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글은
2019년 2월 14일 포스팅하였습니다.
어느덧 우리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우경화를 염려할 정도로 중도좌파와 극좌로 좌경화되었습니다.
PC언어의 순화, 그 친근한 삶의 정서는
좌파적 포스트모던의 카르텔을 형성하여 인권과 평화와 박애와 평등을 선점하였습니다.
인권과 평화와 박애와 평등으로 제련된 좌파적 칼날은
보수우파의 가치를 적폐청산의 도마위에 올려놓고 무소불위의 위력을 행사하였습니다.
기울어진 운동장, 그 좌파적 편향성은
이제 우리의 문화, 그 상식이 되었습니다.
21세기에 자유와 정의를 억압할 수 있는 가치로 고착화된 좌파적 이념은
주사파 정권의 전체주의 폭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창비신공으로 장악한 문화권력은
역사해석의 주도권을 장악하여 시장경제로 형성한 부를 탕진하고 있습니다.
자유의 텃밭에 뿌려진 가라지는
곡식의 알곡으로 둔갑하여 거짓의 산을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혼용무도한 세상......
지역의 갈등을 뛰어넘는 세대갈등과 이념의 갈등으로 적벽대전의 골이 깊어졌습니다.
세대 갈등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아들이,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불화하는 사람의 원수가 집안식구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태극기를 들고, 그 아들은 촛불을 드는 가정의 불화를 비롯하여
태극기를 사랑하는 남편과 촛불을 사랑하는 아내와 파경의 길을 제촉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태극기와 촛불의 간극은
친구의 우정마저 갈라치기를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다보면
1919년 3월 1일을 깃점으로 국내에서는 독립운동이 점차 사라졌으며
황국신민, 일본천황이 다스리는 백성으로 동화되었습니다.
1921년 자유시 참변 후 중국을 비롯한 만주에서의 독립운동은
일제에 항거하는 좌익의 독립운동이 득세하였습니다.
자유시 참변으로 소련의 적군에 흡수되지 않은 독립군은 말살되었으며
자유시 독립군 집결을 거부하였던 김좌진 장군은
1930년 공산당 독립군에게 피살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에 대적할 수 있는 조직은 좌익운동이었으며
좌익운동은 곧 독립운동, 그 자체였습니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한 한반도는
친일파를 몰아내는 좌익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1948년 이승만 정권의 자유 대한민국 건국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기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정치인과 동문수학한 이승만의 외교적 역량은
미군정의 발판으로 자유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자유 민주주의 건국은
좌익의 저항으로 1946년 대구 10월 폭동과 1948년 4.3 제주 폭동과
1948년 여순반란 사건과 1950년 6.25 사변의 참상이 되었습니다.
한반도에 새겨진 좌익의 참상은 민중사관이 되었고
민주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의 옷을 입은 좌익혁명은 5.18 광주 폭동을 민주화의 성지로 만들었습니다.
김영삼 정권이 정치적 거래로 왜곡 날조한 5.18 폭동의 민주화는
좌경화의 모멘텀이 되어 좌파적 포스트모던의 카르텔을 형성하는 만리장성이 되었습니다.
작금의 정치인 대부분은 김영삼과 김대중의 민주화 씨앗의 열매요,
자유의 텃밭에 뿌려진 가라지는 좌경화의 무풍지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좌파적 포스트모던의 카르텔은
언론과 국회와 법원과 교육과 문화와 경제와 종교를 장악하였습니다.
좌파의 무풍지대에서 우경화의 길은
고난의 가시밭길이요, 고통의 칼날 위에서 선 험산준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좌파의 무풍지대에서 살아남은 광장과 거리의 태극기 물결은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이념과 박정희 대통령의 부국강병과 박근혜 대통령의 자유통일을 외치는
우파의 남은 자, 그 자유의 함성이 되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5.18 민주화에 함몰된 자유 한국당의 지도부는
자유 통일의 길을 모색하는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킨 내부의 적으로 위풍당당하기만 합니다.
이렇듯 5.18 민주화 세력은 각계각층을 장악하여
자유의 텃밭에 뿌려진 곡식의 가라지로 추수의 타작마당을 점령하였습니다.
곡식의 알곡을 거두지 못한 농부는
망연자실, 하늘을 우르러 탄식할 뿐입니다.
작금의 보수 우파 학자가 없고 보수 우파의 정치가가 없는 자유 대한호는
베트남의 공산화와 베네주엘라의 사회주의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뿌리를 둔 민초는
이유있는 주권의 저항으로 민초의 바다를 이루며 자유의 파랑이 되어 태풍의 핵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난 날 좌파의 해방구 광화문은 태극기 물결의 성지가 되어
적색광풍의 무풍지대를 무력화시킬 강력한 쓰나미가 되었습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하늘의 명령, 그 통치로 자유 통일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우파와 좌파의 첨예한 갈등과 대립은
지역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하였고 세대와 이웃의 적이 되었습니다.
성서지대는 이념보다 더 깊은 갈등 구조를 가졌으며
성민 이스라엘과 이방의 관계는 불가역적이었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는 불가역적의 뿌리요,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은 절대 없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의 이주정책으로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는 에브라임 자파가 아닌 이방의 땅이 되었습니다.
에브라임 땅의 이방화는 유대인의 경계가 되었고
유대인의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는 역사적 혼혈족이라는 사마리아의 올가미를 끊어 내고
선한 사마리아 사람으로 사랑의 주권을 베풀었습니다.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사랑의 주권을 행사하여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선한 이웃의 지표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랑의 주권을 가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원수를 사랑하는 선한 능력으로 빛의 갑옷을 입었습니다.
좌익의 총탄에 죽은 아들을 대신하여 그 원수를 아들로 삼은 손양원 목사님은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선한 이웃의 지표, 그 사랑의 원자탄이 되었습니다.
성서지대, 그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은
여호와의 열심으로 하늘은 의의 빛을 뿌리고 땅을 구원을 열었습니다.
☞ 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의를 부을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사45:8)
하나님의 창조적 구원은
죄의 악을 씻는 용서, 그 놀라운 인자와 긍휼이었습니다.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12:2)
☞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7:18-19)
☞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시149:4)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벗이라고 하였던 하나님은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그리스로 말미암아 죄인을 위해 생명을 내어 주는 친구의 지표가 되었습니다.
☞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12-14)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본받아
원수를 축복하고 위해서 기도하며 사랑하면 원수의 적이 아닌 친구가 됩니다.
이렇게 성서지대는 이념의 벽을 뛰어넘는 진정한 이웃과 친구의 길로 구원을 열었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충만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이웃과 친구의 지표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너의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간수와 죄수가 이웃과 친구가 되게 하였고 풍성한 구원의 은혜가 되었습니다.
이념의 갈등으로 파경을 맞고 원수의 적이 가족와 이웃과 친구입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죄인,
가까이 있는 사람과 멀리 있는 사람의 화평의 길을 열었습니다.
누구든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본받는다면
이념의 적도 진정한 그리스도 안의 권속과 이웃과 친구가 될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우파와 좌파의 공론장이 아니라
같은 성도끼리 이념으로 말미맘는 원수의 적으로 상대하지 말고
오직 주의 말씀을 따라 사랑의 주권을 행하여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지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빛의 갑옷을 입지 못한 한국 교회는 정치적 갈등의 공론장이 되었으며
우파의 칼잡이도 크리스챤이요, 좌파의 칼잡이도 크리스찬인 양날의 검을 가졌습니다.
우파와 좌파, 그 이념의 검을 가진 자는
오직 사랑의 주권을 행사하여 선대해야 할 것이며
주께서 피로 사신 그의 성도를 잔인하게 난자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화평의 제물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죄인을 화목하게 하시고 멀리 있는 사람과 가까이 있는 사람을 화평하게 하였습니다.
참된 평화와 화평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13-22)