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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때의 조선은 정말 특이한 나라였습니다.
국가의 식량 생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넘치는 식량을 일본과 만주에 수출해 외교적 이득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존재하지 않았던 운하와 도로가 하룻밤 사이에 생겨났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한강다리와 같은 교통망은 지금까지도 아무 문제 없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을 더 신기하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북극곰과 펭귄이 서로 공존하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역사 스페셜 <조선에 온 북극의 손님>, 지구본 교수의 나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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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6년 6월, 수양대군은 북극에서 상의를 벗고 몸자랑을 하려다 얼어 죽었다.
모자란 녀석.
"아니 글쎄 여기는 강원도가 아니라니까요!"
"하이고, 너 아니면 죽을 뻔 했구나"
수양대군은 라이작이 경고한 북극의 추위에 대한 경고를 무시하고 자신의 힘을 뽐낸답시고 상의를벗고 힘자랑을 했지만, 얼마 안 가 몸이 얼어붙으며 쓰러지고 말았다. 라이작이 수양대군에게 약수를 뿌리지 않았다면 그대로 불귀의 객이 되었을 것이다.
"자, 이 꽃을 몸에 가까이 하시면 몸이 따뜻할 거예요"
"허, 몸에 가까이 하니 몸이 대번에 따뜻해지는구나. 이 꽃도할락궁이님에게 받은 꽃이냐?"
"아뇨, 까치가 준 꽃이에요"
"꽃 이름이 뭐냐?"
"백합이요"
"응? 나리꽃 말이냐?"
"네. 까치가 그랬는데, 북극곰하고 뒤뚱새들겁줄 때는 이거 만한 게 없다고 그러던데요?"
"복실아, 너 이거 싫어하냐?"
"꾸엉!"
바로 고개를 젓는 복실이였다.
"복실이도 싫어하니까 너무 들이대고 그러지 마세요"
"거 희한한 꽃일세"
과연 그러했다. 수양대군과 라이작이 타고 온 배를 밧줄로 질질 끌고 가면서 복실이의 안내를 받으면서 북극 빙하를 돌아 다니자 북극곰 몇 마리가 둘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수양대군이 백합꽃을 그들에게 내밀자 은십자가를 본 흡혈귀마냥 질겁을 하며 뒷걸음질을 치기 때문이었다.
"성능 확실하구만. 그런데 우리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냐?"
"까치가 준 책에서 본 곳에 가보려고요. 어디보자… 네, 찾았어요"
라이작은 나침반을 쳐다보면서 걸어가다가 어느 한 곳에 멈춰 섰는데, 그녀가 말하기를 자기가 지금 선 곳이 바로 세상의 가장 북쪽이라고 했다.
"북극점이라고? 그러고 보니 집현전에 있던 지구본에서 그런 곳을 본 것 같은데"
그러면서 수양대군은 학사들이 지구본을돌리면서 술 내기를 할 때 쓰더라, 라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자신도 형제들도 그걸 돌리다 망가뜨린 적이 좀 많았기 때문이었다.
"네. 여기가 북극 바다 제일 가운데라고 까치가 보여준 책에서 봤어요. 직접 와봤으니까 이제 복실이 친구 찾고 돌아가면 될 것 같아요"
"그래? 이왕이면 여기에 뭐 표시라도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
"표시요?"
그러자 라이작과 복실이가눈과 얼음을 긁어모아 주상전하 모양의 눈사람을 만들었지만, 수양대군의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거, 이왕이면 비석 같은 거 세우면 어떠냐?"
"비석이라면 뭐라고 적을까요?"
"그냥 여기 왔다 갔다 적으면 되겠지"
그 말을 들은 라이작은 복실이가 얼음을 갈아내서 만든 눈을 최대한 압축시켜서 단단한 얼음판을 만들었고, 명나라의 연호에 다른 연도까지 섞어 넣은 다음 글자를 적어 넣었다.
"간지에 단기, 저 멀리 회회사람들의 년날짜 표기까지 했으니까 헷갈리지는 않을 거예요. 글자는…수양대군 북극점에 다녀감. 이렇게 할까요?"
"지필묵이 멀쩡하니 내가 쓰면 거기에 맞춰 새겨 넣거라. 어디보자, 수양대군 이유가 북극점에 와서 별을 보고 윤씨를 그리워하며 술 한잔 하고 가노라. 어떠냐?"
"와, 그거 좋네요"
그리고 수양대군이 얼음판을 조각상 옆에 세우자, 라이작이 빙판에 발을 굴렸다. 그러자 얼음바닥은 바다를 따라 흔들리던 걸 멈추고 섬처럼 잠잠해졌다. 라이작의 발구르기 때문에 수양대군이 공중에 날아오르기는 했지만 복실이가 잘 받아서 껴안아준 덕분에 다치지는 않았다.
"기념으로 할 만한 것도 했으니까, 이제 복실이 친구 찾으러 가요!"
"꾸엉!"
"그러자. 여기 처음 올 때는 좋아 보였는데 지금은 영 아니구나"
그리고 둘은 복실이의 가족을 찾으러 나아갔다. 라이작과 수양대군이 만든 얼음 조각상과 얼음판은 북극점에 도달한 이들이 발견해서 세상에 공개하면서 대파란을 불러 일으킬때 까지 온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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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작과 수양대군이 조선에 가고 싶어하는 북극곰들을 찾는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흉폭한북극곰들은 흰 백합의 온기에 얌전해졌으니까.
"어디보자, 얘들이 복실이네 가족이에요. 또 얘들이 복실이 친구들이고요"
"너는 그걸 다 어떻게 구별하는 거니?"
"꾸엉!"
"보면 딱 알아본대요"
하지만 문제는 조선까지 어떻게 가느냐였다. 수양대군은 자신의 뒤통수를 핥아대고, 자신을 보면서 껑충껑충 뛰다가 몸을 둥글게 말아 구르며 춤추는 북극곰들을 라이작이 어떻게 조선으로 가게 할까 궁금했다. 한편 복실이는 수양대군을 향해 춤을 추거나 머리를 핥는 북극곰들을 향해 으르렁거리기는 했지만 겁을 먹는 북극곰은 없는 것 같았다.
"자, 모두 배에 차곡차곡 타세요~!"
"꾸엉!"
라이작의 말을 들은 북극곡들은 복실이의 인솔을 받으면서 배에 올라탔다. 그걸 본 수양대군은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다. 스무 마리는 되는 북극곰들이 올라탄 건 둘째치고, 물에 띄우지 않고 빙하에 올린배를 어떻게 할 생각인가?
"자, 대군 저하께서도 타세요"
"응? 나도?"
"네. 꽁꽁 묶어야 하거든요"
"뭐?"
그리고 배에 탄 채로 북극곰들과 함께 밧줄로 꽁꽁 묶인 수양대군은, 라이작이 배를 광주리들듯이 한손으로 들고 발구르기를 하며 도움닫기를 하는걸 보자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귀마개가 있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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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 전하, 소녀 다녀왔사옵니다!"
"어이쿠, 한 달도 안 돼서 돌아왔구나! 그래, 복실이 짝이 될 백곰들은… 좀 많이 데려왔구나?"
"친구들도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요"
"꾸엉"
경복궁 후원에 도착한라이작은 들고있던 배를 다소곳이 내려놓고 왕에게 여행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는 동안 까치와 이-글은 복실이와 다른 북극곰들의 몸은 별 문제가 없는지 보고 있었다.
"그래, 북쪽 땅은 어땠느냐 아우야?"
"말도 마시오 형님. 여기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었소. 웃옷을 벗으니까 온몸이 바로 얼어붙지 뭐요"
"거, 힘자랑 좀 하지 마라니까. 그러니까 천녀님 따라 끌려가지"
"우리 모친께서도 그러셨지. 어디를 가던지 중간만 하라고 말이야"
수양의 상태를 걱정하던 세자와 신료들은 수양대군의 북극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까치와 이-글이 왕에게 보고를 하던 라이작에게 돌아왔는데, 두 새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다 암컷이다"
"뭐?"
"이-글 선배께서 다 확인을 해봤는데, 복실이 아빠하고 복실이동생 둘 빼고는 다 암컷이야"
"그러하다. 이-글의 눈은 정확하다. 독수리의 눈은 지강이기 때문이다!"
자랑스럽게 날개를 활짝 펴는 이-글의 당당한 표정과 달리, 라이작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낭패도 이런 낭패도 없었다. 그럼 다시 북극으로 가야 하는 건가?이럴 줄 알았으면 이-글을 데려가야 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거 낭패구나. 그러면 복실이의 짝을 찾으러 다시 북방으로 가야 한다는 말 아니냐?"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북극곰들 말을 들어보니까 짝을 이미 찾은 것 같더라고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까치야?"
"가족끼리 짝을 짓는단 말이냐? 그런 흉참한!"
왕이 얼굴을 찌푸리자, 까치는 고개를 가로지은 다음 날개로 북극곰 무리를 가리켰다.
"아이고, 이제 돌아가서 쉬어야지. 응? 너희들은 왜 그러냐?"
북극곰들은 수양대군의 주위를 맴돌며 어슬렁거렸는데, 모든 암컷 북극곰들의 시선이 수양대군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참새야, 내가 전에 이야기해준 이야기에 기억나는 이야기 없어?"
이-글이 라이작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무슨 이야기요?"
"곰나루 이야기"
"…아"
그러자 까치는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아차렸다.
그리고 왕와 세자, 그리고 신료들은 보았다.
북극곰들이 발버둥치는 수양대군을 들쳐메고 경복궁 후원의 빙고로 향하는 모습을.
수양대군을 보쌈하는 북극곰들의 모습이 점점 사람으로, 곰의 귀와 꼬리를 가진 백발의 여인들로 변하는 모습을.
"처음부터 점찍어두고 있었던 건가요 선배?"
"그러하다. 직녀님께서는 이미 그녀들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아니, 수양대군은 저대로 냅둬도 되는 겁니까 그러면?"
"북극곰들의 개체 수 조절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 거라고 생각하자. 이-글은 오늘 그의 희생과 분투를기억할 것이다"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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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민족, 문화, 그리고 지성-
여러 것들을 넘어 인류가 행하는 행동이 있다.
사람의 인지를 넘어선 삼라만상,
손을 쓸 수 없는 경이로움에 마주했을 때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위대한 인간성, 사랑, 의지, 자애와 만났을 때,
어째서인지 인간은
손바닥을 매주대고 만다.
라이작도 그랬다.
라이작은 북극곰에게 보쌈당하며 울부짖는 수양대군을 보고,
손바닥을 마주대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그곳에 모여 모든 것을 지켜보던 왕과 신료들은 물론 궁녀와 내관들도
손바닥을 마주대고, 고개를 숙였다.
"까치야, 저러다 큰일 나시면 어쩌지?"
"걱정 마. 좋은 방법이 있으니까"
"뭔데?"
"갑각류 껍데기를 이용해서 비닐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줄게. 그걸로 부부생활에 도움이 되는 불건을 만들 수 있는데…"
아쉽게도 둘의 대화는 빙고에서 튀어나온 비명소리 때문에 중단되고 말았다.
수양대군, 이융.
전치 6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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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은 백곰에 대한 관심이 아주 컸습니다.
특히 백곰의 번식에 큰 기여를 했으며, 수양대군의 후손들도 백곰과 펭귄의 사육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수양대군의 별명은,
백곰을 돌볼 때마다 하던 말버릇에서 따온
웅기익熊氣益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또한 수양대군의 후손들은 특이한 점이 있는데,
측실들로부터 난 자식들은 모두 희고 빽빽한 체모를 가졌다는 점인데,
지금까지도 이 모습이 내려져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로, 야사에서는 수양대군이 백곰으로부터 자식을 얻었다고 합니다.
-역사 스페셜 <조선에 온 북극의 손님>, 지구본 교수의 나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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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작 누님! 제가 타고 다니는 뒤뚱새도 친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Tekkeli-li? TekkelTekkeli-lili!"
"어, 음, 대군 저하?"
"난 준비 됐다. 몸만 가도 좋다. 가자.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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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내용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디시 대체역사 갤러리에서 곰나루 이야기 듣고 뭔가 번쩍여서 후다닥 달렸습니다.
역시 대체역사 소설 전통에 따라 수양대군에게 복실이는 필연적인 존재입니다!
다음에는 그림도 그려서 추가하고 싶네요.
움기잇 외치는 드워프처럼 웅기잇 외치는 수양대군이라던가?
그런데 집에 가족들에게 들킬까봐 걱정이입니다.
빨리 독립하던가 해야죠.
첫댓글
수양대군이 힘쓰고 있으니까 괜찮을 겁니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