군인(장군)들은 사표를 내지 않느냐’고 물어요. 그래서 ‘군 인사는 사표 개념 없이 통수권자 인사명령으로 정리가 된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김 대통령이 ‘하나회를 정리해야겠다’고 하시더군요. ‘하나회원들이 구명운동을 하는데 내 가신들에게까지 손을 뻗쳐 안되겠다’고 하시면서….”
전격적인 육군참모총장·기무사령관 경질을 보도한 1993년 3월 9일자 조선일보.
백승도 대령 사건 이후 육군 범죄수사단을 중심으로 한 군 수사당국에선 백 대령 명단과 월간조선 등 언론에 보도된 명단, 기무사에서 보관하고 있던 명단 등을 토대로 리스트에 오른 장성 및 장교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벌였다. 권 장관과 당시 김동진 육군참모총장은 수사 결과를 토대로 몇가지 원칙을 정했다고 한다. 능력과 품성이 부족하면서 폐해를 낳은 하나회원들은 전역 등 인사조치하되 아까운 인물들로 평가받는 사람들에 대해선 1차 진급에는 불이익을 주고 2차 진급부터는 진급 기회를 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구제 대상이 된 하나회원들도 대부분 오래 버티지 못하고 군을 떠나야했다.
권 전 장관은 “나를 하나회 숙정의 주역으로 원수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 역할에 대해 변명할 생각은 없다”면서 “개인적인 감정이나 계획을 갖고 한 것이 아니라 내 직책상 한 것이고 피해받는 사람들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었다”고 말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