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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수행편/ 제 11장 계문
2. 특신급 십계문 1,2조
김제원교무님 설법
-서론 (보통급과 특신급)-
지난주까지 보통급계문이 끝나고 오늘은 특신급 계문입니다. 보통급하고 특신급은 차이가 있습니다. 일단은 입문하면 보통급 10계를 받습니다. 법명, 입교증, 보통급 10계문은 사종의무 입니다. 4~9년 흐른 후에는 예비 특신급에 올라갑니다. 그 다음 4~6년 흐른 후 정식 특신급에 올라갑니다. 정식 특신급은 특별한 신심이 났고 내가 몸과 마음을 이 회상에다 내가 맡길만하며 다 내 놓을 만하는 확신이 든 것입니다. 일반 사회에서 특신급이 되면 저 사람 뭔가 다르다는 말들을 듣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지난주까지 배웠던 보통급 10계문을 지켜나가기 때문이죠. 보통급 십계문만 지켜나가도 그 사람은 악도를 면하게 되고 기본적으로 그 사람은 리더가 되어가기 시작합니다. 지도자가 되어갑니다. 살생한 사람이 리더가 얼마나 되겠으며 술 먹고 취해서 무슨 지도자가 될 것이며 잡기하는 사람이 무슨 집안을 흥하게 하겠습니까? 성불 제중할 수 있겠습니까? 악한 말 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겠습니까? 쟁투, 공금범한 사람 누가 앞자리에 세우겠습니까? 금전여수, 담배 기본적으로 이걸 지켜 나간 사람은 ‘까닭 있고 범부와는 다르며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런데 특별한 신심이 나면 기운이 달라집니다. 자기 마음도 상당히 편안해 집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들뜬 마음이나 기운이 맑아집니다. 보통급이거나 보통급이 아닌 사람은 대개 기운이 탁하고 탐심이 많기 때문에 계문을 어겨서 스스로가 스스로의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또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못 받기 때문에 사랑을 갈구하게 되고 자꾸 칭찬을 못하게 되죠. 그러나 특신급만 되도 그렇게 칭찬을 쫓아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스스로 내면의 재미가 있어지기 때문이죠.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신(信)은 정(定)이라고 합니다.
信 = 定 = 靜 => 安=> 明 => 通
믿으니 마음이 정(定)해지고 마음이 정(定)해지니 고요해 집니다. 고요해 지니 편안해 집니다. 편안해 지니 밝아지죠. 맑아지고 밝아지게 되고, 밝아지니 통하게 됩니다. 이 믿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큰 영향력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안정이 되고, 밖으로 향하던 마음이 이제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마음에 스승이 나타나게 됩니다. 법, 스승, 교단 이런 진리 가슴속에 품고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보통급만 되도 욕심에 차있고 명예, 쾌락을 향해 달려가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특신급만 되도 안에 진리 스승 법 회상 여기에 대한 가치가 들어옵니다. 법문을 읽으면 재미가 있고 경전을 보면 탄성을 냅니다. 재미가 관심이 생겨 시간사용 이 달라집니다. 특신급만 되도 그렇습니다. 지금 여기에 청년들이 많이 있지만 정식 특신급은 몇 안됩니다.
언제 누가 나갈지 모르지요. 정식 특신급들은 누가 콕 찔러도 신경질 내도 나가지 않습니다. 이 강의를 하면서도 특신급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굳이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채울걸 로 알고 해야겠지요? 특신급이 되면 일단 마음, 생각, 신앙, 사업, 정성이 다른 세상 즉 속세 밖으로 나가는 것이 줄어듭니다. 중생들은 항상 밖을 살피지만, 특신급만 되어도 내 안을 살피고, 내 마음을 바라 봅니다. 그리고 관심이 쾌락이나 일시적 감정을 쫓아가는 것이 아닌 법을 쫓아갑니다. 수양을 해보고 기도를 하고 나서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특신급이 되면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하지만 보통급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전부 칭찬만 들으려고 합니다. 특신급만 되도 기도를 하고 나서 참회를 하게 되고 사은에 대한 감사를 느끼게 됩니다. 또 교리를 들으면 재미가 있습니다. 법문 들을 때 시간 간줄 모릅니다. 하지만 보통급들은 시간을 짧게 해달라고 합니다. 특신급만 되어도 ‘감사합니다. 오늘 제 마음이 많이 반성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걸로 한주 살아보겠습니다.’라 하지만 보통급은 그러지 못 합니다. 그리고 특신급이 되면 계문 지키는 수준이 달라집니다. 보통급의 기본은 지켜집니다. 보통급 계문 지키지 못한 사람이 성불의 길에 간다? 미안하지만 어려운 일입니다. 보통급 십계 살도음, 술, 잡기, 악한말, 공금, 금전여수, 담배 이런 것을 끊지 못한 사람이 특신급에 올라가기 어렵고 올라간다 해도 결국 지도자 괴롭히고 다른 사람 신심 떨어뜨리게 하고, 지도자를 뒷담화 하고, 마음먹고 온 순수한 사람 오염 시킵니다. 정식 특신급만 되도 막 교당에 오고 싶어합니다. 법회시간 겨우 돼서 지각 해 온 사람은 아직 정식 특신급이 아닙니다. 정식 특신급이 되면 막 교당 오고 싶어야 합니다. 교무님과 한번 이야기 해보려고 노력하고 무엇을 좋아하시나 관심도 가지는 사람이 이게 특신급입니다. 아무 관심도 없는걸 보니 모두들 보통급이시네요. ㅜㅜ
보통급은 계문을 바라볼 때 ‘아 왜 이렇게 금지가 나를 답답하게 하지? 부담을 주지?’ 이렇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특신급만 되어도 이게 ‘내 자유를 위한 행복 안내이구나. 마음공부에 연결이 되는구나. 점차 악업을 업을 경감시키고 이렇게 살면 건강해지고 자신감도 붙어지겠다.’ 하는 긍정적 사고로 전환됩니다. 하지만 보통급 때는 긍정적 사고가 안 됩니다. 계문이 부담스러우십니까? 그렇다면 보통급입니다.
-본문(특신급 1,2조)-
1. 공중사를 단독히 처리하지 말며,
원불교에 들어왔더니 특이한 말이 있는데, 이 공중(公衆)이라는 말입니다. 또는 공중사(公衆事) 또는 공사(公事) 라고 합니다. 대개 공사(工事)로 생각하죠. 공사장의 공사가 아니라 공변된 공자를 쓴 일, ‘회의’라는 말을 원불교에서는 공사하자고 쓴다. 특이한 용어입니다. 하지만 이 특이한 용어가 상당히 의미가 있습니다. 이 공(公)자를 보통사람들은 부담스러운 소리이고 가까이하기에는 왠지 거리 감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원불교 생활을 하면 ‘이 공(公)자가 나이고 공(公) 없이는 안 된다.’ 라고 생각합니다. 공적개념이 정신세력 확장이라는 소리는 공적개념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고 그 사람이 철이 드는 것이며 공적개념 확대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사적인 사적 개념이 갈수록 공적개념은 줄어듭니다. 공중사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무엇이 공중사인가요? 보통급들은 ‘어른들이나 똑바로 잘하시오’라고 생각 합니다. 그게 아니라 공중사는 두 사람 이상이면 모두 공중사입니다. 가족 간에도 의견교환을 통해서 가족회의를 하고 단장중앙도 단회를 진행하는데 모두 공중사입니다. 그런데 단원이 집안에 특별한 일이 있어서 법회를 참석 못한다고 아무 연락 없이 일 보러간것은 공중사 단독처리입니다. 왜냐하면 단원은 열 가지 시방 중에 하나를 맡은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연락 안하고 빠지다니요. 보고를 해야죠. 단장, 중앙 즉 지도인에게 보고를 해야지 공중사 단독처리가 아닌 겁니다. 공중사 단독처리는 주로 윗사람이 단독 처리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랫사람이 주로 단독 처리하는 것입니다. 보고도 없이, 공중사 단독 처리한 것들 중 제일 첫 번째 이유는 무지입니다. ‘어? 몰랐는데요?’ 말씀드려야 하는지 몰랐다는 식이죠. 옛날에 대종사님 당대에는 여자들이 걸레 빨래를 해서 널을 때도 대종사님한테 ‘어디다 널어야 하는 거예요?’ 물어보았고 ‘저기다 널어라.’ 지시 하셨다고 한다. 다 물어서 하는 것이다. 물어서 하십시요. 알아서 하지 마시고요. 예를 들어 교정원장님이 행정수반이니까 혼자 처리 할 것 같지죠? 거의 종법사님께 지시를 받습니다. 중대한 사항은 맨 윗사람도 아랫사람과 의견교환을 해서 결정해야 합니다. 자기 책임 범위 안에서는 본인이 결정해도 된다는 생각은 말고 그 내에서도 중대한 사항은 아랫사람하고 상의해서 결정해야 합니다. 더 웃긴 것은 아랫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다 처리하는 것입니다. 제가 제일 곤란한 것이 무엇 이였냐면 단원 또는 단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다 처리해 놓고 ‘나중에 교무님 모르셨어요? 알고 계신 줄 알았는데?’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처리할 때는 보고하고 상의해서 대중이 결정하도록 해서 처리하십시오.
公義
共和
그것이 바로 공화제도입니다. 원불교는 공화제도입니다. 그리고 공의정신입니다. 원불교에 들어왔다 하면 개인이 공인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다 공인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일원상 자리는 지공무사한 자리죠. 여러분 일원상 아니에요? 일원상이잖아요. 아니라는 사람 있나요? 그리고 여러분 부처님이죠? 때로는 말 안 듣고 성질내는 부처지만요. 본래 일원상은 지공무사라 (至公無私) 사가 없습니다. 여러분들 제 목소리를 듣는데, 무엇이 듣나요? 많은 사람들이 듣고 있는 주체의 실체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은 ‘사’의 관점인거죠. 그 ‘사’는 여러 가지이죠. 하지만 실제로 여러분은 여러분이라고 할 것이 없는 지공입니다. 이걸 먼저 이해 하셔야 합니다.
나만 그러냐? 누구나 그렇습니다. 나만 공인이냐? 누구나 공인입니다. 이게 처처불상 원리로 같이 맞물려 들어갑니다. 왜 민주주의가 생겼는지 아십니까? 옛날에는 지도자가 대중을 다스리는 체제였어요. 물론 합의제도가 있긴 했죠. 그런데 지도자가 갈팡질팡 하는 것이에요. 세종, 정조 같은 지도자는 괜찮지만, 그런데 배신한 지도자들은 안되는 거죠.
그런 것들을 보완하기 위해 민주제도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원불교 공화제도라고 하는데 그 말은 곧 민주제도입니다. 처처불상 시대에 맞는 소리이죠. 그렇죠? 그런데 자기 맘대로 한다고요? 지도자가 인격이 뛰어나고 비범하고 헌신적일 때는 좋아요. 영통, 법통 다 한 지도자들 말이죠. 그러나 앞으로 시대에는 그런 어른마저도 공의제도를 거치게 해야 합니다. 이왕이면 탄탄하게 두드려 보는게 좋은거죠. 공의 제도는 여러 가지 뜻이 있어요. 회의를 않고 딱 통과됐다고 전달 받으면 무슨생각이 들어요? ‘저희들끼리 다 해먹는다.’ 라는 생각이 들죠. 관심, 합력을 못 받게 하기도 하고 ‘그 결정 난 따를 수 없다.’라는 생각을 만들기도 하죠. 회의를 한다는 건 같이 생각을 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때로는 좋은 의견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말이 있듯이 여러 사람이 의견을 모으다 보면 좋은 의견이 나와요. 그래서 대종사님의 솔성요론에 ‘열사람의 법을 응하여 제일 좋은 법으로 믿을 것이요.’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원불교학과 다닐 때 도올 김용옥씨랑 함께 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김성렬, 신구씨를 모셔서 연극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을 쓰려니 돈은 마련을 해야겠고 그래서 사람을 오게 해야 하는데 포스터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이렇게 앉아서 회의를 했습니다. 포스터를 만드는데 의견이 계속 달라졌지만, 결국 아이디어가 계속 좋아지는 방향으로 향해졌습니다. 그래서 기가 막히게 나왔지요. 저는 그 때 확실하게 체험했습니다. ‘아 대중의 의견을 모으면 정말 좋아지는 구나!’라고 말이죠. 우리 교당에도 회의를 합니다. 청년들은 ‘회장단 회의’와 ‘회장단회의’ 전에 임원들 모여서 또 ‘사업단 회의’를 하고, 또 단장중앙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부서별로도 회의를 합니다. 이렇게 회의는 미리 불공의 극치이고 주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회의를 통해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자기가 의견을 내서 채택 되면 기분 좋지죠? 예전에는 대종사님이 아이디어를 내서 채택이 된 사람에게 성적을 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주방 회사에서도 주방용품 만들더라도 나름 회의를 해서 만들죠. 그래서 시장에 내 놓았는데 판매대리점의 의견을 즉시 수렴하는 회사가 있고, 하지 않는 회사가 있습니다. 의견을 수렴하는 회사는 바로바로 수정해서 더 보완된 제품을 팔지만 아닌 회사는 그러지 못 하죠. 그리고 옛날에 남자들이 아파트 설계를 했는데 언제부턴가 주방이나 이런 곳을 여자가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훨씬 좋아졌지요. 남자들은 주방을 잘 모릅니다. 또 고속도로 설계를 보게 되면 멍청한 설계사는 화장실 크기가 남자 여자 똑같이 만드는데 그러면 안 되죠. 남자, 여자의 사용 시간이 서로 다른데요. 여자 칸은 한 두 칸 더 만들어야 합니다. 이렇듯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면 좋은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공의제도라는 것은 여러 사람의 원만구족 지공무사한 것을 개발시키면서 서로 동지애도 나오고, 서로 지자본위가 되면서 지혜가 나오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죠? 자기가 머리 좋다고 여러 사람 머리 합한 것보다 얼마나 좋겠어요? 진짜 지혜 있는 사람은 여러 의견 합합니다. 하지만 어중간한 사람은 다른 사람 의견을 무시 합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보면 처음에 잘 안도와 주잖아요. 그래서 안 도와주니까 차라리 나 혼자 하겠다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게 되면 하면서 원망이 쌓이고 반대로 지켜보는 사람은 ‘너 혼자 다 해 먹냐?’ 하고 불만이 쌓이죠. 그러니 결국 일의 성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사람의 심법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잘하는 게 중요 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동의가 되고 문제가 해결되고 공적인 것을 우선시 하는 문화가 중요한 것이죠. 그렇게 되면 당연히 일은 잘 풀립니다. 일만 놓고 보면 때로는 서운해서 막 배제시키죠. 그러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이 한사람이 아니고, 그 하나를 무시하면 큰 코를 다치게 됩니다. 집단 지혜를 알 수 있는 것이 회의 문화입니다. 그리고 의두연마가 아주 잘 되는 것 중에 하나가 회화거든요. 회화를 하다보면 엄청난 지혜가 향상 됩니다. 집에서 혼자 책 보는 것 못지않아요. 그게 회의라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공도자와 지자가 나오게 된다. 그러면 우자라던가 신입이어서 잘 모른다거나 하는 사람은 그 회의를 통해 쭉쭉 커 나가게 되죠. 그 사람이 나중에 또 지도자가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면 자기 권한을 넘어서서 해나가는 사람이 있죠. 직권남용도 물론 있어요. 하다보면 그럴 때도 있습니다. 회의를 통해 어떤 공부가 되냐 하면 다른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 공부, 즉 성질을 조절하는 공부가 됩니다. 그래서 회의를 통해 다른 사람도 지혜가 있다고 인정하는 문화가 꼭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할수록 회의를 안 하려합니다. 그리고 성질이 급한 사람일수록 회의를 안 하려 하지요. 또 공명심 있으면 회의를 안 하려 합니다. 자기가 잘났다고 하는 사람도 회의를 잘 안하려 하지요. 사업에 성공한 사람 중에 한 번 성공한 사람이 계속 성공할 수 있지만, 그 성공 때문에 더 실패한 사람이 있는 이유를 아십니까? 왜 그런 줄 아세요? 그 성공 때문에 자신을 과신하게 되면 그렇게 됩니다. 시대는 흘렀는데 자기가 성공했다 해서 그것을 계속 해서 적용하니 그렇죠. 어중 뜨기 성공한 사람은 그 점을 과신해서 회의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회의를 할 때 에는 원래 노인, 장년, 청년 같이 엮어져서 회의해야 합니다. 그런데 경륜이 있다고 노장만모여서 회의한다거나 하면 안되는 겁니다. 때로는 반대의 입장에서 던져봐야 합니다. 그 속에서 느닷없이 좋은 의견이 나오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래야 다시 조정해 나가지죠. 집에서도 아이가 의견을 내면 느닷없이 좋은 의견을 낼 수도 있죠. 그냥 내가 시킨 대로 해? 이건 아니죠. 공중사를 하게 되면 여러 가지 공부가 같이 엮어져 있습니다. ‘소(小)자리에 대한 이해와 각각의 특성이 다름을 이해하는 문화도 회의를 통해서 공부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회의를 잘 못하면 원수가 됩니다. 생각이 다르면 저 사람은 틀린 놈, 멍청한 놈 이 되는 거죠. 그러나 그것이 착각입니다. 소(小)자리라는 것은 들판에 가면 온갖 꽃과 풀이 다 다르듯 회의를 해보면 그 사람 지혜나 성장과정이나 경험이 지역별로 특성별로 다 다른 것과 같습니다.
생각이라는 것도 함께하고 의논도 함께하고 책임도 함께 집니다. 이게 장단이 있긴 합니다. 함께했을 때 힘이 나게 되죠. 조그마한 것은 혼자 해도 되지만, 조금만 사업을 크게 하고 중간간부로 넘어 가면 절대 혼자는 못합니다. 함께하는 능력이 있지 않고는 다른 사람의 동의를 구하고 양보하고 때로는 배려하고 손해보고 때로는 모른 척 져주고 등등 그런 것들을 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결국 큰일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회의문화가 묘합니다. 회의만 했다하면 전투고, 원수가 되어서 나오는데 희안합니다. 자본주의를 만든 사람이 큰 잘못을 한 것이 있습니다. ‘적자생존’입니다. 같이 살아가면서 조금 약하면 그런 것이지 강자만 살고 다 죽는다는 시각은 아니잖아요? 그러니 자본주의가 문제가 많은 거죠. 함께 살아가면서 약자는 약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상생해나가야 하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 잘난 놈만 살기 때문에 경쟁체재가 되니 자본주의 문제가 많은것이죠.
때로는 속도를 늦출 수도 있고요. 급하고 작은 일은 있어봤자 얼마나 됩니까? 큰일에 대해서는 더 같이 해보고 계속 하면서 때로는 워크숍해보고 공청회 회의를 해보고 다양한 입장에서 다양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그 속에서 지혜단련이 되고 그 속에서 견성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처처불상 신앙 있어지는 것이죠. 그러면 마음이 원만해 지죠. 왜냐하면 현실의 세계 상대적세계이기 때문이죠. 착하기만 하면 성공합니까? 능력이 있어야 성공하죠. 능력이 있으면 성공해요? 안 착하면 성공 못합니다. 25만년 전에 생명이 나와서 수많은 생명이 같이 살고 있는데 결국은 서로 돕고 회의를 잘 하는 생명체가 제일 강자에요. 그게 사람, 개미, 꿀벌입니다. 이 종들은 회의를 통해서 같이 합력을 한다. 그러니까 제일 강자가 되었죠. 그런데 모기들은 회의를 안 합니다. 박테리아도 그렇고요. 그래서 제일 약한 것들입니다.
회의가 하나의 문화가 되어야 한다. 이 세상이 모두가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확립이 되고 그 속에서 질서와 통제를 회의를 통해 결정을 했으면 그것을 따라가 주어야 합니다. 크게 성공하려면 많은 사람을 함께 데려가야 하고, 많은 사람의 의견을 수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 생을 살아서 큰사람이 되려면 대중의 환영 옹호를 받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그 대중, 민심이 곧 천심인 것이죠. 그것이 사은님이죠. 사은님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기가 잘난 체하면 주위의 사람들이 다 떨어지게 됩니다. 너나잘하라고 말이지요.
이거하나만 잘 지켜도 가게 운영하는 사람은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직원들하고 회의하고 같이 의견수렴하고 서로 공유해서 같이 회의를 한다는 것은 저 사람 소중한 팀원을 인정한다는 것이 됩니다. 사실 제가 머리가 안 좋아요. 그래서 회의를 하며 좋은 의견을 많이 수렴합니다. 예를 들면 저 뒤에 거울이 있죠. 성현이가 의견을 낸 겁니다. 춤을 추니까 거울이 있어야 하는데 어디다 달까 고민을 하다가 성현이가 여기에 달자고 해서 달았는데 위치가 너무 좋습니다. 거울도 되면서 유리도 되고 또 뒤에는 도훈교우가 시트지로 예쁘게 디자인해서 꾸몄습니다. 저런 것은 내가 아이디어 못 냅니다. 대종사님 당대에도 공의정신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짧게 보면 공의가 엄청 귀찮은 것입니다. 일을 늦게 만들고 때로는 손해 보게 만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사업 제생의세 사업이 긴 것이거든요. 길게 볼 때는 한번이 손해지만 멀리 보면 그게 더 이익이 나는 게 많은 것이죠. 대종사님 당대에 누가 시내에 나가서 책상이 싸게 나온 것이 있어 불법연구회 도움이 되겠다하고 사서 대종사님께 ‘책상이 저렴하기에 사왔습니다.’라고 말해 칭찬 받을 줄 알았는데, 대종사님께서는 ‘그거 사자고 언제 회의했냐? 가서 물러와라.’라고 하셨답니다. 그래서 도로 물러가지고 왔죠. 한번 봐줘도 되잖아요? 애쓰고 공심을 했으니까요. 공심으로 했잖아요? 그런데 그 공심이 도에 맞는 공심이어야 하고 함께 합의 정신에 맞는 공심이어야 합니다. 공심이라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단독 처리하는 일로 교당이 휘청 휘청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꼭 그렇지 는 않습니다. 앞으로 미래사회는 다 처처불상시대입니다. 그러니 누구나 원만구족 지공무사한 지혜가 갖추어진 부처님이기 때문에 의견을 물으십시오. 애들한테도 묻고 직원한테 묻고 단원한테 물어 보십시요. 잘하는 단장은 단원이 열심히 하도록 단원이 단원을 챙기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면 예를 들어 오늘 누가 왔고 무엇을 했는지 안온 사람도 전체 흐름을 알게 해주는 것이지요. 오늘 누구 생일이라고 미리 알려주면 단원들이 서로 챙겨주지죠. 알려주지 않고 자기 혼자 챙겨 그러면 받는 사람 재미없고 서로 손님만 됩니다. 그래서 회의라는 것이 다 주인 만드는 일도 되는 것입니다. 대개 미리연마하지 않으면 급박하게 처리하게 됩니다. 화합이 깨지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공중사를 단독으로 처리하면 전부 손님을 만들고 화합을 깨버립니다. 거기에 잘못하면 집단 이기주의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니 지도자가 있어야 하고 항상 법에 대조해야 합니다. 옛날에 민노총 같은 경우가 집단이기주의에 묶여 있었고, 현차 노조도, 전교조 그랬습니다. 그 사람들은 처음에는 약자들을 돌봐주지 않으니까 좋은 역할 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집단 이기주의가 됐지죠. 집에서 옛날에는 아버지가 결정하면 다 따르고 그랬지만 요즘은 엄마가 결정하면 다 따릅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까요. 공사도 사심으로 하면 그 공사가 사사가 됩니다. 그러나 사사로운 일도 사적인 일도 공심으로 해버리면 그것이 바로 공사가 됩니다. 그리고 곧 은혜가 된다. 그래서 공적인 마인드를 빨리 확보하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 공적인 마인드가 부족하면 그 사람은 외롭습니다. 또 그 사람은 환영 못 받지요. 지금 당장은 이익을 받을 것 같지만 외롭습니다. 공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조금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그런데 그 사람이 결국 이익 봅니다. 어지간한 것들은 꼭 물어보고 하세요. 지자에게 묻고 스승에게 묻고 경험자에게 묻어 보십시오. 제가 그런 것이 참 많습니다. 진작 저에게 물어봤으면 알려줄게 참 많은데 알아서 해서 고생은 고생대로 돈은 돈대로 다 날리는게 참 답답합니다. 옛날에는 급해서 먼저 처리하고 그랬지만 요새는 그럴 일이 없잖아요. 모두들 카톡이 있잖아요. 저는 회의 중에도 받아요. 전자기기가 발달해서 옛날에는 선 처리 후 보고하는 일이 있었지만 요새는 그런 일 드물어요. 언제나 무시무제로 연락가능 하잖아요? 정보통신 기기를 소홀히하는 사람은 공심이 적은 것입니다. 그리고 공적인 마인드가 부족한 것입니다. 전화기 없으면 저도 편해요. 그러나 공인이라고 하는 것은 내 입장만으로 처리 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함께 해나가는 것이고, 일원주의는 대세계주의고 그것이 바로 공화주의 공화제도, 합의 정신입니다. 어떤 물건하나 빨리 싸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한편으로는 사은의 법률 보은도 됩니다. 회의를 통해 결정한 것을 따르는 것이 법률의 보은도 되는 것이죠. 그러나 예외사항은 항상 있죠. 자기가 최종책임자 일 때는 단독 처리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청년들에게 어떤 의견을 구하죠. 예를 들어 단 엠티를 갔다. 그것은 본인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죠. 나한테는 보고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7일간의 출가여행 어디로 갈까요? 같은 것은 의견을 구하죠. 그러나 최종결정은 때로는 내가 결정 할 수 있습니다. 의견은 구하되 어떤 사람은 내 주장 하나도 없고 묻기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정도 얼른 못하죠. 만약 대중이 어리석을 때는 지도자가 설득해 내서 결정 할 수 있다. 대중이 전체적으로 분위기에 휩쓸려 결정했다거나 또는 집단 이기주의 틀에 못 벗어나서 결정한 것은 또 과감하게 조정할 수 있고 설득해 내야합니다. 그러데 회의라는 것이 잘 못하면 지혜가 동반되지 않고, 신심이 동반되지 않으면 전부 무책임하게 됩니다. 제가 책임 질 일이 없죠. 같이 책임을 나눠버렸으니까요. 그런데 공이라는 개념이 함께이면서 그것이 내 일이라는 개념을 가져야 합니다. 곧 내 책임인 것이죠. 10명이 같이 했으니 10분의 1만 내 책임이라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같이 80점 맞자고 하니까 같이 40점 맞는건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하면 공산주의 되는 거죠. 성격이 자유분방한사람 회의를 참 싫어하죠. 회의라는 것은 집단 불공, 전체 불공, 미리불공, 조직불공 등 엄청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회의만 하면 빠지고 짧게 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회의를 짧게 하기 위해서하는 겁니까? 그리고 회의를 하려면 미리 준비를 잘해서 심사숙고한 의견이 있으면 그 의견을 연마해서 함께 결정하고 보완만하도록 회의를 해야지, 어떤 회의 안건도 없이 있다가 당일에 내고 결정하라고 하니 깊이 있는 생각 안 되고 번복할 수 있는 의견을 내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회의를 결정했으면 반드시 기록해야 하고, 그 다음에 지난 번 결정사항에 대해서는 ‘이렇게 처리되었습니다.’라고 하거나 또는 아직 미처리된 사유를 반드시 보고가 되어야 합니다. 대학 동아리들을 보면 회의 잘 안하고 기록 안한 동아리들이 지나고 나면 의견도 없고 10년 20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운영하고 있습니다. 회의를 한다는 것은 대중의 의견 모아서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고 과거의 것을 가져다 점검해서 업그레이드하고 계속 발전 시켜 나가는 것이죠. 교당에서도 회장단 회의, 교화협의회가 있을 때 빠져버리는 사람은 공심 없는 사람입니다. 공과 사가 겹칠 때 겹치지 않도록 미리 조절하고 설사 겹쳤을 때 공을 선택하는 것이 옳습니다. 자기만 사정 있나요? 앞으로 미래사회는 공인으로 공중사를 못해서 한입니다. 지금은 공중사 하는 사람을 바보로 알고 잘난 사람 네가 해라 하지만 앞으로는 공중사를 내가 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이 해서 못 하는게 한이라고 전망품에 대종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은 교당에서 청년회장을 서로 하려고 해야 합니다. ‘내가 한번 이렇게 해 보겠습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빠져 볼까 도망갈까’ 합니다. 이제 공인의 공심을 가진 사람은 앞으로 환영받는다. 자기 일만 크게 생각하고 공적인 일을 외면한다면 갈수록 대중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성공과 멀어지게 됩니다.
법륜 : 어떤 안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있음에도 구성원들이 이해 못 한다면, 이 좋은 안을 버려야 할지 모두 다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 해야할 지요?
좌산님이 방송교화하시다가 종법사님 되셨잖아요. 좋은 의견에 대해서 사람들이 오해 하는게 많아요. 어떤 이유든지 한방에 되는 게 많은 줄 아시나요? 내가 전농에서 공부방을 할 때에 쉽게 한게 아니였습니다. 당시에 법회나 잘 보라고 퇴짜를 맞았는데, 기분 좋으실 때나 밥먹고 때에 ‘오늘 날씨가 좋죠? 애들이 자꾸 하자고 하네요.’ 라고 이야기 하며 노력했습니다. 즉 모든 일이라는 것은 한방에 탁 되는 것이 아라는 겁니다. 설득해 내고 인지작업을 하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지 한번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할 때에도 태도와 평상시 신용도 기운이 모아져야 합니다. 종합의견이 옳다는 것 만이 옳은 것이 아니라 수많은 합력이 되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공중사를 하게 되면 세세생생 환영과 복 있고 공심 있는 사람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내생에도 자기가 잘났고 대중에게 환영 못 받는 사람입니다.
석원 : 조별과제를 할 때 단독 처리하지않고 어떻게 짧은 시간 안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법이 있을까요?
집단 카톡방에다 의견을 물어서 해결하십시오. 좋은 의견있어도 단독 처리하는 것 보다는 전체를 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카톡방에 의견을 올렸는데도 무시 원망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2. 다른 사람의 과실을 말하지 말며,
평균직장인 60프로가 30분 이상을 뒷담화 한다고 합니다. 특히 직장상사 와 동료를 말이죠. 왜냐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동질감을 느끼면 아주 기분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정서적 편안함과 함께 말이죠. 하지만 뒤는 왠지 불안하죠. 내 주변에는 사회지도자나 연예인이나 과실이 없는 사람이 없죠. 하지만 과실을 고의로 한 사람 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이것저것을 하다 보니 챙기지 못해 생긴 흠도 있습니다. 사람 몸이 둘이 아닌데 그렇게 생긴 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잡자면 한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계문중에 제일 많이 범하는 계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흉보고 험담 하는 이 계문에 해당 되지 않기 위해 대산종사님이 종법사 시절에 다른 교무님 들께 이랬답니다. 몰라서 그랬단다 이해해라, 어쩌다 그랬단다. 위 두 가지 말씀은 ‘우’와 ‘치’가 누구나 있는 것이니 과실을 말하지 말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관용해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어릴 적에 똥안싼 놈이 어디 있으면 나와 보십시오. 그리고 어렸을 때 부모님한테 거짓말 많이 해보신 경험 있으시죠?
공적인 모임들이 있을 때 그 관계 속에서 제일 큰 문제가 과실을 이야기하는 것의 문제입니다. 지금 교당에 나오다가 갑자기 사라진 사람이 이것 때문에 사라진 경우가 30~40 프로입니다. 그리고 이야기 할 때 에는 말하지 말라고 라고 하면서 꼭 말하죠. 그 순간 낮에는 새가 듣고 밤에는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듯이 다 퍼져나갑니다. 우리가 제일 기분 나쁠때는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서 들었을 때지요? 하수는 ‘도민아 너 왜 이렇게 예쁘니?’ 라고 이야기하지만 고수는 옆 사람에게 ‘도민이 참 마음이 깊더라’라고 칭찬도 다이렉트로 안합니다. 하지만 미안하지만 험담은 한번 말했는데 바로 전달되는 반면, 칭찬은 말하면 세 번 네 번안에 전달 될까 말까 합니다. 그래서 대중간의 관계 속에서 가까이 하다보면 사이가 틀어집니다. 거짓말을 하고 감정적으로 화를 못 참아서 하게 되는 뒷담화가 많습니다. 대개 뒷담화는 약자들이 많이 합니다. 억눌린 감정을 직접 풀지를 못하니 뒷담화를 하게 되는 거죠. 그걸 하고 나면 정서적 환기 효과 나 기분이 좋아지는 등 장점도 많습니다. 그러나 단기적 고통이 될 장점 도 있죠. 그래서 약자는 약자 끼리끼리 친하고 고등학교 친구들도 못된 짓 하고 친해집니다. 부인은 남편이 제일 섭섭할 때 가 부인이 다른 마누라를 씹었는데 남편이 동의 안해줄 때 라고 합니다. 누구를 씹음으로써 우리는 자긍심이 올라답니다. 여러분 코메디언들을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코메디언들을 통해 자신과 비교하며 자존감이 올라 웃는 우리들입니다. 사회의 비교이론이라고 인간이라는 것은 항상 남과 비교해서 자긍심을 느끼려 합니다. 만법과 더불어 계속 자긍심을 확보해 나가려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임시적 자긍심 올라가도 오히려 더 떨어집니다. 그 말을 할 때 그 사람은 기분이 좋은 것 같은데 찝찝한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보통 범부는 남을 깎아 내리면서 스스로 자긍심도 올립니다. 상대적 우위로 스트레스가 해소되면서 서로가 친해지면서 스스로가 남을 깎습니다. 하지만 중생심을 놓아버리고 상대심을 놓아버리고 처처불상하며 칭찬으로 감싸줄 수 있는 이것이 원불교인의 자세입니다. 사람을 깎아내리기만 한다면 자칫 잘못하면 누가 좀 열심히 하면 다른 사람들이 깎아내리기 바쁩니다. 우리나라는 스타가 나오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조금만 잘하면 그 사람의 속사정도 모르고 과실을 말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나중에 부장이 되시면 내가 몰라서 부장 차장을 많이 씹었구나라고 생각 하실 겁니다. 사실 몰라서 험담하는게 되게 많습니다. 그 입장이 되어 보면 다 알게 됩니다. 뭔가 뜻이 있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믿음이 없으면 험담을 할 때 부정적 기운이 자기 안에 감돕니다. 그리고 내 안의 지혜가 기운이 험담하는 사람들과 험담하는 사람끼리 어울려 다니게 됩니다. 여러분이 자기한테 부정적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 받고 그러면 기분이 좋나요? 만약 듣게 된다면 나는 그런 적은 없나 잘 생각해 봐야합니다. 그리고 그걸 들으면서 내 자존심의 어디까지 나라는 존재인지, 그리고 참 자존심은 무엇인가에 대한 자기 마음공부를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향해 손가락질 해 보세요. 한 손가락은 남을 가리키지만 나머지 손가락은 나를 가리킵니다. 만약 다른 사람의 과실을 이야기 하고 뒷담화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스트레스를 풀어버려야지’라며 스트레스를 뒷담화로 풀지 말고 염불이나 음악, 성가, 헌배, 사경 등으로 풀어내고 승화시켜 내십시오. 만약 참는 것은 오히려 폭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때 그 때 풀어내는 방법 필요합니다. 특신급 때는 잘 하지만, 보통급들은 뒷담화하게 됩니다. 하지만 특신급은 보입니다. 만약 말을 막 하고 싶다 라면 그 때 무관사, 부동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내게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은 모른 척 하십시오. 괜히 남의 시비에 끼어들어서 큰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시비를 초월하고 시비를 넘어서서 모른 척 할 수 있고 그런 겁니다. 감사합니다.
[원기 100년 1월 28일 수요마음공부방] <계문 2.특신급 십계문 1,2조> 김제원 교무님 설법.hwp
첫댓글 고생많으셨어요! 공도자분들>_<
우앗 ^^ 감사합니다 빠른업로드 도권교우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