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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임진왜란을 연구하는 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고구려
조경남(趙慶男)의 난중잡록에 인용되어 있는 매우 재미있는 글이 실려 있어서 소개한다. 윤계선이란 사람이 꿈을 꾼 것을 적은 일종의 소설인듯한데, 임진왜란 때 종군한 장수들이 등장하면서 마지막으로 이들을 제사하는 마음을 적은 것이다. 작가 송우혜 씨가 KBS 게시판에 실은 글에 이에 대한 짧은 설명이 인용되어 있다. 글에 모든 장수들의 모습을 읽을 수 있고, 그들에 대한 평가가 들어 있다. 차근차근 읽어 보도록 한다.
임진왜란이 무수한 생령을 죽음으로 내몰고 이 강산을 초토화하고 막을 내린 이후, 종전된 지 2년만인 1600년에 임진왜란을 다룬 최초의 문학작품이 세상에 나왔다. 곧 윤계선의 [달천몽유록(撻川夢遊錄)]인데, 현재 이 작품은 '한일 양국에서 임진왜란을 문학화한 최초의 본격적인 창작소설'로서 자리매김되고 있다. - 최관, [일본과 임진왜란],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3. 44쪽
[달천몽유록]은 27명의 임진왜란의 순국 충장들을 다루고 있는데, 가장 먼저 크게 다루어진 영웅이 곧 '대장군 이순신'이다. 전 국민이 전쟁의 진상과 참화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시기에 나온 작품인만치, 그것은 당시 민중들의 평가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된다. 이후 <임진록>을 비롯하여 임진왜란을 다룬 작품들이 계속 나왔는데, 이순신을 한몸으로 국난을 막아낸 희대의 영웅으로 묘사하는 점에서는 모두 일치한다. 정조 시대에 가서는 왕실에서도 이순신에 대해 최고 최상의 예우를 하고 왕명으로 <이충무공전서>가 발간되는 등 이순신 현창에 적극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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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계선(尹繼先)의 《달천몽유록(達川夢游錄)》에 다음과 같이 이르다.
만력 경자년(1600, 선조 33) 중춘에 파담자(坡潭子)는 당직으로서 서청(西淸)에 며칠 동안을 묶여 있었다. 새벽에 승정원에서 임금의 명령을 받아 시종신 다섯 사람을 불러들여 봉서를 내려주며 제도(諸道)를 암행하라 하였는데, 파담자도 그 중에 끼어 있으므로 한강가에 모여 자면서 봉서를 떼어보니 받은 도는 호서였다. 여러 고을을 차례로 암행하여 충주(忠州)에 이르렀다. 나그네로 떠돌다보니 어느덧 3월이라, 동풍은 따뜻하게 불어오고, 달천의 물은 맑게 출렁이며 수많은 백골(白骨)은 널리고 꽃다운 풀은 더욱 푸르렀다. 9년 동안에 싸움터는 이미 묵어서 들쥐와 산성성이는 해를 보고 숨고, 주린 까마귀와 성난 솔개는 사람을 향하여 시끄럽게 우짖는다. 지친 말을 천천히 몰면서 당시를 묵묵히 회상한다. 양가에서 뽑힌 자제와 훈련받은 정병이 혹은 전공을 세우기 위해 자원해서 오고, 혹은 가흑한 관리의 징발을 당해, 허리에 활을 차고 등에 화살을 지고 싸움터에 나가서 갑옷을 깔고 북을 두드렸다. 좋은 무기를 간직하고서도 싸우지 못하니, 장군의 계책 없음이 분하다. 손을 묶고 할 일 없이 적을 맞이하여 목을 내밀고 적의 칼을 받았으니 마음을 싸매고 원한을 머금었다. 헛되이 죽은 혼이 사충(沙蟲)이 되고, 원숭이와 학이 된 자[주4]가 그 몇천만 명이나 되는지 모른다. 분한 기운이 위로 맺혀 뭉친 구름이 어두컴컴하고, 원한의 소리가 아래로 흘러 강물도 흐느낀다. 이다지도 마음을 상하고 눈을 쓰리게 하는가. 인하여 슬피 읊조리고 강개하여 시 세 편을 지었다.
(주4) 주(周) 나라의 목왕(穆王)이 남정을 했을 때에 전군의 군자는 원숭이와 학이 되고, 소인은 사충(沙蟲)으로 화하였다고 한다.
그 절구에,
싸움터의 꽃다운 풀은 몇 번이나 새로웠나 / 戰場芳草幾回新
한도 없는 향규의 꿈속의 몸이로다 / 無限香閨夢裏身
비바람 불어 오는 한식절에 / 風雨過來寒食節
이끼 낀 해골들은 또 저문 봄을 맞는구나 / 髑髏苔碧又殘春
하였다. 그 율시에는,
까마귀․소리개 다 날아가고 물새도 보금자리에 드니 / 鳥鳶飛盡渚禽棲
해 떨어진 모래밭에는 길조차 희미하네 / 落日沙場路欲迷
당시를 돌이켜 생각하니 그저 아득하기만 한데 / 憶得當時空脈脈
차마 보니 꽃다운 풀은 또 푸르르도다 / 忍看芳草又萋萋
갑옷이 물을 메워 금탄강은 오열하고 / 鐵衣塡水琴灘咽
삭은 뼈는 들에 우뚝 쌓여 월악산이 낮도다 / 杇骨撑郊月岳低
뉘라서 장군으로 하여금 명예가 이르게 했던고 / 誰使將軍名譽早
거마로 하여금 헛되이 서쪽을 정벌케 하였음은 뉘우치노라 / 悔敎車馬浪征西
하였다. 또 세 번째 시에 이르기를,
동쪽은 죽령, 남쪽은 새재 / 東竹嶺南島嶺
충주가 우리나라의 뛰어난 경치를 독차지하였네 / 中原獨據靑丘勝
누가 평평한 들판에 진을 치게 하였던고 / 誰敎雲鳥陣平郊
들으니 장군이 밤중에 영을 내렸다고 / 楣將軍夜有令
배수진도 보람 없이 병사들의 손만 묶이니 / 背水無功束萬手
회음후가 천년 뒷사람을 그르쳤네 / 淮陰誤人千載後
임금의 수레 파촉으로 간 줄을 모르고 / 不知鑾輿幸巴蜀
말없는 시냇가 백골은 하마 삭았네 / 無語溪邊已杇
뼈가 삭은 것은 아깝지 않으나 / 骨已杇不足惜
다만 그대 우리 임금의 의식을 허비한게 한이로다 / 但恨吾君費衣食
맨몸으로 강을 건너려는 필부의 용기를 / 憑河未售匹夫勇
사람들이 만인적[주5]이라 칭찬함은 우스운 일이로다 / 堪笑人稱萬人敵
하였다.
[주5] 만인적(萬人敵) : 혼자서 만인을 상대한다는 뜻으로 병법을 말한 것임. 항우(項羽)가, “글은 성명을 적을 수 있으면 족한 것, 만인을 대적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겠다.” 한 말에서 기인되었음.
복명한 지 몇 달이 못 되어 화산(花山)의 수령으로 나갔다. 벼슬이 한가롭고 공문서도 드물었으므로 유고(遺稿)를 펼쳐보노라니, 변성(邊城)에 달이 돋아오르고, 단청한 누각에는 풍경 소리도 잠잠하다. 맑은 밤은 으슥한 베개에 의지하여 생각에 잠기니, 정신이 몽롱한 사이에 호접몽(蝴蝶夢)이 무르익어 나를 인도하여 산과 내를 뛰어넘고 문득 한 곳에 이르러 구름 안개가 슬픔을 띠고 돌시내가 원한을 쏟으며 날짐승과 들짐승은 보금자리에 들고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혼자서 배회하면서 나무에 기대어 읊조리노라니, 난데없이 질풍이 성내어 부르짖더니 살기가 온 들에 가득하고 천지는 칠흑같아 지척을 분간할 수가 없으며, 오직 보이는 것은 횃불을 든 한 패가 먼 데서부터 오는데 많은 장정들이 떠들썩하였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데 파담자는 꼼짝도 못하고 섰었는데 머리털이 오싹했다. 급히 숲속으로 피하여 그들의 하는 짓을 엿보니, 서로 뒤섞여 울부짖는데 겨우 그 형체를 분간할 수 있었다. 혹은 머리가 없는 자, 혹은 오른팔이 잘렸거나 왼팔이 잘린 자, 혹은 왼발을 잘린 자, 오른발을 잘린 자 혹은 허리는 있으면서 다리가 없는 자, 혹은 다리는 있으면서 허리가 없는자, 혹은 배가 팽팽하여 비틀거리는 자는 아마 물에 빠진 것이리라. 모두 머리카락을 온통 얼굴에 풀어헤치고, 비린내 나는 피가 사지(四肢)에 쏟아져 참혹해서 차마 볼 수가 없었다. 하늘을 향하여 한 마디 부르짖고 가슴을 두드리며 통곡하니 산이 흔들리고 흐르는 물도 멎는 듯했다.
이윽고 구름이 흩어지고 달은 높은데, 온 세상이 쥐죽은 듯이 고요하다. 흰 이슬은 서리가 되어 갈대는 우거지고 찬 별은 쓸쓸하고 넓은 들은 빨아서 널어놓은 명주와도 같다. 여러 귀신들이 눈물을 닦고 말하기를,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이 원한은 그지없구나. 달은 밝고 바람은 맑으니 이런 좋은 밤을 어이할꼬. 한바탕 이야기나하여 이 밤을 지새우자.” 하며, 목소리를 모아 노래하기를, “살아서도 쓰이지 못했는데 죽어서 또한 무엇을 하리. 나를 낳은 것은 부모인데 나를 죽인 자는 누구인고? 우리를 길러주신 임금의 은혜가 깊으니, 나라의 일이 위급할 때에 대장부 한번 죽음은 아까울 것 없으나, 장군이 말을 너무도 쉽게 해서 이다지도 극도에 이르렀네.” 하였다. 노래가 끝나자 여러 귀신들이 무릎을 맞대고 앉아서 서로 말하기를, “늙은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은 누가 드리며, 안방의 아리따운 아내는 원망의 눈물이 속절없이 많으리. 나의 죽음을 반신반의하다가 안마(鞍馬)만 돌아오는 것을 보고서 함께 살 인연이 끊어졌다 하여 그저 지전을 뿌리며 초혼하는 것을 번거로이 할 뿐이리라. 생각이 이에 미치니 어찌 답답하지 않으랴.” 하였다.
그중의 한 귀신이 빙그레 웃으며, “무엇을 그리 지껄이느냐? 이 사이에 혹시 세상 손님이 몰래 엿듣고 있지나 않느냐?” 하였다. 파담자는 그들이 벌써 알아차렸음을 알고 달려가서 뵈니 일제히 일어나 넌지시 읍하고 말하기를, “그대는 전날 여기를 지나간 이가 아니오? 그때에 보내준 시를 우리들은 잘 받았소. 그 시와 율은 풍자가 잘 되었으며, 절구는 처절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읽을 수 없게 하니 참으로 이른바 귀신도 울리는 문장이었소. 오늘 저녁이 어떤 저녁이기에 다행히도 군자를 만나 보니, 구름 같은 지난 일을 낱낱이 이야기할 수는 없소만 그 중의 한두 가지 말해야 할 것이 있으니, 그대는 듣고서 세상에 전해주면 매우 다행이겠소이다.” 하고는 곧 털어놓기를, “장수는 삼군의 생명을 맡은 이요, 병사는 한 사람이 지휘하여 쓰는 것이니 만일에 장수가 어질지 아니하면 반드시 일을 망치는 법이오. 중원(中原) 충주(忠州) 은 지세가 뛰어나서 실로 남기(南紀)[주6]요, 초점(草岾)은 천험(天險)의 으뜸이요, 죽령은 지리로 따져 믿을 만한 곳이므로 한 사람이 관문을 지키면 만 사람도 열지 못함은 촉도(蜀道)보다 어렵고, 백 사람이 요새를 지키면 천 사람으로도 뚫고 지나가지 못함은 위험하기 정형(井陘 하북성 정형산 위에 있는 요새)같으니, 나무를 깎아서 목책(木柵)을 만들고 돌을 쪼개어 병거(兵車)로 삼으면 북쪽 군사가 어찌 날아선들 건너오리오. 남풍이 죽어가는 소리를 싣고 오지 않을 것이니[주7], 푹 쉰 아군으로 피로한 적을 기다리면 장사는 베개를 높이 하고, 주인이 되어 객을 제압하면 승패는 바둑판같이 훤하거늘, 아깝도다! 신 공의 계략이 이러하지 못하고 그 위엄을 가지고 자기 주장만 내세웠다. 김 종사(金從事)의 청이 어찌 근거가 없으리오. 이순변(李巡邊)의 말이 참으로 일리가 있었건만, 듣지는 않고 감히 억측으로 결정하였던 것이오. 신 공의 말이, ‘배에서 내린 적은 거위나 오리처럼 걷기가 어렵고, 길을 두 배로 빨리 달려온 적은 개․돼지와 같이 계략이 없는 법이니, 평평한 큰 들판에서 단판 싸움에 때려부술 수 있을 것이다. 높은 산 험한 고개에 두 길로 갈라서 지킬 필요가 어디 있겠나?’ 하고, 드디어 탄금대(彈琴臺)로 퇴진하여 용추(龍湫) 물가에 탐정을 보내어 정탐하게 하고, ‘세 번 호령하면 북을 치며 오위(五衛)의 군사에게 재갈을 물려 까닭없이 군사를 놀라게 하는 자를 베는 것은 손자(孫子)의 병법이요, 사지(死地)에 놓여야만 마침내 산다 함은 한신(韓信)의 기이한 계략이다.’ 하였소. 이는 거문고의 기둥을 아교로 고착시켜 놓고 거문고를 뜯는 것이나, 나무 그루만 바라보며 토기 오기를 기다리는 식이라. 효원(孝元)을 죽이고, 안민(安敏)을 목벤 일[주8]도 본래 이런 데서 말미암은 것이며, 건아(健兒)는 핏덩이가 되고 장사(壯士)는 고깃밥이 되었으니 또한 참혹한 일이 아니겠소. 더욱 우스운 것은 서릿발 같은 큰 칼과 해에 번쩍이는 긴 창을 번득이면서 날뛰고 고함지르며 한참 싸우는 판에 별안간 진지를 바꾸어 징을 치고 깃발을 눕히니 그 당당하고 정연하던 대형세가 구름같이 흔들리고 새처럼 흩어져 용감하고 씩씩하던 군사가 뒤만 돌아보고 두 손을 모아서 드디어 관문을 뛰어넘고 배를 끼고 강을 건너뛰던 용기와 박차고 일어나 싸우려던 힘으로 하여금 마침내 피투성이로 쓰러지게 했으니, 당시의 일을 어찌 차마 말할 수 있겠는가. 잘 싸우는 장수는 있어도 잘 싸우는 병졸은 없었으니, 어찌 우리들만 목이 베어졌겠소. 불세출의 재주를 가지고 전무후무한 공을 세우려 하니, 우리가 이러한 죽음에 어찌하겠소?” 하였다. 말을 마치자 근심스런 낯빛으로 눈물이 비오듯 하였다.
[주6] 남기(南紀) : 남국(南國)의 강기(綱紀)라는 뜻으로 그 지방의 형승을 말한 것임. 《시경》에, “넘실넘실한 강한은 남국의 벼리다[滔滔江漢南國之紀]”에서 나온 말임.
[주7] 남풍이 …… 것이니 : 《좌전》에, “남풍이 굳세지 않아 사성(死聲)이 많으니 초(楚) 나라는 반드시 공이 없을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음.
[주8] 안민(安敏)을 목벤 일 : 충주 싸움에서 척후장 안민이, “적병이 벌써 쳐들어왔다.”고 망령된 말을 하여 군중을 놀라게 하였다고 신립 장군이 그의 목을 베었다.
이윽고 피로한 기색을 띤 장부가 부끄러워운 빛이 얼굴에 가득하여 고개를 떨어뜨리고, 어정거리며 그 발은 머뭇머뭇, 그 입은 말을 못하고 여닫기만 하다가 읍하고 고하기를, “고아가 된 아들, 과부가 된 아내들의 원한이 내 일신에 모였으니, 내 비록 죄진 몸이나 오늘 그대들의 말에 있어 어찌 변명하지 않겠소. 나는 본래 장군 가문의 후손으로, 계보는 귀인의 집에서 나왔으므로 기운은 소도 삼킬 만하고 성품은 말달리기를 좋아하였소. 삼세의 경계[주9]에는 어두웠으나 만인을 대적할 수 있는 병법을 배웠으며, 무과에 급제하여 호방(虎榜)에 장원급제는 못했지만 백보 밖의 버드나무 잎을 뚫을 정도로 활쏘는 재주를 참으로 배웠더니, 밝은 임금에게 그릇 알려져서 외람되이 임금의 은혜를 받아 변방을 지키는 장수가 되었소. 북쪽의 오랑캐가 준동하였을 때에는 서관(西關)에 장성(長城) 구실을 하며 번개처럼 한 칼로 소탕하여 적을 없애버렸고 우레같이 삼군을 움직여 그 소굴을 무찌르니, 마치 강동(江東)이 장요(張遼)의 이름에 우는 아이들도 울음을 그치며[주10], 새북(塞北)이 이목(李牧)의 위엄에 눌려 말[馬]도 두려워하여 감히 나아가지 못하였던 것같았지요[주11]. 공은 적었으나 보답은 무겁고, 지위가 높으니 뜻도 높았소. 한강과 금강의 사이를 달리니, 금띠를 허리에 차고 승명려(承明廬 한 나라 때 신하들의 숙직소)에 드나들 때 임금께서는 칭찬하는 말씀을 하셨소. 변방의 풍진이 한번 일어나자 봉화의 신호가 석 달을 계속하니, 장수로 제수한다는 명령을 받자 곧 전장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어전에서 간절히 아뢰는 말씀에 임금께서 감동하시어 일선 장수를 통솔할 권한을 전적으로 나에게 맡겼소. 적을 훤히 꿰뚫어보고, 군사는 손바닥 위에서 운용하게 되었으니, 처음에는 옷소매를 걷어올리고 강한 놈을 종아리만 때리기로 작정하고 문을 열어 도적을 끌어들일 것을 깨닫지 못했소. 자기 의견만 고집하면 작아진다는 옛 사람의 가르침을 잊어버렸고 적을 업신여기면 반드시 패하는 법이라, 마복군(馬服君)의 아들 조괄(趙括)의 일과 같았으나[주12], 어찌 사람의 잘못만이겠소. 역시 하늘이 도와주지 아니하였소. 어려(魚麗)의 진을 치지도 못한 채 왜적이 선수를 치니 형세는 북산(北山)을 차지한 자가 이긴다 하듯이 지리적 조건도 비록 편했지만 사람들이 다투어 동해(東海)에 뛰어들어 죽었으니, 대사는 이미 끝났소. 아! 어디로 돌아갈꼬. 나 홀로 무엇을 할 것인가. 드디어 여덟 자의 몸을 만길 물속에 던졌던 것이오. 놀란 물결이 넘쳐도 이 부끄러움은 씻기 어려우므로 맑고 빠른 여울은 슬피 흐느끼면서 다투어 나의 회포를 호소하지요. 가끔 구름이 골짜기 어귀에 잠기고, 달이 못 가운데 비치는데 넋은 외로워 의지할 곳이 없고, 그림자는 홀로 서러워하네. 세월이 덧없이 가고 억울한 심사는 미처 펴지 못했는데 다행히도 그대를 만나 마음속을 털어놓게 되었소. 아! 항우(項羽)가 산을 뽑는 힘과 세상을 뒤덮을 기개를 가지고 백 번 싸워 백 번 이겼지마는 마침내 오강(鳥江)에서 패하였으며, 제갈량(諸葛亮)이 와룡(臥龍)의 재주로 한(漢) 나라를 붙들려는 충성을 품고 기산(祁山)에 다섯 번을 나가 싸우고 다섯 번을 돌아왔으나 보람이 없었으니, 이것은 하늘이 한 일이라 사람이 어찌 하리오. 그러니,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랴. 아! 저 아득한 하늘이여!” 하고는 슬피 노래부르며 눈물 흘려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였다.
[주9]삼세의 경계 : 장수는 삼대를 해서는 안 된다는 데서 나온 말임. 진(秦) 나라 왕전(王剪)ㆍ왕분(王賁)ㆍ왕리(王離)가 삼대를 내리 장수가 되었는데 그뒤가 좋지 않았으므로 여기에서 기인된 것임.
[주10]장요(張遼)의 …… 그치며 : 장요는 조조(曹操)의 장수로서 결사대 8백 명으로 손권(孫權)의 10만 대군을 격파하여 그 이름을 강동에 떨쳤다. 그의 성품이 용맹무쌍하여 그가 왔다고 하면 어린아이가 울음을 그쳤다고 한다.
[주11]이목(李牧)의 …… 같았지요 : 이목은 전국시대 조(趙) 나라의 북쪽 변방을 지킨 명장으로서 그가 흉노(匈奴)와 진(秦) 나라를 칠 때에 그의 위엄에 눌려 적의 군마가 전진하지를 못하였다 한다.
[주12]마복군(馬服君)의 …… 같았으나 : 조(趙) 나라 명장 마복군 조사(趙奢)의 아들 조괄(趙括)을 말한 것임. 조사는 평소에 그 아들 조괄을 두고 말하기를, “전쟁이란 사지(死地)인데 조괄이 쉽게 말하니, 조나라에서 만약 조괄을 장수로 삼는다면 반드시 조나라 군사를 없앨 것이다.” 하였는데, 과연 장수가 되어 진(秦) 나라 장수 무안군(武安君) 백기(白起)에게 참패를 당해 죽었음.
이윽고, 곁에 있던 한 사람이 눈썹을 치켜올리고 눈을 부릅뜨고 신 공을 돌아보며 하는 말이, “시루는 이미 깨어졌고, 일은 이미 지나가 버렸으며, 성패는 운수가 있고, 시비는 이미 결정되었는데 다시 무슨 여러 말을 할 필요가 있겠소. 오늘밤에 여러분이 더 찾아올 것같소. 마침 방외인이 찾아와서 근처에 있으니 윗자리에 맞이하여 우리들의 즐거움을 보이는 것이 좋겠소.” 하였다.
미처 앉기도 전에 거마의 소란스런 소리와 함께 사면에서 구름처럼 모여든다. 혹은 깃발을 휘날리고 창검이 삼엄하며 혹은 부인(符印)을 차고 초라한 의관들이 벽제(辟除)하면서 길을 인도하여 문득 대하(臺下)에 이르러 백면서생(白面書生)과 홍안무부(紅顔武夫)들이 머뭇거리며 겸손하게 읍하고 자리에 오르내리는데 갑자기 많은 배들이 모여들어 강길에 노젓는 소리가 요란하고 바람을 실은 배들이 천리를 잇대어 마침내 노주(蘆洲)에 닻줄을 매었다. 대장군이 누른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내려오니, 여러 손님들이 일제히 일어나 맞이한다. 장군이 첫째 자리를 차지하니 곧 오른쪽이다. 왼쪽 자리의 첫째는 고 첨지(高僉知) 경명(敬命) 이다. 다음은 최 병사(崔兵使), 그 다음은 김 원주(金原州), 다음은 임 남원(任南原), 다음은 송 동래(宋東萊), 다음은 김 회양(金淮陽), 다음은 김 종사(金從事), 다음은 김 창의(金倡義), 다음은 조 제독(趙提督)이었다. 오른쪽 자리의 다음은 황 병사요, 다음은 이 병사, 다음은 김 진주(金晉州), 다음은 유수사(劉水使), 다음은 신판윤(申判尹), 다음은 이 수사, 다음은 이첨사(李僉使), 다음은 정 만호(鄭萬戶)였다. 남쪽줄 자리에는 심 감사(沈監司)․정 동지(鄭同知)․신 병사(申兵使)․윤 판사(尹判事)․박 교리(朴校理)․이 좌랑(李佐郞)․고 임피(高臨陂)․고 정자(高正字)이고, 아랫자리는 승장(僧將)이었다.
김 종사(金從事)가 여러 좌우들에게 말하기를, “속세의 선비가 여기에 있으니 맞아들이는 것이 어떻겠소?” 하니, 첨지가 좋다고 하였다. 그래서 파담자도 말석을 차지하였다. 자리가 이미 정해지니 금소반에 아름다운 떡이 좌우에 가지런히 놓이고, 관현악의 비장한 가락이 뒤섞여 어울린다. 풍악이 끝나기도 전에 장군이 정 만호를 불러, “네가 소와 말을 잡아놓고 탁주를 강물에 흘려 부하들에게 마시게 하여 군사와 함께 즐기고 풍악을 즐기게 하라.” 하고, 이에 북채를 잡고 북을 울리니 그 소리가 천지를 흔든다. 여러 귀신들이 좋아라고 날뛰며 고함을 지르고 기세를 부렸다. 첫째 자리의 고 첨지가 나아가 말하기를, “오늘의 즐거움은 즐겁기는 즐겁소. 귀한 손님이 자리에 있고, 이렇게 성대한 잔치가 다시 있기 어려우니 어찌 여러 군사를 물리치고 각각 그 뜻을 이야기하게 하지 않겠소.” 하자, 장군이 곧 징을 치게 하여 지휘하니, 삼성(參星)은 아직 기울지 않았는데 옥토끼가 하늘에 뜨니 모든 동물은 소리를 거두고, 나무 그림자는 서로 얽혀 비친다. 호위병으로 하여금 연잎 금잔에 술을 붓게 하니, 두서너 순배에 취기가 살가죽에 떠올라서 화기가 무르익는다. 왼쪽에서는 붓을 들어 시를 읊고, 오른쪽에서는 거문고를 뜯으며 노래부르니 불평의 노래가 아래로부터 올라온다.
고 정자(고인후 高因厚)가 나아가 말하기를, “어버이의 슬하를 떠나지 않고 진중에 외람되어 모셔 매양 맛있는 음식을 받들고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던 차에 전세가 불리하여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죽었소. 비영(丕寧)의 종이 한 팔이 잘렸으나 구제하기 어려웠으며, 변호(卞壺)의 아내가 아비와 아들을 곡한 것[주13]이 무엇이 부끄러우리오. 해골이 서로 버티고 혼백이 함께 노니오.” 하고, 이에 읊기를,
지하에도 삼강이 중하고 / 地下三綱重
인간 사에는 만사가 헛되구나 / 人間萬事虛
항상 아버님의 뒤를 따르거니 / 尙堪隨杖屨
행색이 어떠한가 묻노라 / 行色問何如
하였다.
[주13]변호(卞壺)의 …… 곡한 것 : 진(晉) 나라의 상서령 변호 부자가 임금을 위하여 함께 죽었다.
고인후 [高因厚, 1561~1592]
자 선건(善健). 호 학봉(鶴峰). 시호 의열(毅烈). 의병장 경명(敬命)의 아들. 1577년(선조 10) 진사가 되고, 1589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학유(學諭)에 이르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광주(光州)에 있다가 아버지가 흩어진 군사를 수습하자, 이에 종군하여 수원(水原)에서 권율(權慄) 장군의 휘하에 들어갔다. 금산(錦山)에서 선두에 나가 싸우다가 아버지와 함께 전사하였다. 예조참의에 추증, 금산의 종용사(從容祠)에 배향되었다.
출처: http://samtay.egloos.com/viewer/4924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