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기억력은 저의 큰 장점인데, 60세가 넘어가니 단기기억력이 급속히 떨어지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단기기억력 기능이 잘 작동되어야, 밤에 잠을 자면서 저장해야하는 기억과 버려도 되는 기억을 구분할 수 있으며 저장해야하는 중요한 기억들을 해마에 차곡차곡 쌓아놓을 수 있습니다.
잠자면서 뇌가 정리를 하려고해도 단기기억 소재들이 별로 없으면 해마에 쌓일 것이 없으니 나이들어 새로운 학업에 도전한다는 것은 뇌를 새롭게 회춘하는 방법이지만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기억력 기전에는 두 가지 중요한 신경전달물질이 개입되어야 하니, 단기기억력에는 도파민이 필수이고, 장기기억력에는 아세틸콜린이 필수입니다. 나이들어갈수록 두 가지 신경전달물질의 생성이 부실해지니 당연히 단기기억력의 문제가 장기기억력의 문제로 확대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파민과 콜린 보충은 사실 노년 정신건강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ADHD약물은 집중력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도파민을 마약수준으로 자극하는 원리이고, 치매약물은 기억력저하라는 증세에 맞춰 아세틸콜린을 인위적으로 자극하는 원리입니다. 두 가지 모두 위험한 처방인 것은 ADHD이든 치매이든 신경전달물질 생성에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이들 물질이 원활하게 유통되는 통로들의 부실함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른 걸레에서 물쥐어짜기 방식의 정신과약물은 복용시작후 얼마되지 않아 더 큰 위험을 초래합니다.
폭염이긴 하지만 며칠 전처럼 아예 낮에 못 움직일 수준은 아닌지라 간만에 완이데리고 모구리야영장을 갔습니다. 보내기 전에 인라인이라도 열심히 태워야되겠다 싶어서 입니다.
완이는 아직 기억력기전이 많이 부실한지라 그토록 여러번 와보았던 장소도 마치 새로 온 듯한 모습으로 대합니다. 쭈뼛대고 감각방어적 모습에 지켜보는 저도 답답해집니다. 그나마 완이가 너무 잘했던 인라인타기조차 퇴행한 듯 넘어지고, 활기가 없으며 오래 지속하지도 못합니다.
채 한 시간도 못 보내고 돌아오니 태균이오기 전에 물에라도 가서 감각해소나 싫컷 시켜야겠다 싶습니다. 완이에게는 아직도 감각해소가 훨씬 더 많이 요구되고, 이를 도와주는데 물놀이가 가장 효과적이기는 합니다. 예전보다는 많이 차분해졌지만 주기적으로 감각방어에 휩쌓이는 날에는 그 동안 쌓아두었던 것들도 빠르게 퇴행하는 듯 보입니다.
며칠 전부터 열심히 가르쳤던 눈코입귀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는 그래도 해보려는 의지를 보이고 눈코입귀를 알아가는 것도 그렇지만 엄지손가락 포인트자세도 만들어내니 큰 기쁨이기도 했는데, 어제 다시 시키니 완전 새롭다는 표정으로 저를 멀뚱멀뚱 쳐다만 봅니다.
차분해지고 더 먹고싶은 것 달라고 요구하는 방식, 식사준비되어야 먹을 수 있다는 기다림의 인지, 뭔지 모르지만 무언가 요구하면 그게 뭔지 관심갖는 것, 저에 대한 애착 등등은 그 와중에 많이 나아져서 큰 발전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완이의 발목을 잡는 감각방어의 모습들, 해소되지 않은 불안들, 어릴 때 훈련받지 못한 용변처리 문제들이 결국 여기를 떠나면 어찌될지 요즘 완이를 보면 자꾸 짠해집니다. 저녁식사 후 완이보충제에 콜린을 추가하면서 완이의 기억기전이 나아지기를 바래봅니다.
완이가 내 아들이었으면 좀 달라졌을까? 돌이켜보면 11살의 태균이는 컴퓨터도 잘 다뤘고, 알고있던 단어는 한글로 다 썼고, 수영도 잘 했고, 자전거타기에 미쳐있을 때이기도 했습니다. 요즘 완이가 보이는 옷 엉터리로 입기, 먹을 것에 집착하기, 극심 감정기복들은 훨씬 어렸을 때 겪었던 일이긴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ASD중에서도 그 느림의 정도가 유난히 심한 것은 뇌신경 손상정도의 차이일까 아이의 문제에 대처한 부모의차이일까? 풀어 보아야 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감각문제 자체만 놓고보면 완이가 오히려 태균이보다 훨씬 나은 점들이 있으니, 음따라하고 음기억하기, 다른 사람 행동 모방하기 등은 완이가 훨씬 낫습니다.
완이만의 천연수영장에서 물놀이는 해가 기울어질 때까지 계속됩니다. 밤새 놔두면 밤도 샐 정도입니다. 오늘은 태풍영향도 있고 파고가 가장 높은 백중사리라 하니, 바닷가는 피하는 게 좋겠다 싶습니다. 오전에 맑으면 얼른 마치던지 해야 되겠습니다.
첫댓글 불과 6개월 사이 완이의 퇴행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저 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