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실력은 초보지만 입맛만은 대장금 못잖은 기자, 새해를 맞아 독자들께 건강을 담은 요리 선물을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찾아간 곳은 전북 남원시 산내면 실상사 근처에 있는 ‘지리산 동네부엌’. 약선음식과 전통장, 식생활 전문강사로 이름난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대표(59)의 작업실이자 귀농인을 비롯한 인근 주민과 밥상을 함께 나누는 곳이다.
본격적인 수업에 앞서 약선음식의 의미를 익혔다.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말이 있어요. 밥상 위의 좋은 음식은 건강을 지켜주는 보약과 같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도 건강을 유지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일은 약이 아닌 먹거리로만 가능해요. 제철에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조화롭게 쓰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밥상이 곧 약상’임을 다시 실감했다.
이번에 만들 음식은 부추호두무침과 약고추장, 서여향병(薯 香餠), 막장소스 덮밥 등 네 가지. 겨울철 몸과 마음의 기운을 돋워주는 재료를 선택해 100% 우리 농축산물과 전통 간장·고추장·막장으로 제맛을 낸 신토불이 약선요리이다.
우선 서여향병에 도전했다. ‘마(서여)로 만든 향기로운 떡’이란 뜻을 지닌 이 음식은 고전 조리서인 <규합총서>에 나오는데, 실제로는 부침이지만 모양새가 떡과 비슷해 귀한 손님을 접대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잣을 칼로 곱게 다져 고명으로 쓸 잣가루를 만들고, 천식과 소화에 좋은 참마 껍질을 벗겨 5㎜ 두께로 썰어 찜통에 5분 정도 쪄내니 한시간이 후딱 지났다.
살짝 찐 마를 꿀에 재어둔 다음, 그 사이에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즉석 샐러드’인 부추호두무침을 만들었다. 3~4㎝ 길이로 썬 생부추와 굵게 다진 호두, 데친 새우살을 재빨리 무쳐내면 끝! 전통간장 한큰술과 참기름 약간이 소스의 전부인데도 깊은 감칠맛이 감돈다. ‘이걸 내가 만들었단 말이지’ 하는 생각에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진다.
꿀이 들어간 약고추장도 볶았다. 꿀이 들어간 음식에는 ‘약(藥)’이라는 글자가 붙는단다. 다진 쇠고기를 불고기양념에 조물조물 버무려 볶은 다음 고추장과 꿀을 넣어 조려 양념으로도, 두고두고 먹을 밑반찬으로도 쓸모 만점이다.
드디어 서여향병을 부칠 시간. 마 조각에 찹쌀가루를 묻힌 후 현미유를 두른 프라이팬에 지져내니, 주방에 고소한 냄새가 가득하다. 여기에 잣가루를 정성껏 묻혀 접시에 예쁘게 담으니 잔칫날이 따로 없다. 실상사 인근의 귀농인들은 아이들 생일에 서여향병을 케이크 대신에 만들어준다는 도우미 선생님의 귀띔만큼이나 맛도 모양도 근사하다.
“마지막으로 막장소스를 얹은 덮밥을 만들 거예요. 혹시 막장이라고 해서 ‘막장 드라마’의 막장을 생각한 건 아니죠?”
선생님의 짧은 농담에 한숨을 돌린 것도 잠깐. 곧바로 당근·감자·고구마·양파·연근·단호박과 사과를 1㎝ 크기로 깍둑썰기하고, 팬에 다진 쇠고기와 채소를 볶았다. 여기에 멸치육수를 넣고, 막장으로 간을 맞춘 다음 물녹말을 넣고 걸쭉하게 농도를 맞춰 채소가 익었을 때 불을 끄면 완성이다. 단호박 덕에 카레덮밥과 비슷한 노란 빛깔이 돌면서도, 짜장밥보다 구수하다. 남녀노소 좋아할 맛이다. 든든한 한끼로도 제격이다.
드디어 식사시간. 정성껏 만든 음식에 항아리에서 갓 꺼낸 배추김치와 무김치를 곁들이니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이렇게 네 가지 요리를 차려내는 데에는 세시간 남짓이 걸렸다. 그동안의 ‘생생체험’ 가운데 가장 짧았지만, 뿌듯한 보람과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 만족감 만큼은 단연 최고였다.
슬로푸드의 대명사, 집집마다 담가놓은 전통 장에 신선한 우리 농산물을 넣어 조금만 정성을 쏟으면 완성되는 ‘약이 되는 요리’를 혼자만 알고 즐기기엔 아쉬움이 가득하다. 새해에는 보다 맛있고 건강한 밥상을 꾸미는 데 도움이 될 먹거리 정보 제공에 더욱 힘쓰리라 다짐해본다.
남원=류수연 기자, 사진=김병진 기자
●약선요리 재료는
① 막장소스 덮밥 (4인분 기준)
쇠고기 200g, 들기름 1큰술, 양파·고구마 1개씩, 호박·당근 ½개씩, 연근 ⅓뿌리, 대파 1뿌리, 멸치육수 5컵(멸치 20g, 다시마 5장, 표고버섯 3~4개, 파뿌리), 막장 3~4큰술, 물녹말(감자전분+물) 약간
② 서여향병
마 500g, 찹쌀가루 200g, 잣가루 100g, 식용유·꿀 적당량
③ 약고추장
고추장 1컵, 쇠고기 100g, 꿀 4큰술, 참기름 1큰술, 잣 1큰술, 배즙 ½컵, 고기양념(간장·다진파 1큰술씩, 다진마늘·설탕 2작은술씩, 후춧가루 조금, 참기름 1작은술)
④ 부추호두무침
부추 100g, 호두 20g, 새우 30g, 전통간장(국간장) 1큰술, 참기름 약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