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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서천봉희(西天鳳姬)
1
향향(香香)은 방긋 미소를 지으며 사내품에 얼굴을
묻었다.
향향은 기녀(妓女)다.
소주제일(蘇州第一)의 명기 향향.
그녀는 이름처럼 향긋한 내음이 풍기는 부드러운
여인이었다.
그녀는 남자를 볼 때마다 늘 솜사탕처럼 달콤하게
웃는다.
지금도 그녀는 그를 보면서 달콤하게 웃었다.
이 사람은 특별했다.
우선 아주 강(强)했다.
그리고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아주 부드러웠다.
단지 그뿐이라면 그녀가 과거 만났던 몇 사람의
남자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주 욕심이 많았다.
욕심이 많다는 것은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게
좋은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방면으로 욕심이
많다는 것은 여자들에게는 무척 관심이 가는
일이었다.
특히 그녀와 같은 여자로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호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지금도 이 사람은 그녀의 몸을 다섯번째로 욕심내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 지치고 피곤해서 이대로 그냥 쓰러져
잠들고 싶었으나 그의 욕심어린 손길에 닿은 그녀의
몸은 그녀의 마음과는 달리 적극적인 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의 다섯번째 욕심을 충족시켜주자 그녀는 이제는
정말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예
축 늘어져서 영원히 잠만 자고 싶었다. 허리 아래는
얼마나 시달렸는지 아예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
그런데 그때 그 사내가 다시 커다란 몸을 일으켜
그녀의 배 위로 올라오며 중얼거리는 게 아닌가?
"그럼 준비운동은 그만하고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몸을 풀도록 하지."
향향은 너무도 어이가 없어 멀거니 그 사람 얼굴만
올려다 보았다. 그 사람은 벌써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일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허리 아래로 느껴지는 감촉으로 보아 이 사람은
정말로 아직도 싱싱했다.
그녀는 있는 힘껏 그를 뿌리치며 소리쳤다.
"아...안돼요...나는 이젠 정말 못하겠어요..."
사내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진지한 음성으로 물었다.
"난 이제 조금씩 흥분되려고 하는데 당신이 벌써
이러면 난 어떡하란 말이오?"
그녀는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망설이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 보다가 힘없이 웃었다.
"당신 같은 사람은 정말 처음 보았어요...정
못견디겠다면 내가 다른 아이를 불러 오겠어요. 난
정말 더 이상 못해요..."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른 여자는 싫소. 난 적어도 당신 정도의
미인(美人)이 아니면 품에 안을 기분이 나지 않는단
말이오."
"이홍(怡紅)을 불러 올게요. 그녀도 저만큼
예뻐요."
"그녀는 벌써 열흘 전에 실컷 안아 보았소. 그녀는
아마 지금도 앓아 누어 있을걸?"
"취앵(翠鸚)은...?."
사내는 오히려 물었다.
"당신은 그녀를 못만난 지 며칠 되었지?"
향향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그런데..."
"그녀는 이틀 전에 나하고 잤는데 밤새 꼬박
설치더니 뻗어 버렸소. 의식이나 돌아 왔는지
모르겠군."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어 멍하니 그를 올려다
보았다.
소주일대에서는 이들 세 사람이 제일 아름다운
기녀들이었다.
보아하니 이 사내는 정말 그녀보다 아름답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 같았다. 하나 그녀들만큼
아름다운 기녀가 어디 흔하겠는가?
그렇다고 여기서 한 번 더 그의 욕심을
채워주다가는 그녀도 다른 두 사람과 같은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사내는 이미 그녀의 몸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다가 문득 생각이 난
듯 급히 그의 손을 밀어내며 물었다.
"당신은 꼭 기녀만 안아야 돼요?"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아니오. 당신보다 예쁘다면 직업이 무슨 상관
있겠소?"
그녀는 웃을 기운도 없었다.
"당신은 혹시 공손단경(公孫旦瓊)이란 여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사내의 눈이 번쩍 빛났다.
"물론이오. 그녀는 듣자하니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네 명의 미녀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하던데 그
여자 맞소?"
"맞아요. 바로 사대미인(四大美人)중의
서봉(西鳳)이라는 그 공손단경이에요. 그녀 정도면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겠어요?"
사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나는 진작부터 사대미인을 몽땅
안아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사내가 입맛을 쩍쩍 다시자 그녀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공손단경이 있는 곳을 알려드릴테니 나를 그만
놔줘요."
"그야 이를말인가? 그녀가 지금 어디 있소?"
"그녀는 며칠 전에 소주로 유람을 왔는데 지금은
현묘관(玄妙觀)에 있을 거예요."
사내는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재빠른 동작으로 아랫도리를 걸친 후
웃도리는 손에 든 채로 방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그의 돌연한 행동에 놀라 급히 물었다.
"당신은 어디로 가려고요?"
사내는 흑의를 걸치며 씨익 웃었다.
"어디긴? 현묘관에 가서 그녀를 빨리 안아야지."
"하지만..."
"난 아직 몸도 잘 풀지 못했다구. 그녀가 앓아
누웠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다 당신덕인 줄 알고
있으시오."
이어 그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세상에 이토록 급하고 제멋대로인 사람은
보다보다 처음 보았다. 천하에 공손단경을 마치
주머니 속의 물건처럼 쉽게 가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존재한다니...
도대체 그 사내는 공손단경이 어떠한 신분의
여인인지 알고나 있는 것일까?
그녀는 멍하니 누워 있다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물었다.
"그런데 대체 당신 이름은 뭐예요?"
그의 몸이 완전히 사라진 순간 멀리서 아련한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엽단풍..."
2
봉일평은 운이 좋았다.
이번에 보기만 하면 반드시 본때를 보여줘야지 하고
이를 갈며 돌아다닌지 하루도 되지 않아 그는 다시 그
자식을 만나게 되었다.
봉일평은 자신이 생각해도 이건 정말 운이 좋은 것
같았다.
봉일평이 아침부터 하루종일 소주성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가 목이 말라 주루에
들어가려 할 때 거리 저편에서 막 모퉁이를 돌아가는
하나의 인영을 보았다.
봉일평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한 번 슬쩍 보기만 해도 그 인영이 누구인지 금세
알 수 있었다. 그 장대같이 커다란 키하며 거무틱틱한
흑의...흐트러진 흑발에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광오한 모습...그리고 고철덩어리를 연상케 하는 그
녹이 잔뜩 슬은 칼...
(이 놈! 정말 잘 만났다.)
봉일평은 눈을 번뜩이며 급히 그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 흑의사내 녀석은 특유의 휘적휘적하는 걸음으로
저만큼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봉일평은 먼저
도박장에서 그의 뒤를 밟다가 들킨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한결 조심스런 동작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하나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그 흑의사내는 누가 자신을 따라오리라고는
생각지도 않는지 느긋한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고만
있었다.
봉일평은 이 자식을 어떻게 혼내줄까 하고
고민하면서 그의 뒤를 밟다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저곳은 현묘관으로 가는 길인데...)
그 흑의사내는 소주성의 북문(北門)을 나와 왼쪽
모퉁이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곳은 인적이 드물고
한산한 길로서 오백여 장쯤 쭉 나아가면 현묘관이
나온다.
현묘관은 여도사(女道士)들만이 수양하는 곳으로
남자들은 출입을 할 수가 없는 곳이었다.
(저 자식이 또 무슨 행패를 부리려고 저곳으로 가는
거지?)
봉일평이 자신의 뒤를 따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흑의사내는 성큼성큼 현묘관의 앞으로 다가갔다.
현묘관은 소주의 북쪽에 위치한 오래된
도관(道觀)으로 역사가 유구할 뿐만 아니라 무림에서
명성을 떨친 여고수들을 여러 명 배출하여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현묘관의 고색창연한 대문(大門)은 굳게 닫혀
있었다.
흑의사내는 현묘관의 닫혀진 문앞으로 가더니 그
솥뚜껑만한 손으로 냅다 문을 후려치는 것이 아닌가?
쾅!
마른 하늘에 천둥벼락이 치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오더니 두꺼운 문짝이 그대로 박살나 버렸다.
그의 뒤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따라오던 봉일평은 이
광경을 보고 입을 딱 벌렸다.
(저...저 미친 자식이...)
흑의사내는 부서진 대문 안으로 성큼 들어서더니
내당(內堂)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봉일평은 막 그쪽으로 몸을 날리려다 무엇을
보았는지 황급히 길옆의 돌담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런 다음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고 전면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 * *
엽단풍(葉丹楓)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이상하군...정말 이상해."
그의 손은 다른 사람의 손보다 적어도 두 배는 더
커 보였다.
손가락 하나 하나가 비단 굵고 억셀 뿐만 아니라
굳은 살이 잔뜩 박혀 있어 웬만한 사람은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그런데도 거칠고 투박한 느낌보다는 섬세하고
부드럽게 느껴지는 건 손의 마디마디가 유난히 길고
피부가 하얗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현묘관의
안에서 세 줄기 인영이 나타났다.
그들은 도포를 걸친 세 명의
여도사(女道士)들이었다.
여도사들은 굉음소리에 놀라 급히 달려나왔다가
대문이 부서진 것을 보고 안색이 대변했다.
엽단풍은 그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자신의 그 커다란
손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계속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것 참...이렇게 이상한 일이 있나..."
세 명의 여도사들중 가장 나이가 많은 여도사
하나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무엇이 이상하다는게요?"
엽단풍은 그녀를 힐끗 돌아보더니 그 커다란 손을
그녀의 눈앞에 흔들었다.
"이것 좀 보시오. 내 손은 분명 쇠로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 사람 좀 나오라고 문을 두드렸더니 이렇게
부서져 버리고 말았소."
그는 정색을 하며 진지한 음성으로 말했다.
"천하에 이름이 알려진 현묘관에서 일부러 대문을
부실하게 만들리는 없을텐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이상해서 견딜 수가 없구료."
여도사들은 어처구니가 없는지 멍하니 부서진
문짝과 엽단풍을 번갈아 쳐다보고 서 있었다.
그녀들은 그의 장대 같은 키와 태산 같은 몸집,
무쇠솥 같은 주먹을 쳐다보며 입을 반쯤 벌렸다.
세상에 이렇게 큰 사람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방금 전에 입을 열었던 중년여도사가 합장을 하며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무량수불...현묘관이 생긴지 백 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본 관(觀)에 시비를 건 사람은 없었습니다.
시주께서 본관에 와서 이런 짓을 한 것은 무슨
이유인지요?"
"글쎄 고의가 아니라니까. 이건 아무리 봐도 저
문짝이 너무 오래되어 ㅆ은 게 분명하오."
엽단풍은 허리를 굽혀 바닥에 널려져 있는 부서진
문의 파편(破片)중 한 조각을 집어들었다.
"보시오. 문이 이렇게 푸석푸석하지 않소?"
그가 문조각을 양 손가락 사이에 넣고 비비자 과연
그 조각이 가루처럼 맥없이 부서지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중년여도사의 안색이 싹 변했다.
그녀는 물론 현묘관의 대문이 썩은 나무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썩기는
커녕 단단한 참나무에 특수한 옷칠을 해서 비바람에도
부식되지 않는 단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단단한 나무조각을 별 힘도 들이지 않고
손가락 두 개로 부벼서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은
공력이 출신입화(出神入火)의 경지에 다다르지
않고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음성이 자신도 모르게 떨려 나왔다.
"무...무량수불...시주께서 본 관에 무슨 용무가
있으신지 는 모르지만 오늘 본 관에는 급한 일이
생겨서 외인(外人)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하시지요."
"급한 일이라니 그게 뭐요? 어느 놈이 이곳에 와서
행패를 부리기라도 했단 말이오?"
중년여도사의 얼굴에 고소(苦笑)가 떠올랐다.
"아닙니다."
엽단풍은 눈을 부라리며 자신의 가슴을 탕탕쳤다.
"괜찮소. 말해 보시오. 그런 놈이 있으면 내가 아주
따끔한 맛을 보여 줄테니..."
중년여도사는 웃을 수도 없고 울을 수도 없는
야릇한 표정이 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현묘관에 와서 행패를 부리고 있는
것은 바로 엽단풍 자신이 아닌가? 그가 아무
염려말라는 듯 큰 소리를 칠수록 중년여도사는 어이가
없어 쓴웃음만 흘러 나올 뿐이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사실은 본 관에 오늘 귀중한
손님이 오셔서..."
엽단풍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귀한 손님이란 게 혹시 공손단경인가 하는 여자
아니오?"
중년여도사는 깜짝 놀라 더듬거렸다.
"시...시주께서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긴. 내가 이곳에 온 게 다 그녀
때문인데."
중년여도사는 급히 되물었다.
"시주는 공손소저를 만나러 오셨습니까?"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엽단풍의 하얗고 싱싱한
이빨이 살짝 내보였다.
"과연 도(道)를 닦는 분답게 눈치가 빠르시군. 바로
그렇소. 그녀는 안에 있소?"
중년여도사의 얼굴에 난감한 표정이 떠올랐다.
"계...계시긴 한데..."
"왜 안된단 말이오?"
엽단풍이 그 커다란 몸으로 성큼 다가오자
중년여도사는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그게 아니라...사실은 공손소저에게 이미
손님이 와 계셔서 아마도...시주를 만나시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거 잘 됐소. 손님을 만나고 있다면 한 사람쯤 더
있어도 상관이 없겠군."
엽단풍은 오히려 반색을 하며 그녀의 곁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스윽!
막고 자시고 할 사이도 없었다.
그의 동작이 어찌나 빨랐던지 중년여도사가 자신의
코 앞에 무언가 희끗거린 것을 본 순간 그의 몸은
어느새 그녀의 뒤 십여 장 밖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중년여도사는 놀라고 당황해서 어쭐 줄을 모르다가
그의 몸이 벌써 내당(內堂)으로 향하는 것을 보자
다른 두 명의 여도사들과 함께 황급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엽단풍은 보무도 당당하게 현묘관의 내당으로
들어서며 종이 울리듯 큰 소리로 외쳤다.
"단경! 내가 왔소! 어서 나오시오!"
그는 공손단경의 이름을 아무 꺼리낌없이 부르며
내당안을 여기저기 휘젓고 다녔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그가 오랫동안 헤어졌던 마누라를
만나러 온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그때 갑자기 내당의 문이 벌컥 열리며 싸늘한
폭갈이 터져나왔다.
"어떤 미친 놈이 감히 이곳에 와서 허튼 수작을
부리는 게냐?"
언제 나타났는지 내당의 문 앞에 괴이한 몰골의
노파가 우뚝 서서 신광(神光)이 번뜩이는 눈으로
엽단풍을 노려보고 있었다.
노파의 키는 오 척(五尺)이 될까말까 했는데 전신에
알록달록한 색깔의 옷을 걸치고 있었고 손에는 자신의
키보다 훨씬 큰 용두괴장(龍頭拐杖)을 들고 있었다.
허리는 구부정했고 백설같이 흰 머리는 뒤로
아무렇게나 대충 묶었다.
얼굴 전체에는 도저히 나이를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무성한 주름살이 가득했는데 주름살 투성이의 얼굴 한
복판에 박힌 두 개의 눈에서는 쇠라도 녹일 듯한
무시무시한 안광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보기만 해도 섬뜩해 질 정도로 냉막한
인상의 노파였다.
그런데 그 노파를 본 엽단풍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그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백발노파의 전신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아니...세상에 이렇게 나이많은 할망구가 무슨
목청이 그리도 크단 말인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 자신의 음성은
백발노파보다 몇 배나 더 우렁찬 것이었다. 그의
음성이 어찌나 컸던지 그를 뒤따라 왔던 여도사들은
고막이 진동하고 귀가 윙윙거려서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백발노파의 안색이 철갑을 씌운 듯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 개뼉다귀 같은 놈이 감히 노신(老身)이 누구인
줄 알고 함부로 아가리를 놀리는 거냐?"
엽단풍은 화를 내기는 커녕 오히려 피식 웃었다.
"나같이 큰 개뼉다귀라면 아무리 집채만한 개라도
물어뜯기가 쉽지 않을거요. 게다가 내 뼈다귀는 워낙
단단해서 왠만한 이빨로는 어림도 없지."
이어 엽단풍은 백발노파의 작달막한 몸을 쭈욱 ㅎ어
보더니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그렇군. 크기로 보나 뼈다귀의 오래된 정도로 보나
나보다는 할망구가 더 어울릴거요. 아암...할망구의
뼈다귀는 크기도 아담한데다 연하고 부드러워서
틀림없이 온 천하 개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을거요."
"뭐...뭐라고?"
백발노파의 주름살 가득한 얼굴이 더 이상 일그러질
수 없을 만큼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녀는 팔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남에게서 이런 모욕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아니 이런
말을 들으리라고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이...이런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이..."
백발노파가 화를 내고 안색이 불그락푸르락
해질수록 엽단풍은 히죽히죽 웃으며 그녀를 놀려댔다.
"이보시오, 할망구. 자꾸 화를 내면 뼈다구가
질겨져서 맛이 없게 되오. 이왕이면 개들에게 맛좋은
뼈다귀를 주는 게 좋지 않겠소?"
"이...이..."
백발노파는 너무도 화가 치밀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가 수중에 들고
있던 용두괴장을 번개같이 쳐들어 불문곡직하고
엽단풍의 머리통을 후려갈겨 왔다.
쿠와앙!
마치 해일이 덮쳐 오는 것 같았다.
백발노파의 성격이 어떻든 그녀의 공력이 가히
절정(絶頂)에 다다른 것은 너무도 분명해 보였다.
무시무시한 파공음과 함께 어른의 키만한
용두괴장이 빛살 같은 속도로 날아드는 광경은 천하의
누구라 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가공스러운
것이었다. 쇠로 만든 금강동인(金剛銅人)이라 해도 그
용두괴장에 정면으로 맞았다가는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웬걸?
엽단풍은 피할 생각이 없는지 아니면 피할 능력이
없는지 두 눈을 멀뚱멀뚱하게 뜬 채 용두괴장이
자신의 머리통을 향해 날아오는 광경을 멀거니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쾅!
벼락치는 듯한 굉음이 울리며 용두괴장은 한 치의
사정도 없이 엽단풍의 머리통을 정면으로 강타해
버렸다.
엽단풍의 커다란 몸이 태풍을 만난 가랑잎처럼 오
장여밖으로 나가떨어졌다.
밖이 소란스러워서 나와 보았던 여도사들이 이
끔찍한 광경을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개중에는
엽단풍의 머리가 박살이 나서 사방으로 시뻘건 선혈과
뇌수를 뿌리는 광경이 눈에 선한지 눈을 질끈
감아버린 사람도 있었다.
백발노파는 아직도 분을 참지 못하는지 씩씩거리며
엽단풍이 나가떨어진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용두괴장에 정통으로 격중당해 머리통이 박살난 줄
알았던 엽단풍이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앗?"
백발노파는 물론이고 주위에 늘어서 있던 현묘관의
여도사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일제히 경악성을
질러냈다.
특히 용두괴장의 주인인 백발노파의 놀라움은
경악을 넘어 기절초풍에 가까웠다.
(이...이럴수가...내 두 갑자(甲子) 공력이 실린
용두괴장을 정면으로 맞고도 일어나다니...)
노파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의 빛을 띄고
멍하니 엽단풍을 쳐다보았다.
엽단풍은 그때 봉두난발한 머리를 손으로 마구
비비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장난 좀 한 걸 가지고 그
무지막지한 몽둥이로 사람 머리를 후려 갈기다니...
내 머리가 쇠처럼 단단했길래 망정이지 큰일날 뻔
했잖소, 할망구!"
아무리 눈을 씻고 살펴 보아도 그의 전신에는
털끝만한 상처 하나 나 있지 않았다.
백발노파는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화도 나오지
않았다.
이 체구가 태산(泰山)만한 놈은 비단 간덩이도 그
만큼 클 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만년한철(萬年寒鐵)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특이한 한목(寒木)으로
만들어서 단단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용두괴장을
맨몸으로 받아내고도 멀쩡하겠는가?
더구나 그것도 두 갑자의 공력이 실린 것을 말이다.
엽단풍은 용두괴장에 강타당했던 부분을 쓰다듬으며
히죽히죽 웃었다.
"할망구치곤 팔힘이 상당하군. 하마터면 내
머리통이 박살날 뻔 했으니까 말이오. 아마 할망구의
뼈다귀는 보기보단 연하지 않을 것 같소. 개들도
좋아하지 않겠는걸."
자세히 보니 맞은 자리가 조금 붉으스름해지기는
했다.
엽단풍은 커다란 걸음으로 성큼성큼 노파앞으로
다가오더니 노파를 내려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빚지고는 못사는 성미지만 할망구의 나이를
봐서 특별히 기회를 주지. 나를 공손단경인가 뭔가
하는 여자에게 데려다주면 조금 전 일을 잊도록
하겠소."
백발노파는 이 녀석이 과연 제정신인가 하고 그의
얼굴을 우두커니 쳐다 보았다.
그녀가 엽단풍의 얼굴을 보려면 고개를 바짝 쳐들고
한참이나 올려다 보아야 했다.
머리가 잔뜩 헝클어져 있어서 용모를 제대로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흑발 사이로 언뜻 내비치는 눈빛은
티끌 하나 없이 맑고 깨끗해서 정신이 이상한 것
같지는 않았다.
엽단풍은 노파를 내려보며 하얀 이빨을 살짝
드러내며 말했다.
"할망구. 내 말이 들리지 않소? 아니면 너무 늙어서
귀까지 먼 거요?"
백발노파는 너무도 분노가 치밀어 오히려 화도
나오지 않았다.
백발노파는 한참동안이나 그를 노려보더니 한 자 한
자 씹어 뱉듯이 말했다.
"너는 노신이 누구인지 알고 그따위 소리를
지껄이는거냐?"
엽단풍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할망구는 젊은 여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히
예쁘지도 않은데 내가 어찌 알겠소?"
"네 놈은 두여랑(杜如娘)이란 이름을
들어보았느냐?"
엽단풍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여랑? 그게 할망구의 이름이오?"
"그렇다."
"이름은 그런데로 괜찮군. 하지만 난 할망구의 이름
따위는 관심없소."
엽단풍의 퉁명스러운 말에 백발노파는 어이가
없는지 더 이상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멍하니 그를
올려보고 있었다.
주위에 늘어서 있던 현묘관의 여도사들의 얼굴에도
아연한 기색이 가득했다.
(세상에... 칠살파파(七煞婆婆) 두여랑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다 있다니...)
그녀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백발노파의 정체를 다른 무림인들이 알았다면 아마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칠살파파 두여랑!
그녀는 수십 년 전부터 한 자루 용두괴장으로
무림천하를 주름잡았던 절세의 고수였다. 그녀가 주로
활동한 지역은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사천(四川)지방과 서장(西藏)이었지만 그녀의 명성은
중원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말년에 이르러 그녀는 서역의 패자(覇者)인
벽요궁(碧瑤宮)에 몸을 두어 무림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그런 그녀가 수십 년만에 불쑥 현묘관에 나타났던
것이다.
두여랑은 안색이 수십 차례 변하더니 이를 부드득
갈았다.
"정말 미쳐도 단단히 미친 놈이로구나. 오늘 노신이
네 놈의 못된 버릇을 고쳐놓지 못한다면 성을 갈아
버리겠다."
엽단풍은 껄껄 웃었다.
"하하...할망구가 성을 갈던 이름을 갈던 그건 내
알 바 아니오. 나는 안으로 들어가서 공손단경을
만날테니 할망구 마음대로 하구려."
엽단풍은 그녀는 쳐다보지도 않고 내당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자신은 아예 무시를 하고 내당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두여랑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갈을 터뜨리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 놈! 죽어라!"
쾌애액!
벼락 같은 노호성과 함께 그녀의 용두괴장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들었다.
그 속도와 용두괴장에 실린 힘의 무게는 조금 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바로 그 순간,
"두파파(杜婆婆)! 그를 안으로 들여보내세요."
내당 안에서 맑고 그윽한 한 줄기 음성이 들려왔다.
그 음성은 마치 깊은 계곡 속을 흘러가는 ㅁ은
시냇물처럼 듣는 사람의 마음을 청량하게 하는 신비한
힘이 담겨 있었다.
그 음성을 듣자 그토록 가공할 기세로 덤벼들던
두여랑의 몸이 허공에서 빙글돌며 다시 원래의 자리로
내려섰다. 그녀의 수중에 들린 용두괴장은 처음의
자세 그대로 위치해 있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던 것
같았다.
원래 공력이란 펼치기보다 거두기가 더 어려운
법인데 그녀의 공력을 수발(收發)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절정고수다웠다.
덤벼들었다가 물러나는 동작이 어찌나 빠르던지 한
차례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것 같았다.
두여랑은 싸늘한 눈으로 엽단풍을 노려보더니
천천히 몸을 비켜섰다.
"이 놈! 오늘은 운이 좋은 줄 알아라. 다음에 다시
만나면 반드시 네 놈의 못된 버르장머리를 뜯어고쳐
주고야 말겠다."
엽단풍은 히죽히죽 웃으며 커다란 몸을 어슬렁
움직였다.
"제발 부탁이오. 나도 이 버릇을 고치려고 밤마다
고민중이라오. 하지만 할망구 실력으로 그게 될까?"
그가 내당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다시 한 번
두여랑의 울화통을 북돋우는 말을 내뱉었으나
두여랑이 무어라고 쏘아붙이기 전에 그의 몸은 어느새
내당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두여랑은 한동안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본 채
씩씩거리고 서 있다가 솟구치는 노화를 억제하지
못하고 들고있던 용두괴장을 바닥에 내리찍었다.
쾅!
엄청난 굉음이 지축을 뒤흔들 듯이 크게 일어나며
바닥이 움푹 꺼져들어갔다.
현묘관의 여도사들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현묘관의 바닥은 굳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었다.
비록 강철만큼 단단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몇
천근의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결코 쪼개지거나
부서지지는 않는 것이었다.
그 화강암 바닥이 두여랑의 간단한 손짓에 움푹
커다란 구멍이 파인 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두여랑의 공력이 얼마나 초절한지를
여실히 알 수 있었다.
두여랑은 그래도 노화가 풀리지 않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문득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떠올렸다.
"세상에서 그 냉가(冷家)놈이 가장 버르장머리가
없는 줄 알았더니 저 놈은 한 술 더 뜨는군. 두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이 서로 만나면 어떤 광경이
벌어질지 궁금해 지는군."
첫댓글 즐독했어요
즐독
기대됩니다 ~~
감사합니다 ^^
잘 보았습니다.
ㅈㄷㄱ~~~~~````````
즐독입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즐겁게 앍어내요
감사합니다
잘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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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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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봤습니다.
잘읽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감사 잘 보고 갑니다. 즐독
즐독입니다
정말로 무뢰한이군?????
즐겁게 열독하고 갑니다.
즐감했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