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方[5147]如初선생書-己所不欲勿施於人[기소불욕물시어인]
己所不欲勿施於人[기소불욕물시어인]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마라
<衛靈公-24>
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子曰:其恕乎! 己所不欲勿施於人. ================= 자공이 물었다. “한 마디 말로서 일생 동안 행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서(恕)다.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마라.” |
자공이 공자에게 묻는다. "한 마디 말로서 평생 실천할 수 있는 가르침이 있을까요?" 공자는 "그것은 서(恕)다.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마라."라고 대답한다. 이 한 마디는 매우 간단하지만 공자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언명이다.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마라(己所不欲勿施於人)”라는 말은 공자의 기본 철학인 수기(修己) 및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점을 간과하면 이 말은 종래의 속된 이타주의적 해석으로 빠지고 만다. 수기 및 위기지학에 대해서는 앞서 「66. 군자는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는 글에서 다룬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상론하지 않겠다. 다만 수기 및 위기지학은 공자 사상의 특유한 부분으로, 나 자신이 세상과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뿌리를 같이하고 동심원(同心圓)적 존재라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작은 연못에 조약돌을 던지면 물결의 파장이 온 연못으로 퍼져 나가듯, 나의 행위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파급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 장에서 공자는 “한 마디 말로서 평생 실천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요?”라는 자공의 물음에 “그것은 서(恕)다”라고 말했다. ‘서(恕)’는 같을 여(如)자와 마음 심(心)자가 합쳐진 형성자이다. 내 마음과 같이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니, 용서하고 헤아리고 동정하고 어질다는 뜻이 도출된다. 그러므로 어질게 동정해 주고 용서(容恕)해 주는 마음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마음이기도 하고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을 한 후 공자는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마라(己所不欲勿施於人)’라는 구체적인 행동을 제시했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통해서만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종래 이 구절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시키지 마라”라고 해석되어 왔다. 두 해석 간에는 미묘하지만 중대한 차이가 있다. 종래의 해석은 주로 타인을 대상으로 한 행동이나 요구의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는 해석이라면, 새로운 해석은 자신의 의도에 대한 도덕적인 기준을 강조하는 철학적 성찰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해석은 종래의 해석에 비해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하고자 하지 않으면서 남에게만 무언가를 베풀려고 하는 속된 이타주의를 경고하고 있다. 예컨대 어떤 환경론자가 ‘환경보호켐페인’을 벌이며 남에게는 환경보호를 강요하면서 스스로는 플라스틱 제품을 남용하거나 대중교통보다 자가용 이용을 선호한다면 이는 속된 이타주의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또한, 어떤 학부모가 자녀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강요하면서 자신은 책 한 줄 읽지 않고 자기계발도 게을리 한다면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남에게만 무언가를 베풀려고 하는 속된 이타주의의 예에 속할 것이다. 자로와 자공과 같은 제자들은 늘 백성에게 널리 베풀고 중생을 구제한다는 장대한 일에 벅찬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공자는 제자들에게 늘 성급한 이타주의나 시혜의식을 경계하고 자기 개선을 통해 세상을 개선하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은
안연편/2장에서 중궁에게도 동일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두 제자에게 똑같은 가르침을 주었다는 사실은
이 말이 공자의 사유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주제임을 말해준다.
주절인 물시어인(勿施於人),
“남에게 베풀지 마라”만 보면 공자는 평소 남들과 세상에 대해
무언가를 베풀고 기여하고자 하는 들뜬 의욕을 경계했다는 해석을 낳는다. 그러나 이 구절에는 조건이 있다. 스스로 하고자 하여
남에게 저절로 베풀어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는 "스스로 서고자 하여 남을 세우라"
(己欲立而立人),
"스스로 달하고자 하여 남을 달하게 하라"(己欲達而達人),
"스스로 선하고자 하여 백성들을 선하게 하라"(子欲善而民善矣)고 했다.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마라(己所不欲勿施於人)"
는 말은, "스스로 서고자 하여 남을 세우라(己欲立而立人)"는 말에
두 개의 부정어, 불(不)과 물(勿)을 개입시켜
요지를 역동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마라(己所不欲勿施於人)”
라는 구절은 종래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남에게 시키지 마라”로
번역되어 왔다. 이것은 『중용』에서부터 시작된 오해와 오역이다.
『중용』 13장에서 위령공편의 단편과 연관하여
‘施諸己而不願, 亦勿施於人’이라고 풀이했는데,
"자신에게 베풀어지기를 원하지 않는 것은 또한 남에게도 베풀지 마라"로 변조되었다. 이 해석에서는 그나마 시(施)를 '베풀다'는 뜻으로 썼지만,
후대로 갈수록 남에게 '시키다'는 뜻으로 변모했다.
욕(欲)은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것,
시(施)는 무언가 좋은 것을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원문을 보면 『중용』의 해석과 그것을 답습하고 있는
종래의 해석은 원문의 의도로부터 크게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구절은 이제 공자의 원문과 진의로 돌아가야 한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은
공자가 강조하는 위기지학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다.
자기 자신과 이 세상을 동심원적 구조로 파악하면서,
더 나아가 자기 자신과 이 세상을 동일한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동심(同心)적 존재로 인식하며, 자신을 개선하는 것만이
바로 남과 이 세상을 개선하는 유일한 실천 기제가 됨을 깨닫고,
자기 개선을 위해 노력하라는 공자의 위대한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