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서
- 정병근
너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어서
나는 얼마나 벅찬지
모를수록 너는 내 눈에 낯설고
그 설레는 미지
너는 더없이 순정하고 달콤한 오해
나날이 기뻐서 기약하는 말은
야속한 이별의 내막이 될 테니까
대답을 조심해야지 백 번의 마음으로
어제와 오늘을 순순히 고백한다
목을 젖히며 웃는 너를 볼 때
계시처럼 무엇을 알고 있는 내가 두려워
아무 일 아닌 듯 안경에 티나 닦으면서
그것은 먼 일일 테니까
너와 있는 날은 기쁘고 서러워서
나는 한순간에 다 살고 돌아온 마음으로
너를 자꾸만 모르려고 애쓴다
총명한 눈의 표정으로 너는
내게 말을 던지고 말을 채근하고
다른 곳을 쳐다보며 나는
네가 너라서 얼마나 좋은지
ㅡ시집 『중얼거리는 사람』(여우난골,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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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를 돌보는 일은 보은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이 딸만 둘을 낳았으니 대가 끊긴 셈인데요
우선 아이들이 귀여우니 나중 일은 생각하지 못한 채로 지냅니다
부모보다 더 많이 얼굴을 대하니 아쉬운 게 있을 때마다 조부모를 찾습니다
어린이 집에 데려가고 데려오는 일도 벅차지만 같이 놀아주는 일은 아주 힘겹네요
그래도 '너라서' 괜찮으니 이게 핏줄인가 싶기도 합니다
할머니가 모임이라서 잠시 떨어져서 휴일을 보낸다고 눈물을 글썽이는 너희들...
이렇게 지나가는 나날도 괜찮다고 억지로 마음을 달래는 휴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