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10. 04;30
가로등불 아래 산길이 휑하다.
좁았던 산길이 넓어지고 풀냄새가 진동을 한다.
둘레길로 합류하는 들머리 좁은 길도 넓어졌고,
어제까지 활짝 웃던 '삼잎국화'가 싹둑 잘려나갔다.
산길가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던 바랭이, 까막사리,
사데풀, 기름새, 붉은서나물과 지칭개도 사라지고,
이슬 맞아 윤슬을 반짝이던 '털별꽃아재비'도
다 사라졌다.
털이 많은 잎과 별꽃을 닮은 꽃의 생김새 때문에
'털별꽃아재비'라는 독특한 이름을 얻은 6~7mm에
불과한 작은 꽃이지만 왕성한 번식력을 싫어하는
농부들은 이 꽃을 '쓰레기풀'이라고도 불렀다.
지독한 여름더위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우고
또 피웠던 작은 기적을 인정하지 않고,
작업인부들은 산길을 정리하며 거추장스럽다고 생각
되는 풀과 나무들을 다 베었으니 누구를 원망할까.
작년에 칡덩굴과 환삼덩굴에 집중 공격을 받았던
가죽나무가 천신만고 끝에 2m 이상 간신히 자랐는데,
이 가죽나무도 잘려나가고 겨우 남은 밑동에서 진액
(津液)이 흐른다.
< 잘리기 전 가죽나무 >
돈을 들여 심은 철쭉과 조팝나무들은 손대지 않고,
혹독한 자연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풀과
나무들을 싹둑 잘라버린 곳,
가죽나무가 흘리는 진액에서 나는 붉은 피냄새를
맡았다.
산이라는 대자연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식물을
제거한 사람들은 일자리 통계를 위해 고용된 자다.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담당 공무원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겠지.
자연의 주인은 누구일까 곰곰이 생각한다.
자연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그냥 스쳐가는 바람일 뿐, 자연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존재가 진짜 주인이다.
이 숲 속에서 생존하는 나무와 풀이 주인이고,
숲에 기대어 사는 새들과 귀뚜라미와 거미 등
풀숲에서 살아가는 곤충들이 주인이 아닌가.
사람들이 조금만 기다려주었더라면 이 가을까지는
무난하게 살아갈 소중한 생명들이 사람들의 손에
의해 처참하게 베어지고 사라졌으니 괜히 미안할
따름이다.
09;00
내가 잠시 머무는 사무실은 8층에 있다.
작년에는 베란다 공간에 고추, 방울토마토, 가지와
들깨를 심었었다.
금년에는 아무것도 심지 않았는데 8층까지 바람 타고
날아온 씨앗이 화분에서 발아하더니 붉은서나물,
개망초, 바랭이, 이삭여뀌, 까마중이 자라기 시작했다.
물을 충분히 주었는데도 수명이 다되었는지 까마중,
개망초가 며칠 전 말라죽었고, 여뀌와 붉은서나물,
바랭이만 살아남았다.
때로는 잡초의 생명도 존중을 받아야 하는 법,
물조리개로 바랭이와 여뀌에 물을 듬뿍 뿌려준다.
예봉산 자락에 검은 구름이 걸리기 시작한다.
뜨겁게 달궈진 염천(炎天) 세상에 한줄기 소나기를
뿌려주려나.
2024. 9. 10.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