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테스가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테스-토머스 하디)
2020.07.14. 문서원
지금까지 여러 권의 책을 읽었지만, 작가가 미웠던 책은 이번에 읽은 ‘테스’가 처음인 것 같다. 물론 19세기 영국의 시대적인 배경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소설이겠지만, 주인공을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책은 처음이라 그런지 책의 페이지 수가 넘어갈수록 머리가 아파왔다. 주인공 테스를 통해 이 시대에 여성들의 인권이 얼마나 낮았는지 알게 되었다. 가부장적인 사회 제도 때문에 아버지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순종하여 원치 않는 길을 걸어가야 했던 모습, 알렉에게 소유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던 그녀의 모습, 또한 자기의 잘못이 아님에도 고개를 숙이고 남편만을 기다려야 했던 테스의 처지. 책의 모든 줄거리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책을 읽으며 이런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새삼스럽게 굉장히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위해서 알렉을 죽인 테스의 행동을 보면 그녀가 잘못이 없다고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테스의 살인이 충분히 이해가 가고 정당하게 느껴지는 것은 독자들에게 있어서 어쩔 수 없는 당연한 현상인 것 같다. 이런 말은 그렇지만 속이 시원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본인이 당한 것에 있어서 사적으로 복수심을 품고 보복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다. 더욱이 살인이라면 말이다. 테스가 당한 것이 많다고 해서 보복이 허용된다면 온 세계의 질서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성경에서도 원수를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다는 말씀이 있듯이 억울하더라도 참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알렉은 테스를 성폭행한 뒤 전도사가 되었음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테스에게 욕망을 품는다. 사람은 자신의 신분에 따라 마음가짐도, 행동거지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전도사라는 직분 밑에 숨어 갖가지의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 무섭기까지 했다. 누구든 이중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중생활을 하고 있진 않은지, 밖에서의 모습과 나 앞에서의 모습이 다르진 않은지 점검해보게 되었다. 알렉처럼 겉으로만 잘하는 척하는 사람이 아닌 진실하고 솔직하게 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의 줄거리에 더 깊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느껴지는 것은, 테스와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던 존재는 알렉도, 에인절도 아닌 테스의 부모님이다. 다독여줘야 할 상황임에도 힘이 되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딸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짓을 한다. 부모를 떠나서,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나 싶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딸에게 “운명에 맡겨라” 라는 말은 너무 무책임하다고 느껴진다.
부모의 역할은 아무나 감당할 수 없는 것 같다. 친부모임에도 자식들을 학대하는 사례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책임질 수 없으면 아이를 가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본인도 힘들겠지만 아이는 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테스처럼 말이다. 게으른 아버지와 귀 얇은 어머니를 둔 테스가 참 가엾게 느껴진다. 내가 테스를 만난다면 꼭 안아주고 싶다. 맏딸로서 고난도 다 견뎌내고 살아온 테스에게 쉼이란 찾아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녀가 살인죄로 사형 당하기 전 제발 누군가는 테스에게 행복이 되어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끝내 찾아오지 않은 행복은 그녀에게 처참한 죽음을 주었다. 내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있을까.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테스가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주변을 더 돌아보고 살피며 살아가야겠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몰려오는 허무함이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강간 피해자 테스에게 세상이 남겨준 것은 손가락질과 죽음뿐이다.
앞에서는 작가가 미웠다고 말했지만 이런 사회제도를 비판해준 것 같아 고마워졌다. 토머스 하디, 그는 주인공에게 너무할 정도로 많은 고난을 주었지만, 이를 통해 사회를 고발해 주어서 고마웠다. 고전 문학이지만 줄거리가 어렵지 않고 교훈도 많아서 학생들, 어른들 할 것 없이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