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모범적 신앙성도가 되라
데살로니가 전서 1:1-10
데살로니가 전서의 총 제목은 한마디로 '모범(model)'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장의 제목은 '모범적 성도'이며, 2장의 제목은 '모범적 전도자', 3장의 제목은 '모범적 사랑', 4장의 제목은 '모범적 성별', 5장의 제목은 '모범적 소망'인데, 특별히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주시는 교훈은 두 가지 표어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첫째, 모범적 성도가 되어 복음전도에 힘쓰자(1-2장)이며, 둘째, 사랑으로 하나되어 거룩하게 살다가 오실 주님 맞이하자(3-5장)입니다. 오늘은 본문을 중심하여 '모범적 신앙성도가 되라'(믿음의 소문난 교회)의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번째 모범적 성도가 되어 복음전도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먼저 1절의 말씀을 보면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에서 은혜와 평강이 넘칠때 모범적 성도가 되는 것이며 그러면 은혜와 평강은 누구에게 있다고 하였습니까?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라야 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참 믿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는 새생명으로 태어난 신앙 성도를 말합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7절 말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에서 새로운 피조물서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로마서 8장 14절에서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은 항상 성령의 인도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는 영생의 기업을 확신하는 자들입니다(요10:28).
또한 모범적인 성도는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자들입니다. '은혜'라는 의미는 하나님이 인간을 향하신 사랑의 행위로서 다시 살아 났다는 의미의 '소생(Quickened)', '새로워 지고 빛난다(Enlightened)', '능력(Strengthens)', '위로(Comforted)', '변화(Transform)'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렇듯 은혜가 넘친 교회는 그 결실이 중요합니다. 우선 개인의 영혼이 구원을 받고, 인생의 구원사역이 확산되므로 하나님 나라의 치소가 되는 그리스도의 왕국이 건설됩니다. 또한 모범적인 성도의 모습은 평강이 넘치는 것으로써 그리스도께서 평화의 왕으로 오심으로 해서 어두움에 빛을 발하며(요1:3), 두려움이 기쁨으로 변하고(눅2:9-10), 하나님의 평화가 성취되는 것입니다(엡2:14). 이렇게 평강한 성도나 교회는 하나로 뭉치게 되며,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개선되며, 이 평강의 내용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늘과 땅이 통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형제들이 모인 성회요, 공동체(Community)로서 말씀을 받고 주를 영접함으로 인격의 변화를 받게 되며, 회개하고 성령을 받아 양심의 변화가 오게 됨으로써 부활의 주님을 영접함으로 새생명으로 성화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 하나님의 사랑받는 형제되어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 해야 하겠습니다. 본문 2절에서 4절까지 살펴보면 믿음의 산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요한일서 5장 12절에 "아들이 있으면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으면 생명이 없다"고 말씀하심대로 절대 신앙의 특징은 바로 생명력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영어로 'Belife'인데 동사로 'Belive'는 믿음이 있는 자는 움직이며 생동한다는 뜻이며, 'Belief'는 즐겁다라는 의미로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안에 구원의 감격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또한 'Belove'는 사랑스럽다라는 뜻으로 잘생기고 못생긴 것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자녀는 언제 보아도 사랑스럽다라는 의미입니다.
오늘의 현실은 맥빠진 사이다와 같이 신앙의 영성을 상실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신앙의 영성은 청춘기를 지나간 오후 3시쯤의 상태요, 중국은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요, 일본인은 부지런한 장사꾼으로서 물건을 만드는 경제 동물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은 어떠한 상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 한국의 자랑은 믿음의 역사라고 할 수 있지만 오늘날의 신앙은 모든 것을 상대화하며 중성화시키려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모습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할 때, 우리는 기독교 신앙은 절대신앙임을 다시한번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신앙은 신앙을 위하여 부모와 처자와 공민권과 생명을 다 포기하는 순교적 신앙이었습니다. 유명한 공산주의자 '도그라스 하이드(Douglas Hyde)'가 신앙인으로 전향한 후 그의 과거를 회상하며 한 말이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나의 생명 나의 전부였다. 나는 그것을 위해 아침에 잠을 깨고 잠을 자며 꿈을 꾸었고 이 공산주의는 나의 아내요 나의 생명이었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마다 그의 믿음이 이같은 정도의 사람이 10명만 있어도 큰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형제는 이외에는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 모범적 성도나 교회는 믿음에 소문난 성도나 교회를 말합니다(1:5-10). 믿음에 소문난 성도는 첫째, 복음에 대한 구원의 확신이 있는 성도 입니다. 이는 이론적인 교인이 아니라 능력과 확신을 체험한 믿음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의 말씀대로 모범적 교회는 '디다케'의 교회 즉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일에 힘쓰는 교회로서 제자훈련을 시키는 교회를 말합니다. 둘째, 믿음에 소문난 성도는 능력천래의 감화력과 성령의 감화력의 원동력으로 사랑이 생선되며, 깊은 확신이 있는 자들인것입니다.(롬8:31,33,35). 셋째 모범적 성도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주를 닮아 가는 자들입니다. 말씀의 씨앗을 바로 받으면 진리안에서 믿음의 뿌리가 박히게 됩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고 이를 순종하게 되면 주님을 닮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닮는다라는 것은 혈육으로 닮고, 사랑하면 닮는다고 하지만 진리를 따라 살면 진리되신 주님을 닮게 됩니다(갈4:19, 갈6:17).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간 산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에서 사도바울이 고백한 것을 통해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넷째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는 성도들입니다(10절). 이는 소망의 절정으로서 데살로니가전서의 매장마다 '그리스도의 강림'이라는 문구가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1:10, 2:19, 3:13, 4:16, 5:23). 성도들의 영적생활에는 세상과의 구별된 삶과 자신의 신분을 지키며 종국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는 세 요소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리스도인의 신앙이란 언제나 종말론적 신앙이라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불의와 진리가 섞여 있으며 진리가 왜곡되어 있지만 세상의 역사가 끝나고 심판의 주님이 오시는 그날을 대망하게 됩니다.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세가지 방향의 관계에서 필요한 신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먼저는 자신과의 관계에서 합격해야 하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합당한 신앙을 가지고 세상과의 관계에서 바른 소문이 들려야 합니다. 오늘 이 교회와 성도들의 심령에 은혜와 평강이 풍성하며,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하여서 데살로니가교회처럼 세상에서 아름다운 믿음의 소문을 들리게 하는 모범적인 신앙의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데살로니가 전서의 총 제목은 한마디로 '모범(model)'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장의 제목은 '모범적 성도'이며, 2장의 제목은 '모범적 전도자', 3장의 제목은 '모범적 사랑', 4장의 제목은 '모범적 성별', 5장의 제목은 '모범적 소망'인데, 특별히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주시는 교훈은 두 가지 표어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첫째, 모범적 성도가 되어 복음전도에 힘쓰자(1-2장)이며, 둘째, 사랑으로 하나되어 거룩하게 살다가 오실 주님 맞이하자(3-5장)입니다. 오늘은 본문을 중심하여 '모범적 신앙성도가 되라'(믿음의 소문난 교회)의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번째 모범적 성도가 되어 복음전도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먼저 1절의 말씀을 보면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에서 은혜와 평강이 넘칠때 모범적 성도가 되는 것이며 그러면 은혜와 평강은 누구에게 있다고 하였습니까?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라야 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참 믿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는 새생명으로 태어난 신앙 성도를 말합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7절 말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에서 새로운 피조물서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로마서 8장 14절에서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은 항상 성령의 인도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는 영생의 기업을 확신하는 자들입니다(요10:28).
또한 모범적인 성도는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자들입니다. '은혜'라는 의미는 하나님이 인간을 향하신 사랑의 행위로서 다시 살아 났다는 의미의 '소생(Quickened)', '새로워 지고 빛난다(Enlightened)', '능력(Strengthens)', '위로(Comforted)', '변화(Transform)'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렇듯 은혜가 넘친 교회는 그 결실이 중요합니다. 우선 개인의 영혼이 구원을 받고, 인생의 구원사역이 확산되므로 하나님 나라의 치소가 되는 그리스도의 왕국이 건설됩니다. 또한 모범적인 성도의 모습은 평강이 넘치는 것으로써 그리스도께서 평화의 왕으로 오심으로 해서 어두움에 빛을 발하며(요1:3), 두려움이 기쁨으로 변하고(눅2:9-10), 하나님의 평화가 성취되는 것입니다(엡2:14). 이렇게 평강한 성도나 교회는 하나로 뭉치게 되며,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개선되며, 이 평강의 내용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늘과 땅이 통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형제들이 모인 성회요, 공동체(Community)로서 말씀을 받고 주를 영접함으로 인격의 변화를 받게 되며, 회개하고 성령을 받아 양심의 변화가 오게 됨으로써 부활의 주님을 영접함으로 새생명으로 성화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 하나님의 사랑받는 형제되어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 해야 하겠습니다. 본문 2절에서 4절까지 살펴보면 믿음의 산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요한일서 5장 12절에 "아들이 있으면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으면 생명이 없다"고 말씀하심대로 절대 신앙의 특징은 바로 생명력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영어로 'Belife'인데 동사로 'Belive'는 믿음이 있는 자는 움직이며 생동한다는 뜻이며, 'Belief'는 즐겁다라는 의미로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안에 구원의 감격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또한 'Belove'는 사랑스럽다라는 뜻으로 잘생기고 못생긴 것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자녀는 언제 보아도 사랑스럽다라는 의미입니다.
오늘의 현실은 맥빠진 사이다와 같이 신앙의 영성을 상실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신앙의 영성은 청춘기를 지나간 오후 3시쯤의 상태요, 중국은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요, 일본인은 부지런한 장사꾼으로서 물건을 만드는 경제 동물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은 어떠한 상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 한국의 자랑은 믿음의 역사라고 할 수 있지만 오늘날의 신앙은 모든 것을 상대화하며 중성화시키려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모습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할 때, 우리는 기독교 신앙은 절대신앙임을 다시한번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신앙은 신앙을 위하여 부모와 처자와 공민권과 생명을 다 포기하는 순교적 신앙이었습니다. 유명한 공산주의자 '도그라스 하이드(Douglas Hyde)'가 신앙인으로 전향한 후 그의 과거를 회상하며 한 말이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나의 생명 나의 전부였다. 나는 그것을 위해 아침에 잠을 깨고 잠을 자며 꿈을 꾸었고 이 공산주의는 나의 아내요 나의 생명이었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마다 그의 믿음이 이같은 정도의 사람이 10명만 있어도 큰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형제는 이외에는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 모범적 성도나 교회는 믿음에 소문난 성도나 교회를 말합니다(1:5-10). 믿음에 소문난 성도는 첫째, 복음에 대한 구원의 확신이 있는 성도 입니다. 이는 이론적인 교인이 아니라 능력과 확신을 체험한 믿음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의 말씀대로 모범적 교회는 '디다케'의 교회 즉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일에 힘쓰는 교회로서 제자훈련을 시키는 교회를 말합니다. 둘째, 믿음에 소문난 성도는 능력천래의 감화력과 성령의 감화력의 원동력으로 사랑이 생선되며, 깊은 확신이 있는 자들인것입니다.(롬8:31,33,35). 셋째 모범적 성도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주를 닮아 가는 자들입니다. 말씀의 씨앗을 바로 받으면 진리안에서 믿음의 뿌리가 박히게 됩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고 이를 순종하게 되면 주님을 닮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닮는다라는 것은 혈육으로 닮고, 사랑하면 닮는다고 하지만 진리를 따라 살면 진리되신 주님을 닮게 됩니다(갈4:19, 갈6:17).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간 산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에서 사도바울이 고백한 것을 통해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넷째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는 성도들입니다(10절). 이는 소망의 절정으로서 데살로니가전서의 매장마다 '그리스도의 강림'이라는 문구가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1:10, 2:19, 3:13, 4:16, 5:23). 성도들의 영적생활에는 세상과의 구별된 삶과 자신의 신분을 지키며 종국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는 세 요소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리스도인의 신앙이란 언제나 종말론적 신앙이라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불의와 진리가 섞여 있으며 진리가 왜곡되어 있지만 세상의 역사가 끝나고 심판의 주님이 오시는 그날을 대망하게 됩니다.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세가지 방향의 관계에서 필요한 신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먼저는 자신과의 관계에서 합격해야 하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합당한 신앙을 가지고 세상과의 관계에서 바른 소문이 들려야 합니다. 오늘 이 교회와 성도들의 심령에 은혜와 평강이 풍성하며,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하여서 데살로니가교회처럼 세상에서 아름다운 믿음의 소문을 들리게 하는 모범적인 신앙의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