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 | 2 |
1 | 1 | 2 |
2 | 2 | 1 |
집합 A={1,2}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여기서 1과 2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원소 1과 2 사이에 어떤 작용 즉 연산이 발생합니다. 물리학에서는 관성이라고 합니다. 이런 작용을 편의상 기호 「 。」로 표시하지요.
이 표는 1 。1=1, 1 。2=2, 2 。1=2, 2 。2=1를 뜻합니다. 2ⅹ2=4이지만 2 。2=1라는 것에 유의해야 합니다.
(1) 1 。1=1, 1 。2=2, 2 。1=2, 2 。2=1이라는 것은 각 a, b ∈A에 대하여 a。b=b。a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규칙을 가환법칙이라고 합니다.
(2) (1。1)。1=1。(1。1)=1, 1。(1。1)=(1。1)。=11, 1。(2。。1)=(1。2)。1=2, 。,(2。2)。2=2。(2。2)=2입니다. 각 a, b, c ∈A에 대하여 (a。b)。c=a。(b。c)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규칙을 결합법칙이라고 합니다.
(3) 특히 1은 1。1=1, 1。2=2, 2。1=2입니다. 각 a∈A에 대하여 1。a=a= a。1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규칙을 1은 항등원(identity)이라고 합니다. 즉, 이런 연산에 대하여 항등원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4) 연산표에 따르면 1。1=1, 2。2=2입니다. 이럴 경우에는 1의 역원은 1, 2의 역원은 2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2의 역원이 1/2=0.5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상의 네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에 관하여 집합 A는 하나의 군을 이룬다고 정의합니다. 그래서 (A, 。)는 하나의 그룹을 이루는 것입니다.
셋째, 갈루아의 그룹에 해당하는 다른 쉬운 예를 들어 주시지요.
응답 : 예를 들어 줄 테니 집에 가셔서 풀어보세요.
0 | 1 | 2 | 3 |
1 | 0 | 1 | 2 |
2 | 1 | 2 | 0 |
3 | 2 | 0 | 1 |
현명하신 독자는 2와 3을 곱하면 6이고, 다시 3으로 곱하면 0이라는 것을 곧 알아들었습니다.
넷째, 갈루아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본 것 같은 데요.
응답 : 이 세상에 천재는 단 두 사람뿐입니다. 음악에서는 모차르트, 수학에서는 갈루아입니다. 인류역사상 이들 이외의 천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천재교육 또는 영재교육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지 양육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만고의 진리입니다. 천재는 가인박명 하니 그대들은 천재가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런 수의 연산은 「피타고라스의 윤회사상」에 기인한 이른바 진법으로서 「중국인의 나머지 사상」과 같은 것입니다. 필자의 견해로는 모든 생각의 원천은 중화인들에서 나온 것으로 봅니다.
다섯 째, 갈루아의 젊은 시절은 맑음이었나요.
응답 : 12살 때 파리의 명문 리세인 루이 르그랑교에 입학했습니다. 성적이 나쁜 이유로 1년, 2년 아래의 학생들과 같은 학과를 다시 공부했기 때문에 「심심하던 차에 인기가 없었던 수학 수업을 들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유급하여 창피하게 지낸 것입니다. 울고 싶어도 천재는 우는 법이 없습니다. 다행히 우수한 교사인 리샤르를 만나게 되어 초등 기하학의 교과서를 읽기 시작하여 2년짜리 교재를 2일 만에 읽어 풀어 버렸습니다. 인류역사에서 천재라 불리던 사람들은 중고등학교 시절에 우수한 교사를 만났습니다. 가우스나 뉴턴도 같은 행운을 가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여섯 째, 갈루아는 고등학교는 다녔나요.
응답 : 갈루아는 나폴레옹이 칭찬하던 『에콜 폴리테크닉』에 입시준비도하지 않고 응시해서 2차례나 떨어졌습니다. 17세 때 자신의 첫 논문인 5차 방정식에 관한 논문을 코시에 위탁하여 프랑스 학술원에 제출하도록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코시는 그것을 분실했다고 전합니다. 또는 코시는 논문이 고교생이 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읽지도 않고 버렸다고도 합니다. 다음 해 에콜 폴리테크닉에 재도전하지만 또다시 떨어졌습니다.
일곱 째, 갈루아는 고등 사범학교에 입학했다면서요.
응답 : 그는 1829년에 고등 사범학교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직전에 아버지가 목사의 책략에 걸려 자살해 버렸습니다. 엄격했던 사범학교 교사들은 건방지게 질문만 한다는 이유로 수업시간마다 갈루아를 때렸습니다. 이런 일은 고등학교 교사들의 파렴치 행위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재학 때부터 공화파로 혁명 운동에 참가했습니다. 교장을 비판을 하는 등의 행동을 하였다고 하여 고등 사범학교에서 1년 만에 퇴학당하였습니다.
여덟 번째, 지금 우리나라 목사도 교사도 교장도 모두 선인인데 프랑스는 뭐 그런 자들이 득실거려던 거군요?
응답 : 필자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은혜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그런 사람들」을 아주 싫어합니다.
아홉 번째, 고등 사범학교에서 쫓겨난 갈루아는 어떻게 지냈습니까?
응답 : 불행은 불행을 낳는다고 그 누가 말했습니다. 갈루아는 1830년에는 과학 아카데미 수학 대상에 응모할 논문을 제출하였습니다. 이 논문은 당시 과학 아카데미의 간사였던 푸리에가 집에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그 후 곧 푸리에 사망해 버렸기 때문에 분실되었습니다.
열 번째, 갈루아의 일생은 고난의 연속이었군요.
응답 : 수많은 불행과 불운과 겹쳐 그는 프랑스 혁명에 가담하여 국민군에 몸을 던졌습니다. 곧 체포되어 Pelage 감옥에서의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1843년에 리우빌이 갈루아의 원고를 재검토하였습니다. 노르웨이 수학자 아벨이 최초로 제안한 문제를 이미 해결하고 있었다고 선언했을 때였습니다. 아벨은 5차방정식의 일반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문을 발표한 것입니다. 이 또한 갈루아의 운명을 단축시킨 원인이 되었습니다.
열한 번째, 갈루아의 삶의 무게는 거의 제로여군요.
응답 : 1830년 7월 혁명에 참가하였다가 가석방되었습니다. 갈우아는 연애 관계에 의한 결투 끝에 죽었습니다.
결투의 이유는 사랑하는 어떤 여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라고 알려졌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죽음은 반동파나 비밀경찰에 의한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열두 번째, 갈루아는 흔적도 없이 짧은 생을 마감했군요.
응답 : 그렇지 않습니다. 그랬으면 독자와 필자의 이런 유형의 만남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결투 전날 밤에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친구 슈발리에에게 남긴 유서에 『5차 방정식의 타원 모듈러 함수를 이용한 초월해 공식의 아이디어』가 씌어있었습니다. 목사의 모함으로 죽은 갈루아의 아버지가 꿈에서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합니다.
열세 번째, 역사는 갈루아의 일생을 어떤 식으로 적고 있습니까?
응답 : 갈루아는 대혁명기의 프랑스에서 파리 인근의 부르라랭의 시장의 아들로 태어나 혁명의 혼란 속에서 20살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는 5차이상의 방정식이 단순한 공식으로 풀 수 없음을 밝혀냈다. 그는 수학 분야만이 아니라 과학 일반, 예술, 심리학, 그리고 【대자연을 아우르고 통합하는 새로운 이론인 『군론(group theory)』을 창조해낸 프랑스의 영원한 젊은이였다.】
열네 번째, 지금도 센강에 갈루아의 영혼이 흐르고 있다면서요. 그 영혼의 목소리는 어떤 것입니까?
예, 갈루아의 영혼은 자연철학의 초끈입니다. 이런 소리가 지금 이 시각에고 우리들 귀에 들리오지 않은지요.
1,000여 년에 걸친 대수방정식 해결의 역사, 그 종장인 5차방정식 장에서 군론이 태어나다!
열다섯 번째, 인터넷에 떠다나는 갈루아의 사진은 어떻게 해서 나온 건가요?
응답 : 필자가 대답한 내용은 백과사전과 인터넷 정보를 편집형태로 고쳐서 쓴 것입니다. 그 곳에 있기를 아주 멋진 표현으로 동급생이 그린 15살 때의 갈루아의 사진이 떠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젊은 학도들이여. 갈루아의 동급생 그와 같은 학생이 되시 길 바랍니다. 갈루아를 매질하던 교사도 비난했다고 퇴학시키는 교장도 엮어메여 죽게하는 목사도 그리고 여러분의 우상 갈루아도 잊으시라. 갈루아의 유언처럼 모두 다 제로 0으로 되돌라갈 것도 모르고, 『울지마오 내 사랑하는 동생 알프레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