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명학의 록과 자평학의 건록의 취용법은 전혀 다르다
合諸說觀之子平論建祿與古人論祿其取用迥不同矣余按陽刃比肩敗財建祿名雖不同實一家同氣之神在地支者曰刃曰祿在天干者曰比曰劫其取用大略相同故以建祿繼陽刃之後建祿舊無格近亦取以月支無可取之格而天干倘有財官貴氣故取建祿若比劫特發明其義耳[삼명통회의 논건록] |
이상 모든 설을 살펴보면 자평은 건록(建祿)을 논하였고 고인은 록(祿)을 논하였는데 그 취용(取用)은 전혀 다르다. 또 내가 살펴보건데 양인(陽刃) 비견(比肩) 패재(敗財) 건록(建祿)은 각각 이름은 다르지만 실제로는 같은 일가의 동일 신(神)이다. 지지에 있는 것은 일인 혹은 일록이라 말하고 천간에 있는 것은 일비, 일겁이라 말하는데 그 취용은 대략 비슷한 것이다. 그러므로 건록(建祿)은 양인(陽刃) 다음(後)에 이어지는데 예전에는 건록이라는 격국법이 없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월지로서 격국법을 취하는데 만약 취할 만한 격이 없어도 천간에 빼어난 재관의 귀기가 있다면 이것으로 건록을 취하였다. 이것은 비겁의 특수성을 밝힌 것과 같다
우려(憂慮)가 되는 번역의 오류들
(1) 이상 모든 설을 살펴보면 자평은 건록(建祿)을 논하였고 고인은 록(祿)을 논하였는데 그 취용(取用)은 전혀 다르다.
-년주의 록명법을 사용하던 고대의 삼명학과 전구월령용신을 사용하던 격국법 체계가 전혀 다르다라는 주장을 합니다.
왜곡된 번역서에 의하면 고인(古人)과 자평(子平)의 시대적 거리를 간과(看過)하는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논건록에서 말하는 고인(古人)은 자평학 이전의 삼명학을 하던 오행학자들을 지칭합니다. 그리고 자평(子平)은 오행에 반기를 들고 대립하던 음양학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삼명학을 하던 년주 중심에서 록(祿)을 찾던 오행학자들과 자평학을 하던 음양학자들의 월지건록이 그 취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음 아래와 같은 구결을 언급한 겁니다. 자평은 건록을 논하고 고인은 록을 논했다 그 취용은 전혀 다르다.
이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말인데에도 고인의 록과 자평학의 건록을 동일하게 착각하는 견해를 가진 일부 학인들이 있었습니다
분명하게 밝히는 점은 고인의 록은 삼명학에서 사용하던 년주 중심의 록이고 자평의 건록은 월지 중심의 건록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 취용법은 전혀 다르다고 선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록과 건록의 취용은 전혀 다름을 언급하는 겁니다.
그 취용(取用)은 전혀 다르다
이것은 어느 책에서 번역을 "그 취용(取用)은 다르지 않다"고 잘못 번역이 되어 있는게 돌아다니니까 주의해서 살펴보세요.
(2) 예전에는 건록이라는 격국법이 없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월지로서 격국법을 취하는데 만약 취할 만한 격이 없어도 천간에 빼어난 재관의 귀기가 있다면 이것으로 건록을 취하였다. 이것은 비겁의 특수성을 밝힌 것과 같다.
建祿舊無格近亦取以月支無可取之格而天干倘有財官貴氣故取建祿若比劫特發明其義耳 |
-삼명학에서는 년주를 기준으로 록명신으로 보았기 때문에 록이 존재할뿐 건록이라는 월지 중심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다가 서자평이 자평학을 열면서 월지 중심의 격국을 밝히자 비로서 월지 건록격을 언급했다는 말입니다
“월지에서 격을 취하다” 이 말을 강조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연해자평에서 말한 전구월령에서는 월지에서 격을 취한다라는 생각은 당연한 것인데에도 이 문장을 특별히 강조한 이유가 있다는 점입니다. 곧 월지에서 격을 구한다고 강조를 합니다. 그것은 오행학을 하던 옛적에는 본래 년주에서 록(祿)을 취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고법의 방식에서 벗어나 최근래에는 자평식으로는 월지에서 격을 취한다는 뜻입니다.
“건록(建祿)은 이전에는 격이 없었다.”
이 구결로 인해 착각할 수 있는 것이 "건록격이 존재하지 않았다가 갑자기 건록격으로 인정받았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만 그건 아니고 과거 삼명학하던 시절에는 년주 록(祿)을 활용했던 학문이므로 월지 격국 자체가 미흡했다는 의미로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고법에서는 년주 록은 존재해도 월지의 건록격이 없었다로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년주 위주의 록명신으로 보던 록과 오늘날 격국을 가리키는 월령의 건록 용신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과거 년주(年柱) 위주의 사주학에서 서자평이 일간(日干) 중심의 사주학을 창안한 후 낙록자삼명소식부주, 옥조신응진경주, 명통부 등을 저술하며 월지의 격국론을 주장하면서 격국에 따른 사주풀이를 소개하였습니다. 납음(納音)을 논하던 오행학(五行學)시대에서는 년주 위주로 록(祿)을 간명 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월지 격국이 없었을 겁니다. 자평의 격국은 일간 중심에서 월령을 대비해야 나올 수 있는 것이니까. 아마도 자평학이 만들어지면서 년주 록에서 월지건록으로 격의 중심이 이동되지 않았는가 추측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여기서 말하는 고인(古人)은 삼명학시절의 오행학자들을 말하고 최근래(最近來)는 서자평이 중심이 되었던 음양학자를 말합니다.
삼명통회는 고법(古法)과 신법(新法)이 혼잡하게 섞여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하는 글에서도 오행학자와 음양학자들의 논쟁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만민영선생이 삼명학과 자평학을 동시에 소개하면서도 각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주의해야 할 부분은 “예로부터” 혹은 “고법” 이라는 용어가 나오면 이것은 자평학 이전의 삼명학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최근래”라고 말하는 부분은 자평학 이후를 말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런 기준점을 중심으로 책을 읽으면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 구결에서도 “예로부터” 라는 용어는 오행학시절을 말하는 겁니다. “근래” 라는 용어는 자평선생 이후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론
건록격은 서자평의 연해자평에서 발표가 된 겁니다. 고로 고법에서는 록을 논하다가 자평선생이 연해자평에서 월지 건록으로 만든 겁니다. 자평진전 이전에 출간이 된 삼명통회와 신봉통고에서도 양인격과 건록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으로 보면 건록격은 심효첨선생이 창안한 것이 아니죠. 건록격은 자평선생이 고법의 록을 정리해서 새롭게 월지 건록으로 창안하신 겁니다. 다만 심효첨선생의 공은 자평선생이 內十八格, 外十八格, 化氣十段錦, 論時墓, 正月建寅候詩訣 등의 난해하게 정리한 격국의 기준을 전구월령용신을 기준으로 하여 월지중심으로 재배열한 공이 큰 겁니다. 곧 월지용신은 정격으로 월지 이외의 용신은 잡격으로 분류한 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