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2,1ㄱ.12-22; 요한 7,1-2.10.25-30
+ 찬미 예수님
오늘은 사순 제4주간 금요일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전쟁으로 이미 이 세상에 주님의 수난은 시작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합니다.
오늘 제1독서는 지혜서의 말씀인데요, 예수님을 죽이려는 유다인들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악인들은 의인이 자신들을 두 가지 이유로 탓한다고 말합니다. 첫째, ‘율법을 어긴다’는 것이고 둘째, ‘교육받은 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의인이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지녔다고 공언하며 자신을 주님의 자식이라고 부른다.”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은 요한 복음 7장의 말씀입니다. 오늘부터 다음 주 목요일까지 요한복음 7장과 8장의 말씀이 봉독 되는데요, 여기서 배경이 되는 것은 ‘초막절’ 축제입니다. 초막절은 과월절, 오순절과 함께 이스라엘의 3대 축제 중 하나였는데,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이끌고 나오실 때 광야에서 초막에서 살게 하셨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일주일간 초막에서 살던 축제입니다. 또한, 초막절은 한 해의 마지막 수확물인 포도와 올리브를 거두어 저장하는 시기와 겹쳤기에, 이에 감사하면서 다가올 겨울 우기에 비가 충분히 내리길 기원하는 축제이기도 했습니다.
초막절에서 중요한 상징은 물과 불이었습니다. 초막절 마지막 날에는 제단에 물을 부었는데요, 그 이유는 첫째, 광야에서 하느님께서 모세를 시켜 바위를 쳐서 물을 나오게 하신 사건을 기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순 제3주일 1독서 말씀이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실로암 연못에서 길어 올린 물을 부으면서, 비와 하느님의 은총을 간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실로암 연못은 지난 주일인 사순 제4주일 복음 말씀에 등장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초막절 마지막 날에 말씀하실 것입니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요한 7,38)
또한, 초막절에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했던 불기둥을 기념하기 위해 성소에 있는 촛대와 횃불을 밝혔는데, 이 횃불이 꺼진 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8,12)
오늘 복음에서 “초막절이 가까워오자 형제들이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고 난 뒤에 예수님께서도 올라가십니다.” 여기서 ‘올라가다’로 번역된 단어는 훗날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시는’ 승천을 표현할 때와 같은 단어가 쓰였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신 것이 단순히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수난과 영광을 향한 신비로운 여정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예루살렘 주민들 가운데 몇 사람은 말합니다. “최고 의회 의원들이 정말 저 사람을 메시아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당시 사람들은 메시아가 어떤 분일지에 대해 세 가지 기준을 갖고 있었는데, 첫 번째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27절)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메시아는 많은 표징을 일으키리라’(31절)는 것이었고, 세 번째는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나온다’(42절)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이제 이 기준을 하나씩 하나씩 들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은 ‘메시아가 어디에서 오는지 몰라야 하는데, 너희는 내가 갈릴래아에서 온 것을 알고 있으므로 메시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요한 복음 1장은 어떻게 시작하지요?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출신이라고 시작하나요? 아니죠?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1.3.11)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갈릴래아에서 오시기 이전에 하느님으로부터 오신 분인데, 그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맞아들이지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유다인들은 자신의 주위에 있는 이교도들과는 달리 자신들이 참되신 하느님을 알고 있다는 것을 대단한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그들은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아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이고,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고, 복수가 아니라 용서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실천해야겠습니다. 우리의 실천이 하느님이 누구신지 안다고 증언하기도 하고, 모른다고 증언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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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g1odSgr247Q?si=0tgB_7vY08qxsx1U
바흐, b 단조 미사 중 자비송, 필립 헤레베레 지휘, 콜레기움 보칼레 헨트
오늘날 초막절 축제 기간 동안 유다인 가족들이 식사하고 잠을 자는 초막들
출처: Sukkah Roofs - Sukkot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