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목사님! 또 오셨네요?
종우 형제가 부모님 기독 병원 진료 위해 불러냈다.
기도받고 싶다는 제안에 식당으로 갔다.
한번 뵌 분들이라 소통하기 쉬웠다.
건강 회복 위해 기도할 때 마음이 열렸다.
성품 좋은 아들 칭찬에 어머니가 거들었다.
‘학교 다닐 때부터 그랬어요.
붙임성이 좋고 정이 많아요..’
양파 즙 선물을 주셨다. ‘
시원할 때 벌교 오시라’는 말씀을 담았다.
다음날, 추석 선물 위해 농산물 센터 7번 사장에게 주문을 넣었다.
5킬로 사과 스물두 박스를 9십9만 원에 맞췄다.
비싼 물가에 예전대로 섬길 계획이었다.
동해시로 거처를 옮긴 이 집사님과 천국 가신 어머니가 눈에 밟혔다.
익산 동생과 약속으로 새벽부터 서둘렀다.
바람이 손에 걸렸다.
꽃들도 꿈을 접고 누웠다.
빠르고 편한 새마을호에 몸을 실었다.
‘좋은 생각’ 펼쳤지만 차창 밖의 익은 가을에 멍을 때렸다.
익산역에서 동생과 근처 행정복지센터를 찾았다.
서류 발급 후 맛집으로 갔다.
안씨네 대가 추어탕! 이른 점심 손님이 북적였다.
추어 튀김부터 먹었다.
화병 치료의 명약인 치자 돌솥 밥은 처음이었다.
대박 낸 어리굴젓은 손이 가지 않았다.
팔팔 끓은 추어탕에 부추와 소면을 동생이 넣었다.
무청 시래기에 단백 한 맛이었다.
김치, 깍두기도 일품이라 돌솥 누룽지까지 남김없이 비웠다.
사흘 전, 청소년 수련관 길목 섬진강 추어탕 집과 달랐다.
장로님 어릴 때 즐겨 먹은 젠피 경험담을 들었다.
뱃속 해충이 사라질 정도라고 한 스푼을 넣었다.
스케일 큰 분을 따랐다.
혀 밑이 얼얼하고 모래알 씹히는 기분이었다.
콩나물과 오이 무침을 곁들어도 마찬가지였다.
울며 겨자 먹는 일보다 힘들었다.
식탐과 과욕이 낳은 결과였다.
장로님은 맛을 괜찮게 즐겼지만 난 저녁 먹을 때까지 얼얼할 정도였다.
익산 인화동 추어탕 집을 벗어나 천변 카페에 들렀다.
2층에서 넓은 들과 하늘을 안고 삶을 나눴다.
아메리카노 향이 대화를 이끌었다.
건강한 몸과 부지런함은 닮은 꼴이었다.
교회, 가정, 자녀, 운동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밥값, 찻값은 동생 몫이었다.
썬 베이커리 빵과 조카들 용돈 전하고 2시 무궁화를 탔다.
어찌 알고 광주 동생이 그 돈을 채웠다.
‘오빠! 명절 보너스 조금 받았네요.
명절에 주아 오면 필요한 것 사 주세요.
항상 마음이 쓰였네요.
엄마도 안 계시니 대신 받으세요.’
‘고맙네. 늘 받기만 해서 미안하구먼. 잘 전달할게..’
하나님께서 체면치레하게 만들어 놀랐다.
광주역에 내려 농산물 센터로 갔다.
인증 사진 찍고 가까운 어르신부터 선물을 돌렸다.
도중에 카톡을 받았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인사도 못하고 한 번 뵙고 싶어도 다리 아파서요.
날씨가 더워 선선하면 전화해야지 했습니다.
오늘 뜻밖에 뵈오니 무슨 할 말을 못 했습니다.
목사님! 생신 때 뵙겠습니다.
사모님께 안부 전하세요.
사과 잘 먹겠습니다.
추석 명절 잘 보내세요.’
‘국 권사님, 사전 연락드리지 못하고 갔네요.
늘 반갑게 맞아 손 붙잡은 사랑 감사했네요.
교회 차를 골목에 둘 수 없어 마음이 바빴어요.
어머니 천국 가시고 권사님께 전화할 엄두가 안 났어요.
세월의 무게에 병색이 짙어 돌아선 걸음이 무거웠네요.
조만간 연락드릴게요.’
정 권사님 문자였다.
‘목사님, 수고하십니다.
비싼 사과 맛있게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예, 사과 드시고 힘내세요.’
신호 대기하며 답을 드렸다.
전 권사님 집에서 인증을 보내려는데 엘베에서 내렸다.
너무 반가워 ‘아가씨 같네요!’ 인사가 나도 모르게 나갔다.
‘목사님도?!’ 눈이 휘둥그레지며 웃었다.
짧은 만남의 안부는 서로 힘이었다.
오는 길에 떠올랐다.
주일 예배 마치고 하 집사님이 서둘러 나갔다.
‘정 권사님! 오늘 모습 아가씨 같네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76세 아가씨! 언술이 좋았다.
염색하고 단정하여 드린 인사에 밝은 얼굴로 가셨다.
미운 정 고운 정 들은 송 권사님도 만났다.
손자는 상머슴 같은데 권사님은 야위고 이빨 빠진 호랑이였다.
‘오마 우리 목사님! 제가 드려야 되는 디 또 오셨네.
목사님도 많이 늙으셨네요.’
이튿날 화장실로 끌려갔다.
아내가 머리색을 바꿔 놓았다.
퇴근 시간 선물 돌리기가 힘들었다.
안수 집사님 아파트 밖에 주차하고 들어갔다.
1층에서 뜻밖에 세진 자매 식구를 만났다.
벌써 반야가 자불 자불 말을 걸어 귀여웠다.
지갑 지킨 5천 원 권 두 장 주고 예쁜 인사를 받았다.
임 권사님은 ‘왜 가지고 오셨냐?’ 야단을 치셨다.
강 권사님은 선물 받을 힘조차 없어 보였다.
마지막 가정에 올라가 문자를 보냈다.
‘집사님! 추석선물 두고 갑니다.’
‘목사님,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시절인데 또 주시네요.’
‘예, 집사님 감사합니다. 다 배달했네요.
힘들고 어려울수록 맛있고 가치 있는 것 같네요.
난 심부름 노릇만 했어요.
안전 운행하시고 행복한 만남 이어 가세요.’
3시간 걸렸다.
창 열고 섬김을 지속케 한 분에게 톡을 보냈다.
‘선배님, 무슨 말씀 올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늘 염치없는 자 부끄러울 뿐입니다.
어김없이 보내신 성원에 추석 선물 전달하고 들어갑니다.
받는 기쁨보다 드리는 즐거움이 컸습니다.
선배님 덕에 늘 사람 된 노릇한 것 같습니다.
그동안의 은혜 갚을 길 없어 눈시울이 시큰둥합니다.
기억하고 더 기도하겠습니다.
편한 저녁 보내시며 행복한 삶 누리세요. 선배님!’
‘이 목사! 수고가 많았네요.
항상 신실한 목회에 감사한 마음으로 매일 기도드려요.
기도해 주신 은덕으로 강건하게 변함없이 일상에 잘 지내고 있어요.
감사해요.’
2024. 9. 7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