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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6:1-21
▣ 생명의 떡-요한복음 6장-
1. 표적들(6:1-21)
첫번째의 세 가지 기적은 말씀과 믿음,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의 방법을 예증한다. 네번째 표적(5,000명을 먹이심)은 잃어버린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있어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협력을 예증한다. 그리스도는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눠 주신 후, 제자들은 군중에게 떡을 먹였다. 구원과 모든 은혜가 주님께 속하였지만 주님은 복음의 멧세지를 사람에게 가져다 주기 위해 아직도 인간이라는 기구들을 사용하신다. “전파하는 자가 없으니 어찌 들으리요“(롬 10:14).
아주 실제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굶주린 영혼에게 생명의 떡을 먹이는 데 우리의 손이 아닌 어떤 손도 가지고 계시지 않다. 만일 그 작은 아이처럼 우리가 주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드리면 그는 그것을 취하여 쪼개셔서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데에 사용하신다. 요한복음에서의 마지막 세 표적은 구원의 결과를 예증한다.
-폭풍을 잠잠케 하심(6:15-21)-구원은 평안을 가져온다.
-소경을 고치심-구원은 빛을 가져온다.
-나사로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심(11:34-46)-구원은 생명을 가져온다.
예수께서는 단지 배를 채우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무리들의 왕이 되려 하지 않으신다(26절). 그리스도는 군중들을 해산시키고, 폭풍이 오고 있음을 잘 아시면서도 제자들을 바다 건너로 보내셨다. 오늘날의 교회와 대단히 유사하다. 우리는 사단의 폭풍에 거스려 애쓰지만, 우리의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산 위에서 기도하시며, 어느 날 평화를 가져오실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배에 오르셨을 때에 배가 기적적으로 목적지에 이른 데에도 주목하자.
구원은 그 마음에 하나님과의 평화(롬 5:1)와 하나님의 평강(빌 4:4-7)을 가져온다."
요 6:22-65
2. 설교(6:22-65)
22-31절에서 우리는 설교에 대한 본을 갖는다. 먹을 것에만 관심있는 그 사람들은 바다 건너편의 가버나움까지 그리스도를 따라와서 회당에 모였다(59절). 그리스도는 그들의 천박한 육적 동기(26-27절)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르는 그들의 무지를 나타내신다(28-29절).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떡을 은혜로써 먹이셨으며, 그들이 해야 할 모든 것은 믿음으로 그것을 받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영생을 주시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영생을 위해 일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우리에게 표적을 보이라 !“고 도전하였다. 이들은 모세가 유대인들을 먹이기 위해 하늘로부터 떡(만나)을 가져온 것을 상기시켰는데(출 16장), 예수께서는 이것을 자신의 설교를 위한 기초로 사용하셨다. 이 설교는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각기 군중들의 반응이 나타난다.
그는 자신의 인격을 나타내신다(생명의 떡/6:32-40)-이것은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대담한 주장이다. 하나님의 생명의 떡은 하늘로부터 오신 한 인격이다(33절). 그리고 그는 생명을 주시되, 모세가 했듯이 유대인에게만 주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게 주신다. 이 떡을 받는 방법은 와서 취하는 것이다. 이 떡은 오늘날에도 생명을 줄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부활의 때에 생명을 준다.
유대인들의 반응에 주목하자(41-42절).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곧 자신의 아버지이심(32절)을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요셉이 그의 아버지라고 말하였다(42절).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적인 모형으로서 구약의 만나를 연구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만나는 밤에 하늘로부터 왔고,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어두움 가운데 있을 때 하늘로부터 오셨다.
-만나는 이슬 위에 떨어졌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태어나셨다.
-만나는 땅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셨고 죄인들과 구분되었다.
-만나는 작고 둥글고 희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겸손, 영원, 순결을 말한다.
-만나는 맛이 달았다. 그리스도는 자기를 믿는 자들에게 달콤하시다.
-만나는 취해지고 먹혀야만 한다. 그리스도는 영접되고 소유되어져야 한다.
-만나는 값없는 선물로 왔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대해 값없는 하나님의 선물이시다.
-모든 사람을 위해 충분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충분하시다.
-만일 만나를 줍지 않으면 만나를 밟게 된다. 그리스도를 영접지 않으면 그를 거절하고 그를 밟게 된다(히 10:26-31).
-만나는 광야 음식이었다. 그리스도는 하늘까지 가는 순례길에 있는 우리의 양식이다.그는 구원의 순서를 나타내신다(6:43-52)-잃어버린 죄인은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따라서, 구원은 하나님과 함께 시작된다.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끄시는가? 그는 말씀을 사용하신다(45절).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14절을 주의깊게 읽고, 그리스도께서 의미하시는 “사람들을 이끄는 것“의 명백한 설명을 보라.
육적인 떡은 생명을 잠시동안만 유지시킬 뿐이며 사람은 여전히 죽는다. 영적인 떡(그리스도)을 받아들이는 것은 영생을 준다. 그리스도는 51절에서 그가 자신의 몸을 온 세상의 생명을 위해 내어주리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유대인들은 이에 반발하였다(52절). 사람의 몸을 먹는 것은 유대의 율법에 저촉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니고데모와 같이 그들은 영적인 것을 육적인 것으로 혼동하였다.
그는 구원의 능력을 나타낸다(6:53-65)-예수께서는 그의 살을 “먹는 것“으로, 그의 피를 “마시는 것“으로 의미하셨는가? 예수께서 문자적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다“(63절).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다른 말로 하자면, 사람이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성령에 의해 가르침을 받은 것으로서 그 말씀을 받아들임이 곧 그리스도를 먹으며 그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성찬에서의 떡과 잔에 대해서나, 또는 로마 카톨릭의 미사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성찬은 단지 예수께서 그것을 기념하라고 말씀하셔서 설치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생명을 주지 않는다. 사람이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심으로써 영생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은 “육체는 결코 유익이 없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있는 말씀이시며(1:1-4), 우리를 위해 “육체가 되신“ 분이시다(1:14). 성경은 기록된 말씀이다. 성경이 예수님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은 또한 그 자신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다. 둘 다 거룩하고(눅 1:35/딤후 3:15), 진리이며(요 14:6/17:17), 둘 다 빛이며(요 8:12/시 119:105), 생명을 주고(요 5:21/시 119:93), 거듭나게 한다(요일 5:18 /벧전 1:23). 둘 다 영원하며(계 4:10/벧전 1:23) 하나님의 능력이다(고전 1:24 /롬1:16).
결론은 분명하다. 사람이 그 마음에 말씀을 받아들일 때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취함으로써 “그의 살을 먹게 된다“. 예수께서는 51절에서 “나는 산 떡이라“고 하셨으며, 마태복음 4장 4절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설교의 의미를 파악하여, 68절에서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어디로 가리이까 ?“라고 말했다.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주목해 보자. 그들은 그 교리에 마음이 상해서(61절) 더이상 그리스도와 함께 하려 하지 않았다. 이것은 요한복음에 나타난 첫 번째의 위기였다(개요 참조)."
요 6:66-71
3. 체질(6:66-71)
그리스도의 인격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거짓으로부터 참을 분리해낸다. 육체를 위해 떡을 원하였던 군중들은 영혼을 위한 생명의 떡을 거절하였다. 베드로와 열 명의 제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믿음을 확고히 하였다. 그들의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 왔다(롬 10:17). 그러나 유다는 위선자였으며 결국에는 그리스도를 배반하였다.
66절에 있는 “제자들“이란 말은 열 두 사도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군중들 중에서 “추종자들“을 가리키고 있음에 유의하자."
요 7:1-9
▣ 생명수이신 그리스도-요한복음 7장-
우리는 이제 요한복음의 첫단락인 “상고의 시기“를 마치고, “갈등의 시기“인 두번째 단락으로 접어들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설교를 들었으나, 이제 그리스도와의 투쟁을 시작한다(7:1/7:19/7:23/7:30/ 7:32/7:44/8:6/8:37/8:48/8:59/9:22/9:34/10:20/10:31-33/10:39/11:8/11:16/11:46-57/12:10 참조).
1. 절기 이전-의혹(7:1-9)
초막절은 일곱째 달(9-10월)의 15일부터 시작하여 8일간 계속된다(레 23:34-44/신 16:13-16/민 29:12-40). 이 절기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할 때에 살았던 장막 시절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출애굽기 23장 16절은 이 절기가 또한 추수의 축제(초실절)임을 시사한다. 이것은 유대의 모든 남자가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세 절기 중의 하나였다.
여기서의 그리스도의 “여제들“이란 요셉에 의해 태어난 마리아의 자녀들이다. 누가복음 2장 7절은 그리스도를 마리아의 “한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것은 마리아가 다른 자녀들을 낳았음을 시사한다. 마가복음 3장 31-35절과 마태복음 13장 55-56절 또한 이를 지적한다. 이 형제들은 어떤 이들이 마리아의 “완전한 동정녀“를 입증하려 하여 가르치는 대로 주님의 “사촌“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형제들은 비록 사도행전 1장 14절에서 그리스도의 부활 후에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음을 나타내고는 있으나 그 당시에는 그를 믿지 않았다. 시편 69편 8-9절은 그들의 불신앙을 예언하고 있는데, 아무튼 마리아가 다른 자녀들을 낳았음에 대한 또다른 증거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때에 따라서 사셨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자기 뜻대로 오고 갈 수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주께서 인도하시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형제들이 종교적인 절기에 참석하기 위해 그들의 구세주를 뒤에 남겨 두었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
요 7:10-36
2. 절기 도중-논쟁(7:10-36)
5,000명을 먹이신 일과 병자를 고치신 것은(5:1-9/7:23) 군중들의 흥미를 일으켰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으므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하나님께로서 온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귀신들렸다고 불렀으며 그를 죽이려고 모의하였지만 아직은 하나님의 정한 때가 아니었다(30절). 유대인들은 다섯 가지의 다른 논제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그의 성품(10-13절)-어떤 이들은 그를 “선하다“고 하였고, 다른 이들은 “사기꾼“이라고 했다. 그들은 왜 혼동하고 있는가 ? 이는 그들이 유대의 지도자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잠언 29장 25절은 “사람을 두려워함이 올무에 걸리게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성품은 흠이 없었으므로 그들이 결국 체포하였을 때에는 그에 대하여 거짓 증인들을 데려와야 했다. 빌라도와 유다, 로마의 군사조차도 모두 다 그를 무죄하다고 선언하였다.
그의 교리(14-18절)-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영적인 지식에 대해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결코 그들의 “선지학교“를 다니거나 “학교를 졸업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교육이란 축복임에는 틀림없지만, 하나님께로부터 개인적으로 가르침을 받는 것은 단지 인간의 사상들을 빌리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리스도의 교리는 하늘로부터 온 것이나, 인간의 가르침은 인간의 어두운 마음에서 온 것이다. 바울은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과학)“을 경고한다(딤전 6:20/골 2:8-). 17절은 “만일 사람이 나의 뜻을 기꺼이 행하려 한다면... “이라고 읽을 수 있다. 순종하려는 의지는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는 비결이다.
그의 사역(19-24절)-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에 일하신 것을 비난함으로써 그들이 율법 준수자인 체하였으나, 그리스도는 그를 죽이려는 그들의 욕구가 곧 그들이 존중하는 그 율법을 어기는 것임을 보이셨다. 그리스도를 반대하며 그의 말씀을 거절하는 사람들이란 얼마나 모순된가 ! 안식일에 할례를 줄 수는 있으나 안식일에 병을 고칠 수는 없나니 !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처럼 그들은 진실이 아닌 외모로 얄팍하게 심판하고 있었다.
그의 근원(25-31절)-27절은 42절과 모순되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태어나실 곳을 알고 있었으며, 또한 그의 탄생이 신비하고 초자연적일 것도 알았다(사 7:14). 달리 말해서, 그들은 그가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기록은 그리스도께서 처녀인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심을 말하였으나, 유대인들은 이를 믿지 않았다.
요한복음 8장 41절은 유대인들이 예수께서 범죄함으로 인하여 태어났다고 비난하고 있음을 시사하는데, 아마도 요셉과 결혼하기 이전의 마리아의 상황이 이들로 하여금 이런 말을 하게 하였을 것이다. 28-29절에서 그리스도는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으며, 그들이 아버지를 안다면 아들도 알 것임을 확언하셨다.그의 경고(32-36절)-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조금 더“는 약 6개월간 계속되었다. 사람들이 주님을 “찾을 만한 때에“ 찾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사 55:6 참조). 오늘날 그리스도를 거절한 많은 잃어버린 죄인들이 다음 날 그를 찾을 것이지만, 이미 그들 가운데서 떠나신 후일 것이다(잠 1:24-28).
유대인들은 영적 진리에는 무지하였으므로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이 나라들 중에 흩어질 것을 말씀하신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이 진리에 대해 순종하려 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진리를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 순복하는 대신 그리스도와 논쟁을 하고, 그들의 영혼을 잃었다."
요 7:37-53
3. 절기의 마지막 날-분리(7:37-53)
절기의 일곱째 날은 가장 큰 날이었다(8일째 날은 장엄한 총회 중의 하나였다/ 레 23:36/민 29:35). 절기의 아침마다 희생이 드려지고 제사장들은 실로암 못에서 금대접으로 물을 길어 성전에 붓도록 운반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광야에서 주신 놀라운 물의 공급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이 일곱째 날은 “큰 호산나의 때“로 알려져 있으며, 그 절기의 절정을 이룬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그리스도께서 외치셨을 때에 어떤 일이 발생했으리라는 것을 알기에는 별로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이는 제사장들이 물을 붓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는 물을 흘려낸 반석이시다(출 17:1-7/고전 10:4). 그는 생명의 영이 죄인들을 구원하고 만족케 하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침을 당하셨다. 성경에서 정결케 하는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내며(요 13:1-17/15:3) 마시는 물은 하나님의 성령을 상징한다(요 7:37-38).
그리스도의 초청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사람들은 논쟁하고 다투었으며, 그들간에는 분리가 일어났다. 어떤 이들은 믿었고, 어떤 이들은 거절하였다(마 10:31-35/눅 12:51-52). 병사들은 그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을 압도했기 때문에 체포할 수가 없었다(46절).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그리스도를 거절함으로써 그들을 따르는 다른 이들에게 구원의 문을 닫았다(마 23:13).
니고데모가 이 상황에 다시 들어오는데, 그는 그리스도의 법적인 특권을 옹호하고 있다. 요한복음 3장에서 그는 혼란의 어두움에 있었으나, 여기서는 확신의 여명기를 경험하고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에게 정당한 기회를 드리려 하였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는 비결이므로, 이로 인하여 니고데모는 진리를 배우게 되었다(17절).
요한복음 19장에서 니고데모는 고백의 한낮에 있는데, 공개적으로 그 자신을 그리스도와 동일시하고 있다. 어떻게 그는 이러한 결심을 하게 되었는가? 그는말씀을 읽고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관원들은 그에게 “조사해 보라“고 말하였으며, 그는 그렇게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순종하는 사람은 누구나 어두움에서부터 하나님의 기이한 빛 속으로 이동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