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저장강박증'을 아시나요? 아마 대부분은 그리 익숙하지 않은 용어에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저장강박증' 환자인 30대 여성이 미성년 자녀 두 명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경찰에 입건된 바 있습니다. 경남 창원 시내의 한 주택에서 "촛불을 켜놓고 잤는데 초가 쓰러져 불이 났다"는 신고가 소방당국에 접수됐는데, 출동한 소방대원과 경찰이 주변을 둘러보니 30여 평방미터 면적의 방이 온갖 물건과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지난해에도 10년 동안 폐지와 옷가지, 페트병 등 잡동사니로 발 디딜 틈조차 없을 만큼 물건들을 모아온 한 아주머니의 집을 구청에서 사흘에 걸쳐 치워준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최근 몇 년 사이에 일명 '쓰레기 집'들이 늘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이렇듯 필요 없는 물건들을 쌓아놓고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강박장애의 일종인 <저장강박증>으로 진단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우울이나 불안과 관련이 깊은 저장강박증은 대인관계를 통해 애착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불필요한 물건에 집착하는 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사회관계망을 만들어주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쓰레기만 치우면 문제가 똑같이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저장강박증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1. '저장강박증' 이란?
디오게네스 증후군이라고도 불리는 저장강박증은 일반사람들은 물론이고 의사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일종의 질병이다. 극심한 자기부정, 은둔 성향을 띠며 강박적으로 물건을 비축하는 증상을 말한다. 이러한 증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집에 온갖 물건들을 병적으로 비축해 두는데, 인구의 2~3퍼센트가 이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2. 저장강박증의 증상
- 쓸모가 없거나 무가치해 보이는 많은 소유물이나 정보를 버리지 못하고 모은다.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 우울지수가 높고 충동구매가 잦다.
- 공짜 물건들을 모은다.
-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마저 못 버리고 모든 물건을 보관한다.
- 물건을 정리정돈하지 못한다.
- 모든 소유물을 가족들이 만지지도 못하게 하며 귀중한 보물처럼 여긴다.
- 고등교육을 받은 경우가 많고, 보통사람들보다도 창의력도 높은 편이다.
- 보통 말할 때도 장황하다.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하는 대신 아주 세세한 설명까지 덧붙인다.
- 결정을 내리는 것과 집중력이 약하다.
- 도박중독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행동을 병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 물건에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했던 시기를 기억나게 하는 정서적 가치, 감정적 애착이 있다.
또 언젠가 물건들의 가치가 오를 거라고 생각해서 그 물건을 버리는 것은 돈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여긴다. 당장은 쓸모없더라도 언젠가 실용적 가치가 생길 것이며, 아름답거나 매력적인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3. 저장강박증의 원인
사실 물건을 모으는 행위는 아주 기본적인 요구로, 뇌의 피질하부와 전전두엽 부분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는 게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저장품의 양을 결정하기 위해 정보처리와 체계화를 담당하는 전전두엽 피질까지 사용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저장강박증이 있는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려는 자연스러운 욕구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 초기부터 뇌출혈이나 전전두엽의 충격으로 전두엽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에게 저장강박증이 생기는 사례가 확인되었다. 하지만 이런 병리적 현상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경우 직접적인 원인은 불안이다.
또 일본의 한 프로그램에 따르면, 저장강박증을 앓는 사람들은 질서나 청결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생활공간에 대한 개념을 잊어버려서 삶을 유지하려면 충분한 생활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 때문에 빛이 드는 공간이나 움직임이 용이해야 할 현관 등을 물건들로 막고서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4. 저장강박증의 치료
상담치료와 약물치료, 인지행동 치료가 있다. 사랑과 관심, 가족 간의 유대도 중요하다. 애정과 관심으로 안정감을 주는 것이 필요하고, 또 그때그때 버려야 될 것과 필요한 것을 구별해서 정리 정돈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함께 도와주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우울증 치료제로 개발된 세로토닌(강박증에 영향을 미치는 신경전달물질) 재흡수 차단제를 사용하여 신경을 안정시키는 방법이 있는데, 다른 강박장애보다 치료가 쉽지 않다고 한다. 세로토닌은 우유 섭취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우유에는 트립토판이라는 아미노산이 풍부한데, 이 아미노산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세로토닌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재료다.
평소 바른 식습관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먼저 무기질이 풍부한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섭취한다. 스트레스가 누적되면 체내에 비타민과 아연 같은 무기질이 많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면서 건강에도 좋은 음식은 비타민 C가 풍부한 음식이다. 딸기, 오렌지, 레몬, 귤, 키위, 토마토, 고구마, 감자, 피망, 브로콜리, 시금치 같은 신선한 채소와 과일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비타민C는 항산화 성분으로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활성화하고 면역기능을 높여줄 뿐 아니라 스트레스도 줄여준다.
호두, 피스타치오 같은 견과류 역시 섬유질과 항산화제,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해 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을 주며, 특히 호두에 들어 있는 오메가-3 지방산은 우울증을 완화시키는 효능이 있다. 또한 캐슈넛과 아몬드에 들어 있는 셀레늄은 기분을 좋게 만들기도 한다. 단맛이 강한 고구마에는 낙관적인 생각을 증진시키는 영양소인 카로티노이드와 섬유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다.
앞으로 의료계에서 이 질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환자들이 요청할 경우 치료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다른 해결방법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따라서 어느 날 가족이 물건을 쌓아두기 시작하면, 디오게네스 증후군은 일종의 병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각자 수용할 수 있거나 허용할 수 있는 한계선을 정해둘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