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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선집 63권 5편
과중한 임무
1972.10.15 (일), 한국 전본부교회
아버님, 오늘은 10월 15일, 벌써 이달의 중간을 맞는 날이 되었습니다. 세번째 맞는 안식일인 이 아침에 어린 자녀들이 아버님 존전에 부복하였사옵니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여! 당신께서는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시선을 통하여 그리워할 수 있는 아들딸을 얼마나 바랐사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마음에 들지 못하고 보기에 아름답지 못한 자녀들이 될까봐 조바심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모여 앉은 이들을 버리지 마시옵소서.
아들의 명예를 가진 저희들이 부모를 그리워하고 아버지의 얼굴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는 아버지여! 당신이 계신 것이 확실히 인식 되지 않는 자녀들이 있사옵거든 보고 싶을 수 있는 아버지로서 보여 주셔야만 되겠사옵니다. 느낄 수 있는 아버지로서 저희와 같이 늘쌍 생활 주변은 물론, 마음의 체휼을 통하여 언제나 동참할 수 있는 자리에 계셔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당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자인하게 될 때, 당신께서는 보잘것없는 저희의 한 생명이지만 그 한 자체를 찾아서 자녀의 명분을 부과해 주기 위해서 수고하신다는 것을 진정으로 알고 고맙게 생각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야말로 없어서는 안 될 아버지여! 저희는 당신이 떨어질 수 없는 인연 중의 인연을 묶고 있는 생명의 근본되시는 분인 것을 알고, 삶의 인연을 갖추어 줄 수 있는 주체인 것을 알고, 이상의 근본을 저희 자신들 앞에 소개해 주실 수 있는 본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 자신들이 거룩하고 존귀하신 당신을 흠모하면서, 깊고 고요한 자리에서 당신의 마음을 파고드는 사랑스러운 자녀의 모습이 되고 싶어 이 자리에 나왔사오니, 품고 사랑하시고 권고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한 생명을 두고 볼 때 '나'라는 관념이 강한 것을 알게 되옵니다. '나'라는 것이 강하게 될 때는 '나' 가운데에 아버지께서 임재하실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나는 대상이요 아버지께서는 주체이기 때문에, 주체를 나보다 존중시하는 데 있어서는 내 마음속에 주체로서 아버지가 계실 수 있으되, 상대인 나를 중요시하는 데 있어서는 아버지께서 계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언제나 저희들은 대상의 입장을 취하고 아버님을 주체의 입장으로 모시기 위하여 진정코 사모의 심정과 흠모의 심정에 사무칠 수 있는 참다운 그리운 모습이 되기를 바라고 있사옵니다. 당신이 부르기 전에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당신의 아들딸이라는 인식을 하기 전에 이미 당신을 사랑했다는 입장에 선, 당신의 아들딸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아들딸의 입장에 있는 최대의 소원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그립고 간절하고 안타까운 아버지의 사정에 통할 수 있는, 누구보다도 가깝고, 누구보다도 간절한 아버지의 자녀된 자리를 그리워하고 있나이다.
아무개라고 부르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희열이 넘치고, 아버지의 그 모습에는 자유롭고 영원한 사랑이 넘쳐흐를 수 있는 그 아버지를 저희의 마음으로 몸으로 모시고, 저희는 어린 아기와 같이, 벌거벗은 어린애와 같이 그 아버지의 품에 매양 품겨 살고 싶고, 매양 그 곁에서 재롱을 피우고 싶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져야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심정의 인연에 화합할 수 있는 본질을 갖지 못하고 타락성이 저희 몸 가운데서 충동하고 있다는, 억울하고도 슬픈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당신은 높고 귀하시기 때문에 저희 앞에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인 것을 마음으로 느끼면서, 부족한 자신을 찾아올 수 없는 아버지요.
만날 수 없는 아버지요. 모실 수 없는 아버지라고 먼 자리에서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자책하고 스스로를 회개할 수 있는 모습만이 타락성을 벗지 못한 우리들이 처할 수 있는 입장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어찌하여 이와 같은 자신이 되었느냐고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 선조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는 자신임을 발견하게 되옵니다. 그렇게 될 때에 한탄 가지고 끝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그 모든 책임을 그 누구에게 돌릴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아버지 앞에 속죄의 제물로서 바쳐지기를 바라게 되옵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게 될 때 그 책임이 우리의 책임이요. 나의 책임이라고 다짐하고 나서게 됩니다.
인간이 타락하게 된 것도 하늘이 지었기 때문이며, 이와 같은 고통 중에 인류를 남겨 둔 것도 하늘이 지었기 때문이옵니다. 하늘의 거룩한 마음이 침범당할까봐 두려운 마음으로 몸을 붙안고 몸부림치는 자들 앞에는 당신이 찾아오셔서 '그것은 나의 책임'이라고 주장하시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그 고마움은 무엇으로도 표시할 수 없다는 것을 저희는 느껴야만 되겠사옵니다.
보잘것없는 나 자신을 향하여 아버지깨서는 얼마나 찾아왔던가를 생각할 적에, 저희들이 모르고, 저희들이 생각하지 않은 때에 내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밤이나 낮이나 쉬지 않고 움직여 나왔다 놀 사실을 진정 모르고 있던 저희들이었사옵니다.
보잘것없는 한 생명을 세우기 위해서 잠자리의 몽시 가운데 찾아 오셨고, 혹은 일하는 자리와 고독한 자리에서 몸부림치게 될 때에 아버지께서 현현하시어 자연스레 음성으로 혹은 마음의 느낌으로 지도하여 주신 것을 느끼면서도 고마운 것을 몰랐던 불쌍한 무리들인 것을 저희들은 다시 한 번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오늘 남아지기까지 당신께서 수고하신 날들이 얼마나 얼마나 많았나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찾아오시는 당신을 위하여 얼마나 몸 마음을 단장했으며, 오시는 그 시간을 그리워하며 당신 앞에 바쳐지고 당신에게 필요할 수 있는 자신으로 바쳐질 수 있기를 바라서 얼마나 준비하였는가를 반성하게 되옵니다.
그러지 못하였던 자기 과거를 한탄하면서, 오늘 그와 같은 자리에 서서 당신의 소명을 고대하면서 새로운 명령을 바라는 마음을 갖고, 당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하고도 남을 수 있다는 자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이 서글픔을,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내적 억울함과 외적 분통함을 느낄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저희는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인지라 타락한 세계의 습관적인 생활권내에서 그날 그날 보내기를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여기에 모인 부족한 자녀들을 아버지여, 다시 한 번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죽도록 배워야 할 것이 인간이요. 죽도록 싸워 다짐지어야 할 인생노정인 것을 너무나 잘 아시는 아버지여! 완전한 자가 이 땅 위에 어디에 있사오며, 당신을 위하여 충의 도리, 효의 도리를 다했다는 자가 이 땅 위에 어디에 있사옵니까?그러한 자가 이 땅에 없다는 것을 타락한 후손이기 때문에 당연지사로 아는 것을 생각할 적에 아버님께서는 끝까지 이들을 가려 나가야 되는 불쌍한 분이신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 땅 위에서 사는 일생 노정뿐만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에 가서도 우리의 처참한 모습들을 가려 줘야 할 남아진 당신의 사명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은 그야말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고독의 중심이요. 비참의 중심이요. 탄식의 중심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한 아버님을 저희들이 너무너무 몰랐던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반성하면서 당신 앞에 솔직이 직고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나'라는 사람은 이러한 것이었사옵니다. '나'라는 모습은 이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보시고 찾아오실 수 없는 아버지시여! 도리어 나를 멀리해 달라고 기도해야 될 자신들을 직시하면서, 오늘의 슬픔을 억울하게 생각 하면서 내일의 비참함을 넘기 위하여 무한히 몸부림치고, 무한히 안타까워해야 하는 자신이 되어야 될 것을 생각할 적에, 그러지 못한 오늘의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기가 막힌 처참지사인가를 다시 한 번 자각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뜻 앞에서는 솔직해야 되겠사옵니다. 당신 앞에서는 겸손해야 되겠사옵니다. 겸손의 마음을 따르는 그 배후에는 당신의 구조의 손길이 있을 수 있지마는, 교만한 마음을 갖고 나서게 될 때에는 당신의 자비의 손길은 멀리 멀리 떠나 버린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겸손하지 못했던 과거의 자기 자신을 무한히 증오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렇지 못한 자신의 현실을 무한히 증오해야 되겠사옵니다.
현실에 있어서 저희들은 솔직해야 되겠사옵니다. 있는 그대로, 가식을 모르는 그냥 그대로의 순박함이 자신에게서 표현돼야 될 것을 저희가 그리워할 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인간이 가식으로 말미암아 타락의 동기를 가졌다는 것을 저희들이 생각할 적에, 이제 저희들 앞에 가식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님, 부복한 자녀들을 살피시옵소서. 불꽃 같은 눈으로 그 마음 마음을 살피시옵소서. 그 마음과 몸에 뺄 수 없는 죄악의 쓴 뿌리가 아직까지 자리를 잡고 있는 이 억울한 사실을 바라볼 적에 무책임한 당신이라면 이 자리를 떠날 수 있겠지만, 떠날래야 떠날 수 없는 아버지의 간곡한 심정을 그 누구 앞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외로운 아버님인 것을 저희들이 발견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그와 같은 외로움의 자리에 선 것은 나로 말미암은 것이요. 나의 조상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제가 괴롭기 전에 당신이 먼저 괴로왔던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들이 비참하기 전에 당신이 비참했던 것을 알았습니다. 탄식이 가중될 수 있는 고독과 억울함의 자리에서 저희는 그 자리를 원망도 하고 저주도 하면서 당할 수 있지만 아버지께서는 원망도 할 수 없고, 저주도 할 수 없는 고독과 비참의 자리에서 몸부림치며 도리어 우리를 위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아버지의 사정이란 것을 어느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버지, 이제 이 부족한 것들을 당신께서 모아 놓으셨사오니, 오늘의 자기 자신을 들어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거들랑 스스로 망령된 자임을 자각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 하나를 위하여 역사적인 희생의 대가를 치르시면서 허구한 날 비참과 고통을 극복해 나오신 아버지가 계신 것을 몰랐다면 모르지만, 계신 것을 아는 저희들로서는 그러할 수 없사옵니다. 저희는 저희에게 비참함이 있을 때, 하늘의 동정을 받을까봐 조심성 있게 행동해야 되겠사옵니다. 하나님께서 비참한 자리에 서 있을 때, 저희가 동정하지 못했던 슬픈 사실을 느끼면서, 아버지께서 저희의 슬픈 자리에 동정의 인연으로 찾아주게 될 때는 황공하여 몸과 마음을 둘 바를 알지 못하고 눈물로써 하늘을 모시고 대할 줄 아는 겸손한 자신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저희 자신, 당신을 더럽힌 자식이요 흠 많은 자식이로되 그 자식을 심정으로 붙안고 사연을 나누고 싶어 하시는 간곡한 아버지의 마음이 있었음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당신 앞에 이런 기도를 올리기에 부족한 자신임을 느끼면서도 당신께서 그리워하는 사람을 찾으시기에 이러한 기도를 올리는 것이요. 그렇게 되기를 바라시기에 이러한 기도를 올리는 것이요. 그들을 책임지고 지도할 것을 바라시기에 이런 기도를 올리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악하고 또 악하고, 또또 악한 부모라 할지라도 자식에 대해서만은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을 아시는 아버지여!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이 책임 못 한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또 부족한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그 부족을 탄할 것이 아니라 내일의 소망을 갖고 이 부족을 극복해 나가야겠사옵니다. 오늘에 당하는 이 분함을 풀기 위해 책임지고 지도하는 입장에서 하늘 앞에 이런 기도를 올리지 않을 수 없사오니 긍휼히 보아 주시옵고, 측은히 보아 주시옵고, 불쌍히 보아 주시옵소서.
이 자리는 그 누구의 이익을 바라는 곳이 아니옵니다. 저희들은 단지 당신의 슬픔의 분량을 저희로 말미암아 제하든지 혹은 없앨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랄 뿐이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저희가 필요하시거든, 저희가 당신의 뜻 앞에 소용이 있으시거든 어떠한 자리라도 명령을 내려 주시옵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원하옵니다. 이제 당신 앞에 부복한 저희의 심경은 당신만을 위하여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당신께 필요한 것으로 남아져야 되겠사옵니다.
당신께서 소원하시는 후계자로서 하나의 등불이 되고, 하나의 마음의 대상이 되어 남아져야 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지고지존(至高至尊)하신 당신의 상대의 자리에 설 수 있다는 이 엄청나고 황공한 사실 앞에 뼈살이 녹아지도록 감사에 사무쳐야 하겠습니다. 그런 은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을 생각하기 싫어하였던 배은망덕한 배도(背道)의 후손들을, 아버님께서는 저주와 더불어 멸망의 길로 몰아내셨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으시고 참으시기에 수고스러웠던 아버지의 입장을 저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지만 당신을 따라가지 않고는 살 길이 없기 때문에 따라가면서 중얼거리고 따라가면서 투정부리고, 따라가면서 욕을 하고, 따라가면서 채찍질하고 뒤에서 돌팔매질하던 이 불쌍한 것들이 다시 이렇게 나와 부복하였사오니, 이 아침, 아버지께서 이곳에 친히 찾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통일교회를 당신께서는 사랑하시옵니까?통일교회를 당신께서 키우셨습니까?통일교회 속에 계시고 싶습니까?생각하게 될 때, 저희는 높고 귀하신 당신을 모실 수 있는 아무런 준비를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더 좋고 더욱 가치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저 가치있는 곳까지 모셔 가기 위한 하나의 중간 처소로서는 당신을 모실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이 자리가 당신께서 찾아나오시는 본연의 자리라고는 이 자식부터 생각하지 않사옵니다.
이곳을 넘어가야 된다는 것, 넘어 지나가야 된다는 것, 더 빛나게 깨끗이 정비해야 된다는 것을 알 적에, 손을 대어 정비하려 할 때에는 하늘이 지금까지 수고하신 공적을 침범할까봐 주저하지 않을 수가 없사옵니다. 그런 때가 얼마나 얼마나 많았는가 하는 것을 느낄 적마다 아버님께서 불쌍하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저희는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하여 가는 사람도 역시 불쌍한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당신의 입장을 너무도 잘 알게 되옵니다. 마음대로 해야 할 책임자의 입장에 섰으면서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얼마나 불쌍한 것인가를 당하고, 보고, 느낄 적마다 아버님이 얼마나 불쌍하신가 하는 것을 배우게 되며, 그것을 배우는 것으로 당신께 감사하며 갈 수 있사옵니다. 그런 자리가 통일의 무리를 지도하는 책임자의 자리라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이런 무리를 이끌고 오는 당신이 얼마나 불쌍하신 분이신가 하는 것을 더욱 깨달았사옵니다.
아버지, 저희의 손은 자기를 위하여 움직이기에 바빴고, 저희의 마음은 자기의 이익을 따지기에 바빴고, 저희의 욕망은 자기의 편한 길을 찾기에 바빴지만, 당신은 그 반대의 입장에서 늘쌍 저희와 더불어, 보이지 않는 저희 뒷 자리에서 저희를 따라와야 할 사정이 있었다는 것을 저희는 미처 몰랐습니다.
이 아침, 당신의 소신 앞에 일치될 수 있는 진정한 아들의 자리를 그리워할 줄 아는 마음이 저희의 가슴속에 사무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진정한 딸로서 효녀로서의 마음을 다할 수 있는 본성의 마음이 저희 마음 가운데에 발로(發露)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이제라도 당신을 향하여 효도할 수 있는 아들과 딸이 되겠다는 결심과 자각된 마음을 가진 것을 당신께서 보시고, 다시 소망과 희망을 가지고 저희를 다시 한 번 붙들어 주시옵소서. 과거에는 그랬지만 미래에는 그런 사람이 아니 되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오늘, 이 아침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니다.
때가 가까와 오면 올수록 고독이 사방에서 욱여싸여져 온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제 여기 서 있는 '나'라는 사람은 무엇을 결정하고 무엇을 판단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될 과제들이 남아 있는 것을 직시할 적마다. 하늘이 시대시대를 책임지고 인도해 나을 때 당하던 딱한 사정을 알게 되었사옵니다.
아버지, 그럴수록 당신을 의지하고, 당신 앞에 모든 것을 바치고, 심각한 마음으로 당신의 권고와 소망스런 결정이 있기를 바랄 때가 된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수많은 탕감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이 자리까지 온것을 생각할 적마다 감사하지만 일면 슬프고 고독함이 찾아온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한번 결정하면 다시 결정할 수 없는 때가 저희 눈 앞에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가겠다고 말하면 가야 되는 것이요. 머물겠다고 말하면 머물지 않으면 안 되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역사적인 순간이 저희의 목전에 다가옴에 있어서, 땅에 있는 그 누구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판결했다가는 영영 인류의 역사기 걸려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당신만이 주인이 되시고 당신만이 주체가 되시어 이 문제를 깨끗하고 거룩히 넘어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날을 바라면 바랄수록 과연 이 자리는 하늘을 대신한 고독한 자리라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 민족의 운명을 책임져야 할 당신의 뜻, 수많은 교계와 수많은 종교를 새로운 길로 인도해야 할 당신의 뜻, 인류를 금후에 있어서 당신이 소망하시던 이상세계로 가름지어 인도해야 할 거룩한 당신의 뜻, 이 사명적인 모든 분야를 책임져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저 제물된 자리에서 따라가고, 치욕을 당하는 자리에서도 인내하며 그 자리를 무난히 당신의 소원대로 통과하기를, 넘기기를 바라는 마음을 저희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당신은 잘 알고 계시옵니다.
밥을 먹을 때나 길을 걸어갈 때나, 무엇을 하든지 오로지 일편단심 이 역사적인 기준을 바로 세워야 할 지중(全量)한 사명이 저희에게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그럴 적마다 당신께서는 허구한 날 그런 마음을 지니시고 이 역사시대를 거쳐오시면서 그 심정을 알아 줄 수 있는 한 사람을 얼마나 얼마나 그리워하셨는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통일교회의 책임자보다도 아버지께서는 더 불쌍한 분이시라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무형으로 계시는 아버지께서는 현현하실 수 있는 상대적 기준이 없으면 나타나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땅에서 살고 있는 저희는, 슬프면 슬픈 표정을 억울하면 억울함을 탓할 수 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고독한 사실도 통과할 수 있고, 외롭고 슬픈 사실도 통과할 수 있사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께서는 그럴 수 없는 자리에서 바라보시며 홀로 짐을 지셔야 하는 불쌍한 분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게 되옵니다. 그러기에 저희는 반드시 효자가 되어야 되겠고, 충신이 되어야 되겠다는 일념을 드높일 수 있는,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 인도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을 이 아침에 다시 한 번 깨닫는 무리가 되게 허락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10월을 복된 달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제 10월, 11월, 12월, 석 달밖에 남지 않은 1972년도가 저물어 가고 있사옵니다. 저희의 운명길에 있어서 생사의 판결이 어느때에 설정되는지 그것을 아는 사람이 없듯이, 저희가 걸어가는 뜻의 길에 있어서도 어느때 어떠한 자리에서 결정지어 넘어가는지 모르기 때문에, 언제나 끝날이 되면 될수록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늘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한 번 상기하게 되옵니다.
과연 그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인 동시에 우리의 말씀이요. 우리의 말씀인 동시에 아버지의 말씀인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저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마음 모아 이곳을 향하여 하늘 앞에 정성들이는 자들이 있거 들랑 천배 만배 복을 주시옵시고, 당신을 위해서 희생을 각오하고 민족과 세계 앞에 제물되기를 각오하며 일선에서 싸우는 뭇 자녀들이 있거들랑, 제가 그러한 자리에 있을 때, 그 환경을 해결하기 위하여 당신은 얼마나 얼마나 편히 대했고 얼마나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사옵니까? 바라옵건데, 이들의 외로운 자리에도 함께하시어서 이들로 하여금 당신의 온후한 품에 품기고, 영원한 사랑의 품에 품긴 아들딸의 영광을 느끼게 해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부디 이 시간 이후의 모든 것을, 이날 전체가 모이는 자리 자리마다 긍휼과 자비의 은사로서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