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개혁 요구 앞에 선 건설노조, 회계 투명성부터 확보해야
중앙일보
입력 2022.12.22 00:09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20일 세종시 6-3 생활권 신축 아파트 건설현장 점검을 마친뒤 건설사 관계자들과 건설노조의 불법행위와 관련한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불법적 조합원 채용과 장비 사용 강요 관행
‘깜깜이 회계’ 이용해 조합비 착복까지 빈번
건설노조에 대한 개혁 요구가 거세다. 건설 하도급업체들이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지급하는 월례비 관행과 건설노조의 조합원 가입 강요, 채용 강요 같은 불법 행위를 바로잡으라는 주문이다. 건설 현장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건설노조의 폭력적 행태는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민주노총은 이 단체 소속이 아닌 사업자를 몰아내거나 소속 사업자 채용을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 나타났다.
또한 경찰에 따르면 건설 현장의 필수 장비인 타워크레인 기사 배정을 노조에서 순번을 정해서 하고, 건설 현장에 노조 소속 인력과 중장비를 사용하라고 강요하는 경우까지 발견되고 있다. 지난 20일 ‘건설 현장 규제개혁 민·당·정 협의회’에서 윤학수 대한전문건설협회장은 “건설노조의 이런 횡포 때문에 국민들이 200만~300만원은 추가 공사비를 더 부담한다고 확신한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이 같은 건설노조의 불법 관행은 든든한 자금을 기반으로 한 무소불위의 노조 집행부가 있어서 가능하다. 하지만 그동안 노조의 회계에 대해 검증할 외부적 장치가 존재하지 않았다. 현행 노동조합법에는 노조의 회계감사 기준이나 외부 공개 규정이 없다. 미국의 경우 1년에 25만 달러(약 3억2000만원) 이상 예산을 운용하는 노조는 노동부에 내역을 보고해야 하고, 영국도 노조 회계에 대한 행정 관청 연례 보고를 의무화하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건설노조를 포함한 양대 노총의 전체 예산이 각각 1000억원 넘는 것으로 추산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주는 각종 보조금도 있다. 양대 노총은 매년 감사를 받고 있다지만 중립적 외부인이 참여하지 않아 투명성이 문제돼 왔다. 이런 ‘깜깜이 회계’ 탓에 내부 비리도 빈번했다. 지난 4월에 조합비 3억7000만여원을 빼돌린 전 민주노총 지부장이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지난 6월에는 한국노총 건설산업노조 간부가 10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노조 주요 집행부를 자기들끼리 임명해 제대로 감시받지 않았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8일 “노조 재정 운용의 투명성 등 국민이 알아야 할 부분에 대해 정부도 과단성 있게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300인 이상 노조의 회계자료 정부 제출 의무화를 골자로 한 노조법 개정안을 지난 20일 발의했다. 법에 보장된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반발이 나오지만 노조의 재원을 막자는 게 아니라 투명화해서 내부의 불법행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자는 게 노조 탄압이라는 논리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참에 회계를 스스로 투명하게 밝힐 수 있는 노조의 자신감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