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6일 연중 제32주일 평신도 주일
평신도는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 성직자를 제외한 모든 신자를 가리킨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역할을 크게 부각하면서, 평신도를 통하여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이러한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1968년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지금은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단체 협의회’)의 결성과 더불어 해마다 대림 제1주일을 ‘평신도 사도직의 날’로 지내기로 하였다. 평신도들에게 주어진 사도직의 사명을 거듭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뒤 1970년부터는 연중 마지막 주일의 전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지내 오다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연중 마지막 전 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정하면서 2017년부터 한 주 앞당겨 지내고 있다.
오늘은 연중 제32주일이며 평신도 주일입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도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삶과 죽음에서 복된 희망을 품고, 우리 마음에 심어 주신 성자의 말씀을 착한 행실로 열매 맺는다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27-38 그때에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28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죽지 않으려고 병원도 부지런히 다니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지금 보다 더 좋은 세상에서 아름답게 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현재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갖은 노력을 다하여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우리 부모들이 자식들에게는 더 좋은 세상을 살게하려고 그야말로 뼈 빠지게 희생하면서도 가르치려고 합니다. 유산을 많이 물려주려고 안간힘을 쓰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앞날의 영화를 위해서 지금의 고통도 즐거움으로 견딥니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이 지옥이라고 생각하면서 아름답고 영화로운 천국을 꿈꾸면서 살아갑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욕망을 하나로 뭉친다면 아마도 행복한 삶이며, 영원한 생명일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이 아주 큰 의미로 담겨옵니다. 죽지 않으려고 애쓰고 병에 걸려 허망하게 죽지 않으려고 병원도 부지런히 다니고, 운동도 하고 좋은 음식으로 몸을 관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찾아 인고의 세월로 인생을 보냅니다. 산이나 사막으로 그리고 아무도 살지 않는 섬으로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훌륭한 스승을 만나 득도(得道)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피정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하고, 관상이나 영신수련을 통해서 하느님을 체험하는 득도(得道)하려고 열심히 수도하고 수련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참으로 잘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그 죽음이 결코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리라는 것을 신앙으로 고백하며 살고 있습니다.
한 구도자가 스승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본 사탄은 그가 진리를 추구하는 데서 돌아서도록 힘껏 온갖 수단을 다 쓰기로 작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가엾은 구도자에게 재산, 욕정, 명성, 권력, 위신 등 있을 수 있는 온갖 유혹을 다 겪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구도자는 영적인 일에 제법 경험이 있었기에 그 유혹들을 쉽게 싸워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영적인 것에 대한 열망이 간절했던 것입니다. 그가 스승의 앞에 갔을 때, 그는 스승이 융단 의자에 앉아 있고, 제자들은 그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좀 놀라며 속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성인들의 으뜸가는 덕인 겸손이 모자라는군.” 그러고는 그 스승에 대해서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다른 점들도 살펴보았습니다. 우선 스승은 자기에게 거의 눈길을 주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아첨을 안 하니까 그럴 테지.”하고 그는 혼잣말을 했답니다.) 그리고 입고 있는 옷도, 뭔가 잘난 척하는 말투도 마음에 안 들었답니다. 이 모든 점들로 미루어보아 그는 자기가 잘못 찾아왔으며 어디 다른 데를 계속 찾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답니다.
그 구도자가 방을 나서자, 방 한구석에 앉아 있던 사탄을 본 스승은 사탄에게 말했답니다. “나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사탄아, 그는 애초부터 네 차지였지.” 바로 그런 것이 하느님을 찾으면서 모든 것을 다 떨쳐 버리고자 하되 하느님이 정녕 무엇인지에 대한 자기네 관념들만은 못 떨쳐 버리는 그런 사람들의 운명이랍니다. (앤소니 드 멜로, 개구리의 기도)
그런데 오늘 우화에서 우리에게 깨우쳐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가르치심과 같은 것입니다. 정말 구도자라면 진실을 배우고 깨우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스승께 맡기고 스승의 가르치심에 몰두하는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 대학의 문턱이 무척 낮아지고 있습니다. 많은 지방 대학들은 문을 닫아야 할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학에 공부하려고 오는 사람들은 정말 겸손하게 배움을 청하려고 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대학들도 그 권위를 세울 때가 아닙니다. 실력을 높이고 자질을 함양해야 합니다. 대학교육이 구도자의 길과 같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구도자의 길은 겸손하고 낮은 자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별의별 질문으로 예수님을 황당하게 몰고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겸손한 구도자가 아니며, 성경과 하느님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그들을 꾸짖으십니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물론, 그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사탄은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고 산 사람들의 하느님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만 억울하다.’라는 말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내 부모님과 조상님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지금도 내 가슴에 살아있고, 고인이 되신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살아있음을 의심 없이 믿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판단으로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판단으로 살고 있을 분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도 구도의 삶이 되어 주님의 마음에 들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의 품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부활의 삶을 살기를 바라시는 주님! 저희가 겸손하지 못하고 구도자의 자세가 아닌 교만함으로 가득 차 당신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나이다. 매일 자신의 삶을 뉘우치면서 당신의 말씀을 잘 새겨들으며, 당신의 가르치심을 지키며, 당신께서 인도하시는 신앙의 길을 잘 걸을 수 있도록 은총으로 축복하여 주소서. 저희를 당신의 품으로 이끌어 주시는 무한하신 권능의 하느님 아버지를 믿으며, 그 권능에 저희를 의탁하오니 어여삐 여기시어 받아주소서. 자비와 권능의 하느님 아버지!!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어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 해 주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2서 말씀입니다.2,16─3,5 형제 여러분,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또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영원한 격려와 좋은 희망을 주신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 17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어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3,1 끝으로 형제 여러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서처럼 빠르게 퍼져 나가 찬양을 받고, 2 우리가 고약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구출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은 성실하신 분이시므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고 여러분을 악에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 4 우리는 주님 안에서 여러분을 신뢰합니다. 우리가 지시하는 것들을 여러분이 실행하고 있고 앞으로도 실행하리라고 믿습니다. 5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이끄시어, 하느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이르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축일11월 6일 성 레오나르도 (Leonard)
신분 : 은수자, 수도원장 활동 지역 : 노블락(Noblac) 활동 연도 : +559년 같은 이름 :레너드, 레오나드, 레오나르두스, 레오나르드
성 레오나르두스(Leonardus, 또는 레오나르도)는 서유럽에서 널리 알려진 성인이지만 그의 생애가 기록으로 남은 것은 거의 없다. 프랑크 왕국의 귀족 출신으로 용맹한 장군이었던 그는 국왕 클로비스 1세가 하느님의 도움으로 게르만족과의 전쟁에서 대승리를 거둔 후 개종하여 세례를 받을 때 다른 귀족들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장군으로서 국왕에게 충성을 다한 그는 이제부터는 하느님의 군사로서 여생을 봉사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랭스(Reims)의 성 레미기우스(Remigius, 10월 1일)를 찾아가 학문과 덕행을 닦았다. 성 레미기우스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은 그는 왕국 내의 비신자들을 찾아다니며 헌신적인 노력으로 놀라운 전교 성과를 올렸다.
그의 성덕이 널리 알려지자 클로비스 1세는 그를 궁정사제로 불러들이거나 주교가 되기를 바랐지만 그는 겸손되어 모두 사양하였다.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다는 국왕에게 감옥에 갇힌 이들의 석방을 청해 허락을 받은 후 조용한 곳을 찾아 떠났다. 그는 오를레앙(Orleans) 근처로 가서 그곳의 미시(Micy) 수도원에 들어가 모범적인 생활을 하다가 원장직을 맡기려 하자 더욱 고적한 곳을 찾아 떠났다. 그는 리모주(Limoges)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손수 조그마한 움막을 짓고 채소와 과일로 연명하면서 하느님만을 관조하며 생활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클로비스 국왕이 사냥을 나왔다가 왕비가 죽을 곤경에 빠졌을 때, 그의 기도로 왕비의 목숨을 건지자 왕은 감사의 표시로 많은 토지를 하사하였다. 마침 그의 성덕을 듣고 가르침을 받으러 오는 이들이 많아지자 그는 그곳에 공동체를 세웠는데, 이곳이 훗날 유명한 노블락 수도원의 모태가 되었다. 그는 공동체를 지도하면서 인근 마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해 많은 비신자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였다. 그는 병자들과 수감자, 전쟁포로, 농부와 자물쇠 제조업자, 그리고 소나 말과 같은 가축의 수호성인이다. 감옥에 갇힌 이들을 풀어주었던 일화 때문에 교회미술에서 그는 족쇄 또는 차꼬를 들고 있는 수도원장으로 주로 묘사되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레오나르도 (Leonard)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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