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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반드시 알아야 할 교회 용어 사용
예배 드릴 때 기도할 때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 가운데는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는 말이 수없이 많다.
이는 선교 초창기 성경과 찬송가 등을 번역할 때 우리 어법과 문화를 고려하지 않고 오역한 결과다.
또 다른 종교나 무속신앙의 용어를 걸러내지 않은 채 그대로 도입하고 외래어와 외국어를 남발하는 것도 큰 요인이 되고 있다.
잘못된 언어문화는 잘못된 신앙문화를 낳고 복음 전파도 막는다. 바로잡아야 할 용어는 아래와 같다.
목사가 회중 앞에서 “이 시간에는 사모님이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예로부터 스승을 높여 사부님이라 했으며, 이에 걸맞게 스승의 부인을 높이어서 사모님이라 불렀다.
그런데 요즈음 교회 안에서는 목사 부인도 사모님이라 부르고 있다. 선생이 자신을 사부라 부를 수 없듯이 선생이나 목사도 자기 부인을 사모라 부를 수 없다.
선생 부인이나 목사 부인들도 자신을 사모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그런데 최근 목사 부인들이 모여서 "사모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는데 이 "사모회"는 바람직한 용어가 아니다.
왜냐하면 목사 부인들이 자신을 사모라 지칭했기 때문이다.
이 "사모"는 주로 제자나 평신도들이 선생 부인이나 목사 부인을 높여 불러 주는 말이기 때문에 실제 사용 될 때는 "사모님"이 될 수밖에 없다.
1. 평신도 용어 :
원래 성직자와 평신도 구분키 위해 만든 카톨릭적 산물이다.
그래서 루터가 교회 개혁할때에 제일먼저 이 용어부터 없애기 시작했다. 또한 기독교 백과사전(교문사) 제6권 p275의 제일 윗줄에도 "사탄이 만들어낸 가장큰 업적 가운데 하나라고" 기록되어 있다.
기독교 백과사전은 한국 기독교의 대표적인 100여명의 유명한 신학자들이 집대성한 사전이다.
그러므로 교회내에서 평신도라고 지칭하는것은 아주 잘못된 표현이다. 가장 좋은 표현은 성도 혹은 형제 자매이다.
2. 하나님의 축복 을 : "하나님이 주신 복" 으로 해야 바르다.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를 → "하나님! 복 주시옵소서" 으로 해야 한다.
우리는 예배때 대표 기도하시는 분이나 혹은 설교 하시는 분들이 "하나님! 저희에게 축복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시는 것을 종종 들으면서 매우 안타까움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원래 축복의 의미는 한자로서 어원은 (빌축) 祝 (복복) 福자의 합성어로 누구에겐가 복을 빌거나 바란다는 기원의 뜻이다.
"축복의 사람" 하면 복을 받고 누리는 사람처럼 착각되지만 사실은 복을 빌고 있는 미완성 복의 소유자이다.
"집사님 하나님 축복 많이 받으세요 " 정상적인 말 같지만 이것도 틀린 말이다.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도대체 제3자 누구에게 집사님 복을 대신 빌어준다는 말인가?
시편 1편 1절의 "복 있는 사람( Blessed is the man)"에서 복의 뜻 인 원어에 있어서
אשרי<아쉬레이>는 '번영, 행복'을 뜻하며 '올바르다, 번영하다'라는 אשר<아솨르>에서 유례되었으며, 즉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행복을 나타낸다 고 볼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이시며 복을 주시는 당사자가 하나님 본체이시라는 것을 깜박 간과하고 잘못사용하고 있는것이다.
다음의 성구에서는 하나님이 복을 비는[祝福] 분이 아니라 복을 주시는[降福] 분임을 잘 밝히고 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 지라"(개역 한글판 창 12:3).
"그가(멜기세덱)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개역 한글판 창 14:19)
잘못된 예문들 ...
(1) 성도의 머리 위에 축복이 가득 임하기를 ( X )
(2) 축복의 주인공이 되세요 ( X )
(3) 집사님 물질축복 많이 받으세요 ( X )
그러므로 위 문장은
1. '하나님 복이 가득 임하기를' 로 바뀌어야 되고
2. '하나님께 복 많이 받는 주인공이 되세요' 로 바뀌야 된다.
3. 집사님 물질축복 많이 받으세요 →인적으로 물질축복이라는 표현보다는
돈많이 벌게 해달라는 것이 솔직하고 훨씬 빨리 와 닿지만 이 경우엔 집사님 부자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가 무난한 표현일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를 "하나님! 복 주시옵소서" 또는 "복 내려(베풀어) 주시옵소서"로 바로잡음이 타당하다.
기도와 관련된 용어
1. 당신→하나님,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은총으로…" "하나님 아버지, 당신께서 세우신 이 교회를…"와 같이 하나님을 '당신'이라 부르는 것을 종종 보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만일 어느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향해 "아버지, 당신이 주신 돈으로 이것을 샀습니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말은 의당 다음과 같이 고쳐서 말해야 한다. "아버지, 아버지가 주신 돈으로 이것을 샀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직접 들으시는 분으로서 2인칭이다.
우리말 2인칭 '당신'은 결코 존대어가 될 수 없다. '당신'은 다만 3인칭에서는 극존대어로 쓰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3인칭이 될 수 없고 우리 간구를 들으시는 분으로서 2인칭에 해당되므로 '당신'이란 호칭은 안 된다.
2. 기도 드렸습니다(기도하였습니다)를--기도 드립니다(기도합니다)로 해야한다.
기도를 끝낼 때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와 같이 동사 '기도하다'의 시제를 현재형으로 써야 하는데,
요즈음 이를 '기도하였습니다', '기도 드렸습니다'와 같이 과거형을 쓰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본다.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5분이나 10분전에 기도를 시작했으므로 간구한 모든 말들은 문법적으로는 이미 과거 또는 현재완료가 되므로
동사 '기도하다'의 과거형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러나 이것은 다른 각도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
기도(祈禱)는 글자 그대로 그 핵심이 하나님께 아뢰는 우리의 간구다. 간구의 내용은 소원이며 소원은 미래 지향적이다.
이러한 미래 지향적인 소원을, 즉 우리의 바람을 '기도하였습니다'로 끝낼 수는 없다.
기도의 핵심인 간구의 내용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영원한 현재성을 띠고 있다.
그러므로 기도의 마무리는 과거가 아닌, 현재로 끝내는 것이 옳다.
3. 주여, 하나님 아버지시여를 → 주님. 하나님 아버지로
기도할 때 하나님을 향해 '주여', '주님이시여', '하나님이시여', '하나님 아버지시여' 라 부르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어법상의 문제가 있다.
즉 2인칭 존칭 명사에 호격 조사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 국어에서는 2인칭 존칭 명사에 호격 조사가 붙지 못한다.
2인칭에는 존칭이 아닌 경우에 한하여 호격 조사 '-아'나 '-야'가 붙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친구 사이나 아랫사람에게는 "복동아," "철수야"와 같이 부를 수 있지만 손윗사람에게는 호격 조사를 붙일 수 없기 때문에
"아버님이시여," "할아버님이시여“라 부르는 것은 불가하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존칭의 2인칭이 되기 때문에 이미 사어가 된 '-이여', '-이시여'를 붙여서는 안 되고 그저 '주님',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로 해야 옳다.
4. 우리 성도님들이 → 저희들이, 교회의 권속들이… 등등
국어 존대법에서는 청자(聽者)가 최상위자일 경우 다른 어떤 인물에게도 존대를 쓸 수 없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말은 바른 표현이 못된다."할아버지. 형님이 가셨어요." "아버지. 누님이 오셨어요."
첫째 문장에 등장하는 인물은 청자인 '할아버지'와 주어인 '형님' 및 화자(話者)인 손자 '나'다.
여기서 청자인 '할아버지'가 최상위자이므로 '형님'과 '나'는 존대를 받을 수 없다.
둘째 문장에 등장하는 인물은 청자인 '아버지'와 주어인 '누님'과 화자인 '나'다.
여기서도 청자인 '아버지'가 최상위자이기 때문에 '누님'과 '나'는 존대를 받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위의 문장들은 다음과 같이 고쳐야 한다. "할아버지. 형이 갔어요." "아버지. 누나가 왔어요."
공중기도에서 기도 인도자는 회중과 동일한 입장, 동일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즉 기도 인도자는 회중과 동격이다.
그러므로 지존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서 회중을 가리켜 '우리 성도님들'이라 존대를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단순히 '저희들', '교회의 권속들' 등으로 바꾸어야 한다.
나라의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도 000 대통령님을 복을 주옵소서 가 아니고, 000대통령에게 복을 내리소서 해야된다.
그리고 교회 예배시 000 목사님이 아니고 000 목사에게 은혜를 주옵소서, 라고 해야 한다.
5. 대표 기도 → 기도 인도로 해야한다
예배 순서 가운데 기도 시간이 되면 예배 인도자가 "우리를 대표해서 ooo님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ooo님이 기도하시겠습니다" "ooo님이 대표 기도를 하시겠습니다" 와 같은 안내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적절한 표현이 못 된다.
온 회중이 머리를 숙여 무언의 기도를 할 때 한 사람이 소리를 내어 기도를 할 경우 우리는 이를 '기도 인도'라 부르는 것이 좋다.
기도 인도자는 기도의 대표자가 아니다. 이 기도 인도자는 그와 함께 머리를 숙인 다른 사람들과 분리될 수 없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또는 생각까지도 그들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그는 대표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것이 아니며, 그와 함께 머리를 숙인 온 회중의 생각을,
즉 그들의 소원을 보다 깊게, 보다 하나님 뜻에 맞게 아울러 그 절차를 정리해 주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다.
기도 인도자가 기도할 때 회중은 결코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에게는 대표성이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에게는 대표성이 인정될 수 없다.
만인제사장의 사상은 하나님 앞에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는 신학사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도 기도에 있어서 '대표', '대신'은 불가하다.
그러므로 '대표기도', '대신하여 기도'는→ '기도 인도'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6. 사랑의 예수님-- 사랑의 하나님 으로
기도 서두에 '…하나님' 대신에 '사랑의 예수님', '고마우신 예수님' 등으로 하나님 아버지가 아닌 예수님을 호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도를 끝낼 때 반드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에게 우리의 소원을 아뢴 후 다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기도는 일차적으로 성부 되신 하나님 아버지께 성자 되신 예수님 이름으로 아뢰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고 하신 말씀에 근거를 둔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도 그 서두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되어 있다.
역시 이 속에도 성부 하나님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우리 기도의 본임을 알아야 한다.
7. 참 좋으신 하나님 → 거룩하신, 은혜로우신, 전능하신, 진실하신, 자비로우신…하나님
기도 서두에 하나님을 부르면서 그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로 요즈음 '참 좋으신'과 같은 말이 사용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것은 재고를 요하는 말이라 하겠다.
즉 성경에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로 쓰인 말들을 보면 '거룩하신', '만유의', '생명의', '신실하신', '의로우신', '자비하신',
'영원하신', '위에 계신', '능력이신', '진실하신', '구원하시는', '하늘에 계신', '사유하시는', '은혜로우신', '보수하시는', '지극히 높으신',
'홀로 하나이신', '천지를 지으신'… 등과 같이 대부분 객관적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들이 수식어로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참 좋으신'은 이 범주에 들지 않는 수식어가 된다.
즉 '참 좋으신'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의 주관적인 감정, 정서로 느끼는 바대로 표현한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얄팍한 주관적인 감정으로 그 속성을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를 과장하여 발전시킨다면 '사랑스러운 하나님'('사랑의 하나님'과는 판이한 뜻이 된다.),
'미운 하나님', '야속한 하나님', '귀찮은 하나님'… 등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예배, 예식 분야
8. 사회자 → 인도자(예배시)
예배를 주관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사회(司會)라는 말은 회의나 의식을 진행하는 일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우리의 문화권에서는 사회자라고 하면 마땅히 일반 회의의 진행자를 의미한다.
교회에서도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예배가 아닌 결혼예식이나 임직식 같은 인간 중심의 의식에서는 진행을 맡은 사람을 사회자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현장에서 사회자라는 명칭은 경건성의 결여를 느끼게 하므로,
단순한 사회자(presider)의 개념을 넘어 예배 인도자(Worship Leader)로 부름이 타당하다.
9. 성가대를 → 찬양대로 불러야한다.
우리 한국 교회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전담한 찬양대를 최근에 '성가대'로 많이 부르고 있다.
이 말은 출판사들이 흑인영가와 복음송을 합하여 출판하면서 [성가곡집]이라 부르는데서 보편화되었다.
실제로 1960년대까지 우리 한국 교회는 찬양대라는 이름이 통용되었고 성가대라는 이름은 없었다.
성가라는 말은 불교를 비롯하여 모든 종교에서 부르는 노래이며, 우리의 '찬양'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행위에 속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성가대'라는 용어는 성경의 정신과 우리의 고유한 이름인 '찬양대'로 바꾸어 부름이 타당하다.
10.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사용불가(설교시) 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는 한 인간이 특정한 개인이나 단체를 위하여 어떤 사실이나 바람을 주님의 이름으로 빌고 원하는 뜻을 표현한 말이다.
이러한 표현이 설교 가운데서 진행되는 것이 타당한가를 연구 검토시킨 바, 있는
통합교단 총회는 1981년 65회 총회에서 다음과 같은 연구보고서를 채택한 바 있다.
먼저,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하기에 설교에 인간의 기도식 기원이나 기도 등의 형식을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 설교는 설교대로, 기도는 기도대로, 축도는 축도대로 하는 것이 좋다.
셋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의 사용은 회중에게 자극을 주고 흥분시켜 "아멘"으로 응답하지 않고는
안 되게 만들어 설교의 질서를 문란케 하고 미신적 기복 사상을 키워 줄 우려가 있다.
넷째, 설교의 근본 목적이 흐려지고 회중들에게는 설교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아멘"을 하게 하는 식으로 유혹되기 쉽다.
연구위원회는 이상과 같은 내용을 보고하면서 설교시에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를 하지 않도록 건의하였고 총회는 이를 아무 이의 없이 통과시킨 바 있다.
이러한 결정은 매우 적절한 것으로서 한국교회의 설교 사역을 바로잡는 일이라 보아 설교시에 이 말의 사용을 억제함이 타당하다고 본다.
11. 대예배 →주일 예배로 해야한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창세 이후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구속의 크신 사랑을 깨달은 자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감사함으로 응답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는데 있어서 큰 예배가 있고 작은 예배가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놀라운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돌려드리는 응답의 행위가 예배일진대,
거기에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한국교회에서는 언제부터인지 주일 낮에 드리는 예배를 지칭하여 대예배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많은 교회들이 주일 낮에 드리는 예배 때에 가장 많은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온 말인 것 같다.
그러나 분명히 대예배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논리적으로 대예배가 있다면 소예배도 있다는 말인데, 어떠한 예배도 하나님 앞에서 소예배일 수가 없다.
그 예배가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한에 있어서, 어떤 예배도 소예배일 수가 없다. 다만 예배일뿐이다.
물론 시간별로 예배를 구분할 수는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주일 예배라든지, 주일 저녁(오후) 찬양 예배라든지, 혹은 시간에 따라 1부 예배, 2부 예배라고 부르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대예배"라는 용어는 합당한 말이 아니다.
12. 열린 예배 →열린 집회로 해야 바르다.
열린 예배라는 용어는 1990년대 이후에 한국 교회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원래 이 예배는 "구도자 예배"(Seeker's Service)로 알려진 집회의 형태로, 서울의 한 대형교회를 통하여 소개되면서 한국 교회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본래 열린 예배라는 용어는 "구도자"라는 부자연스러운 번역 대신에 1990년대 초에 유행하던
"열린"이라는 단어로 의역한 것으로 "구도자의 집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즉 열린 예배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예배의 자리에 나아올 수 있도록 배려하는 형식과 접근 방법을 택한 구도자의 집회를 말한다.
그러므로 열린 예배가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엄밀하게 따져서 예배라기보다는 "전도집회"이다.
왜냐하면 예배는 하나님의 구속사건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불신자들, 혹은 구도자들은 아직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은 사람들이요,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직 예배드릴 자격도 없고, 예배드릴 마음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예배드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은 신령과 진리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사랑에 응답하는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다.
또 한 가지 예배의 기본 정신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에 대해 감사로 응답하는 드림에 있지,
예배를 통해서 무엇을 받거나 추구하는 데 있지 않다.
그런데 이런 면에서 볼 때 열린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응답의 행위여야 하지, 인간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에 예배가 회중지향적이 되고, 예배의 근본적인 목적이 드림에 있지 아니하고, 무엇인가 그 예배를 통해서 얻어내는데 목적이 있다면
--비록 그것이 영혼구원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을 위한 집회이지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아니다.
그러므로 열린 예배라는 용어는 차라리 "열린 집회"로 부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대로 "열린 예배"라는 용어 자체가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가능하면 "열린 예배"라는 용어의 사용은 삼가는 것이 좋겠다.
의미상으로도 "열린 예배"가 있다면 "닫힌 예배"도 있다는 말인데, 무엇이 열린 예배이고, 무엇이 닫힌 예배인가?
또 무엇에 대해서 열려있고, 무엇에 대해서 닫혀있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굳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활기 있는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열린" 이라는 용어보다는
"젊은이 예배" 혹은 "찬양 예배" 등으로 사용하고, 열린 예배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13. 예배 봐준다 →사용 불가이다.
흔히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개업예배를 봐준다" "구역예배를 봐준다"는 표현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예배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우리의 응답 행위이다.
즉 예배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을 깨달은 사람이 참된 감사와 찬양과 헌신과 고백의 응답을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나를 대신하여 예배를 봐준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예배는 구원의 은총을 깨달은 내가,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께 감사와 감격으로 드리는 행위요,
응답하는 행위이지, 누군가가 나를 대신하여 드리거나 봐주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치 "점을 봐준다"는 미신적인 용어를 상기케 하는 "예배봐준다"는 표현은 예배 신학적으로 볼 때에 받아들일 수 없는 잘못된 용어이다.
14. 준비찬송 → 사용불가
찬송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곡조가 있는 시이다.
찬송은 하나님 앞에 곡을 붙인 성도들의 경배의 표현이며, 기도이며, 때로는 성도들의 신앙고백과 결단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찬송을 부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을 생각하고 감사의 응답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모이면 열심히 찬송 부르는 것을 성도의 바른 자세로 알고 찬송을 열심히 부른다.
그러나 이렇게 찬송의 생활이 습관화 되다보니 때때로 찬송의 목적이 변질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준비찬송"이라는 말에서 찾아보게 된다.
교회에서 "다같이 준비 찬송을 부르면서 앞자리부터 채우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하나님께 영광과 경배를 드려야 할 찬송을 자리를 정돈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간주하는 이런 말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려야 할 찬송을 시간을 메우기 위한 수단이나 자리를 정돈하는 데 필요한 수단으로 간주하는 "준비찬송"이라는 용어는 마땅히 사용해서는 안 된다.
15. 예배/예식/기도회 →구별사용
한국교회는 어느 나라의 교회보다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이다. 그래서 예배와 각종 기도회로 한 주일에 여러 차례 모인다.
주일 낮을 비롯하여 주일 저녁, 수요일 저녁, 금요일 밤, 그리고 매일 새벽 등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의 열심은 세계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모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혼란스럽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모든 모임에 예배라는 명칭을 붙여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심지어는 돌, 회갑, 추모 등의 모임에도 예배라는 명칭을 붙임으로써 진정한 예배의 의미를 희석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예배와 예식과 기도회를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신 창조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구속의 은총을 깨닫고 감격하여 드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응답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결코 인간을 위한 모임이거나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예배와 예식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돌, 회갑, 추도, 입학, 졸업, 결혼, 입당, 임직, 교회 창립 등의 행사를 할 경우에는 예식으로 표현하고, 예배와 혼동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도를 목적으로 모이는 수요 저녁 모임과 금요 철야 혹은 심야 모임 그리고 매일 새벽 모임 등은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
그리고 새벽기도회 등으로 명시해야 한다. 주일예배, 주일 저녁 찬양예배, 주일학교 예배, 수요기도회, 철야기도회, 경건회(각종 회의 시작 전)
16. 제단, 성전을 → 예배당으로 불리워야 한다.
'제단' 이나 '성전'이라는 말 대신에 예배당 또는 교회당이라고 해야 한다.
신약시대에는'제단'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구약시대에도 제단은 성전 뜰에 있었다.
구약은 성전제도로 말미암아 제단에서 번제, 속죄제, 화목제, 속건제 등의 제사를 드렸다. 소제를 제외하고는 모두 짐승을 제물로 드렸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셔서 단번에 (히 10: 10) 영원한 제사(히 10 : 12)를 드리심으로,
더 이상'짐승'으로 제사를 드리는 성전제도가 필요없게 되었다.
신약시대 성도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이다(요 4 : 24).
17.할렐루야! → 조심하여 사용할 것
'할렐루야'(הַלְלוּ יָהּ )는 히브리어 음역으로 할렐 הַלְלוּ , 찬양하다)와 예호와 (יְהוָה)의 단축형인 야(יָהּ)의 합성어로서 그 뜻은'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이다.
이 말은 주로 시편의 처음이나 마지막에 나오며 예배의식에 사용되었다(시 106: 48).
할렐루야는'예배'에서'하나님'을'찬양'하는'절정의 환호성'이다. 때문에 할렐루야를 사람들끼리 인사하는 말로 써서는 안 된다.
할렐루야는 사람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지 사람들끼리 하는 인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설교자가 설교도중에 아멘을 유도하기 위해'할렐루야!'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역시 합당하지 않다. 설교는 오직 말씀선포이다.
그리고 찬양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환호적 송축이다. 따라서 그 전개에 있어서 구분이 되어야 한다.
말씀이 선포될 때 감화감동을 받은 성도가 자발적으로'아멘'해야 그것이 정상이다.
설교 도중에 할렐루야를 돌발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말씀의 선언적 측면에서 볼 때에도 맞지 않는다.
축도 문구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후 13장 13절의 성경 본문을 사용해왔다.
그러나 '있을지어다' 하는 문구가 듣는 이로 하여금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말투라는 이유 때문에 여러 형태의 문구를 사용하고 있다.
18. 기도 받는다를 → 함께 기도한다로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 하는 것이지 - 누구(어떤 사람)에게 받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나보다 신앙적으로 앞서 있는 사람과 같이 기도하더라도 그것은 함께 기도하는 것이지 누구에게 기도를 받는 것은 아니다.
기도를 받는다는 말은 써서는 안 된다.
종님을 → 종으로
더러 기도인도자 가운데 - 기도하면서"오늘도 주의 종님께서"라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문법상'종'다음에'님'자를 붙이는 것은 모순이다. 그냥 종이라고 해야 한다.
성경에 보면 우리를 종으로 표현한 곳이 여러 군데 있음을 보게 된다.
특별히 마 25: 14-31절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에 우리가'종'인 사실이 강조되어 있다.
성경에 우리를 종이라고 한 것은
①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해야 할 자라는 뜻이고
② 모든 것(생명을 포함한 모든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③ 우리는 다만 맡은 자요 관리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하려는데 있다.
기타
♨ 예수공로 의지하여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지금도 살아 계신 하나님 →사용 불가
♨ 지금은 처음 시간이오니 →지금 예배하고 있사오니
♨ 송영 → 찬송
♨ 특송 → 찬송
♨ 갈음합니다 →그렇게 하시기를 권면합니다,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기도로 폐회합니다 →기도로 예배를 마칩니다,기도로 기도회를 마칩니다
♨ 받들어 봉독하겠습니다 →받들어 읽겠습니다,봉독하겠습니다
♨ 사도신경 외우겠습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설교용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배보다 →예배한다(대신)
♨ 예배의 시종을 의탁하옵고 →주장하시고,인도하시고
♨ 주기도문 외우겠습니다 →주님 가르쳐주신 대로 기도하겠습니다
♨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용불가(설교시)
⊙교회·기타
△개신교-------------------→개혁교회
△교회--------------------→예배당. 교회당
△교회 창립----------------→지교회 설립
△달란트 시장--------------→사용불가
△당회장,위임목사-----------→담임목사
△부흥사------------------→사용 불가
△성의(聖衣) 성의착(聖衣着)-----→사용 불가
△수석---------------------→ 선임
△수양회-------------------→ 신앙수련회
△안집(안수집사의 줄임말)------→사용 불가
△애찬식-------------------→ 사용 불가
△유인물-------------------→ 인쇄물
△일요일(공일)--------------→ 주일
△입신(入神)----------------→ 사용 불가
△자벽--------------------→ 지명 임명
△제단,성전----------------→ 사용 불가
△제사장------------------→ 목사,목회자
△제직--------------------→ 직원
△○○주일-----------------→○○를 감사하는 예배
△지교회,지성전-------------→사용 불가(대신)
△집사/안수집사-------------→구별
△천당--------------------→하나님의 나라,천국,하늘나라
△태신자------------------→ 전도대상자
△하나님의 몸된 교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할렐루야----------------→안녕하십니까,평안하십시오
△가(可)하면 예 하시오-------→ 옳다고 여기시면 예라고 하십시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성경에로 돌아가자
장례 분야
19. 소천(召天)하셨다=> 별세(別世)하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숨을 거두었다 등으로 고쳐져야 한다.
최근에 한국 교회 어느 지도자의 죽음을 알리는 광고에서 "고 000 목사님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소천하셨다"는 문장을 보게 되었다.
한국 교회의 역사와 전통에서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교회에서 발표한 이러한 광고는 매우 부끄러운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소천(召天)이라는 어휘는 우리말 사전에도 없는 신조어로서 교회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이해한다.
이러한 의미의 표현이라면 이 어휘는 능동형으로 사용할 수 없고 수동형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소명(召命)이나 소집(召集)이란 단어의 경우 능동형일 때 그 주체는 부르는 존재를 말한다.
예를 들면 목사가 되기 위하여 신학교를 찾은 학생이 "나는 소명했다"고 말하지 않고 "나는 소명을 받았다"고 표현한다.
비록 사전에도 없는 어휘이지만 굳이 이 단어를 사용하고자 하는 경우 "소천을 받았다"로 해야 한다.
그러나 이토록 실수가 많은 용어를 사용하는 것보다 한국 교회가 지금까지 불러온 대로,
죽음을 알리고자 하는 경우는 "별세(別世)하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로 사용함이 적절하다고 본다.
20.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로.....
고인의 명복이라는 표현은 우리의 장례문화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온 용어이다.
그런 까닭에 누구나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으며, 우리의 교회에서도 흔히 사용하고 있는 현장을 보게 된다.
예를 들면, 어느 장례예식에서 목사가 "이제 침묵으로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드립시다" 하는 경우도 있었고,
조문객이 문상을 하면서 유족들에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고 인사를 한다.
그러나 '명복(冥福)'이라는 용어는 우리 기독교에서 사용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이 말은 불교의 전용어로서 불교 신자가 죽은 후에 가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곳을 명부(冥府)라 하는데 거기서 받게 되는 복을 가리킨 말이다.
곧, 죽은 자들이 복된 심판을 받아 극락에 가게 되기를 바란다는 불교의 내세관에서 통용되는 용어이다.
이러한 용어가 지금껏 교회에서 종종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의 교회에서는 그러한 용어 대신 순수하게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든지,
"부활의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와 같은 말로 유족을 위로함이 타당하다.
21. 미망인 ==> 고인의 부인, 고인의 유족 으로 불리워야한다.
미망인(未亡人)이라는 용어는 순장(殉葬)제도에서 유래된 말이다.
순장이란 어떤 특정한 사람의 죽음을 뒤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강제로 죽여서 먼저 죽은 시신과 함께 묻는 장례 풍속을 말한다.
이러한 풍속은 고대 중국의 은나라와 이집트를 비롯하여 아프리카 지역에서 성행하였다.
특히 인도에서는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따라 분신자살하여 순장되는 '사티’라는 풍습이 1829년 법으로써 금지되기까지 존속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의 22대 지증왕 3년(주후 502년)에 왕명에 의하여 순장 금지되기까지 이러한 제도가 존속되었다.
이런 순장제도가 성행할 때나 쓰일 수 있었던 '미망인' 이라는 용어의 뜻을 풀어 보면,
"남편이 죽었기에 마땅히 죽어야 할 몸인데 아직 죽지 못하고 살아 있는 여인"이라는 뜻이 된다.
이러한 용어의 뜻을 알았을 때 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말임을 깨닫게 된다.
22. 칠성판(七星板)을 ==> 고정판 또는 시정판으로
우리의 장례문화에 변화가 일고 있으나 아직껏 가정에서 죽음을 맞은 경우가 많으며, 그 때마다 목회자가 직접 시신을 다루는 일이 많다.
이때 시신이 반듯하게 굳어지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널빤지를 시신 밑에 깔고 손발의 위치를 반듯이 잡아 준다.
여기에 사용되는 널빤지 사용의 전통적인 관례가 이 널빤지에 북두칠성을 본 따서 일곱 개의 구멍을 뚫었다 하여 '칠성판'이라 부른다.
흔히 우리 교회에서도 적당한 이름을 못 찾아 '칠성판'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 유래는 별이 인간의 길흉화복과 수명을 지배한다는 도교의 믿음에서 시작되었다.
우리의 교회가 이러한 토속 신앙의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시신을 고정시키기 위한 것이기에 순수하게 '고정판(固定板)' 또는 '시정판(屍定板)'으로 부름이 타당하다.
23. 영결식, 고별식을==> 장례예식으로 해야한다
인간이 세상을 떠났을 때 진행하는 예식을 칭하는 용어로서 '영결식'. '고별식'. '발인식' 등 다양한 명칭이 있다.
그러나 그 이름이 담고 있는 뜻이 우리의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영결식은 '영원히 이별한다'는 뜻이며 고별식은 '작별을 고한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는 교리와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있기에 이러한 표현은 적당하지 못하다.
그리고 발인식은 시신을 담은 상여가 집에서 떠남을 뜻하기에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한다.
24. 삼우제(三虞祭)을==>첫 성묘(省墓)로....
우제(虞祭)란 장례를 마친 뒤에 지내는 제사로서 우리의 장례문화에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었다.
이 때의 제사는 세 번 갖게 되는데 그것을 초우(初虞) 재우(再虞) 삼우(三虞)라 한다.
이 중에 아직도 삼우제라는 이름은 교회 안팎에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최근의 삼우제는 장사 지낸 뒤 3일 만에 묘를 찾아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관례로 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성묘란 시체를 묻고 뫼를 만드는 일, 즉 산역(山役)이 잘 되었는가를 살피는 것이 주목적이다.
아직도 매장 문화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 한국 교회에서는 가족들이 3일만에 성묘를 하는 일이 보편적이다.
이러한 실정을 감안하여 표준 예식서에는 삼우제라는 이름을 '첫 성묘'로 부르도록 하였는데, 매우 적절한 용어라고 본다.
교회생활
29. 당회장을==> 담임목사. 당회장(당회 회의 때)로 고쳐져야...
많은 교회에서 담임 목사를 당회장으로 부르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예배순서를 실은 주보나 교회 게시판에 당회장 000 목사라고 기록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의 어느 교회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다.
원래 당회장이란 영어의 Moderator로서 토론이나 회의의 사회자 또는 중재자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그래서 당회 회의를 주관하는 목사를 비롯하여 노회와 총회의 회의를 주관하는 사람을 모두 '모더레이터'라고 부른다.
그러기 때문에 당회를 주관하는 순간에는 목사를 '당회장'이라고 부를 수 있으나 그 외의 시간이나 장소에서는 '목사' 또는 '담임목사'로 부름이 타당하다.
이 호칭이 바로잡아지지 않으면 장로를 언제 어디서나 '당회원'으로 불러야하는 모순을 낳게 된다.
30. 예수 ==>예수님으로
성령 ==> 성령님으로
우리의 언어문화는 윗분들을 호칭할 때 '님'자의 사용을 엄격하게 가르친다.
특히 자신이 섬기는 신의 존재를 호칭할 때는 '님'자 또는 그 이상의 존칭어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불교의 신도들은 '부처님' '부처님 오신 날'과 같이 철저히 '님'자를 사용하여 높임의 뜻을 나타낸다.
우리의 기독교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되 그 위(位)는 성부 성자 성령으로 구분하게 되어있다.
성삼위가 동격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가지고 한동안 논쟁이 활발히 전개된 바 있다.
그러나 325년 니케야 공회의에서는 제2 위격 예수님의 신성문제가 확정되었고,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는 제3 위이신 성령님의 신성문제를 확정하였다.
이로써 삼위일체의 교리는 기독교에 정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성삼위는 동격이신데 어느 위에는 '님'자를 붙여 호칭을 하고, 어느 위에는 그렇지 아니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나 '예수님' 뿐만 아니라 '성령님'을 호칭할 때도 '님'자를 사용함이 타당하다고 본다.
이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희생' '성령님의 역사'로 언어의 순화를 가져 올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31. 전야제를 ==> 전야 축하행사 로 해야한다
이 용어는 '축제'라는 말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미 '부활절 축제' '성탄 축제'라는 용어를 '부활절 절기행사' '성탄 축하행사' 등으로 바꾸어 써야 할 필요성을 밝혔으므로,
부활절 전날 밤에 갖는 행사도 당연히 '부활절 전야제' 대신 '부활절 전야 축하행사'라고 불러야 한다.
전야제는 전날 밤에 여는 축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각종 제사가 새벽에 열리는 점을 감안할 때 그 앞날의 밤은 이것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보름이나 중추절 같은 명절의 전날은 밝은 달을 바라보며 축하의 행사를 펼치기에 적절했었다.
성경에는 어떤 행사에서 전야에 모여 축하 자리를 마련했다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현대의 교회에서는 부활이나 성탄처럼 새벽에 이루어진 일을 축하하기 위한 전야 행사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이런 행사를 가리키는 용어는 '전야제' 대신 '전야 축하행사'라고 하여 제사의 성격을 배제하고, 밤 깊은 시간까지 축하한다는 순수한 의미를 담는 것이 좋겠다.
제단, 성전을==> 예배당 으로 불리워야 한다.
'제단' 이나 '성전'이라는 말 대신에 예배당 또는 교회당이라고 해야 한다.
신약시대에는'제단'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구약시대에도 제단은 성전 뜰에 있었다.
구약은 성전제도로 말미암아 제단에서 번제, 속죄제, 화목제, 속건제 등의 제사를 드렸다. 소제를 제외하고는 모두 짐승을 제물로 드렸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셔서 단번에 (히 10: 10) 영원한 제사(히 10 : 12)를 드리심으로,
더 이상'짐승'으로 제사를 드리는 성전제도가 필요없게 되었다. 신약시대 성도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이다(요 4 : 24).
성서를==> 성경으로
성경은 "성서"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성경"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요 5 : 39, 딤후 3 : 16).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스스로를 나타내신 문자 계시이고 신앙과 행위의 표준이다.'성서'라는 말에 이러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서'는 분해적이며 주석적이고 설명적인 내용을 문서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속(俗) 문자에 대한 대칭적인 종교 문헌적 총칭이다.
광의적으로 주석류와 설교문도 성서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書(서)'는 ① 책 ② 글 ③ 편지 등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
문자로 쓰여진 책이라는 사실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성령님께서는 글자 한 자 한 자 감동하시어서 성경을 기록하도록 하시었다.
그러므로 성경은 글자 하나 하나가 다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성서는 신적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성경'과는 구분된다.
성경을 어원적으로 보면'기록된 문서'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의 '비블로스'에서'책'이라는 뜻을 가진'비블리아'가 유래되고 이로부터 영어의 '바이블'로 표현되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바이블'을 거룩한 정경(正經, Canon)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성경은'영감'(유기적, 완전축자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딤후 3: 16, 벧후 1: 21) 무오하고(시 119: 140) 하고 불변하는(마 5: 18) 진리이다.
말씀을 사모하고 진리파수를 생명으로 하는 교회라면 반드시 '성서'대신에 '성경'이라고 해야 한다.
기도했습니다 ==> 기도합니다로 바꿔져야.........
시제상 "기도했습니다"는 과거형이고, "기도합니다"는 현재형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현존 앞에 현재 시제(時制)로 해야 한다.
"기도했습니다"라고 하게 되면 그것은 분명히 과거시제의 표현이다.
기도의 핵심인 간구는 곧 '소원'이기 때문에 이 '소원'은 언제나 미래지향적이라야 한다.
기도를 끝낼 때'현재형'으로 말하게 되면 이는 간구한 내용에 대하여 계속 소원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므로 기도의 종결을 나타내는 어미(語尾)는 '기도합니다' 또는 '기도드립니다'가 되어야 한다.
축제를==> 잔치로.............
'찬양축제','체육축제','전야제'등의 표현은 옳지 않다.'축제'라는 단어 자체가 이방종교의'제사'또는 제의적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도 보면 축제(祝祭)란,"축하하고 제사하는 것"을 말한다고 되어있다.
'축제'라는 말 대신에 '잔치', '대회', 또는 '축하행사'라는 말을 쓰는 것이 좋다.
찬양축제는 성가대회로, 체육축제는 체육대회로, 전야제는 전야잔치로 하는 것이 옳다.
서기 년 을==> 주후(전) 년 으로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연도(年度)는 흔히 말하는 '서기'(西紀, 서력기원의 줄인 말)로서 세계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기원전'을 뜻하는 영어의 B.C는 Before Christ의 약자로서'그리스도의 탄생 전'이라는 뜻이다.
그리고'기원후'를 뜻하는 A.D는 라틴어(고대 로마어)의 Anno Domini의 약자로서 ①'주님이 오신 후'② 또는'주님의 해로부터'의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역사의 전환점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옛날 우리 성경 찬송가에는 발행 연도를 적을 때 '구주강생 년'이라고 적었었다.
교회에서는'서기'라는 말 대신에'주전'(主前) 또는'주후'(主後) 라고 해야 한다.
할렐루야! ==>조심하여 사용할 것
'할렐루야'(HALLELUYAH)는 히브리어 음역으로 할렐루(hallelu, 찬양하다)와 예호와(YHWH)의 단축형인 야(YAH)의 합성어로서 그 뜻은'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이다.
이 말은 주로 시편의 처음이나 마지막에 나오며 예배의식에 사용되었다(시 106: 48).
할렐루야는'예배'에서'하나님'을'찬양'하는'절정의 환호성'이다. 때문에 할렐루야를 사람들끼리 인사하는 말로 써서는 안 된다.
할렐루야는 사람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지 사람들끼리 하는 인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설교자가 설교도중에 아멘을 유도하기 위해'할렐루야!'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역시 합당하지 않다. 설교는 오직 말씀선포이다.
그리고 찬양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환호적 송축이다. 따라서 그 전개에 있어서 구분이 되어야 한다.
말씀이 선포될 때 감화감동을 받은 성도가 자발적으로'아멘'해야 그것이 정상이다.
설교도중에 할렐루야를 돌발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말씀의 선언적 측면에서 볼 때에도 맞지 않는다.
축도문구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후 13장 13절의 성경 본문을 사용해왔다.
그러나 '있을지어다'하는 문구가 듣는 이로 하여금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말투라는 이유 때문에 여러 형태의 문구를 사용하고 있다.
'있을지어다'가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이유는 이 문구가 명령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축원합니다', '있기를 빕니다', '누리기를 빕니다' 등 평서문 형식의 문구를 사용하고 있지만 썩 합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있을지어다'가 잘못되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ㄹ지어다'는 문어투의 종결어미로서 '마땅히 그리하여라'의 뜻을 장중하고도 엄숙하게 나타낸 말이다.
2.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기원적인 성격을 띤' 명령이다.
3. 직접명령형이 아니라 간접명령형이다.
4.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있기를 빕니다, 누리기를 빕니다' 하는 문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하는 기도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굳이 '축도'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불필요하다.
이와 같은 이유로 '-ㄹ지어다' 형식의 축도는 가장 바람직한 문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석 부목사를 ==> 선임 부목사로
수석 장로를 ==> 선임 장로로
개혁교회 특히 장로교회는 직분의 계급과 서열 개념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수석'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모순이다.
수석(首席)이라는 말은'맨 윗자리'라는 뜻이고 그 반대말은 말석(末席)이다.
따라서'수석' 이라는 말을 쓰게 되면 서열을 매김 하여 계급화 하는 것이 되게 된다.
그러므로 수석 부목사, 수석 장로 등의 표현은 합당치 않다. 대신 선임 부목사, 선임 장로라고 해야 한다.
이때의 선임은 물론 임직의 선후를 따라 지칭한 것이다. 더러는 교회 안에서 영향력 있고 사회적으로 지위와 명망이 있는 장로를 임직 선후와 관계없이 수석 장로로 지명하는 사례가 없지 않으나 이것은 더더욱 부당한 것이다.
웨스트민스트 사원을 ==> 웨스트민스터 교회당으로
'웨스트민스터'는 영국에 있는 매우 훌륭하고 오래된 교회당의 이름이다.
17세기에 150여명의 청교도들이 이 교회당에 모여(A.D. 1643년-1648년, 6년간) 작정한,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신앙고백서, 대소요리문답, 예배모범, 교회정치, 권징조례)를 오늘날 한국 장로교회가 전수받아 따르고 있다.
사원(寺院)이라는 말은 불교의 절(사찰) 또는 회교의 모스크를 가리킨다.
그런데 일본사람들이 자기들의 사전에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라고 실었다.
그것을 한국의 출판사에서 일본사전을 그대로 옮겨 쓰다보니까'웨스트민스터 사원'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었다.
창립기념을 ==> 설립기념으로
'창립'이라는 말과 '설립'이라는 말은 의미가 같은 것 같지만 사실은 많이 다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자.
창립 (학교나 회사, 기관 따위를) 처음으로 세움.
설립 (학교나 회사, 기관 따위의 단체나 기관을) 새로 세움.
'처음 세우는 것'과, '새로 세우는 것'은 개념이 다르다.
'처음'은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던 것을 세울 때 쓰이는 말이고, '새로'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헐어버리거나 혹은 다른 곳에 세우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어느 곳에 새로운 교회가 세워질 때 '설립'이라고 해야 옳은가, 아니면 '창립'이라고 해도 괜찮은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어느 말을 쓴다해도 이해하는데 크게 문제될 것은 없겠지만 그러나 정확히 표현하려면 '설립'이라고 해야 한다.
최초에 주님께서 세운 교회가'창립'교회이다. 그 뒤에 세워진 교회는 모두가 '설립된' 교회이다.
따라서 교회가 세워진 날을 기념하는 날은 '창립기념일'이 아니라 '설립기념일'로 해야 바른 표현이 된다.
기도 받는다를 ==> 함께 기도한다로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 하는 것이지 - 누구(어떤 사람)에게 받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나보다 신앙적으로 앞서 있는 사람과 같이 기도하더라도 그것은 함께 기도하는 것이지 누구에게 기도를 받는 것은 아니다.
기도를 받는다는 말은 써서는 안 된다.
종님을 -- 종으로
더러 기도인도자 가운데 - 기도하면서"오늘도 주의 종님께서"라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문법상'종'다음에'님'자를 붙이는 것은 모순이다. 그냥 종이라고 해야 한다.
성경에 보면 우리를 종으로 표현한 곳이 여러 군데 있음을 보게 된다.
특별히 마 25: 14-31절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에 우리가'종'인 사실이 강조되어 있다.
성경에 우리를 종이라고 한 것은
①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해야 할 자라는 뜻이고
② 모든 것(생명을 포함한 모든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③ 우리는 다만 맡은 자요 관리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하려는데 있다.
기타
△예수공로 의지하여 기도합니다------→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지금도 살아 계신 하나님----------→사용 불가
△지금은 처음 시간이오니----------→지금 예배하고 있사오니
△송영-----→찬송
△특송→-----찬송
△갈음합니다---------------------→그렇게 하시기를 권면합니다,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기도로 폐회합니다----------------→기도로 예배를 마칩니다,기도로 기도회를 마칩니다
△받들어 봉독하겠습니다-------------→받들어 읽겠습니다,봉독하겠습니다
△사도신경 외우겠습니다-------------→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설교용어)-----→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보다-----------------------→예배한다(대신)
△예배의 시종을 의탁하옵고-----------→주장하시고,인도하시고
△주기도문 외우겠습니다-------------→주님 가르쳐주신 대로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사용불가(설교시)
⊙교회·기타
△개신교-------------------→개혁교회
△교회--------------------→예배당. 교회당
△교회 창립----------------→지교회 설립
△달란트 시장--------------→사용불가
△당회장,위임목사-----------→담임목사
△부흥사------------------→사용 불가
△성의(聖衣) 성의착(聖衣着)-----→사용 불가
△수석---------------------→선임
△수양회-------------------→신앙수련회
△안집(안수집사의 줄임말)------→사용 불가
△애찬식-------------------→사용 불가
△유인물-------------------→인쇄물
△일요일(공일)--------------→주일
△입신(入神)----------------→사용 불가
△자벽--------------------→지명 임명
△제단,성전----------------→사용 불가
△제사장------------------→목사,목회자
△제직--------------------→직원
△○○주일-----------------→○○를 감사하는 예배
△지교회,지성전-------------→사용 불가(대신)
△집사/안수집사-------------→구별
△천당--------------------→하나님의 나라,천국,하늘나라
△태신자------------------→전도대상자
△하나님의 몸된 교회---------→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할렐루야----------------→안녕하십니까,평안하십시오
△가(可)하면 예 하시오-------→옳다고 여기시면 예라고 하십시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성경에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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