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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가도〉
낱말풀이
책가 안에 책을 비롯하여 도자기, 문방구, 향로, 청동기 등을 진열해 놓은 모습을 그린 그림.
상세설명
책가에 책만 가득 꽂혀 있는 책가도도 있다.
책가도는 우리말로 ‘책거리(冊巨里)’라고도 한다.
책거리에는 책가가 있는 그림뿐만 아니라 책가가 없이 책을 비롯한 기물들을
나열한 그림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책거리가 책가도보다 상위 개념이다.
발상 및 변화
책가도는 18세기 후반 책을 통해 문치(文治)를 하려는 정조(正祖)의
구상에 의해 화원이 제작한 것이 시초일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다보각경(多寶各景)이나 다보격경(多寶格景)을 본떠서
조선에 걸맞은 형식을 만든 것이 책거리다.
다보각경이나 다보격경은 다보각(多寶各) 또는
다보격(多寶格)과 같은 장식장에 도자기, 청동기, 옥 등
귀한 물건을 진열해 놓은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정조는 신한평(申漢枰)과 이종현(李宗賢)이 책거리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귀양을 보냈을 정도로 책가도에 대한 애착이 강하였다.
또한 당시에는 한때 귀인(貴人)들의 벽에 이 그림을 바르지 않은
경우가 없었는데, 김홍도(金弘道)가 이 기법에 뛰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김홍도가 제작한 책가도는 전하지 않고,
이보다 일, 이십년 뒤에 궁중화원 장한종(張漢宗)이 제작한
「책가도병풍」이 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장한종의 「책가도병풍」은 휘장이 쳐진 책가의 모습이 그려졌는데,
당시 도입된 서양화법인 선투시도법(linear perspective)에 음영법(shading technique)을
사용하여 입체적이고 깊이 있게 표현했고 갈색조로 색감을 내었다.
19세기에는 궁중화원 이형록(李亨祿, 1808∼?)이 책가도로 유명했다.
그의 책가도는 구도가 짜임새 있고, 색채가 중후하며, 표현이 매우 섬세한 특징이 있다.
이형록은 57세인 1864년에 이응록(李膺祿), 64세인 1871년에 이택균(李宅均)으로
두 번 개명했는데, 특히 이택균의 이름을 사용한 책거리는 배경의 바탕을 청색으로
처리하여 이전의 시기와 화풍상 뚜렷하게 구분된다.
궁중화풍의 책가도는 19세기 민화로 확산되면서,
책가가 있는 책거리보다 책가가 없는 책거리가 더 성행했다.
그것은 민화 책거리는 크기가 작기 때문에 책가가 있는 것보다는
책가가 없이 책을 비롯한 기물들을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작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담기 위해 책을 비롯한 기물들을 응집해서
그리고 평면적인 공간으로 표현하는 등 서민 취향에 부응한 변화를 보였다.
<책가도>, 19세기 후반, 종이에 색, 145×40.5cm. 국립민속박물관
6폭으로 된 이 병풍의 책거리 그림은 책을 좋아한 주인의 취향을 반영한
듯 책장에 온통 책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평면적인 느낌이 강함.
1폭, 5폭, 6폭에(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서랍과 여닫이문을
그려 넣어 책장의 실재감을 느끼도록 했다.
쌓아 둔 책들이 모두 왼쪽을 향하는데 6폭의 아래 두 칸 속에
넣은 책만이 오른쪽을 향한 것이 특징임.
장한종,<책가문방8폭도>,종이에 색,195×-361cm, 경기도박물관
도자기, 문방구, 과일, 꽃 등의 장식품들은 모두 청나라에서 수입한 분채(粉彩)자기나 청동기, 문방구 임.
중앙의 4,5폭을 중심으로 시점이 좌, 우를 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오른쪽 2폭의 맨 아랫단의
두껍닫이 문을 떼어 놓아 서랍 안에도 역시 책이 가득하다는 것과 마지막 8번째 폭 도장함의 도장에
'장한종인(張漢宗印)'이라고 은밀하게 자신의 이름을 그려 넣는 재치를 보여 준다.
이형록, <책가문방도8곡병>, 종이에 색,140.2×-468cm, 삼성리움미술관
책거리그림을 대표하는 작품이며 8폭 병풍은 좌우대칭을 이루고 책과 책장이
상하좌우로 방사선형으로 배치되어 있어 깊이감과 원근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으며 선배 장한종의 작품보다 훨씬 입체적이며 구도도 시원하다.
역시 8폭 하단에 '이형록인(李亨祿印)'이라는 서명을 은인(隱印:숨겨진 도장)해 두었다.
그는 말년에 '형록(亨祿)'에서 '응록(應祿)', '택균(宅均)'으로 개명을
했는데 모두 책거리그림에 숨겨진 은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응록.<책가도>, 1864-1871년, 종이에 색, 각 120×-43cm, 경산시립박물관
이형록이 '이응록(李應祿)'으로 개명하여 그린 작품이며 역시
왼쪽 6폭 하단의 옆으로 뉘여진 도장에 은밀하게 새겨 놓았다.
이 그림은 책장을 그리지 않았다는 게 특징이며 책을 서로 엇갈리게 쌓아놓은
것이나 책을 펼쳐 놓는 등 규격화된 틀에서 벗어난 자유스러움이 느껴진다.
이택균,<책거리10폭병풍>, 종이에 색,각150×37cm, 통도사성보박물관
이형록이 마지막으로 개명한 이택균의 이름으로 그린 작품이며 9폭의 중간
부분에 눕혀진 도장에 '소신이택균인(小臣李宅均印)'이라고 새겨져 있다.
'소신(小臣)'이라고 자신을 칭한 것을 보면 왕을 위해 궁중에서 그린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책보다는 청매화, 동백, 살구꽃, 모란, 복숭아꽃, 수선화가 그려진 꽃병 등
기물이나 꽃들이 많아지는 건 사회 풍조였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민화책거리>, 19세기후반, 비단에 색, 각 95.8×30cm, 국립민속박물관
이형록의 책거리 그림보다 훨씬 더 장식적이고 색채도 화려하지만
책장이 없는 것은 “이형록”의 정통을 계승한 것이라고 보인다.
아랫 부분에 서안과 문갑 등의 목가구가 책을 받치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향로와
고동기(古董器) , 수선화 대신 과일과 채소가 많이 등장한 것과 1폭에 칼이 등장한 것도 새롭다.
<민화책거리>,종이에 색, 52.2×31cm, 삼성리움미술관
청, 적, 황, 백, 흑의 오방색이 선명하게 대비를 이루면서 색채의 향연이 펼쳐진다.
포갑과 책의 표지, 벼루와 서안 등의 세부 묘사도 감탄스럽다.
그런데 작가는 왜 책 대신 다른 소재들을 많이 그렸을까?
문방사우가 선비정신을 상징한다면 영지는 장수를, 모란은 부귀를,
석류는 다산을 상징하는데 그것은 각 소재가 지니는 길상적인 의미 때문일 것이다.
흐트러진 정신을 다잡고 선비정신을 잃지 않겠다던 초기의 결심은 다 어디로 가고
남들보다 더 잘 살고, 더 행복하고,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싶다는 욕심으로 변했기 때문일까?
김민수, <호랑이가 전하는 현대의 부귀영화>,2010년, 150×150㎝ 2점, Acrylic_on_canvas,
전통 책거리가 현대에 어떻게 계승되고 재해석되는지를 보여주는 현대의 책거리 작품이다.
현황
대표적인 궁중화풍의 책가도로는 위에서 언급한 장한종의 「책가도 병풍-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
이형록의 「책가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책가도」 등이 있고, 민화 책가도로는 일본민예관,
교토 고려미술관, 한국의 선문대학교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등에 여러 폭이 소장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책가도는 조선후기에 문(文)을 중시하는 정조의 문치정치의 표상과 같은 그림이다.
이 그림은 궁중과 상류계층 뿐만 아니라 서민들에게까지 확산되면서 민화의
핵심적인 주제로 자리 잡았다.
--- 다물 옮겨 만듬
첫댓글 책가도라 하기도 하고 문방도 라고도 불리웠었네요.
어떻게 민화로 그려볼 생각을 하였는지...
오방색이 선명하게 이루어지면서
색채에 향연이 펼쳐지면서 세부묘사가 다채롭군요..
우리에 선조들은 대단하십니다..
아주 귀한 작품을 올려주신 다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즐거운 시간이 되시기 바람니다..
고맙습니다..
이런 색다르고 훌륭한 장르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유럽 쪽에서 발생하여 중국 으로 다시
조선으로 전파 됐다는게 정설이군요.
그래서 유럽인들이 더 열광
하는것 같습니다.
재주 많은 조상님들의 특색 있는 그림들이
이제야 빛을 보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