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의 옵니버스
유병수 / 시인. 소설가
캐나다한인문학가협회회원
하나, 가벼워지는 것과 무거워지는 것에 대해 – 삶이, 생각이,
무거웠으니 무거움에 집착하고 무거움에 연연해할 수밖에, 목에
가죽 끈을 맨 개처럼 땅바닥이나 핥고 다닐 수밖에.
몸무게를 버려라 몸무게를.
둘, 고통스런 영혼에 대해 – 선명한 고통에는 무엇인가
영혼에 유익한 것이 있다.
어떠한 사상도 어떠한 감각도 격렬한 고통처럼
선명한 데까지 도달할 수 없다.
좋든 나쁘든 그것은 세계를 직시한다.
더욱이 그 아픔 그 외로움의 너무나 선명한 기억은
오히려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셋. 왜 쓰는가, 용서와 복수의 변증법에 대해 – 왜 쓰는가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이청준이 말한 <작가의 손>에 공감한다.
자기를 낳게 한 땅 자신이 살아 가면서 패배했던 시대
상처 받았던 삶으로부터의 끊임없는 복수와 더불어
자기성찰을 통한 화해 그 용서와 복수의 변증법을.
넷, 산문적 혹은 운문적 사고에 대해 - 가끔 알면서도 속아 준다.
그에게 모질게 말할 용기도 없지만
그런 방법으로 사는 그에게 굳이 따질 필요도 없다.
자신의 입장을 자기의 주의 주장을 유치함에도 불구하고
대화 도중 교묘하게 밝히는 화술이 능한 사람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뛰어 넘으려는,
느낌으로 대하려는 나. 운문적인 사고에서
산문적인 사고로 바꾸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섯, 허영심 혹은 콤플렉스에 대해 – 허영심은 두 가지
맥을 갖는다. 하나는 평범하지 않으려는 허영심 그리하여
남과 다르다는 생각과 함께 자신과의 치열한 고독과
싸우면서 정진하려는 허영심. 또 하나는 욕망에 대한,
채우려는 것에 대한 허영심, 일종의 콤플렉스 같은 것.
그리하여 그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허영심. 그 중에서
때로 문화적인 허영심은 결국 문화와 적이 되고 만다.
첫댓글 12월 31일 중앙일보 문학가산책란의 세밑을 장식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