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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시의 공간 : 경북
소백산·태백산 자락의 시인들
──영주, 봉화, 예천, 영양
이태희
1.
영주시는 경상북도 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소백·태백 두 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북쪽으로는 충청북도 단양군, 강원도 영월군과 접하며, 동쪽으로는 봉화군과 서쪽으로는 단양군과 접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안동시, 예천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영주는 영남지방의 최북단으로 남북으로 길고 동서로 협소한 지형을 이룬다. 이곳에 큰 강은 없으나 소백산에서 발원한 죽계가 낙동강의 원류를 이루고 있다.
영주는 ‘선비의 고장’이라는 자부심을 지닌 도시이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우리나라 서원의 효시인 소수서원이 죽계 상류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당초 소수서원은 조선 중종 때 신재 주세붕이 풍기군수로 있으면서, 고려 안향의 구거지인 백운동에 백운동서원을 건립하였다. 이 서원은 명종 때에 퇴계 이황이 건의하여 임금으로부터 ‘소수서원’이란 사액을 하사받았다. 이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고, 이때부터 ‘소수서원’이라 고쳐 부르게 된 것이다.
산수 수려한 이곳을 배경으로 예부터 시인 학자들이 많은 시를 남겼다. 퇴계 이황은 백운동서원에서 제자들에게 “여기는 소백산 남녘 옛 순흥의 고을터/ 죽계의 찬흐름 층층 백운되어 쏟아지네”(小白南墟古順興 竹溪寒瀉白雲層)로 시작되는 시를 남겼으며, 고려 말의 학자이자 시인이었던 원천석은 영주와 단양 사이에 있는 고개인 죽령을 넘으면서 “말 몰아 구름 속의 죽령에 오르니/ 행장 마치 하늘 문에 닿은 듯하고/ 원근의 높고 낮은 산들 끝이 없는데/ 동서남북 통하는 길은 저절로 갈려 있네”(策馬行穿竹嶺雲 行裝彷彿接天門 高低遠近山無盡 南北東西路自分)라고 노래했다.
또한 죽령에 얽힌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지는데, 그 가운데 풍기군수로 있던 신재 주세붕이 은퇴길에 오른 농암 이현보를 죽령 마루턱에서 만나 시주詩酒로 회포를 나누었다는 이야기와 관할을 옮겨 단양을 떠나 죽령 마루에 오른 퇴계 이황에게 단양고을 아전이 삼껍질을 한 둥치 싣고 따라와 ‘노수路需’로 드리는 것이라며 내놓았다가 되레 호통을 맞았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영주시 순흥면에 위치한 소수서원이 유교문화의 중심지라면, 부석면에 위치한 부석사는 불교 화엄종의 대표사찰이다. 부석사는 신라시대 승려 의상이 671년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의상과 선묘 아가씨 이야기가 유명하고, 국보 18호로 지정된 무량수전이 이곳에 있다. 이 부석사 또한 많은 작품의 배경이 되었다. 김삿갓은 ‘부석사’라는 시에서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수가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있고/ 천지는 부평 같아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온 듯/우주 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백년 동안 몇 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 세월은 무정하다 나는 벌써 늙어있네”(平生未暇踏名區 白首今登安養樓 江山似畵東南列 天地如萍日夜浮 風塵萬事忽忽馬 宇宙一身泛泛鳧 百年幾得看勝景 歲月無情老丈夫)라고 노래하였다. 그런가 하면 소설가 신경숙은 「부석사」라는 단편으로 2001년도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대구 출신 시인 정호승도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로 시작하는 시 「그리운 부석사」를 짓기도 했다.
2010년에 발간된 『영주시사』에는 영주 출신의 문인으로 송지영, 성학원, 박양균, 김한룡, 권기환 등이 언급되고 있다.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망亡한 이 황무荒蕪한 전장戰場에서 이름도 모를 꽃 한 송이 뉘의 위촉委囑으로 피어났기에 상냥함을 발돋움하여 하늘과 맞섬이뇨.
그 무지한 포성砲聲과 폭음爆音과 고함高喊과 마지막 살육殺戮의 피에 젖어 그렇게 육중한 지축이 흔들리었거늘 너는 오히려 정밀靜謐 속 끝없는 부드러움으로 자랐기에 가늘은 모가지를 하고 푸르른 천심天心에의 길 위에서 한 점 웃음으로 지우려는가.
이 작품은 1952년에 간행된 박양균의 첫시집 『두고 온 지표』에 실린 「꽃」이라는 작품이다.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망한”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꽃이 핀다. 전쟁의 “황무”함은 꽃의 “상냥함”과 극적인 대비를 보인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쓰러뜨린 그곳에서 꽃은 오히려 “하늘과 맞”서기라도 하듯 “발돋움”하는 강인한 생명력을 보인다. 전쟁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포성, 폭음, 고함 그리고 살육’은 “육중한 지축이 흔들리”는 엄청난 파괴력의 재앙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끝없는 부드러움으로 자라”난 꽃은 그 재앙을 이겨낼 휴머니즘의 표상으로 읽힌다. 전쟁이 준 포성과 폭음과 고함을 견디고, 그것이 준 상처를 씻을 수 있는 것은 ‘고요하고 편안한’ “정밀”의 세계, 모든 것을 감싸 안을 수 있는 포용의 힘, “끝없는 부드러움”의 생명력에 있다는 통찰이 이 시에 담겨 있다.
한편, 한국문인협회 영주지부는 1976년에 출범하였으며, 그해 첫사업으로 발간하기 시작한 『영주문학』은 2012년 말에 36집을 출간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외에도 영주문인협회는 해마다 죽계백일장, 시낭송회 등의 사업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2.
영주군의 동편에 자리잡은 봉화군은 동쪽으로는 울진, 영양군과 남쪽으로는 안동시와 북쪽으로는 강원도 영월군 및 태백시와 접하고 있다. 영주시와 함께 경상북도 최북단을 이루고 있는 봉화 역시 높은 산맥들로 둘러 싸여 있다. 해발 1,546미터에 달하는 태백산의 문수봉이 봉화에 속하며, 1982년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청량산은 봉화의 자랑거리이다.
청량산에는 산 이름을 단 청량산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은 2004년에 개관하였는데, 산을 주제로 한 전국 최초의 박물관이라 한다. 이곳에서는 청량산과 관련된 역사 유물, 자연사 유물의 전시뿐만 아니라 연구총서 발간 사업도 수행하고 있다. 그 첫 연구총서로 간행한 것이 바로 『옛 선비들의 청량산 유람록Ⅰ』이다. 이 책에는 현재 전해지고 있는 청량산 기행문 80여 편 중 16~17세기 작품 18편을 국역하여 싣고 있다. 여기에는 청량산을 유람하고 글을 남긴 신재 주세붕, 퇴계 이황, 송암 권호문, 성재 금난수 등 당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주세붕은 「유청량산록」에서 청량산을 지리산, 금강산, 묘향산, 박연폭포 등과 비견되는 5대 명산이나 명소의 하나라고 찬양하고 있다. 실제로 청량산을 묘사한 대목을 일부 소개한다.
청량산은 안동부 재산현에 있으니 실로 태백산의 한 지맥이 날아와서 그 정화가 모인 것이다. 그것이 말려서 높이 올라간 기운이 맺히고 묶여 여러 봉우리가 되었고 다투어 빼어난 기색을 자랑하였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푸른 죽순이 어지러이 솟아 있는 것 같아 늠름하니 공경할 만하다.
오늘날 주세붕의 「유청량산록」은 청량산기행문 중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고 있다. 이러한 신재의 글에 대한 발에서 퇴계는 청량산과 신재의 만남을 ‘산의 일대 만남(山之一大遇)’이라고 하였다. 신라와 고려를 거치면서 이미 ‘불가의 명산’이었던 청량산은 조선 선비들의 유산과 유산기 작성을 통해 ‘유가의 명산’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또한 누구보다 청량산을 아낀 퇴계도 「청량산가」로 불리는 시조를 지어 그 아름다움을 칭송했다.
청량산 육륙봉六六峰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훤사喧辭하랴 못 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떠나지 마라 어주자魚舟子 알까 하노라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던 이 「청량산가」는 『청구영언』에 실려 있으나, 퇴계 문집에 실려있지 않아 작자 문제에 이견이 있고, 초장의 “육륙봉”도 주세붕이 명명한 청량산의 12봉우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도산구곡 전체를 포괄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작자의 문제를 떠나서 이 시조가 청량산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현재 청량산도립공원 표석 뒤로 이 ‘청량산가’ 시비가 세워져 있어 청량산을 찾은 이들이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고 한다.
2002년에 발간된 『봉화군사』는 봉화 출신 현대 문인들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다음넷에 개설된 한국문인협회 봉화지부 카페를 방문해 보면, 현재 『봉화문학』 제18집 원고를 모으고 있으며, 산수유 시낭송회, 청량문화제, 시화전 등의 사업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카페 게시판에 소개되어 있는, 봉화 출신 권달웅 시인의 「청량산 초대」라는 작품을 소개한다.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여기에 오면 칡덩굴 머루덩굴 다래덩굴이 하나로 어우러집니다. 산길을 오르다 보면 낙동강 상류로 기어오르는 은어새끼 떼 소리도 듣고 천연의 바람 소리도 듣고 산처녀인 금낭화도 만나고 한여름 냉기 도는 얼음골 층층나무, 육육봉 가파른 벼랑에 선비 같은 소나무도 만납니다. 있는 그대로 삽니다. 여기서는 물질도 부정도 오만도 허식도 없습니다. 자연의 순리로 풀벌레 다람쥐 오소리 너구리가 설쳐대고 우리 어머니의 아들의 아들딸들이 산을 보듬고 맑은 정신으로 삽니다. 청량산에 오면 천연의 바람이 몸에 들어와 너도 나도 하나가 되고 자연이 됩니다. 순수한 마음이 됩니다.
2001년에 발간된 권 시인의 『크낙새를 찾습니다』라는 시집에 수록된 작품이다. 자신의 고향인 봉화, 청량산에 대한 애정이 물씬 묻어난다. 작품 속에서 청량산은 “칡덩굴 머루덩굴 다래덩굴이 하나로 어우러”지듯 인간과 자연이 화해하고 “순수”해지는 공간이 된다. 그곳에는 “물질도 부정도 오만도 허식도 없”다. 오직 “자연의 순리”로 살아간다. 한국 전통시의 전통을 오롯이 계승하며, ‘자연을 통해 맑고 고매한 정신세계’를 추구해 온 시인의 시 세계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3.
예천군은 북동쪽으로 영주시와 남동쪽으로 안동시와 경계를 이루며, 북쪽으로는 충북 단양군과 서쪽으로는 문경시와 접하고 있다. 예천의 남동부에는 소백산에서 발원하여 여주를 거쳐 온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내성천이 지나고 있다. 예천지역에는 소백산맥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중소규모 하천들이 자연환경의 큰 틀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단술 예醴와 샘 천泉 자를 쓰는 예천醴泉에 관한 지명 유래(예컨대, 물맛이 좋아 단술 같다는)는 그리 믿을 것이 못되지만, 예천의 생활환경이 크고 작은 하천을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천과 연관하여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내성천이 사행蛇行하면서 이루어낸 명승지, 회룡포다.
예천군 용궁면에 위치한 회룡포는 내성천이 350도로 마을을 휘돌아 흐르고 있어 ‘육지 속의 섬’으로 불린다. 예천군지에서 이 회룡포를 “강이 산을 부둥켜안고 용틀임을 하는 듯한 특이한 지형의 회룡포는 한 삽만 뜨면 섬이 되어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물도리 마을”로 소개하는 바,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예천 최고의 명승지다. 이곳은 2000년 <가을동화>의 촬영지로 알려졌으며, 2005년에는 국가지정 명승 제16호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삼백 오십 오도를
삼백 예순 닷새
휘돌아 흐르는 푸른 물결
반짝이는 금빛 모래의 회룡포
시집가는 새색시 꽃가마처럼
그림 같은 육지 섬동네 옛 정이 그립구나
관광객 발걸음 잦아지는 자연이 낳은 신비
회룡포엔 그림움이 있고 넋이 있다
회룡대 난간에 기대어
어릴 적 유년의 시간을 기억한다
배고파도 뛰어놀던 고향 어귀에서
흰머리 늘어가는 이쯤에까지
해질녘 회룡포 모래밭에 앉아
예천의 사랑과 혼을 새겨본다.
인용한 시는 예천 출신 박주엽 시인의 『회룡포의 햇살』에 실린 「회룡포」라는 작품이다. 간결하면서도 매우 서정적인 어조로 회룡포의 아름다움과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현재 예천에는 2003년에 발족한 한국문인협회 예천지부가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4년에 제1회 예천백일장을 개최하였으며, 그해 12월 『예천문단』 창간호를 발간한 후 현재 제10집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예천백일장은 ‘서하西河백일장’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지난 6월 제10회 행사를 진행하였다. 서하는 「국순전」, 「공방전」 등의 가전체 소설로 유명한 임춘林椿의 호이다. 임춘은 고려 인종 때의 문인으로 예천 출신이며, 예천 임씨의 시조이기도 하다.
농가에 오디는 익고 보리도 곧 익으려는데
푸른 나무 사이에 꾀꼬리 소리 처음 들리네.
낙양의 꽃 아래 노니는 손님인가 여겼더니
은근히 온갖 소리로 울어 그치지 않네.
임춘의 「늦은 봄에 꾀꼬리 소리를 듣다(暮春聞鶯)」라는 작품이다. 임춘은 1170년 ‘정중부의 난’에 휘말려 가문이 화를 당했다. 그는 몸을 피해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사십이 못 되어 죽었다. 그는 이인로, 오세재 등과 함께 강좌칠현江左七賢의 한 사람으로 시와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평생 동안 뜻을 펼치지 못한 채 곤궁한 삶을 살았다 한다. 그러나 당시와 송시를 익혀서 용사를 능숙히 구사한다는 평을 받았으며, 그의 시에는 가난한 삶에서 우러난 한고寒苦함과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분방奔放함이 아울러 나타난다. 위에 인용한 작품은 늦은 봄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뽕나무 열매인 오디와 보리가 익어가는 모습이다. 이 때 녹음 사이로 꾀꼬리의 울음이 들려온다. 처음에는 꽃놀이 나온 사람들이 내는 소리인가 여겼더니, 온갖 음색을 가진 은은한 꾀꼬리 소리에 감동한다는 내용이다. 비록 곤궁한 삶을 살았지만, 자연을 사랑하고 세파에 휘둘리지 않는 선비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4.
영양군은 경상북도 동북부 태백산맥의 내륙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으로 울진군, 영덕군과 서로는 안동시, 남으로는 청송군과 북으로는 봉화군과 경계하고 있다. 산맥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서 전반적인 해발고도가 경북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산자수명하고 유서 깊은 영양은 예로부터 충의열사와 지조 있는 문인들이 많이 배출되어 ‘충절과 문향의 고장’이라는 자긍심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1998년에 발간된 『영양군지』를 열람하면, ‘영양의 문학’에 대해 여느 시군보다 방대한 양을 서술하고 있다. 특히 영양의 현대문학에 관한 부분을 보면, 영양 출신의 문인인 오일도, 이병각, 조동진, 조지훈 등의 문학 세계에 대하여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1.
참나무 떠갈나무 잣솔나무 다옥히 우거지고 떨어진 잎새 폭폭 발목에 묻히도록 구수한 냄새. 눈 들어도 해 보이지 않고 꾀꼬리 뻐꾸기 콩새 죄끄만 오맛 산새 우는 사이 푸른 하늘이 구슬알처럼 구르고 가만히 듣기에도 절로 서러워지는 아리랑調 휘돌아가는 산골에 흰구름이 바람 따라 연신 소나무 가지로 떨어진다.
2.
나무와 나무가지로 머루 다래 넝쿨 얽히고 칡덤불 탱탱이 기어 나갔는데 진달래 봉오리 반만 열렸고 푸른 남쪽 하늘 못 본 진달래 연분홍이 사뭇 새하야이. 썩은 나무 등걸 다람쥐 달아나고 나는 松茸를 하나 따 들었다.
3.
도라지 삼주꽃 핀 양지쪽을 돌면 落落長松이 있고 어둡기사 해도 어둠이야 온통 푸른 하늘빛 어둠. 산골 물소리 새뜻하기 이빨로부터 온몸이 스리다. 마른 목 추기고 겸해 발도 씻고 다시 일어서면 푸른 어둠 속에 내가 난 줄도 몰라 새우는 소리 잎이 피는 소리 푸른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絶頂에 올라서면 東海바다가 쇄―하고 부서진다.
.4
새, 꽃, 풀, 나무가 七月달 별처럼 어울렸는데 내가 알던 새 이름 풀 이름이야 열 손도 못 다 꼽고 없어진다. 香氣는 麝香내 못지 않으리. 지팽이를 멈추고 네 활개를 버리면 진정 나도 한그루 나무로 잎새 우거질듯 싶은지고.
──日月山
조지훈의 「밀림密林」이라는 작품이다. 작품 말미에 표기한 일월산은 지훈이 태어난 영양군 일월면의 그 일월산인 것이다. 높이가 1,219미터에 달하는데, 동해에서 솟아오른 해와 달을 맨 먼저 본다하여 일월산이 되었다 한다. 온갖 “새, 꽃, 풀, 나무가 칠월달 별처럼 어울”린 일월산의 풍경을 고즈넉히 노래하고 있다. 이 작품은 얼핏 조지훈을 등단시킨 정지용의 「백록담」의 풍모와 닮아 있는데, 시의 화자는 “잎새 푹푹 발목에 묻히도록 구수한 냄새”에 취해보기도 하고, “松茸를 따”거나 산골 물에 “마른 목 추기”기도 하면서 “내가 난 줄도 모”르는 경지에 이른다. 산의 절정에 이르면, “東海바다가 쇄―하고 부서”지는 풍경이 펼쳐진다. 산을 오르며 산과 자연과 하나가 된 화자는 “진정 나도 한그루 나무로 잎새 우거질듯 싶은” 상태에 도달한다. 말 그대로 나를 잊고 자연과 하나되는 ‘몰아적 자연합일’의 경지를 노래하고 있다.
영양지역은 선조들의 문향이 그윽할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영양문인협회는 1985년에 발족하였으며, 그해 창간호를 낸 『영양문학』은 2010년 현재까지 27집을 발간한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영양문학』은 다른 지역의 문예지와 달리 최근까지도 한시와 가사 등의 전통 장르가 창작되어 수록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한편, 조지훈이 태어난 주실마을(영양군 일월면 주곡리)에는 조지훈의 생가와 문학관이 마련되어 있으며, 해마다 이곳에서는 ‘지훈예술제’를 비롯하여 백일장, 시낭송 등 각종 문학예술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또 영양군 감천마을(영양읍 감천리)에는 오일도의 생가가 조성되어 있고, 두들마을(석보면 원리리)에는 이문열 문학관도 건립되어 있다.
이밖에 백익천, 오승강, 황근식, 김선굉, 오정국, 정재숙 등도 영양 출신 문인이며, 국문학자 조동일과 김일렬 등도 영양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말 그대로 영양군은 <문향>이라고 아니 할 수 없는 곳이다.
소백산, 태백산 자락의 영주, 봉화, 예천, 영양 지역을 살펴보면 우리의 오랜 문화적 전통인 불교문화와 유교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그것도 서로 배척함이 없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수려하고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배경으로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삶의 정경들이 오롯이 글로 표현되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필자는 십수 년 전 안동과 영주 일원을 다녀 온 적이 있다. 그때 부석사를 내려오면서 바라본, 겹겹의 능선들이 만들어내던 그 멋진 풍광을 잊지 못한다. 또 부석사 어귀의 한 과수원에서 까치가 파먹은, 그러나 정말 맛좋은 사과를 푸짐하게 내어주고 양껏 먹고 가라던 주인장의 인심도 기억한다. 이번 원고를 쓰면서 살펴 본 소백산·태백산 지역, 고전의 향기와 현대 문학이 살아 있는 곳, 그곳으로 문득 떠나고 싶어졌다.
이태희 / 1963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으며. 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오래 익은 사랑』이 있고 현재 인천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로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