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에 다녀오니 누군가 마루 끝에다가 달걀을 한 꾸러미 가져다 놓았다.
그냥 계란이 아니라 달걀이라고 궂이 표현하는 이유는
지푸라기로 옛날 장에서 팔던것 마냥 계란을 감싸고 다시
그것을 짚으로 묶었기 때문이다.
분명 유정란 달걀일 것이다.
한 꾸러미 달걀이지만 짚으로 정성껏 포장을 한것이 너무나 정성스러워
감히 꺼내먹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누가 지금 세대에 이렇게 정성껏 짚으로 포장을 한 것일까
어린시절 생각이 난다.
어느 집이나 그랬겠지만 닭을 몇마리씩 키워서 달걀을 내 먹는다.
닭의 집은 주로 소가 사는 외양간 꼭대기에 올라가서 잠을 잔다.
횟대라고 하여 할아버지께서 외양간 한켠 높이 가로로 나무를 올려주면 그곳에
장닭부터 하여 쫄로로비 잠을 자는 것이다.
시계가 별로 없던 시절 새벽은 늘 이 닭우는 소리로 시간을 알곤
했던게 불과 몇십년도 안된 이야기다.
암탁은 주로 하루에 한번 또는 사흘에 두개 정도 알을 낳는데 짚으로 잘 짜서
둥지를 만들어 주면 그곳에서 알을 낳기도 하지만 어떤 놈들은 그곳에서
알을 낳지 않고 자기만의 비밀 장소에서 알을 낳아 놓아 이렇게 추운 겨울에는
미처 꺼내지 못하면 얼어 터지기도 한다.
이 달걀들은 모아져서 따뜻한 봄날 암탁이 알을 품어 병아리로 부화되어 우리의 재산이 되기도 하는데 얼마 남아 나지를 않는다.
닭은 알을 낳으면
꼬꼬댁 꼬꼬
하고 소리를 치니 안 들킬래야 안 들킬 수가 없는 것이다.
주로 이 달걀은 많이 모아져서 할머니의 용돈이 된다
이 달걀들을 모아 장날이 되면 할아버지께서 짚으로 꾸러미를 만들어
할머니와 장으로 지고 가신다.
아무튼 꽤 비싸게 팔아 가끔 돼지고기를 사오셔서 무우를 넣고 가마솥에 국을 끓여 먹기도 했다.
운 좋은 날은 나무터미에 얌전히 달걀을 몇개 나아 놓으면
어른들 몰래 우리 아이들의 차지가 된다
생으로 먹기도 하지만 이 달걀을 젖은 신문지에 싸서 화로불에
구워 먹으면 그 맛이란 정말 잊을 수가 없는 맛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껏 그렇게 맛있는 달걀을 먹어 본적이 없다.
우리에게 달걀이 돌아오는 기회는 거의 없고 기껏해야 한달에 한번정도
달걀로 국을 끓여 먹는 것도 잘 먹은 기회였으니...
그러나 아버지는 닭이 꼬꼬댁꼬꼬 하고 알낳았다고 난리를 치자 마자 따끈 따끈한
것을 가져다가 젖가락으로 위아래를 뚫어 쪽쪽 빨아 잡수실 수가 있었으니
동생들은 그 남은 국물이라도 먹으려고 기다리고 서 있기도 했고 또 그 속에다
쌀을 넣고 물을 넣어 신문지로 잘 싸서 화로에다 달걀 밥을 해 먹기도 했다.
어떨 때는 이 달걀이 폭팔을 하여 방바닥을 온통 곰보를 만들어 놓기도 했는데
까맣게 이러한 시절을 잊고 있었다가 달걀 한 꾸러미로 인해 소중한 추억을 하나
잡은 샘이 되었다.
우리님들에게 이 달걀을 나누어 드리지는 못하지만
잊어버린 달걀의 추억은 나누어 드렸으니 많이 드사이다.
예전에 아프다가도 달걀 하나만 먹으면 거뜬히 나았던 것 같이
아픈분이 계시면 이 추억을 드시고 얼른 일어납소.
첫댓글 할아버지 밥상에만 달걀찜이 올라가서 할아버지가 한덤이라도 남기면 그거 먹을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주 아련한 추억이네요~
달걀 한 줄로 이렇게 멋진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니 ....항상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렴님하고.다투면 서울로 무조건 달려 오세요. 팬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저도 어릴적에 달걀이 참 귀했던게 생각나요..닭이 알 낳는 소리를 내면 서로 뛰어가서 계란을 부엌에 갔다 놓곤했는데..엄마는 그걸 할아버지 밥상에 올리시곤 했지요..못 먹어 서럽던 옛날도 지나니 다 추억이예요...
닭알 ...다갈다갈다갈다갈다갈~~~~~~~~
그러네요. 빈껍질속에 밥을 해 먹었었죠? 좋은 기억을 더듬어 행복함을 느끼게 해주신 그렇지님 고마워요.그렇지님은 참 요술보따리 같아요.ㅎㅎ
달걀꾸러미가 참 정겹게 느껴지네요~..어쩌다..도시락에 들어 있던 계란 후라이 하나로도 너무 행복했었는데..ㅎㅎ
간식으로 달걀 삶아서 몇개씩 먹었는데...아니야 ~~!! 울 엄마가 손이 커서...ㅎㅎㅎ나중에 달라지 말고 물릴 때 까지 먹으라고 했던 기억이..ㅎㅎㅎㅎ
옛날 달걀은 노른자가 노오란게 찜을 해도 참 맛이있었지요..지금의 계란맛을 너무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