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
최금진
통발 속에서 문어를 건져 올리는 옆집 할아버지 손에서
문어는 꾹꾹, 소리를 내며 운다
할아버지네 담장에 심겨진 해바라기가 노란 눈알을 반짝이며 보고 있었다
손목을 감아 올라오는 여덟 개의 다리가
불길처럼 화르륵 할아버지 뺨까지 번졌다
통발 안에 미끼로 넣어둔 허연 돼지비계를
문어는 마지막까지 꽉 물고 있었다
시집 가서 명절에도 오지 않는 외동딸을 할아버지는 늘 그리워했다
할아버지 냉장고엔 데친 문어들이 꽁꽁 얼어붙은 채 가득 들어 있었다
시뻘건 대가리들이 먹물을 품고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할아버지가 주머니칼로 방금 건져 올린 문어 다리를 하나 잘라내
헐거운 이빨로 질겅질겅 씹는다
문어는 힘없는 할아버지 혓바닥과 싸우느라
마지막까지 빨판에 바싹 힘을 주고 있었다
딸한테 물려 줄 거야, 절대 안 팔아, 할아버지는 바닷가 작은 땅을
꽉 움켜쥐고 내놓지 않았다
어제 다녀간 부동산업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할아버지 딸과 싸워야 했다
문어가 통발 속에서 꾸역꾸역, 운다
사람들은 문어가 영물이라고,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날마다 이른 새벽에 나가 통발을 건지고
어두운 저녁에 통발을 놓는다
올 추석까지 잡아놓는다면 아마도 수십 마리는 될 것이다
끓는 솥에 다리부터 데쳐야 꽃 모양으로 활짝 펼쳐진 예쁜 모양이 된다고
마당에 걸어놓은 솥에 불을 지피며 할아버지는
자꾸 돌담에 가득 피는 해바라기며 맨드라미를 바라보았다
좁은 양은솥에서는 움켜쥘 게 아무것도 없는데도
붉은 팔다리를 꽃처럼 활짝 펼쳐놓으며
문어가 사람처럼 또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