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다섯 가지 판타지의 역사 : 한마음, 초월, 의무, 집착, 충족 불가능성
사랑은 모든 것을 초월하며, 사랑은 모든 것을 내줄지니, 한마음에서 비롯된 사랑은 집착하지 아니할 수 없고 그럼에도 사랑은 충족되지 못할지어다
우리는 일련의 판타지를 통해 사랑을 이해한다. 다시 말해서 사랑이 아니고서는 너무나 이해하기 힘들고, 일관적이지 않고, 다루기 힘든 감정에 일정한 체계를 세우는 이야기들로써 사랑을 이해한다. 사랑은 다른 많은 감정과 도덕적 판단을 포괄하는, 복잡하고도 당혹스러우며 황홀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복잡한 만큼이나 사랑을 둘러싼 판타지의 역사는 신화에서부터 디즈니 영화에 이르기까지, 길고도 견고하다. 사랑의 판타지가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변함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몇몇 판타지는 지속성을 보여주었다. 바버라 로젠와인은 그중에서도 가장 영속적인 판타지를 탐구한다. 한마음, 더 높은 세계로 이끄는 초월, 조건 없이 베풂이라는 의무, 집착, 채워지지 않는 욕망, 이 다섯 가지 판타지는 우리가 사랑에 빠지고, 사랑하고 사랑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랑을 끝내고, 또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계속 영향을 미쳤고,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사랑을 필요로 한다. 사랑에 빠지기 위해, 사랑에 윤곽을 부여하기 위해, 그리하여 사랑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 기쁨과 슬픔, 경이와 혼란, 분노와 고통을 이해하기 위하여
사랑은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지만, 라디컬 분자가 그러하듯이 자주 다른 감정들과 결합한다. 보통은 박애가 끼어드는데, 때로는 생식을 위한 육신의 갈망' 즉 성교와 결합하기도 한다. 이런 수많은 감정들을 통해 하나로 모이는 이들이 지극히 한마음이라는 추론은 이치에 맞다.
사랑은 초월한다. 사랑은 우리를 따분한 일상 너머로 끌어올린다.
타인에 대한 사랑, 부모의 사랑이 아닌 성적인 사랑은 많은 사람에게 사랑의 초월한 힘의 근원이다
넷플릭스 영화 <맬컴과 마리>
<러브 스토리>의 비 의무적인 사랑에 대한 알랭 드 보통의 해법보다는 덜 염세주의적인 답변을 제시한다. 주인공 맬컴과 마리는 오랜 연인 사이다. 남자는 뜨기 시작한 영화 제작자이고, 여자는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배우다. 남자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자기 영화의 VIP 시사회에서 모든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여자만 쏙 배놓은 채, 여자는 잠시 홀로 아픔을 달랜 후 남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남자는 사과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치 않고, 영화의 많은 부분은 둘의 이런저런 싸움을 보여준다. 두 사람은 갈수록 더 날카로운 말로 상대를 상처 입히는 한편 '그걸 잊고' 성관계를 가지려고도 노력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둘 다 서로에게 무엇을 주어야 하고 무엇을 주지 않았는가에 관한 판타지를 키워왔다. 여자는 남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었다. 실제로 남자의 영화는 여자의 인생을 소재로 삼았다. 그러니 남자는 여자에게 감사해야 한다. 한편 남자는 여자에게 도움을 주었다. 실제로 여자는 남자를 처음 만났을 때 약물 중독자였다. 그러니 여자는 남자에게 감사해야 한다. 영화의 교훈은, 이렇게 간단히 말해도 된다면, 사랑은 '고마워요' 라고 말하기를 잊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기든스의 바람과는 달리 맬컴과 마리는 '서로의 필요에' 전적으로 '민감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드 보통의 '그만하면 나쁘지 않은' 동반자로 타협할 필요도 없다. 둘 다 서로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고, 그들 자신에게, 서로에게, 그리고 세상에 고마움을 말할 필요가 있다.
충족 불가능한 사랑은 어둠의 심장, 고삐 풀린 욕망의 위협이다. 거기에 반항적인 대담함을, '점잖은' 사랑에 불꽃을 튀기는 광택을 주는 것은 바로 그것의 조야함이다. 이러한 조야함이 아마도 사랑의 목적이자 존재 이유, 타인을 유혹하고 파괴하는 판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